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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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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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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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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876

작성
23.09.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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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DUMMY

하마터면 모든 걸 잃을 수 있었던 그날.

기적처럼 나타난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두 다리 뻗고 멀쩡하게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마음이 이제야 풀리는 것만 같다.

이제는 자신이 빚을 갚을 차례였다.

유현필은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어 이광기에게 연락했다.


-네. 이광기입니다.

“40억. F스토리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진행하시죠.”


전화기 너머에선 한동안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불과 1시간 정도 밖에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까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아주 상반되는 태도에 이광기가 잠시 당황한 듯 싶었다.


그때, 유현필이 말을 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당장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이광기는 속으로 짧은 환호를 내질렀다.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강철이 보여준 위압감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방심은 이르다.

말은 저렇게 했어도 뒤탈이 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광기가 말했다.


“그럼 제가 장소 잡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장소는 제가 잡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뚝.


갑자기 바뀐 투자사의 태도에 이광기는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스타일인가?”


***


투자사와의 중요한 만남이라 단단히 각오를 다지라는 이광기의 지시다.

강철은 몸에 맞지도 않는 정장까지 차려입고선 일찌감치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당이 아니네.”


식사 자리라길래 일반적인 식당이나 레스토랑을 생각했는데, 반전이다.

눈앞엔 보이는 건 분명한 단독주택, 가정집이었다.

그런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옆엔 북한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건너편엔 예쁜 계절 나무들이 손님을 반기듯 고개를 들고 있다.


그때.


“먼저 와있었구만.”


뒤늦게 이광기가 도착했다.

옷차림새를 보니 그 역시 잔뜩 힘을 준 게 보인다.

투 버튼 니트에 수트.

항상 편한 옷차림만을 선호하는 이광기가 수트까지 입었다는 건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중요한 자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듯, 강철 역시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오셨습니까.”

“먼저 들어가지 왜 앞에서 기다리고 있나.”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렇구만. 자 들어가세.”


강철이 초인종을 눌렀다.

옆에 있던 이광기는 그런 강철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야, 이렇게 입으니까 몰라보겠어. 어디 사장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강철은 뒷머리를 슥 매만졌다.

분명 그 회장은 다름 아닌 조폭을 얘기하는 것일 것이다.

귀공자, 재벌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전과는 달리, 무슨 옷을 걸쳐도 정반대의 느낌만을 연출하니까.

깡패, 건달, 사채업자··· 뭐 그런 쪽 말이다.


그때, 집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콧수염이 매력적인 중년의 셰프였는데, 아주 반가운 얼굴로 이광기를 맞이한다.


“오랜만입니다. 감독님.”

“3년 만인가요? 이 귀한 곳을 다시 올 일이 생기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그렇게 볼거리가 가득한 공간을 지나 고급스러운 룸 앞에 도착했다.


똑똑.


“네.”


문이 열리자, 이광기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고급스러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제가 보여드렸던 신인 배우···”


그런데, 순간 이광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투자사 유현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철의 두 손을 덥석 잡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고개까지 푹 숙이고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왜 이제야 나타나신 겁니까.”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일까.

더 당황스러운 건 최강철의 태도다.


“설마, 그때 흰색 차주 분?”


마치 알던 사이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이광기는 석상처럼 굳어 둘을 지켜봤다.


그 사이, 유현필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자신이 맞는다며 끄덕였다.

그가 잡은 손엔 어찌나 감정이 서려있는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두 다리 뻗고 지내는 것도 다 배우님 덕분입니다. 제가 그 빚을 갚으려고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십니까.”


강철이 정말 놀란 눈을 하면서 말했다.


“그때 사정이 좀 있어서요. 무사해 보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네요. 참, 가족분들도 괜찮으시죠?"


유현필은 그제야 두 손을 놓고 이광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영상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이대로 또 잊혀졌을 겁니다.”


영문도 모르는 이광기지만, 이내 웃으며 거들었다.


“깊은 사정은 모르지만, 인연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이렇게 마주치게 되는 걸 보면.”

“그러게 말입니다. 자, 일단 들어오시지요. 여기 셰프님을 잘 알고 있는데 음식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어서 앉으세요.”


강철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세상이 참 좁다 좁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몇 년 전, 단 한번 만났던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게다가 그는 이 드라마의 투자자다.


강철은 뒤늦게 미소를 머금었다.

비록 자신이 했던 선행은 아니지만, 이제 자신은 최강철이 되었다.

선행에 선행을 더 해 최강철이란 이름을 더욱더 빛낼 것이다.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유현필은 전과는 다르게 아주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강철과 이광기는 1인당 백만 원이 넘어가는 호화스러운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으며, 오래간만에 아주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테이블 앞에 놓이는 화려한 음식들.

강철은 셔츠를 팔꿈치까지 젖히고는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댔다.

본능적으로 차오르는 이 식탐을 저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긴 이 몸으로 쉽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니까.


유현필은 그런 강철을 보며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유현필이 말했다.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마터면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용기 낼 수 없는 상황에 그런 행동을 하신 건 정말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유현필은 고개를 돌려 이광기에게 말했다.


“감독님. 이후 들어갈 금액은 말만 해주십시오. 저희 F스토리에서 드라마 완결까지 모든 금액을 전폭 지원하겠습니다.”


이광기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입니까?”

“네.”


40억이 아니라 그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드라마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대주겠다는 약속.

이광기는 그런 유현필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사정을 듣게 된 후부터는 최강철을 더 금덩이 보듯 했다.

어쩌다 마주친 일반인 한 명이 자신의 인생에 들어와 드라마를 쓰고 있다.

어떤 스토리로 마감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명작을 만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유현필이 추천한 와인까지 곁들인 이광기는 두 볼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젠 강철의 어깨까지 두루고는 적당한 농담까지 섞었다.


“전 처음에 이 친구가 소위 말하는 생활하는 친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몸에 작은 문신 하나 없더라고요.”

“사실 사고가 났던 그 당시에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저승사자인가 하고요. 하하.”

“하하하하.”


정작 강철은 겉으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론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이놈의 얼굴 이야기는 평생 안주거리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


이광기의 입가엔 미소가 내내 걸려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술술 풀리고 있다.

드라마의 퀄리티도 살아나고, 투자자에 대한 복잡한 머리싸움도 필요 없었다.


“저번에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거 봤나? 아주 자신감이 넘치더라고.”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광기는 강철이 없는 자리에서 그의 칭찬을 입이 닳도록 해댔다.


“발성도 좋고··· 호흡 조절까지 하니 오디오가 확 살잖아. 그게 연기지.”

“그나저나, PD님 대본 문제는 어떻게 하시게요?”


하지만, 금방 벽에 부딪혔다.

마지막 난관이 남아 있었다.

강철이라는 배우를 지금 있는 대본에 집어넣으려면 조현영 작가와 조율을 해야 한다.


“이제 해결해야지.”

“조 작가님이 곱게 허락하실까요?”

“대화를 좀 나눠봐야지.”


이광기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강철의 신선한 캐릭터가 계속 맴돌았다.

그를 활용한 액션 연출이 상당히 기대되는 눈치다.


“조 작가도 찬성할 거야. 무조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이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으니까.


***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식탁 위.

구겨진 캔들이 잔뜩 널려있다.

그 대부분이 카페인 들어있는 음료들이다.


꿀꺽. 꿀꺽.


하지만,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지 조현영 작가는 커피까지 연달아 들이키고 있었다.


조현영 작가.

벌써 이광기 PD와 호흡만 세 번째 맞추고 있는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명성을 조금 알리고 있는 평범한 작가였다.

그런 그녀의 고집은 만족스러운 시나리오를 뽑을 때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오늘 역시도 벌써 삼일 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그녀는 떡진 머리를 긁어대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아쉬운데.”


이미 촬영에 들어간 작품의 마무리를 짓고 있는데, 2% 모자라는 느낌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작가의 욕심이자 습관이다.

단점이 눈에 띄는 탓에 계속 수정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때.


위잉ㅡ 위잉ㅡ.


휴대폰이 울렸다.

이광기 PD다.


조현영 작가는 잠시 안경을 벗어놓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 PD님.”

-어, 조 작가. 뭐해?

“시나리오 다듬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크흠, 다름이 아니고 지금 대본 말인데···

“안 돼요.”


조 작가는 이광기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잘라버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예상한 것이다.


-아니, 얘기는 좀 들어보고 안 된다고 해야지.

“대본 수정하자는 얘기 아니에요?”

-캐릭터를 하나 찾았어.

“안 돼요. 저 지금 진짜 탈모올 것 같단 말이예요.”

-그건 안 감 아서 그런 거 아니야?

“······”


싸늘한 정적이 흐르자, 이광기가 빠르게 수습했다.


-농담이고. 조 작가 일단 말야··· 내가 영상을 하나 보내줄 테니까 한 번 보고 연락해 줘. 내가 괜히 이러는 거 아니라는 거 영상 보면 느낄 거야. 알았지?

“알았어요. 일단 보내주세요.”

-OK.


곧이어 전송된 동영상을 살폈다.

이광기가 보내온 영상은 총 두 개.


조현영은 일단 먼저 받은 영상 하나를 틀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또 누구한테 꽂힌 거야?”


영상이 시작되자, 극중 여 검사가 소리를 질러대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이야!? 대한민국 현직 검사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


이어지는 단역 배우의 대사.


[ 우린 그런 거 모르오. ]


그때, 눈에 띈 한 남자를 보며 조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 말하는 건가.”


동료 배우들과 덩치가 두 배는 차이가 나는 사람이었다.

얼굴에 반을 둘러싸고 있는 거뭇거뭇한 수염들.

눈은 당최 어디를 바라보는 건지 모를 만큼 작고 게슴츠레해 보이는 남자였다.

카메라에 등장하는 순간 시선을 확 사로잡는 탓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검사는, 배때기에 칼 안 들어갈 것 같아? ]


순간, 조현영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광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디님, 저한테 언질 없이 모르는 사람 투입하면 섭섭해요 진짜. 이 사람 영상 다 보내줘 보세요.”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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