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7,548
추천수 :
201
글자수 :
80,876

작성
23.10.02 19:17
조회
414
추천
11
글자
9쪽

12화.

DUMMY

모니터링하는 내내 이광기 PD 입이 귀에 걸렸다.

정작 강철은 무덤덤한데, 이광기가 난리 블루스다.


“동작이 아주 시원시원하잖아. 이런 게 액션이지.”

“강철 씨, 진짜 액션 처음 하는 사람 맞아요?”

“배우 기질이 타고났다니까. 이 봐, 동선이 깔끔하잖아.”


조연출 김사랑은 이런 이광기의 모습이 낯설다.

최근 들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칭찬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물론, 자신이 보아도 강철의 액션은 부족함이 없었다.

거친 외관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여유, 마성의 매력이 있다.


“강철 씨는 어때?”


시선이 강철에게 자연스레 쏠렸다.

강철은 그 시선을 삼키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기분인데,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그 대답에 이광기는 강철을 한참 쳐다봤다.

이 전에도 강철과 똑같은 대답을 한 배우가 있었다.

자신과 작품을 했었던 배우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끝까지 존경심을 표하던 배우가.

그 배우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자신과 친분을 다지던, 재능이 유난히 뛰어났던 강훈이라는 배우였다.


“묘한 기분이 드는 구만.”

“네?”

“아니 아니, 그럼 이건 이렇게 마무리하고, 마무리 신 하나만 더 찍어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이어진 마무리 촬영 신.

훤칠한 상체를 드러낸 최강철이 등을 지고 카메라를 슬쩍 바라본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역삼각형의 탄탄한 몸매가 들썩인다.

카메라가 저 멀리 있는데도 앵글을 꽉꽉 채우는 느낌이다.

그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그가 뿜어내는 포스가 엄청나다.

마치 성난 시베리아의 수컷 호랑이를 보는 것처럼.


이광기는 모니터링을 하며 누구보다 그 위압감을 리얼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아, 하아···”


최강철의 거친 숨소리.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광기는 흐뭇하게 웃었다.


“컷! 아주 좋아.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합시다.”


모든 촬영이 끝났다.

연달아 액션신을 찍는 탓에 지칠 만도 하지만, 최강철은 아무렇지 않게 얼른 옷을 주워 입었다.

쓰러진 주위 배우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일으켜 세워주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엑스트라부터 시작했었던 강철.

이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동료로서 이렇게 동요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최강철이 손만 올려도 움찔대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편안한 웃음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이젠 농담까지 섞어서 말이다.


“보스. 오늘도 한 수 배워갑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다 잘 받아주신 덕분입니다.”

“그럼 내일 봬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촬영장은 어느샌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어둡던 현장에 어느샌가 호통보다 웃음꽃이 더 많이 퍼져 흐르기 시작했다.

최강철의 등장부터다.

사람 한 명이 놀랍게도 현장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밤낮으로 이루어지던 촬영 시간.

그런 촬영 시간을 3/1가량 줄여버렸으니, 모두의 입가엔 함박꽃이 잔뜩 피었다.


그때, 이광기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늘 오래간만에 회식이나 좀 하지.”


회식이란 말에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동안 회식은커녕, 그런 자리를 꿈도 못 꿀만큼 바빴다는 증거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싫어?”

“싫기는요,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 표정은 회식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았다.


순간, 강철은 고개를 돌리다 배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배유나는 곧장 새침하게 등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옛 기억엔 저런 눈이 아니라 착한 인상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광기가 배유나에게 먼저 다가가 입을 열었다.


“유나 씨. 같이 갈 거지?”


배유나는 강철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


“전 됐어요.”

“우리 귀하신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지. 무슨 일 있어?”

“그냥 별로 안 내켜서요.”

“그러지 말고, 다들 고생했는데 오랜만에 몸보신 좀 하자고.”


이광기의 노력에도 배유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신선한 충격이다.

보통은 배우가 감독에게 쩔쩔매야 정상인데.


강철의 기억에도 이광기 PD님의 저런 모습은 낯설었다.

드라마를 제작할 대부분의 지원을 배유나를 통해 받으니 이해는 하지만. 정작 마음에 안 드는 건 그녀의 거절 태도다.

모든 스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독을 두고 팔짱을 끼고는 들은 채도 안 하는···

나이를 떠나 연기판에서 굴러먹던 경력을 따져도 한참 선배일 텐데.


강철은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몰랐던 걸까, 아님 그동안 다른 얼굴을 잘 연기해왔던 걸까.

TV 속에서 보던 그녀의 천사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두 얼굴의 모습이다.

연기를 시작했을 적엔 제법 순수함이 있었는데···

그릇에 넘치는 부와 명성을 얻으면 이렇게 되는 걸까?

그녀의 행동엔 이제 초반의 순수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180도 달라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랜 설득 끝에 배유나는 회식 자리로 움직이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이광기는 뒤늦게 누군가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강철과 눈이 마주치고는 환하게 웃었다.


“우리 강철씨가 빠지면 안 되지. 같이 가자고, 내가 오늘 몸보신 제대로 시켜줄 테니까.”


***


“자, 늑대 사냥꾼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제법 볼이 붉게 달아오른 이광기가 먼저 술잔을 들이켰다.

스텝과 배우들은 그를 뒤로 천천히 술을 목에 넘겼다.

메뉴는 소고기.

최고 등급은 아니지만, 무한 리필이 아닌 게 어디인가.

스텝과 배우들은 오래간만에 만들어진 만찬을 최고의 진수성찬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낮이며 밤이며 굴러댔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다.


강철은 당연히 이광기 옆자리에 붙잡혀 앉아 있었다.


“강철씨는 술 얼마나 먹는다 그랬지?”

“남들 먹는 만큼만 먹습니다.”

“일부러 조절하는 건 아니고?”

“아닙니다.”

“이야, 우리랑은 통 자체가 달라서 짝으로 놓고 마실 것 같은데. 그거 의외구만. 하하하.”


강철이 멋쩍게 웃었다.

하긴, 자신이 봐도 물보다는 술을 더 즐겨먹을 것 같은 인상이긴 하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조연출 김사랑이 물었다.


“조 작가님도 오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 조 작가? 대본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네. 쉬엄쉬엄하래도 성격 알잖나.”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사람 얼마 되지도 않는 거 모일 때 같이 모여서 먹어야 되는데.”

“얼른 시청률 대박 나서 다 함께 자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더도 말고 15%는 간다!”

“15%요? 20% 가야죠 PD님.”


시청률 15%.

그러고 보니 이광기 PD님 작품 시청률이 항상 저조했다.

내용은 나쁘지 않은데, 항상 타이밍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달까.

동시간대 다른 작품에 밀려 항상 2인자 역할을 지켜야 했다.

조현영 작가님도 비슷한 처지.

밤 낮으로 글에 매달리는 그녀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제대로 나오질 않는 케이스다.


이광기와 스텝들이 주는 술잔이 어느새 7잔이 넘었다.

얼굴이 어느샌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강철은 바람도 쐴 겸, 안부전화를 위해 잠시 일어났다.


“어디 가시나 봐요.”


식당 입구를 나서자, 순간 배유나가 강철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강철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시선을 멈췄다.

벌레보듯 하던 그녀가 뜬금없는 말을 뱉어낸다.


“전 조폭, 양아치들이 너무 싫어요.”


강철은 헛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전 그런 사람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확실해요?”

“네.”

“그런데, 일반인이 어떻게 동네 조폭들과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죠?”

“그건···”


강철이 해명을 하려는데, 배유나가 말을 끊었다.


“시청률 걱정돼서 하는 얘긴데 ···.”

“······.”

“부디 괜한 사건 얽혀서 우리 드라마에 피해 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배유나는 곧 걸려오는 전화를 급하게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응. 지금 갈 거야.”


순간, 강철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잘못이 있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유 없는 폭력은 죄다.

생사람을 잡는 그녀를 붙잡고선 조심스러운 한 마디를 건넸다.


“절대 드라마에 피해 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근데···”


그리고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의 그녀에게 등골이 섬뜩한 말을 이어붙였다.


“지금 혹시 청담 쪽 가세요? 남자 보러.”


배유나가 순간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강철이 슬쩍 웃었다.

비밀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웃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겐 무엇보다 살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치 온몸을 청 테이프로 돌돌 말아 어두운 호숫가에 던져버릴듯한 표정으로 보였을 테니까.


작가의말

항상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하단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좋은 저녁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긴급 공지. 23.10.10 202 0 -
공지 즐거운 추석 되시길 바랍니다. 23.09.29 198 0 -
16 16화. +1 23.10.08 296 9 11쪽
15 15화. 23.10.07 354 11 11쪽
14 14화. +1 23.10.06 377 15 12쪽
13 13화. +1 23.10.04 401 10 10쪽
» 12화. 23.10.02 415 11 9쪽
11 11화. +2 23.10.01 436 13 13쪽
10 10화. +1 23.09.28 439 12 12쪽
9 9화. 23.09.27 455 14 13쪽
8 8화. 23.09.24 475 15 12쪽
7 7화. 23.09.23 473 18 10쪽
6 6화. 23.09.22 469 14 14쪽
5 5화. +1 23.09.21 478 12 11쪽
4 4화. 23.09.20 480 12 9쪽
3 3화. 23.09.19 524 13 9쪽
2 2화. 23.09.18 583 12 11쪽
1 1화. +2 23.09.18 881 1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