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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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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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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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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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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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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7화.

DUMMY

머리에 흰 서리가 잔뜩 내려앉은 중년의 남자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국 MBS 평동일 국장.

그는 이광기가 연출 중인 늑대 사냥꾼에 한 녹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야?”

“네. 어떠십니까?”


평동일 국장은 턱을 쓸어만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구경하던 시민이라고?”

“네.”

“깡패 아니고? 문신 있는지 없는지 벗겨 봤어?”

“네. 비주얼만 보면 믿기 힘들겠지만 그런 쪽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평동일 국장은 곧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잘하네.”

“저도 처음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뭐 하는 사람이야?”

“화물 운송일을 하고 있답니다.”

“화물 운송? 운송업 하면서 연기를 공부했다는 거야?”

“배운 적은 없고, 그냥 단역만 몇 번 해봤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돼?”


그가 보는 강철의 연기엔 능숙함과 여유가 있었다.

연기를 몇 번 해보지 않은 배우에겐 어색함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아무리 봐도 초짜티가 나지 않는다는 게 국장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120분 정도 더 늘리겠다고?”

“네. 그럴 생각입니다.”

“조 작가는 알고 있나?”

“국장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디테일하게 얘기해 볼 참입니다.”

“자네가 보는 눈은 있다는 건 인정하네만, 또 죽 써서 개 주는 거 아니야?”


이광기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그 후부터 대부분 승승장구의 궤도를 달렸고 이광기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이광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쓴 죽이 개한테 가든 돼지한테 가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전 좋은 작품만 만들고 싶습니다. 국장님.”


국장이 입을 열려 할 때 이광기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조 작가가 이를 갈고 대본 만든 티가 나더라고요. 이번엔 진짜 될 것 같습니다. 최강철이 활용해서 좀 자극적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주인공의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스토리를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예산이 너무 빠듯한 게 문젭니다.”


사실 강철의 비중을 조금 늘린다고 해서 예산에 큰 무리는 가지 않는다.

이광기는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강철이라는 캐릭터를 확실하게 써먹기 위해 차들의 전복 장면과, CG, 수많은 엑스트라 등등.

육중한 몸에서 뿜어내는 파워, 그리고 그 몸에서 이어지는 화려한 액션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참이다. 예산만 충분하다면.


“음··· 안 그래도 반 억지로 받아낸 투자인데, 더 투자하겠어?”


그간 성적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탓에 평동일 국장은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들, 단역의 비중이 늘어났다고 해서 드라마가 확 살까?

머리가 복잡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이광기의 의지는 확고했다.


“안 되면 제 월급이라도 까야죠.”


그만큼 강철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


통유리로 된 창문 사이로 눈이 부신 한강뷰가 보이는 사무실.

그 앞 소파에 늑대 사냥꾼 투자자가 앉아 있다.

깔끔한 슈트 차림에 포머드 머리를 한 그가 앞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120분 정도를 더 연장하신다구요?”


그와 반대로 초췌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남자.

옆집 아저씨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는 남자는 이광기 PD다.

비록 어디에서나 볼법한 흔한 얼굴이지만, 그가 풍기는 아우라와 무게는 투자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 혹시나 반응이 좋다면 그 이상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얼마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40억입니다.”

“40억이요?”

“네.”


잠시 뜸 들이던 투자사는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저희가 뭘 믿고 그 금액을 투자하란 겁니까?”


오로지 배유나만 보고 이 드라마 제작을 선뜻 지원한 투자사다.

결국, 배유나가 이 드라마에 모든 지원을 하고 있는 셈.

한데, 감독이 뜬금없는 추가 투자를 원하니 콧방귀를 뀌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 드라마에 남, 여주인공 빼놓고 내세울 배우가 있습니까? 근거도 없는 신인 배우들이 천지인 드라마에 40억을 더 투자하란 말은 조금 넌센스 같군요.”


빌어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광기는 기죽지 않았다.


“의료사업도 뛰어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PPL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럽게요. 혹시 다른 제품 생각하신 거라도 있으시다면 그것도 포함하겠습니다. 투자원금 회수는 당연한 거고, 제가 어떻게든 투자 대비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자, 이광기는 USB 하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배우 연기영상입니다. 천천히 보시고 답변 주세요. 영상 보시면 제가 왜 이렇게 욕심을 내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건 강철의 연기가 담긴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투자사는 마음을 굳혔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이광기를 붙잡았다.


“그냥 가져가세요. 저희 쪽에서 더 이상의 투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쳐다도 보지 않고 손까지 내젓는 걸 보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단호한 지 알 수 있다.

이광기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정중한 그의 모습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남다른 열정이 깃들어있었다.


“놓고 갈 테니 시간 되실 때 한 번만 봐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광기 PD가 떠난 자리.

‘늑대 사냥꾼’ 투자사 유현필 회장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광기가 내려놓고 간 USB는 아직 쳐다도 보지 않은 상태다.


그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건 이광기의 과한 욕심이다.

차라리 인지도 있는 배우 캐스팅 문제라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신인을 위해 40억을 투자하라는 게 말인가 방구인가···

여태까지 이광기가 낸 성적을 보면 도무지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청률도 안 나오는 양반이 욕심만 많아가지고···”


배유나 때문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그것마저도 괜히 나섰나 싶을 정도다.


유현필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다, 문득 USB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보기나 할까?

저렇게 점잖게 부탁까지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어도 뭔가 있겠지 싶었다.


그는 결국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런데, 영상에서 나오는 한 남자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어!? 이 사람!?”


3년 전, 아니 정확히 4년 전에 봤던 사람이다.


***


4년 전,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날의 기억.


유현필은 가족과 모처럼 여행을 즐기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슬쩍 바라본 백미러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10살배기 아들과 8살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정신없이 놀더니 피곤했나 보네.’


유현필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이니 그럴 만도 했다.

추가 사업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유현필은 곧 조수석에 앉은 와이프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웃었다.

자신의 바쁜 일정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뒷바라지하는 그녀였다.

아이 둘을 케어하느라 어느새 주름도 많이 늘었다.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더 잘해야지. 이제부터라도 두 아이, 사랑하는 와이프와 더 시간을 보내야겠다 다짐했다.


그때.


“어!? 여보!”


순간, 가드레일 밖에서 튀어나온 야생 멧돼지가 유현필이 주행하는 길 정면에 뛰어들었다.

놀란 유현필이 핸들을 반대로 꺾었지만, 차마 피하지 못한 멧돼지 뒷다리를 들이받으며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차량은 굉음과 함께 가드레일을 찢었고.


끼이이익ㅡ 쾅!


전복되어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유현필은 힘겹게 의식을 찾았다.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가족은 이미 의식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본넷에선 새카만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보? 여보! 정신 좀 차려봐. 얘들아. 예준아! 예빈아!”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조금씩 새어 나오던 연기는 어느새 큰 불길이 되어 번지기 시작했고.

얼른 벗어나지 않으면 차가 터져버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이어질 참이었다.


쿵. 쿵. 쿵.


“제발, 제발, 열려라.”


자신 역시 큰 부상을 입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있는 힘껏 차 문을 두드리고 차 보지만, 심하게 찌그러진 차 문은 그들을 이곳에서 내보내 줄 생각이 없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혼미해지고, 눈앞의 시야가 흐려진다.

힘이 다 빠져 도저히 이 문을 박차고 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그때.


쿵! 쿵! 쾅!


유현필의 눈동자에 기적처럼 한 남자가 맺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금방 꺼내 드릴 테니 기다리세요!”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자신이 발로 차도 꿈쩍 않던 커다란 문짝을 마치 무 뽑듯 그 자리에서 뽑아버렸다.


찌그덕ㅡ 빠각!


뿐만 아니라 남은 차량의 문마저도 종잇조각 찢듯 찢어버린 남자는 자신의 가족을 차례대로 구해내기 시작했다.

새카만 연기를 내뿜던 차량은 이내 곧 화산 폭발하듯 굉음을 내며 터져버렸다.


펑!


다행히도 유현필의 가족은 전원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는 채로 모두 구조되었다.


구조 과정에서 의식을 잃어버린 유현필은 뒤늦게 병원에서 깨어났다.

은인에게 보답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당최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찾았다.


작가의말

좋은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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