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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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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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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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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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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DUMMY

순간, 강훈이 눈을 껌뻑거렸다.

160 좀 안 되는 키에 검정 슬랙스, 하얀 니트.

평범한 외모지만 통통하게 오른 볼살 때문인지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근데, 이광기 PD님 옆에 있던 스탭 아닌가.


“네?”


스탭이 예의 있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저는 드라마 조연출을 맡고 있는 김사랑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 드라마 엑스트라로 출연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출연이요?”


갑자기?

강훈이 놀란 표정을 짓자, 조연출 김사랑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붙였다.


“호, 혹시 가시는 길 막아서 언짢으신 건 아니죠···? 그랬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는 꼭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깽판을 놓고도 남을 것 같았다.

다른 조폭들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네. 그런 건 아닙니다.”


강훈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 그래도 옛 향수에 젖어 아직 헤어 나오질 못 했던 참이다.

시간도 남겠다, 살짝 즐기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용돈도 벌 수 있다면 일석이조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강훈이 흔쾌히 협조하자 김사랑의 얼굴엔 곧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잠시 뜸 들이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무언가를 물어왔다.


“근데··· 그전에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혹시···”

“건달 아니냐구요?”


김사랑이 놀라며 두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 의도를 완벽하게 꿰찼나 보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워낙에 포스가 넘치셔서 그쪽에 계신 분 인가해서.”


강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속상한 현실에 오히려 더 상냥하게 말했다.


“아주 평범한 시민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최강철은 누구보다 바른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동네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

게다가 조금의 도움이라도 필요한 상황이 눈에 띄면 몸이 먼저 반응해 움직였다.


강훈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김사랑에게 한 술 더 떠 농담까지 뱉었다.


“아, 얼굴은 제가 어릴 때 보약을 잘못 먹어서 그래요. 하나만 먹었어야 했는데 두 개를 한꺼번에 먹어가지고···”


물론, 보약 따윈 먹은 적 없었다.

백 프로 유전자의 힘이다.

새로운 몸의 주인인 최강철의 가족만 보아도, 아버지 최강현은 최강철과 정말 판박이 그 자체였다.

아들보다 작고 왜소할 뿐이지, 얼굴만 본다면 데칼코마니를 찍어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


강훈의 대답에 살짝 웃음 짓던 김사랑이 화제를 돌렸다.


“그··· 혹시나, 혹시나 해서 여쭈어보는 건데요. 카메라 촬영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순간, 강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아냈다.

자신은 7살 때부터 평생을 쉬지 않고 경험해왔는데···


“몇 번 해봤어요.”

“어떤 역할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사실, 이 얼굴로 캐스팅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만.

제대로 된 배역을 해봤다고 거짓말하면 믿지도 않을 것이다.


강훈이 대답했다.


“그냥 깡패 역할 몇 번 했었습니다. 뒤에 병풍처럼 서있는 거요.”

“아···”


김사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같아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정말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거짓말 아니에요.”


멋쩍은 표정의 강훈은 뒷머리를 슥 매만지며 대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


조연출 김사랑을 따라가는 동안 수많은 시선이 강훈에게 꽂혔다.

압도적인 포스 때문인지 강훈과 눈을 마주칠 때면 하나같이 딴청을 피웠지만, 서로가 속닥이는 소리들은 숨기지 못해 강훈의 귀에 들리곤 했다.


“뭐야?”

“진짜 깡패 데려온 거야? 대박.”

“사람 맞지? 곰 아니지?”


살면서 얼굴 공격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받아본 건 처음이다.

그래도 고새 며칠 지났다고 정이 든 건가.

이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자세히 보면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강훈은 곧 김사랑의 안내를 받아 이광기의 앞에 섰다.

그런데, 대본을 훑고 있던 이광기는 그런 강훈을 보며 순간 흠칫거렸다.


“어우, 깜짝이야, 누, 누구?”

“안녕하세요.”


정중한 인사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탓에 뒤에 있던 김사랑이 나와 설명을 보탰다.


“PD 님. 구경하시던 분이신데, 카메라 촬영 경험이 있으시다고 해서 모셔왔습니다.”

“아···”


촬영장 내에선 그렇게 큰 호통을 치던 이광기이지만. 강훈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결국, 김사랑을 조심스레 불러내 귓속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농담으로 한 얘긴데 진짜 깡패를 데려오면 어떡해?”


김사랑은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방금 전, 자신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뒤늦게 손으로 입을 가린 그녀는 이광기에게 말했다.


“아, 평범한 시민분이시래요. 저도 사실··· 그런 줄 알았거든요.”

“정말이야?”

“네.”


이광기는 그래도 잘 믿지를 못했다.


“전과 있는 사람이 전과 있다고 말하는 법 봤어? 숨기기 바쁘지?”

“그렇기는 하지만···.”


이광기는 강훈의 비주얼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자신의 전용의자로 다가와 강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초면에 이런 말 해서 좀 죄송합니다만, 전과 같은 게 있으면 나중에 후폭풍이 아주 세게 올 수도 있어요. 기사나 미디어에서 손가락질 받으실 수도 있고···.”


강철은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거 절대 없습니다.”

“정말이죠?”

“예. 깨끗합니다. 문신도 없구요. 칼빵 같은 것도 없어요.”


이광기 PD님이 이렇게 의심이 많던 사람이었나?

하긴, 나도 거울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크흠. 촬영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병풍 역할이긴 하지만, 몇 번 있습니다.”

“오늘은 그때랑 다르게, 앞에 서서 무게를 좀 잡아줘야 되는데 하, 할 수 있으시겠어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예의를 차려 고개를 숙이는 강훈을 보며 이광기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철을 앞에 두면 당연스럽게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그때, 이광기가 이마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성함하고 나이가 어떻게 돼요?”

“최강철이라고 합니다. 94년생입니다.”

“최강철? 잠깐만, 94면··· 서른 인가?”

“네. 그렇습니다.”


순간, 이광기의 동공에 지진이 온 것처럼 흔들렸다.

그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번뜩 정신을 차린 이광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포스가 있어서 나는 나랑 동 연배인 줄 알았어 허허.”


그제야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편하게 말을 이었다.


“기분 나쁘라고 한 말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거든.”

“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얼굴이 평생 가더라고··· 뭐, 여하튼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해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철은 드디어 촬영장 안으로 몸을 들일 수 있었다.

보름 만인가?

아니, 정확히 반년 만이다.

마지막 작품을 끝내고 이리저리 예능에 초대받아 얼굴을 비춘 걸 제외하면.


가슴이 떨려왔다.

눈부신 조명이 온 사방을 뒤덮자,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실 병풍 역할은 강훈 시절에도 단 한 번 해본 적도 없지만, 어려울 것 없었다.

그저 최강철이 가진 피지컬을 그대로 사용하기만 해도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었으니까.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만 맞춰줘도 뭐 충분히···

그래도 이왕이면 최선을 다해볼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옛 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광기의 지시를 받은 배우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번엔 최강철씨 뒤에서 분위기만 잘 잡아주면 돼. 아까보다는 쉬우니까 잘할 수 있지?”

“네.”


놀랍게도 강훈은 기존의 배우들보다 앞에 위치했다.

존재감이 뚜렷한 탓에 뒤에 머물기엔 그림이 안 맞는다는 이광기의 뜻이었다.


“그리고 최강철씨는 김 배우 옆에서 여 검사를 위협하는 듯한 분위기, 즉 공포감을 연출해 주면 돼요. 아셨죠?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고 계시면 돼요.”


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광기 PD가 마지막으로 배우들에게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소리쳤다.


“자! 다시 말하지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고. 자연스럽게! 알았지?”

“네!”


단역 배우들의 얼굴엔 근심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강훈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숨을 고르고 배역 몰입을 시작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광기의 큰 목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슛!”


곧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며, 여 배우가 분위기를 잡기 시작한다.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이야!? 대한민국 현직 검사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여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무난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어, 단역 배우들이 표정 연기에 힘을 실으며 천천히 여 배우에게 다가간다.

강훈은 조심스럽게 그들과 호흡을 맞추며 한 발짝씩 움직였다.

튀려고도,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게 아주 조금씩.


그렇게 배우들은 금세 여 배우를 둘러쌓았다.

그녀가 도망갈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려 꼼꼼히 에워싼다.


비중 있는 단역 하나가 앞으로 살짝 나와 이를 활짝 드러낸다.


“우린 그런 거 모르오.”


목소리를 높이던 여 검사는 그들을 쳐다보며 미간을 모았다.

위협에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훈은 생각했다.

이제부턴 최강철로서, 자신의 지인이었던 이광기 PD님에게 확실한 도움이 되자고.

자신의 특기인 애드립을 넣어보기로 한다.


강철은 슬쩍 앞으로 나와 독기 어린 눈빛을 여 검사에게 뿌렸다.

뱀 같은 눈으로 그녀의 목을, 어깨 관절을.

그 시선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말하지 않고도 어떻게 해 버릴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

목을 비트는 것보단 닭대가리처럼 뽑아 머리고, 아니면 산 채로 팔을 뜯어 버릴 것만 같은 그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뒤늦게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치켜 올렸다.


“검사는, 배때기에 칼 안 들어갈 것 같아?”


그야말로 강철의 동공에 담긴 그녀는 토끼 같았다.

포식자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그런 먹잇감처럼 말이다.


촬영장도 그녀의 모습과 비슷하게 얼어붙었다.


조연출 김사랑은 그런 강철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데려온 일반인.

그가 카메라에 등장하자, 놀랍게도 공기가 바뀌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딘가에 존재할 배역 실존 인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억지스러운 힘이 실리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의 걸음과 행동.

그것은 마치 피비린내가 훅 하고 풍겨지는 도살자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눈빛, 몸짓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살기, 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은 모습은 이광기가 원하던 연출, 딱 그것이었다.


김사랑의 시선이 뒤늦게 이광기에게로 돌아갔다.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최강철을 바라보는 이광기 PD님.

그건 평소에 없었던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이광기가 말했다.


"병풍이었다며?"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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