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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의 하루] 영화 퓨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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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영웅이 판치는 전쟁영화라면 딱 질색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개봉전부터 꼭 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유난히 전차를 좋아해서 수십대의 전차 프라모델을 만들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밀덕도 아니면서 M4 셔먼과 티거 I의 대결 장면이 나오는 예고편만으로도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차 자체보다도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전차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하는 인간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였다. 


일본 개봉일은 11월 28일이었지만 12월 3일이 되어서야 영화관에 밞을 옮길 수 있었다. 개봉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는 브레드 피트가 나온다는 것 때문에 관객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영화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우메다 토호영화관의 가장 큰 스크린인 제3관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몇 십명에 불과했다. 2차 대전의 탱크전은 일본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는 아닌 모양이다.


전쟁 영화의 몰입도를 가장 먼저 결정하는 무기 고증은 완벽했다. 2차 대전때 사용되었던 실제 탱크들을 사용했다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탱크가 피탄되는 장면과 기관총에서 예광탄이 빛의 줄기를 그리며 날아가는 장면들은 이게 영화가 아니라 실제 전쟁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셔먼에게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는 티거에 맞서 악전고투하던 순간의 긴박함이란 마치 내가 기름내 쩔은 탱크안에 갖혀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가 그리고 있는 전차 승무원들. 북아프리카 전선부터 전차를 탄 베테랑 전차장, 워대디 컬리어 (브래드 피트), 포수 바이블 스완 (샤이어 라보프), 탄약수 그래디 (존 번설), 조종수 고르도 (마이클 페냐), 신병 기총수 노먼 (로건 레만). 전쟁에 무감각해진, 하지만 잃어버린 인간성은 슬픈 사람들. 그들이 느껴야 하는 좌절과 공포에 대한 묘사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전쟁 드라마로 꼽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버금갈 정도다. 


재밌었다. 그리고 여운도 남는다.

오랜만에 만난 커다란 스크린이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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