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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제일검, 홍타이지를 베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3.12.23 02:09
최근연재일 :
2024.01.10 21:22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488
추천수 :
1
글자수 :
55,643

작성
23.12.29 16:41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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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5화. 칼의 울림

DUMMY

5화. 칼의 울림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만길은 혼란스러웠다.

성미가 고약하긴 했어도 다정다감하던 할아범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노인은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 초췌하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형형하여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기까지 하였다.

할아범의 과거가 궁금하였으나, 자신의 일도 제대로 기억을 못 하면서 누구의 과거를 묻겠는가.


“주막에 아무도 없다면 김치근 대감 주변을 살펴야 할 거야.”

“어버, 어버버?”

“그래. 달래를 납치한 왈패들의 우두머리가 김치근 대감댁에서 일하는 최은기란 놈이니

그곳을 살피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거야.”

“어버버.”


난감한 일이었다.

반촌 밖의 사람들이 얼굴을 모르니 복면을 벗고 도성 안을 돌아다니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무슨 재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반정공신의 집을 염탐한단 말인가?

그사이 달래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따라오너라.”

“어버버.”


만길은 영문도 모른 채 노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을 뚫고 한식경을 걷다보니 산자락 아래 작은 기와집이 보였다.


탕탕탕! 탕탕탕!


“뉘시오.”

“날세.”


삐이이걱!


피 노인의 대답에 대문이 열렸다.


“아이고, 나리! 이게 얼마 만입니까?”

“오랜만일세. 별일 없는가?”

“그럼요, 저희야 나리 덕분에 무탈합니다.”


만길은 상황을 몰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천한 백정인 할아범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상전 대우를 받는 것도 이상하였고,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행동하는 할아범의 행동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들어오너라.”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노인은 방으로 들어가며 만길을 불렀다.

방안은 마치 양반가의 사랑방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인사 나누거라. 이쪽은 집안의 대소사를 봐주는 손 서방이다.”

“내 손자일세.”


피 노인은 양쪽을 돌아보며 인사를 시켰다.


“어서 오게. 손중호라고 하네.”


만길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 하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채에 들어가 저녁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손 서방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게 앉지 않고 뭘 하느냐?”


영문을 몰라 우물쭈물하는 만길을 향해 노인은 빙긋이 웃었다.


“내 일전에 이르지 않았느냐? 백정이 천하긴 해도 알부자가 많다고.”

“······.”


노인은 방 한편에 놓여있는 곰방대를 들고는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너희들만은 천시받지 않고 살게 해주려고 했건만······ 후우.”


노인은 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너는 혼이 바뀌는 걸 믿느냐?”

“······.”

“빙의라고 하지. 그날 밤 내 손자 만길이는 분명 죽었다.”


피 노인의 말에 하성우는 대답없이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만길에 몸에 들어온 다른 영혼이다. 아직 기억을 못 하지만, 너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맞소, 영감. 하지만 기억이 다 떠오르지 않아 지금은 뭐라고 대답하기가 힘드오.’


만길은 물끄러미 노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리, 저녁 준비되었습니다,”

“들이게.”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거라. 내일 일은 내일 예기 하자구나.”


너무 배가 고팠던 만길은 노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달래를 찾아 헤매느라 진을 빼서인지 만길은 저녁을 먹자마자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설란··· 아.”

“성우··· 도련님······.”


설란이 수줍게 웃으며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상기된 뺨을 가렸다.


“이거 너무 어색하네. 아하하!”

“그러게. 어릴 때부터 동무로 지냈는데, 갑자기 낭자라고 부르려니 영 이상해.”


설란과 하성우는 멋쩍게 웃었다.

부모님이 동문수학한 동무라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혼인할 사이라 서로 내외를 하란 말에 어쩔 줄을 몰랐다.


“도련님도 이상한데, 앞으로 어떻게 서방님이라고 하지?”

“마찬가지야. 이젠 부인이라고 해야 하다니, 입이 안 떨어지네.”

“하하하!”

“호호호!”

“정말 너무들 하네. 혼인할 사이라고 이젠 나 같은 건 찬밥신세인가?”


언제 왔는지 하성우의 동생 연화가 샘이나 투덜거렸다.


“예끼!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하하!”

“앞으로 언니만 좋아하고 날 무시하면 시누이 노릇 혹독하게 할 거니까 알아서 해.”

“네, 네. 걱정마세요. 시누이님. 호호호!”


연화가 뾰로통해서 입을 삐죽거리자 예비 올케인 설란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설란아!”

“여, 연화야!”


하아! 하아!


깊은 잠에 빠졌던 만길은 몸부림을 치다 눈을 떴다.


“연화? 설란······?”


몸을 일으킨 만길은 방문을 타고 흐르는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란? 연화······? 누구······ 지? 나와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긴 한데, 누구지?”


어느새 만길의 이마에는 땀이 몽글몽글 맺혀 있었다.


“가, 가만······ 말문이 트인 건가? 아! 아!”


만길은 입을 막은 채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보았다.


*******


짹짹짹! 짹짹짹!


아침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일어나 지저귀던 산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새벽안개가 가득한 오솔길을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 남매를 거느린 젊은 부부였다.

무언가에 쫓기는지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여기저기 찢어진 채 너덜거렸다.


피이잉!

퍼억!


화살 한 대가 안개를 뚫고 날아와 사내의 허벅지에 박혔다.


“으아악!”


화살을 맞은 사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다.


“여, 여보!”

“아버지!”


여인과 아이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사이 올가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여자아이의 목에 걸렸다.


“으악!”

“이, 인영아!”

“킥킥킥! 그냥 얌전히 잡힐 것이지, 공연히 왜 힘을 빼나 몰라?”


뒤를 쫓아온 더벅머리 사내가 오랏줄을 당기며 히죽거렸다.

도망친 노비들을 잡아들이는 추노꾼이었다.


“지금까지 용케도 숨어다녔다만, 이젠 끝이다.”

“아비는 화살을 맞았고, 딸년은 하룻강아지 마냥 잡혔으니 이젠 옴짝달싹 못 하겠지. 하하하!”

“나리!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젊은 부부는 바닥에 엎드려 추노꾼들에게 눈물로 애원하였다.


“허, 우리가 왜 이 짓을 하는데 자네들을 죽이는가?”

“그러게. 멀쩡히 잘 데려가야 돈을 받지, 시체를 가져가면 누가 돈을 주나? 킥킥킥!”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가 여인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역겹게 웃었다.


“자자, 죽이지는 않을 테니 그만 얌전히 따라오라고.”

“나리! 제발 저희를 못 본 척 풀어주십시오.”


젊은 사내가 추노꾼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하소연하였다.


“미친놈! 너희 넷이면 몸값이 얼마인데 그냥 풀어줘?”


추노꾼은 귀찮다는 듯이 젊은 사내를 걷어차자 젊은 사내는 비명도 못 지르고 거꾸러졌다.


“여, 여보!”

“아버지!”

“국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공연히 힘 빼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추노꾼들은 도망치던 노비들을 굴비 엮듯 줄줄이 엮어 숲길을 빠져나갔다.


“한쪽에선 난리가 났다고 야단인데. 덕분에 우리만 바빠지는군.”

“잘됐지 뭔가. 난리 통에 도망치는 노비들이 많아져야 우리가 제대로 한몫 챙길 게 아닌가? 하하하!”

“자, 한 잔 쭉 마시고 눈 좀 붙이자고.”

“그러자고, 저것들을 쫓느라 밤새 한숨도 못 쉬었으니······.”


추노꾼들은 평상에서 술을 마시며 마당 한구석에 묶어놓은 도망친 노비들을 살폈다.


“그런데 저자들은 뭐지?”

“누구?”

“방 안에 있는 저놈들 말이야. 복장을 보니 예사 놈들이 아니야.”

“쉿! 조용히 해! 저자들과 엮여 좋을 게 없으니까.”


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추노꾼들은 봉놋방 안에 있는 사내들을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야 겨우 잔챙이 노비나 잡아들이는 추노꾼들이지만, 저자들은 현상금 사냥꾼들이야.”

“아, 지난 폐주 때 한자리하다 도망친 자들을 쫓는다는 그자들이군?”

“듣자 하니 현상금이 어마어마하다던데······.”

“우리야 겨우 한 명당 많아야 수십 냥이 전부지만, 폐주를 모시던 자들은 한 명만 잡아도 팔자를 고칠만한 액수라던데.”

“그럼 이참에 우리도 업종을 바꿔 보는 게 어떤가?”

“지랄! 목이 달아나고 싶으면 그리하든가?”


추노꾼 한 명이 다른 동료를 보며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진짜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필시 오랑캐들에게 갔을 거야. 폐주를 따르던 자들이니 그럴 가능성이 크네.”


검은 삿갓을 깊숙히 눌러 쓴 검은 옷의 무사들이 방안에서 나지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날 도주한 겸사복들을 쫓는 추격자들이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후원 숲에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니 이미 백골이 되었을 겁니다.”

“그자와 한번 겨뤄 보고 싶었거늘······.”


무리를 이끄는 신경수는 못내 아쉬웠다. 조선 최고의 무장이라던 신립 장군의 아들인 그가 구태여 벼슬을 마다하고 전 겸사복들을 쫓는 이유는 무사의 본능 때문이었다.

신경수가 쫓는 무사는 하성우였다.

조선의 무사들이라면 누구나 겨뤄 보고 싶어 하는 검객, 누군가는 검신(檢神)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검귀(劍鬼)라고 부른 무사 하성우.


*******


“나는 저잣거리에 나가 달래의 행방을 쫓을 테니 넌 당분간 집에서 쉬면서 너 자신을 찾아 보거라.”

“네? 그게 무슨······.”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넌 모습은 만길이지만, 분명 다른 존재가 네 안에 있다.”


예전과 달리 말쑥하게 선비 차림을 한 피 노인이 외출을 준비하며 또 뜻 모를 이야기를 하자 만길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자, 받거라.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피 노인은 엉거주춤 서 있는 만길에게 검 한 자루를 주었다.


“헉!”


칼을 받는 순간 만길은 벼락에 맞은 듯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뜨거운 기운이 손바닥을 지나 전신을 타고 돌았다.


털썩!


갑자기 다리가 풀린 만길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가빠왔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검신을 타고 흘러들어오던 뜨거운 기운은 급기야 온몸의 근육을 뒤틀고 힘줄을 팽창시켰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눈앞에 환영이 나타났다.


“비켜라! 앞을 막는 자 모조리 벨 것이다!”


하성우의 앞에는 십여 명의 사병들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나뒹굴고 있었다.

모두 급소를 피해 허벅지나 어깻죽지를 베인 것이었다.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앞을 막는 자 목을 벨 것이다!”


시퍼런 서슬에 남아있던 군사들이 뒤로 물러서며 길을 트자 하성우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화살을 쏘아라!”


어둠 속에 하늘거리는 진달래 숲 사이로 달아나는 하성우를 향해 화살이 빗발쳤다.


피이잉!

피이이잉!


붉은 꽃잎이 개나리 덤불 위로 흩날렸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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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쫓겨가는 이괄 24.01.10 15 0 12쪽
10 9화. 다시 뒤집힌 세상 24.01.09 22 0 13쪽
9 8화. 정체불명의 노인 24.01.01 24 0 12쪽
8 7화. 아수라장 23.12.31 30 0 12쪽
7 6화. 수월루 23.12.30 31 0 12쪽
» 5화. 칼의 울림 23.12.29 40 1 12쪽
5 4화. 역모에 역모 23.12.25 57 0 12쪽
4 3화. 보쌈 23.12.24 86 0 12쪽
3 2화. 빙의 23.12.23 59 0 13쪽
2 1화. 역모 23.12.23 62 0 12쪽
1 프롤로그 23.12.23 63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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