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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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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7,550
추천수 :
201
글자수 :
80,876

작성
23.10.08 20:45
조회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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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16화.

DUMMY

뜬금없는 배유나의 등장에 강철은 잠시 머뭇거렸다.

어느샌가 주위 시선이 이쪽으로 잔뜩 쏠려 있는 걸 느꼈다.

A급 스타, 배유나 때문이다.


강철은 할 수 없이 덤벨을 내려놓고 말했다.


“네. 그러시죠.”


배유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직원들만 들락거릴 수 있는 방에 강철을 데려갔다.

5평 남짓한 작은방.

직원들이 식사 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방으로 보인다.


강철이 방을 이리저리 살피자, 배유나가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 제 친척 동생이 운영하는 헬스장이거든요.”

“아, 네.”


순간, 배유나는 입가에 미소를 만들며 말을 이었다.


“이런 데서 마주치니 반갑네요. 운동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좋아합니다.”

“촬영할 때 보니 몸이 아주 탄탄하던데요? 운동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저도 운동 좋아하거든요.”

“15년 정도 했습니다.”

“15년!? 그럼 중학생 때부터 운동을?”

“네.”


강철은 찰나에 배유나 표정을 살폈다.

죽일 듯이 쏘아보던 그녀의 뱀 같은 눈빛은 어느샌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도 억지 미소까지 만들어내는 걸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어도 단단히 있어 보였다.


강철이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아 참, 내 정신 좀 봐.”


배유나는 손을 슬쩍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제가 최강철씨를 혼자 오해한 것 같아서요. 사과 좀 하려고요.”

“무슨 사과요?”

“전에 깡패라고 오해했던 거, 그거 사과할게요.”


강철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가 싶었는데, 결국 제풀에 꺾여 꼬리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렇다 한들, 여태 했던 행동들을 쉽게 넘어가 줄 리 없었다.

강철은 배유나가 내민 손을 무시한 채, 웃음기를 지웠다.

이제부턴 연기를 한다.


“돌 던진 사람은 사과하면 그 상처가 지워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큰 오산입니다.”


배유나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강철은 그 기세를 몰아 표정을 최대한 험악하게 만들어냈다.

이를 꽉 물어 입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과시하고, 눈을 최대한 치켜뜨고 흰자를 만들어냈다.


“돌에 맞은 개구리는 평생을 불구로 살거나, 때론 죽기도 하거든요.”

“······.”


성인 둘이 서 있으니 꽉 차는 좁은 공간.

배유나는 점점 다가오는 강철의 표정에 지레 겁먹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 그럼 제가 어떻게 사과해야 돼요?”


강철은 표정을 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죠. 그리고 저 촬영에 목숨 건 놈입니다.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이해 못 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잦은 NG에 촬영 중간 본인 쉬겠다고 촬영 늦추는 일들을 만들지 말아달란 말입니다.”


배유나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렸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답했다.


“아,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제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네요.”


강철은 만족스러운 듯 배유나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배유나가 언제까지 가짜 탈을 쓰고 사람들을 대할지 모르겠지만, 강철이 있는 한 쉽게 틀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배유나의 비밀이라면 이것 말고도 알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강철은 이 기회로 인해 드라마에도 한층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유나를 더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아니, 욕심이 조금 더 생겨났다.


강철은 배유나를 보며 말했다.


“아, 운동 좋아하신다고 했죠? 저랑 오늘 운동같이 하실래요?”


오늘 하루는 지옥이 뭔지 확실하게 경험 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


***


프로파일러 강혁(강건우).

야망과 독기로 똘똘 뭉친 그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된 후,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모든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하고, 천재에 가까운 실력으로 범인들을 검거해 천재 프로파일러라고 불렸다.

그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특출되어 미제 사건 해결팀에 투입된다.


강혁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배우가 촬영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라 들었다.

보통 저 나이엔 뛰어노느라 정신없을 나이인데.

카메라 조명 가득한 이곳에서 감정을 잡고 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하면서도 기특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강철의 옆에 슥 앉았다.

진한 우드향 향수 냄새가 퍼진다.

남주인공 강건우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깔끔하고 잘생긴 훈남형 스타일이다.

특별한 매력은 없어 깊은 인상을 남기진 않는다.

연기도 그럭저럭 잘 하는 편에 주인공도 이번에 두 번째지만, 스타의 반열에 확 오르지 못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B급 배우다.

뭐, 그래도 지금 자신의 몸값이랑은 천지 차이이겠지만.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메인 빌런 되신 거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광기 PD님이랑 같은 지역, 학교 출신이시라면서요?”

“네?”


순간, 강건우의 표정을 살폈다.

입가에 미소를 띤 모습이 시샘하고 있는 건 아니다.

순수한 마음인 것 같다.


“PD님이 그렇게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모교 출신 중에 이렇게 훌륭한 배우가 있는지 몰랐다고요.”

“아···”


덕분에 강철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매만졌다.


“혹시 전에 연기를 하셨던 건가요?”

“병풍 역할 몇 번 했습니다.”

“그럼 대사 뱉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네. 그렇죠.”


강건우는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자신은 기획사를 통해 수많은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이다.

표정, 연기, 딕션··· 심지어는 평소 멘탈 관리까지.


“그런데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거 보면 타고나신 건가?”

“그냥 주어진 배역에 몰입을 잘한 것 같습니다.”

“너무 겸손하신데요.”


강건우는 자신보다 한참 늦게 투입된 강철이지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둘은 극 중에서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다.

강철은 이제 극중 메인 빌런으로서, 잡힐 듯하면 멀어지고 잡힐 듯하면 도망가는 아주 지능적인 존재로서 활약하게 될 테니까.


강건우가 말했다.


“든든한 빌런도 생겼으니, 더도 말고 15%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잡히지 말고 열심히 도망쳐 주세요. 그래야 제가 더 열심히 쫓아가죠.”

“알겠습니다. 열심히 도망 다녀보겠습니다.”


강철이 멋쩍게 웃었다.

강건우뿐만 아니라, 모두의 바람이 15%를 향하고 있다.

강철은 이미 달성해 봤던 성적이긴 하지만, 쉽지 않은 목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동 시간대 1위를 찍어야 그 정도 시청률이 나오니까.


주조연까지 꿰찬 강철의 마음에 무거운 짐이 하나 생겼다.

시청률 15%.

강철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육체와 자신의 연기.

모든 내공을 더 해 후회 없이 연기할 것을 생각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고생하십시오.”


강건우는 금방 그 자리를 떠났다.


강철이 자리에 다시 앉자 순간, 저 멀리 배유나가 보인다.

매니저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는 그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환자처럼 보였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어제의 결과다.

하체 운동에 자부심이 있는 그녀가 강철에게 지지 않으려 이 악물고 버틴 결과다.

15년 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다 제대로 혼쭐났다.

가뜩이나 강철을 어려워하는 그녀이기에, 더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이광기가 배유나를 보며 다가갔다.

이광기는 쩔뚝거리는 배유나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유나 씨, 어디 아파?”


배유나는 세상이 떠나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강철이 있는 곳을 슬쩍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요. 그냥 몸이 조금 안 좋아서요.”

“병원을 가야 되는 거 아냐?”

“괜찮아요. 파스 붙였으니까.”

“파스?”


영문을 모르는 이광기는 눈만 껌뻑거렸다.

사정을 알고 있는 매니저는 이마를 짚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강철은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낼 뿐이다.


해가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 저녁 11시.

촬영이 살짝 지연된 탓에 배유나가 자리에서 스탠바이를 기다리고 있다.

강철은 스토리 몰입을 위해 자리에 남았다.

배유나도 흔쾌히 허락한 상황이기에, 부담 없이 대본을 뒤적이며 이어질 촬영을 기다렸다.


오늘 신은 메인 빌런인 강철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천재 프로파일러 강건우와 특임검사 배유나가 힘을 합쳐 머리를 짜내는 모습을 그린다.

낡은 등이 여럿 달려 있는 한적한 사무실.

강철의 정체를 모르는 둘은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조사해놓은 사무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서로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턱을 괴고 있던 특임검사 배유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사람이 흔적 하나 안 남기고, 깔끔하게 사라질 수가 있죠?”


천재 파일러를 연기하는 강건우는 사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사람을 한두 번 죽여본 게 아니에요. 프로일겁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군요.”

“분명히 증거가 있을 겁니다. 천천히 살펴보죠.”


배유나는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가며 연기했다.

과연 프로다운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마리를 잡은 듯한 상황, 벌떡 일어서는 신에서 근육통에 감격해 잡음을 넣은 것이다.


“여기··· 끄악!”

“컷! 유나 씨 왜 그래?”


배유나는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한 손으로는 괜한 땅바닥을 가리켰다.


“밑에 벌레가 기어다녀서요. 다시 갈게요.”


촬영은 다시 이어졌지만, 배유나는 역시나 계속해서 NG를 냈다.


“웁!”

“컷!”


정적이 흘렀다.

스태프들은 배유나에게 괜한 짜증스러운 소리를 또 들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눈이 휘둥그레질 상황이 벌어졌다.

연신 사람들 눈치를 보던 배유나가 강철의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간 것이다.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배유나를 쳐다봤다.


배유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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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강찌
    작성일
    23.10.09 02:16
    No. 1

    리메이크인가요? 이전에 비슷한 프롤로그했다가 연중됬던거같은데 더깔끔해졌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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