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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제일검, 홍타이지를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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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3.12.23 02:09
최근연재일 :
2024.01.10 21:22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483
추천수 :
1
글자수 :
55,643

작성
23.12.23 12:01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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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화. 빙의

DUMMY

2화. 빙의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식전 댓바람부터 돼지를 잡는지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드르렁!

드르렁!


진즉에 해가 초가지붕 위로 떠 올랐지만, 방안에는 만길이 큰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발치에는 지난밤에 마시다 만 술병과 안주 그릇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놈아! 그만 일어나거라! 오늘은 안국동 김판서 댁 잔치에 쓸 돼지를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내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느냐?”


보다 못한 피 노인이 문을 열어젖히며 역정을 냈다.


“어버버! 어버버!”

“이놈이, 그래도!”

“얘, 달래야! 뒷간에 가서 똥물 한 바가지만 퍼 오너라!”

“네, 할아버지!”


피 노인의 말에 손녀 달래가 끝에 검은 천을 덧댄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휘날리며 뒷간으로 달려갔다.


“헉! 어버버버!”


꿈쩍도 안 하고 있던 만길은 달래의 대답 소리에 식겁을 하고 몸을 일으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어휴, 속 타져! 가뜩이나 모자란 놈이 이젠 말도 못 하니.”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피 노인은 만길의 뒤통수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푸줏간에 가면 손질해 놓은 돼지고기가 있을 거다.”

“어버버, 어버버.”


만길은 싸리 담장에 제멋대로 세워놓았던 지게를 한 손으로 추스르며 노인의 말에 버버거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창덕궁의 후원에서 목숨을 잃은 자신이 어쩌다 백정의 몸에 혼이 들어온 것인지,

과거의 기억은 가물거리는 데다가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말도 나오지 않았고, 몸은 굼뜨기만 하였다.


“어버버, 어버버!”

“그러니까 작작 퍼마셔.”


만길이 속이 쓰린지 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쓰자 달래가 김칫국물이 담긴 바가지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밀었다.


벌컥, 벌컥.


‘그래도 날 생각해 주는 건 이 아이밖에 없구나.’


“어버, 어버버!”


만길은, 아니 하성우는 말이 나오지 않자 웃는 것으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하였다.


“조심해서 다녀 와. 아이들이 시비 건다고 일일이 말대꾸하다 또 처맞지 말고, 아니다. 이 젠 말도 못 하지.”


만길은 달래의 잔소리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홰홰 젓고는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겼다.


‘거참, 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니? 그럼 내 원래 몸은 어찌 되었을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만길은 길을 가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천하디천한 백정의 몸으로 들어온 걸까? 반촌으로 숨어들어오려던 염원이 이리로 이끈 것일까?’

“정신 못 차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어느새 따라온 달래가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고것 참 목청하고는, 왜 따라온 거야?’


만길이 의아한 눈빛으로 돌아보자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달래가 말을 하였다.


“몰라서 그래? 이젠 길도 모르는 천치잖아!”


달래는 말을 하다 말고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도대체 만길이란 백정이 평상시 어떻게 행동했기에 어린 동생이 이렇게도 못 믿는 것인지 성우는 알 수 없었다.


‘진짜 미치겠네. 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어버버! 어버버!”

“쯧쯧쯧······.”


달래는 말을 못 하고 버버대기만 하는 만길을 보며 혀를 찼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달래와 피 노인은 동네 왈패들에게 맞아 장독으로 죽은 만길을 묻었다.

묻었다기보다 까마귀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 손으로 훔쳐내며 흐느끼는 어린 손녀를 피 노인이 잡아끌었다.

비록 반푼이 소릴 들었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을 아끼던 오라버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달래는 슬픔을 가누자 못 하였다.

그것도 자신을 희롱하던 왈패들에게 대들다가 맞아 죽은 것이라 달래는 오라버니의 무덤 앞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만 가자. 이런다고 죽은 네 오라비가 살아나지 않아.”


피 노인은 손자를 지고 왔던 지게를 한쪽 어깨에 들춰 메며 손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하, 할아버지!”


피 노인이 달래의 손을 잡아끌 때였다. 만길의 몸을 덮고 있던 돌덩어리 하나가 움찔거렸

다. 놀란 노인과 손녀는 시신을 덮고 있던 돌을 다급히 치웠다.

죽은 줄 알고 있었던 만길의 맥이 뛰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 사, 살아있어요. 오라버니가 살아있어요.”


만길의 코에 귀를 대고 있던 달래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였다.

분명히 숨을 거뒀던 손자가 살아나자 피 노인은 온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하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기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손자는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고, 노인은 심한 매질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이라고 생각하였다.

열흘이 넘도록 멍하니 앉아 허공만 쳐다보던 만길은 가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어휴, 언제나 말문이 트일까? 말이 안 나오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만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것 참, 제법 여물어 가는데.”

“쉿, 말조심해! 저년 오라비가 들으면 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거라고.”

“달려들라지, 또 주제 모르고 까불면 이번엔 아주 요절을 내 줄 테니까.”

“누가 무서워서 그런가, 개돼지만도 못한 백정 놈하고 엮이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그나저나 저놈 그때 숨이 멎지 않았나?”

“그러게. 그때 분명 죽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저리 멀쩡할 수 있지?”

“멀쩡하긴. 그날 이후로 아예 앞일을 기억 못 한다던데, 가뜩이나 모자란 놈이 아주 반푼이가 되었다지 뭔가.”


길을 가는 만길과 달래를 보며 마을의 왈짜들이 수군거렸다.

만길은 함지박에 담긴 돼지고기를 지고 뒤뚱거리며 걸었고, 달래가 졸랑졸랑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십 여세의 도령이 하인을 대동하고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뭐라고 해도 찍소리 말고 그냥 고개만 숙여.”


달래가 만길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그때 도령의 앞에서 길을 열던 하인이 목청을 높였다.


“어허! 천한 백정 놈이 아침부터 뉘 앞길을 막는 것이냐?”

“아이고, 송구합니다요.”


달래가 재빠르게 말을 받으며 만길을 길 가장자리로 잡아끌었다.


“어머, 만길 총각 고기 배달 가나 보네?”


빨랫감을 광주리에 이고 가던 아낙 하나가 만길을 보며 말을 건넸다.

만길은 달래가 시킨 대로 고개만 굽신거렸고 이번에도 달래가 대신 인사를 하였다.


“아이고, 아주머니들 빨래하러 가십니까요?”

“고것 참 인사성도 밝지. 호호호!”

“그럼 고생들 하십시오.”

“그려, 그려. 만길 총각도 조심해서 다녀오게. 호호호!”

“아. 네네!”


이번에도 어린 동생이 대답을 하였고 만길은 고개만 숙였다.


“인물도 훤칠하고 키도 크고, 백정이란 게 너무 아까워.”

“그러게. 동생도 여간 싹싹하고 고운 게 아니야.”

“그럼 뭘 해. 개돼지보다도 못한 백정인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남편 인물이 만길이 반만 됐으면 좋겠네.”

“왜 이제라도 서방을 바꾸지 그래? 호호호!”

“그럴까? 호호호!”


먼길과 달래는 성균관에 고기를 전하고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쯤에야 집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오라버니가 영영 정신을 못 차리면 어떡하지?”

“······.”


손녀의 말에 피 노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익숙한 칼질로 소가죽을 벗겨낼 뿐이었다.


“기억이 곧 돌아올 거다. 그러니 진득하게 기다려 보렴.”


피 노인은 벗긴 소가죽을 둘러메고 가마솥을 걸어놓은 곳으로 갔다. 가죽을 손질하려면 먼저 물에 삶아야 했다.


“어차피 덜 떨어진 반푼이었는데······.”


피 노인은 평상에 누워 단잠에 빠진 만길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죽었던 손자가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었다.


“달래야 너도 소문 들었지?”

“무슨 소문이요?”

“요즘 양인 마을이나 반촌의 처녀들이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하더구나. 모르긴 해도 못된 놈들이 잡아다가 색주가에 팔거나 오랑캐들에게 넘기는 것 같다는구나.”


달래는 할아버지의 말에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달래 자신도 얼마 전에 왈패들한테 봉변을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물론 위기에서 벗어나긴 했어도 대신 오라버니가 맞아 죽을 뻔한 일을 어찌 잊겠는가.


“걱정 마세요! 저도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다고요.”


달래는 품 안에서 단검 하나를 빼 들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단검은 달래의 어미가 갖고 있던 것으로 양반들에게 욕을 보고는 자결할 때 쓴 칼이었다.


“천한 백정 년이 은장도는 뭐하게! 당장 내다 버리거라!”


단검을 보자 며느리의 죽음이 떠올라 피 노인은 버럭 역정을 냈다. 며느리가 욕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 아들이 낫을 들고 달려들다가 양반가의 노비들에게 맞아 죽은 것이다. 며느리 역시 그 충격으로 자진을 하고 피 노인 홀로 어린 손자들을 키운 것이었다.


“에이, 망할 놈의 세상! 이꼴저꼴 보기 싫으니 어서 죽어야지, 죽어야 해.”


피 노인은 답답한 속을 달래려는 듯이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왜란 때 들어온 담배야말로 천한 삶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후우-


“참 내 정신 좀 보게. 내일이 돌쇠 혼인날인 걸 깜박했네.”


피 노인은 길게 연기를 내뿜고는 만길을 바라보았다.

만길은 고기 배달이 피곤했는지 평상 위에 누워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드르렁! 드르렁!


“팔자 좋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 만길을 돌아보며 달래가 입을 삐죽거렸다.

만길은 마치 여인을 안듯 목침을 끌어안고 희죽거리고 있었다.


“꼴에 남자라고······.”


그 모습을 보고 심통이 난 달래는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들어 던지려다 멈칫거렸다. 예전 같으면 사정없이 던졌겠지만,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오라버니에게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봐줬다.”


달래는 들고 있던 부지깽이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


외진 산속 오솔길을 양반을 태운 가마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가마 위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양반이 목에 힘을 주고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앞뒤로 칼을 든 호위무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쉬, 물럿거라! 김서곤 대감 행차시다!”


앞에서 길잡이를 하는 하인의 목청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거참, 이 산골에 누가 있다고 물러나라는 거야?”

“누가 아니래. 공연히 거들먹거리고 싶은 거지.”


뒤를 따르는 무사들이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저, 대감마님! 산속이고 하니 그냥 조용히 가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네 이놈! 감히 뉘 앞이라고 말을 막는 게냐? 조용하면 심심하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거 라.”


가마 위의 양반은 호위무사의 말에 기분이 나빠져서 역정을 냈다.


“에이, 산적이나 확 나와라. 천한 놈이 어쩌다 반정에 참여해서는 공신이랍시고 우쭐대는

꼴하고는.”

“쉿, 목소리를 낮추게.”


뒤따르던 무사 하나가 툴툴거리자 옆에 있던 사내가 가마 위 양반의 눈치를 살폈다.


“물럿거라! 김서곤 대감 행차시다!”


푸드덕!


하인의 목청에 놀란 장끼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하하하! 참으로 미련한 놈이로구나! 조용히 숨어다녀도 시원찮을 놈이 되레 큰소리를 치며 명을 재촉하다니, 한심한 놈이로다!”


난데없이 고함소리가 숲을 울리자 놀란 양반과 호위하던 무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다!”


목소리는 길 앞 나무 위에서 들려왔다. 나무 위에는 검은 복면을 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온갖 악행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것도 모자라 돈으로 양반 족보를 사 허세를 부리다니, 오늘이 바로 네 놈의 제삿날이다!”

“뭐, 뭐냐?”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저놈을 향해 활을 쏴라!”


상대가 한 명뿐인 것을 확인한 가마 뒤의 양반이 호기를 부렸다.

그러자 무사들은 칼을 뽑거나 어깨에 멘 활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핑! 피잉!


복면인을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타앗!


그와 동시에 나뭇가지를 박차고 복면인이 가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쉬이익!


너무 빨라 호기롭게 고함을 치던 양반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가마와 함께 두 동강이 났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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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쫓겨가는 이괄 24.01.10 15 0 12쪽
10 9화. 다시 뒤집힌 세상 24.01.09 22 0 13쪽
9 8화. 정체불명의 노인 24.01.01 24 0 12쪽
8 7화. 아수라장 23.12.31 29 0 12쪽
7 6화. 수월루 23.12.30 31 0 12쪽
6 5화. 칼의 울림 23.12.29 39 1 12쪽
5 4화. 역모에 역모 23.12.25 57 0 12쪽
4 3화. 보쌈 23.12.24 85 0 12쪽
» 2화. 빙의 23.12.23 59 0 13쪽
2 1화. 역모 23.12.23 61 0 12쪽
1 프롤로그 23.12.23 62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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