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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의 하루] 로마의 집시소녀


온연두콩님의 작품, 

“파란의 연인들: 도이치카탈출기”의 추천사를 썼다.

글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그런 좋은 글이 문피아에서 마이너 장르라는 이유로

묻히는게 아까워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있다.

그건 “파란의 연인들”이 집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나에게는 집시에 대해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 배낭하나 둘러매고 

50일간 유럽을 여행다녔던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로마에 갔을 때의 일이었는데 

그해의 유럽은 기록적인 더위로 

로마시내의 아스팔트가 녹아서 신발에 들러붙을 정도였었다.

비오듯 쏟아지던 땀에 지친 나는 

물을 사려고 가게를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 때 하얀 옷을 입은 두 소녀가 내개로 다가왔었다. 

열한두살쯤 되었을까?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였지만 

그들이 입은 하얀 옷은 어딘가 누렇게 물이 날아 있었다.

예쁜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초라한 행색.

연한 갈색과 분홍색을 섞은 듯한 피부색에 맑은 회색의 눈동자.

두 소녀의 생김새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이탈리아 여자들과는 

어딘가 조금은 달라보였다.


두 소녀중 한명이 두터운 골판지 위에 생수병 2개를 올려놓고 

서툰 영어로 나에게 물을 사라고 권했다.

냉장고에서 갓꺼낸 시원한 물을 원했던 나에게 그녀가 파는 물은 

너무나 미지근해보였지만

웬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녀에게 물을 사려고 돈을 꺼내려고 했었다. 

그 순간 또 한명의 소녀의 손이

내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벨트색을 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난 곧바로 그 소녀의 손목을 움켜 쥐었다.


어설픈 범행에 실패한 그녀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별다른 피해를 입지않는 나는 

그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러지말라고 한마디하고서는

쥐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아무렇지도않다는 듯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던 아이들.

좀도둑과 소매치기가 들끓는 로마라지만 

어린애들이 이러는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씁쓸했었는데 

기분을 더 상하게 하는 일은 바로 그 다음에 일어났다.


멀리서 나와 두 소녀 사이에 일어났던 일은 

지켜보던 이탈리아 경찰관 한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금전의 그 아이들이 집시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집시. 

자유로운 보헤미안이라는 로맨틱한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던 집시의 현실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이었다.

“집시들을 조심하세요. 그 인간들은 도둑의 천성을 타고난 족속들이니까.”

경찰관의 말투는 경멸에 가득차 있었다.

“어떻게 조심해야하는데요?”

내가 묻자 경찰관은 웃으면서 말했다.

“집시는 척보면 아니까 가까이 오면 그냥 두들겨 패세요.”

“뭐라고요? 난데없이 패라고요?”

“예, 근처에 오면 소리를 지르세요. 그래도 말을 안들어면 그냥 걷어차세요.”

“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상관없어요. 집시들이란 그런 것들이예요. 두들겨 패더라도 누구도 뭐라 안그래요.”

도둑질하는 집시는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해도 끼치지않는 집시를 

그저 집시라는 이유로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경찰관은 정말로 질낮은 인종차별주의자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동유럽에서 온 대학원생이 있었다.

미국의 인종차별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열띤 토론을 하던 그녀였는데

그런 그녀 조차 집시 얘기가 나오자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지금 내 수업을 듣는 유럽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인권과 평등과 자유에 대해 떠드는 그들도 

집시라는 말만 나오면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집시가 그렇게 차별을 받아야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집시를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그런 것일까? 

정말로 집시를 겪어보면 

그들이 정말로 해충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원래 그런 것일까?

아니면 유럽이라는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롬이라고 불리면서도 로마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을 당연하다는 듯 차별하는 유럽의 백인들.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누가 누구를 차별할 수 있는 것일까.


집시라는 이름을 들으면 지금도 그 두 소녀가 생각이 난다.

그들은 정말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 마땅한 사람들일까?





  



댓글 1

  • 001. Lv.32 rupin

    14.12.15 14:45

    예외를 두고 평등을 말할 수는 없겠죠. '인간다움'이 인간에게 인권을 부여한다는 생각으로는 영원히 인간평등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이상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왜 집시가, 왜 여러 민족이
    그런 상황에 있고, 그런 대접을 받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접근은 냉정한 현실 파악으로부터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론 인권에 대한 다소 이상적인 논의 역시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논의에서는 '집시는 인간도 아니다.'라는 발언을 격렬하게 비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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