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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진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가 되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동기진
작품등록일 :
2021.05.13 11:47
최근연재일 :
2021.10.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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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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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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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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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높고 탁 트인 곳

DUMMY

당장 눈앞에 닥친 블랙크리스탈의 공포가 사람들을 집에 묶어둔 모양이다.

어디를 가면 어디 가냐고 꼬치꼬치 캐묻던 계엄사의 군인들조차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들 역시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란 뜻일 게다.

그럼에도 고속도로에는 또 세상의 종말에 환호라도 하듯 200km가 넘는 속도로 내달리는 스포츠카 몇 대가 보인다.


백무동 관리사무소에 주차를 한 후 배낭을 메고 그 위에 더블백과 텐트를 얹은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헉헉 찬다.

군에서 60kg 완전군장을 메고 야간산행을 할 때보다 힘들다.

그래도 손에 소총을 쥐고 있지 않아 다행이랄까.


몇 번인가를 중간에 쉬고서야 장터목에 도착하니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아니, 이 시간에도 산에 오르는 이가 있네?”


“왜요? 이상한가요?”


“당연한 거 아닌가.

내일 새벽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텐데 굳이 지금 시간에 산에 오를 이유가 없잖나.”


“근데 사람들이 많네요?”


“다들 자네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지.”


“비슷한 생각이요?”


“그래. 쓰나미 말일세.

우리같은 보통 사람이야 무슨 벙커를 만들 처지도 아니니 높은 곳으로라도 피난을 온 거지.”


지난 1년 돈 있는 사람들은 벙커를 만드는 게 유행처럼 한국을 아니 전세계를 휩쓸었다.

뭐 그 덕에 그나마 경제가 좀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아, 쓰나미! 사람들이 많이 왔겠군요.”


“여기는 장소가 협소해서 많이 못 왔지. 겨울 아닌가.

그래도 노고단하고 세석 쪽에는 철쭉 축제 때만큼 온 모양이더군.

뭐 그래 봐야 내일이면 대부분 내려갈 사람이겠지만.”


“내일이요?”


“새벽이면 블랙크리스탈 결과가 나오잖나.

그때면 반 정도는 내려갈 게고 내일 자정이면 최종결과가 나오니 모레는 다들 내려가겠지. 아니면 모두 죽을 테고.”


“천왕봉 쪽은 어떻습니까? 사람들 말예요?”


“그쪽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없다고 봐야지.

행락철도 아닌데 이 겨울에 누가 그쪽으로 가겠나.

더구나 오늘 밤에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도 있는데.

블랙크리스탈이 오기 전에 산에서 죽기 십상이지.”


“잘 들었습니다. 물이나 한 병 주세요. 일단 어디라도 낑겨서 하룻밤 보내야겠습니다.”


“그럴 텐가. 해안가도 아니고 쓰나미가 여기까지 어떻게 온다고 다들 난린지, 난리는. 삼천 원이네.”


대피소 사장님은 삶을 달관한 것인지 몰려드는 사람들이 영 귀찮기만 한가 보다.

아무래도 좋은 일로 몰려든 것도 아니고 거기에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정도로 예민한 상태니 대하기도 버겁긴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구석진 곳에 텐트를 치고 일찌감치 저녁을 지어먹었다.

그런 후 피곤했던지 바로 잠이 들었다.


일찍 잔 덕인지 눈을 떴을 때는 새벽 두 시다.

그리고 그 시각임에도 야영지는 어수선하다.

다들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다.


밥을 먹고 용변을 본 후 5시에 맞춰 해오던 의식을 행하니 야영지에는 방송소리만 가득하다.

나 역시 스마트폰을 켜 KBS에 맞췄다.


화면의 하단에는 보현산천문대 현지 생중계라는 표시가 떠 있다.

5시 반.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에서 출발한 핵미사일과 블랙크리스탈이 충돌할 시각이다.

아직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하긴 200만km라고 하니까.’


빛으로도 7초 가까이 걸리는 시간이다.

소식을 기다리는 것은 앵커도 마찬가진지 밤을 샜을 텐데도 눈알이 번들거린다.

긴장하고 있다는 표시다.


특별히 앵커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화면인데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앵커가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보다 말없이 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더 긴장을 높이기 때문일 거다.


그러길 몇 분 마침내 앵커의 입이 열렸다.


“국민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방금 우리 보현산천문대 대장님께서 핵미사일과 블랙크리스탈이 충돌했고 블랙크리스탈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산 조각난 것을 확인했다고 전해왔습니다.

곧 천문대장님을 모시고 말씀을 드리겠지만 일단 밤새 기다리신 국민여러분에게 블랙크리스탈이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저 역시 기쁘기 한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태준이다.


“형! 들었죠?”


“그래 들었다. 정말 잘 됐다.”


“근데 형도 쓰나미 때문에 지리산에 가신 거예요?”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럼 언제 올라올 생각인데요?”


“한 한달 정도 있을라고?”


“예? 아니 늦어도 오늘 자정이면 모든 게 판가름이 날 텐데 굳이 한달이나 뭐 하려고요?”


“꼭 쓰나미 때문에 온 게 아니거든.”


“그래요? 하긴 그 동안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으니까. 알았어요. 한달 동안 푹 쉬세요.”


“그래. 정웅이나 애들에게도 전해 주고.”


가벼운 복장으로 미명을 밟으며 천왕봉으로 다가갔다.

내 뒤를 따라 부부인지 연인인지 한 쌍이 따를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근데 블랙크리스탈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났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배가 부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 지구와 인류가 아닌 블랙크리스탈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명색이 과학도라는 입장이니 그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한 건 사실이다.


지름 100km짜리 돌덩이다.

그런 돌덩이가 핵미사일 좀 맞았다고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건 비유하자면 머리통만한 돌멩이에 총 좀 쐈다고 그 돌멩이가 먼지가 돼 공기 중에 흩어졌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아마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면 미친놈이라고 할 게다.


‘하긴 어느 날 존재하지 않던 별이 갑자기 등장한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지.’


생각해 보면 21C인 지금까지 지름 100km짜리 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그 별이 아무리 어둡다고 하지만 인간은 이미 카이퍼벨트나 오르트구름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지구에서 고작 1.2~2.3AU 떨어진 거리의 별을 이제야 찾았다는 것은 20C에도 통하지 않을 얘기가 아니던가.


정말 배가 부른 모양이다.

이제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그렇게 이제는 소용없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천왕봉이다.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은 이미 붉게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한발 두발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다.

마치 블랙크리스탈을 제거한 일을 축하라도 한다는 듯.


‘이거 장소를 잘못 고른 모양인데. 눈까지 오는데 어떻게 여기서 한달을 보내지.’


이제야 도착한 한쌍의 연인이 나를 보더니

“이거 눈이 오려나 봅니다?”


“예. 그러네요. 어제 대피소 사장님에게 듣기는 했는데 정말 오나 봅니다.

그래도 아직은 12월이니 많이는 오지 않겠죠.”


산에서 한달을 살아야 하는 내 소망을 말했다.


“그래도 저희는 이만 하산을 해야겠네요. 형씨는 어쩌렵니까?”


“아, 저는 야영지에 짐이 있어서요.”


“그래요? 그럼 저희 먼저 하산하겠습니다.”


“조심히 내려가십시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던 눈이 잦아진다.

땅도 적시지 못할 정도의 눈이다.

나 역시 장터목으로 돌아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꾸물꾸물한 하늘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태반이 하산을 서두르고 있다.


천왕봉에서 야영을 할 거라는 말을 대피소에 전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뭐, 어차피 한달은 머물러야 하니까.’


대피소에 알린다고 해서 철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먹을 양식도 준비한 상태다.

어머니 말대로 한달은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고 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인데 편한 길을 찾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천왕봉으로 향했다.

그나마 오전에는 천왕봉에 가는 이도 몇몇 있더만 오후에는 천왕봉 방향으로 가는 이는 오로지 나 하나다.

다른 길에서 올라오는 이도 없다.

이제 땅에 있는 이들은 계속 땅에 있어야 할 것이고 하늘에 있는 이들은 계속 하늘에 있어야 할 테다.


오늘 자정까지는 그렇게 숨죽이고 지켜보아야 할 테다.

하늘의 마왕이 인류의 창에 사라졌는지 아직은 확신하기 두려울 테니까.


천왕봉 주변에 텐트를 칠 만한 곳은 없다.

결국 바윗틈 사이에 나뭇가지를 꺾어 넣고 그 위에 비닐을 또 위에 가지고 온 겨울옷을 다시 그 위에 모포 한 장을 깐 후 침낭을 두었다.

그런 후 비박을 하듯 바위 사이를 텐트로 여며 바람을 막았다.

그러자 훌륭한 은신처 하나가 만들어졌다.

한달을 살 생각이니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한 후 조금 떨어진 곳에 구덩이를 파 용변 볼 곳을 만들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보면 뭐라고 하겠는데.’


자칫 사람이 디딜까 두려워 나뭇가지와 텐트에 있는 바람막이와 바닥깔개를 이용해 적당히 간이천막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바람에 금방 날아갈 정도는 아니겠지.’


그래도 군에서 또 돌쇠TV에서 숱하게 하던 일이라 어렵지 않게 한달을 버틸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니 이미 해는 저물어 사위는 시커메졌다.


코펠에 이틀 정도 먹을 양의 밥을 만들어 두고 식사를 마치니 이제 블랙크리스탈이 지구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채 다섯 시간이 남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 이것저것 궁리하다 어차피 아침이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명잔이라는 술잔과 별상칼을 꺼내 텐트 밖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높아 두고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지만 일단 자리에 누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한기에 번쩍 눈을 떴다.

술잔을 밖에 두느라 살짝 벌렸던 텐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 것이다.

바람을 막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손등에 눈송이가 떨어진다.

놀라 몸을 일으켜 고개를 내미니 하늘에서 본격적으로 눈이 날리고 있다.


“뭐야?”


함박눈이다.

비록 습기가 적은 건설乾雪이지만 날리는 눈의 양이 심상치 않다.

일어나 바위틈을 막은 텐트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꺾어 보강을 하는데 주변은 이미 눈이 쌓이고 있다.


“x벌, 욕 나오네. 아직 12월인데 무슨 눈이.”


주변에서 자잘한 나뭇가지를 꺾어 얼추 빗자루 비슷하게 만든 후 내 잠자리 주변을 쓸었다.

눈 청소는 군에서의 경험 이후 처음이다.

근래 눈도 별로 오지 않던 한국이다.

더구나 12월에는 좀체 눈이 오지 않는 한국인데 함박눈이 날리니 겁부터 난다.


“오냐. 이것도 시련이라 이거지. 내가 굴복할 거 같냐.”


그런 말을 뱉으며 눈을 치우고 또 치웠다.

적어도 내 잠자리 주변으로는 눈이 쌓이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돌쇠TV의 돌쇠, 지리산에서 비박하다 얼어 죽다’라는 기사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나름 서바이벌 방송에서는 알려졌다면 알려진 사람인데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이 눈 속에서 죽을 수 없다.

그렇게 열심히 눈을 치웠지만 이미 주변의 눈은 발목 높이를 지나고 있다.


그런 중 갑자기 내 주위로 회오리가 분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는데 회오리는 마치 작은 토네이도처럼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만 불고 있다.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니 조용히 눈만 내리는 하늘이고 땅이다.


무슨 일인가 살피니, 세상에나!

그 바위 위에 둔 술잔으로 대기가 빙글빙글 돌면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아마 눈이 오지 않았다면 그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놀랍고 신기해 한참 동안 술잔을 들여다봤지만 술잔은 무슨 무저갱처럼 대기를 빨아들이고만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눈이 술잔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술잔에는 눈은커녕 물기도 없다.


그러고 보니 술잔 주변도 마찬가지다.

술잔을 중심으로 대략 반경 3m 정도의 공간에 있는 눈이라곤 처음 눈이 내릴 때 미처 치우지 못하고 쌓인 눈뿐이다.


“허허.”


그냥 실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누가 있어 이런 일이 있다고 믿을까.

이런 모습을 촬영해 보인다면 장난하지 말라며 핀잔이나 들을 테다.

분명 눈을 치워두고 찍은 영상이라고 할 게 틀림없다.

그러다 갑자기 불던 회오리가 멈춰버렸다.




읽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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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산 +1 21.05.30 1,947 46 13쪽
19 명잔과 별상칼 +1 21.05.29 1,952 52 12쪽
» 높고 탁 트인 곳 +1 21.05.28 1,970 53 13쪽
17 +2 21.05.27 1,978 51 13쪽
16 메시아프로젝트 +2 21.05.26 2,032 46 13쪽
15 그리고 한국은 +1 21.05.25 2,103 49 13쪽
14 지금 북한은 +2 21.05.24 2,116 42 12쪽
13 아포칼립스 +3 21.05.23 2,231 41 13쪽
12 마나세상 +1 21.05.22 2,340 50 13쪽
11 문양 +1 21.05.21 2,343 50 12쪽
10 그 시각 중국은 +3 21.05.20 2,340 49 12쪽
9 계엄 +3 21.05.19 2,412 49 12쪽
8 지구의 주인 +6 21.05.19 2,502 44 12쪽
7 충돌 가능성 +2 21.05.18 2,504 51 12쪽
6 유산 +6 21.05.17 2,632 59 12쪽
5 맹세 +3 21.05.17 2,679 57 12쪽
4 굿 +5 21.05.16 2,824 52 12쪽
3 선정적인 황색언론 +3 21.05.15 3,140 59 13쪽
2 부름 +3 21.05.15 3,749 56 12쪽
1 블랙크리스탈 +5 21.05.14 5,472 6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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