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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도 막내손자는 못 참지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Stay.
작품등록일 :
2023.11.03 16:19
최근연재일 :
2023.12.14 19:41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312,387
추천수 :
6,258
글자수 :
211,779

작성
23.11.0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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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자격

DUMMY

“권각술을요?”


루인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아이 특유의 참기 힘든 호기심이 얼굴에 적나라하다.


‘아그네스의 핏줄은 본능적으로 무공을 탐하게 되지. 정말, 영락없는 아그네스로다.’


보법과 심법을 통해 루인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과연 그 재능이 상승의 무학에서도 발현되는지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가주님이 처음 내게 가르쳤던 이 권법을 너는 어떻게 해석할까?’


만약, 이 권법 속에 담긴 신묘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총관이 씰룩이는 입술을 억지로 다물며 들뜨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습니다.”

“저야 가르쳐주시면 뭐든 좋죠!”


루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총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루인 옆에 나란히 섰다.


“다리를 어깨보다 조금 더 벌린 상태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미십시오. 자주 사용하는 발이면 좋습니다.”


루인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상태에서 허리를 틀고 주먹을 내뻗으십시오.”


루인이 허리를 튼 뒤에 주먹을 내뻗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발경 아닌가.’


검귀에게 배운 권법의 기술 중 하나였다.

지면을 타고 오르는 반동을 주먹에 실어 내뻗는 기술을 꽤 오랫동안 연습했었다.


[발경? 아닐 걸.]


검귀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조소를 흘렸다.

루인이 의아해하는 사이 총관이 같은 자세를 취해보였다.


“이것을 발경이라 부릅니다. 발경만으로도 권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여기에 태화심법을 가미한다면.”


총관이 다리를 찍음과 동시에 강맹한 기류가 허리를 타고 주먹에 전달되었다.

콰직!


“.........?”


눈을 의심할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분명 주먹을 뻗었는데 돌덩이에 짐승이 물어뜯은 듯한 흔적이 새겨진 것이다.


“주먹으로 무언가를 찍을 수도, 벨 수도, 부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주먹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요?”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내력입니다. 자, 구결을 알려드릴 테니 이것에 맞춰 태화심법을 운용해보십시오.”


루인은 권법의 구결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외웠다. 그리고 태화심법을 접목시켜 총관과 똑같은 방식으로 권법을 펼쳤지만 바람 빠진 소리만 들렸다.


‘발경의 자세가 벌써 나왔어?’

[이 멀대가 재밌는 걸 가르치는 군.]


총관은 놀랐고 검귀는 흥미로워했다.

루인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흔적을 새기지 못한 바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발경은 나무랄 데 없이 좋습니다. 내력을 싣는 방법도 얼추 감을 잡으신듯하군요.”

“하지만 총관님처럼 할 수 없어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요. 저는 평생에 걸쳐 이 권을 연습해왔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권법이니 제가 숙제를 드리겠습니다.”

“숙제요?”

“이 권을 도련님만의 형태로 만들어 오십시오.”


루인은 형태를 만들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총관님과 같은 자국을 남겨야 한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이 권법은 주인이 깨달은 바에 따라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다른 거죠?”

“검을 휘두를 때, 어떤 것은 무겁고 또 어떤 것은 부드럽게 보입니다. 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자에 따라 추구하는 권의 방향이 다르죠. 이 권법은 모든 수행자에 맞춰 변화하는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변화.....”


무언가를 짐작한 것처럼 같은 말을 곱씹는 루인에게 총관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게 이 권법을 가르쳐주신 분은 권법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천변이 만화하니 심상을 담아 무한하게 펼치라는 뜻만 전해주셨죠.”


어느새 루인이 주먹을 멈추고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고민했다.


‘집중력이 남다르군. 바로 물어볼 법한데 끝까지 고민한다는 건, 스스로 비밀을 파헤치려는 통찰력까지 기르려 함이었다.’


백작령 수준의 무관에서 이만한 자세를 가르치긴 불가능하다.

지금와서 무공을 가르치는 제이드가 따로 교육했을리도 없다.

루인이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를 익혔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난 놈이다.’


다만,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가주가 알려준 이 권법.

이곳에 담긴 의미를 직접 깨달아 찾아온 순간 총관의 결심도 확고해지리라.


“무혼식이 끝날 때까지 도련님만의 권법을 찾아 오십시오.”

“제가 헤맨다면 어찌 됩니까?”

“권법 하나에 가로 막힌다면 이후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겠죠.”

“제가 의미를 찾아오면요?”

“도련님께 좋은 선물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루인의 눈이 뜨거워졌다.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한데, 권법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점은 없습니까?”

“어떻게 운용하는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해보겠습니다.”


루인이 다시 자세를 잡자 연거푸 내지르는 발경을 살핀 총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발경의 자세는 고쳐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여기에 무엇을 더하는지는 이제부터 루인의 몫이다.


‘저 나이 때의 직계들은 어느 수준이었지.....’


옛 아그네스를 떠올리며 총관이 언덕을 내려갔다.


***


총관의 가르침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검귀의 수련 방식과 비슷했다.


[그 권법을 만든 사람은 제법 무학의 뜻을 이해하고 있구나.]


검귀가 드물게 무공을 칭찬했다.


[저 멀대도 이 권법에 담긴 신묘한 이치를 전부 깨닫진 못하고 있어.]

“총관님이 매일 수련했다는 권법인데?”

[이건 노력이 아니라 재능의 영역이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히 알려줘?]


검귀는 확실히 권법의 비밀을 파헤친 듯했다.

하지만 난 물어보고 싶은 욕심을 억눌렀다.

내게 맡겨진 과제다.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억지로 정답을 구한다는 건, 내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계속하다 보면 알겠지.”

[끌끌끌. 고놈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녀석을 만났구나. 하나, 너무 조바심 내지 말거라. 네 연혼공이 ‘흐름’에 들어서는 순간, 그 권법도 개화할 테니까.]


흐름.

그러고 보니 총관도 천변이 만화한다고 했었지.

자유로운 권법이라.

무엇을 담아도 상관없다면 이런 방식은 어떨까?

후우우웅!

난 바람소리가 나도록 발경을 휘두르며 티끌만한 내력을 끌어모았다.

매일 아침마다 심법 수련을 하고 마차가 멈춰설 때, 근처의 나무나 돌을 붙잡고 이름없는 권법을 연습했다.

총관의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답을 구하러 가진 않았다.

권법을 수련할수록 실마리가 언뜻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을 연습할 무렵.


“파르반 도련님을 모시고 왔다! 어서 문을 열어라!”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이 치솟은 성문 앞에 도착했다.

아그네스였다.


“문을 열어라!”


수문장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높은 건물과 깨끗한 거리.

눈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공작령을 수십 개나 이어 붙인 것처럼 화려하고 넓은 아그네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가시죠.”


총관이 직접 선두에 서서 마차를 이끌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차의 문양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으며 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마차는 서쪽 외곽진 곳에 멈췄다.

높게 치솟은 나무가 인상적인 아담한 집이 보였다.


“예전 도련님께서 머무시던 집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간단히 청소만 해두었으니, 예전과 크게 다른 점은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총관이 가볍게 예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가주님의 축하연은 일주일 뒤입니다. 그 때, 다시 뵙겠습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총관은 마지막으로 나를 보더니 그대로 말을 타고 내성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의 손을 이끌었다.


“에이나, 루인. 여기가 내가 살던 집이야.”


할머니가 독살 당하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듯 떠나버린 아버지는 전과 변함없는 집에 많은 생각이 깃든 듯했다.

나도 어머니도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지금은 없지만 이 나무에 그네를 매달았어. 그리고 저 우물에서 아침마다 물을 길어 수련이 끝나면 마시곤 했었지. 어머니는 시녀를 두지 않았기에 직접 요리도 하셨어. 난 그게 좋았어. 이 비정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다운 냄새를 풍겼었거든.”


총관이 잘 관리를 해준 듯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운 옛 흔적을 더듬어가며 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다시 돌아왔네.”


한참 동안 말없이 집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짝 소리가 나도록 두 뺨을 때렸다.

그리고 고개를 털며 힘차게 말했다.


“자, 할 일이 많다. 우선 짐 풀고, 가주님께 드릴 선물도 골라봐야지.”

“그래요, 여보.”

“예, 아버지!”


부모님과 열심히 짐을 날랐다.

하나하나 채워져 가는 우리들의 집.

하지만 이곳을 안식처라 부를 수 있을까?


[나무에 하나, 이 집 근처를 돌아다닌 둘, 이곳에서 500m 떨어진 거리의 3층 건물에 하나.]


모두가 집을 버리고 떠난 직계 혈족을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허술한 생각을 용납지 않았다.


[멀대가 심어 놓은 그림자는 아니다. 다른 놈들이군.]

“위험해 보여?”

[좋은 의도로 감시하는 놈들은 아니겠지. 멀대가 떠나자마자 이쪽에 온 걸 보면, 네 행적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다는 뜻이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감시자를 아그네스 한복판에 심어둘만한 세력이라면 직계 뿐일 것이다.


“각자 동선이 달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우릴 주시하고 있겠네.”

[할 일도 없는 놈들이로다. 꼴랑 몸뚱아리만 가지고 온 버림받은 자식이 뭐가 두려워 감시를 할꼬.]

“어지간히 속 좁은 놈들이겠지.”

[끌끌끌, 무섭지 않더냐?]

“이미 알고 왔는데 뭐가 두렵겠어. 그리고 아그네스 한복판에서 전투는 금지라고 들었거든. 위험을 무릅쓰고 덤빌 머저리들이라면 감시자를 붙일 생각 조차 못했을 거야.”

[요놈 또 잔꾀를 굴리기 시작하는구나.]

“계속 생각은 해둬야지.”


내가 씨익 웃자 검귀도 따라서 웃었다.


***


집안 정리가 마무리 될 무렵, 아버지는 반드시 사야 할 물건이 있다며 나와 집을 나섰다.

집을 감시하던 자들은 우리 쪽에 붙었다.

역시, 감시 대상은 나와 아버지인 듯했다.


“에이나의 심부름은 마지막에 하도록 하자꾸나. 먼저, 가야 할 곳이 있다.”

“식료품 사러 나온 거 아니셨어요?”

“하하, 장만 보러 나올 거였으면 에이나도 함께 데려왔지. 오늘은 무혼식에 사용할 네 무기를 찾으러 가는 거야.”

“무기요?”

“무혼식은 숙련된 자와 부딪혀 자신의 무를 증명하는 자리다. 거추장스러운 갑옷과 방패 없이 오직 양손에 무기를 쥐고 재능을 시험받지.”


아버지는 무혼식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네 모든 걸 부딪혀야 하기에 당연히 좋은 무기를 가져가야 한다. 나는 태어나면서 무기를 받았지만, 지금의 네겐 그런 혜택을 줄 수 없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전 이렇게 아버지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은걸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런데 아버지, 진짜 칼을 쓰면 죽는 사람도 나오지 않아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가주님이나 그 자리를 심사하는 사람들이 막아 줄 거야. 그런데 루인, 총관님께 무엇을 배웠니?”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고 들었는데 모르시나요?”

“무공을 가르치는 동안 절대 너를 방해하지 말라는 약속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침 마다 수련해도 아버지는 내게 오지 않으셨구나.


“심법과 보법 그리고 권법 하나를 배웠어요.”

“권법?”

“무혼식이 끝날 때까지 형태를 잡아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죠.”

“총관님이 권법이라.....”

“아버지도 배우셨나요?”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배웠었지. 하지만 너완 다르게 숙제로 내주진 않으셨어. 내가 휘두르는 검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셨지. 그 이후로 내게 가르침을 내려주시는 일은 없었어.”


역시 총관은 겉보기처럼 깐깐한 사람이다.


“아빠는 안됐지만, 너는 총관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아그네스로 온 이상 너를 안전하게 돌봐줄 배경이 있다면 든든하니까.”

“열심히 해볼게요, 아버지!”

“우리 아들은 너무 딱딱해서 걱정이라니까.”


아버지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다음 골목부터 대장간이 나올 거야. 아그네스의 장인들은 품질 좋은 무기를 만들기로 유명하니, 가격과 성능으로 좋은 것들을 찾아보도록 하자꾸나.”

“예!”


아버지가 기억을 더듬어 인파를 헤쳐 나가자 멀지 않은 곳에서 뜨겁고 강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깡! 깡! 깡!

대장간들이 밀집한 무쇠 골목이었다.

좌판에 다양한 무기를 진열하거나, 대장간을 열어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손님들이 고르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꽤 바뀌었네. 못 보던 곳도 생겼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건가.”

“아버지가 아는 대장간이 있으신가요?”

“있었는데.....지금은 없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무사들이 유독 밀집한 곳에 멈췄다.


“저기가 좋겠다.”


팔콘이라 적힌 대장간에서 뜨거운 열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장신의 대장장이가 망치를 내리치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좌판에선 질 좋은 철을 썼다며 다양한 무기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자자! 골라가시라! 이 근방에서 제일 순도 높은 철로 만든 무기가 여기에 있소!”


판매원의 말처럼 진열된 무기들은 얼굴이 비칠 만큼 매끄러웠다.

주위 대장간들이 이곳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이 골목 최고의 대장간처럼 보였다.

아버지도 대열에 합류해서 내게 맞는 무기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저 끝으로 가라.]


골목에 들어선 이후 줄곧 침묵했던 검귀가 갑자기 다른 방향을 지시했다.


[저곳이 맑다.]


영문 모를 소리였지만, 검귀는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 다른 곳도 천천히 봐요.”

“다른 곳도 가격과 품질이 여기와 비슷해.”

“쭉 훑어보다가 뭐 없으면 다시 돌아와요.”

“그 사이에 무기가 다 팔릴 수도 있는데.....”

“헤헤, 그럼 내일 또 오면 되잖아요. 어머니랑 셋이서!”


내가 해맑게 웃어 보이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골목 끝으로 향할수록 진열된 무기의 색이 탁하다.

무쇠골목은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이 초입부터 포진한 곳이다.

끄트머리의 대장간들은 판매와 실적이 저조해 사실상 구석에 처박혀 있다.

까앙!

그런데 이 소리는 뭘까.

끝으로 향할수록 도리어 맑은 소리가 들린다.

검귀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점점 이해될 때, 마지막 대장간이 보였다.


데자일.


낡은 간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대장간이었다.

진열된 무기들은 앞선 대장간보다 좋다고 할 수 없으나, 반대로 가격은 다른 곳들보다 저렴했다.


“무난하네.”


아버지가 검 하나를 쥐고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제대로 날만 갈아주면 충분히 쓸만한 무기다.


“살 거면 사고 아니면 가쇼.”


젊은 목소리를 따라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쇠를 두들겼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버지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는데, 사내 외엔 아무도 없었다.


“이 대장간의 마스터입니까?”

“예. 뭐, 아버지께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이곳에서 무기를 만드신 거죠?”

“아버지 때부터 여기에 정착했으니, 한 70년은 될 겁니다.”

“과연 무기에서 기품이 느껴지네요.”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흥정에 나섰다.

무기를 산다기 보단 어디까지 가격을 저렴하게 내릴 수 있을지 파악하려는 듯했다.


“여기 있는 무기들은 마스터의 아버지가 만드신 겁니까?”

“아뇨. 제가 만들었습니다. 실패작들이긴 한데, 날만 제대로 갈아주면 저 앞의 대장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와 대장장이가 얘기하는 도중에 나와 검귀의 시선은 안으로 향했다.

쩡! 쩌엉!

대장장이가 쇠질을 안하는데도 맑은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


검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홀린 듯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쩌어엉!

점점 커져 가는 쇳소리가 고막에 울려 퍼질 때, 폐품들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오크통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보였다.

내 심장 소리에 맞춰 공명하듯이 울려퍼지는 소리의 근원은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어어? 꼬마야, 거기 있는 물건 함부로 집으면 안.....”


대장장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오크통에서 그 물건을 꺼내 들었다.

산불이라도 뒤집어 쓴것처럼 새까맣게 그을린 단검.

날은 반으로 쪼개져 부엌칼로도 쓰지 못할 고물덩어리였다.

그런데.


[끌끌끌, 연혼공을 수련시킨 보람이 있군.]


예전, 공작령의 유명한 대장간을 지나칠 때도 시큰둥했던 검귀가 이 못 쓸 단검을 보고 씨익 웃었다.


[강렬한 사념이 느껴지지 않더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고물 같은 단검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내 연혼공에 반응하고 있었다.


[평범한 놈들은 감히 그 안에 담긴 사념을 끌어내지도 못하겠지. 오오, 보면 볼수록 짙어. 참 오랜만에 보는군.]


검귀의 혼이 닿자, 단검의 소리가 뚝 멈췄다.

그리고 검귀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주 농밀한 에고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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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격돌 +14 23.12.11 6,394 166 14쪽
27 격돌 +12 23.12.08 7,175 167 16쪽
26 격돌 +14 23.12.07 7,024 157 15쪽
25 격돌 +7 23.12.06 7,172 146 13쪽
24 격돌 +11 23.12.05 7,860 140 14쪽
23 쟁탈전 +9 23.12.04 8,621 148 16쪽
22 쟁탈전 +7 23.12.02 9,126 161 15쪽
21 쟁탈전 +17 23.12.01 9,729 182 17쪽
20 무신의 가르침 +10 23.11.30 9,745 185 16쪽
19 무신의 가르침 +12 23.11.29 9,791 192 15쪽
18 무신의 가르침 +8 23.11.28 10,293 197 17쪽
17 무신의 가르침 +16 23.11.27 10,755 216 15쪽
16 무신의 가르침 +23 23.11.24 11,387 242 17쪽
15 깨달음 +14 23.11.23 11,038 240 13쪽
14 깨달음 +11 23.11.22 11,022 246 14쪽
13 백인쟁투 +9 23.11.21 11,014 232 15쪽
12 백인쟁투 +5 23.11.20 11,124 201 16쪽
11 무신지로 +13 23.11.17 11,180 223 17쪽
10 무신지로 +10 23.11.16 11,326 231 15쪽
9 무신지로 +6 23.11.15 11,657 212 14쪽
8 밤하늘 +7 23.11.14 11,706 225 15쪽
7 밤하늘 +6 23.11.13 11,680 238 13쪽
6 자격 +11 23.11.10 11,841 247 18쪽
» 자격 +6 23.11.09 12,163 23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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