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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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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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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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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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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8화.

DUMMY

중천에 뜬 해는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자신을 뽐내 발레르가 묵고 있는 여관 마당에 심어진 그의 심복 해바라기는 그를 바라보기 바빴고 늙은 참모 벼는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은 점점 방 안을 덥혀 결국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오게 해 간만에 늦잠을 자던 발레르는 깰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차려지는 것과 동시에 날씨와 어울리는 상인의 외침들과 그 더위에도 지치지 않는 듯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투닥거림이 들려왔다. 새벽의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의 발레르는 창을 열어 바깥을 구경하며 포근함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사명을 가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 또한 아니었기에 그는 잠시간 창틀로부터 들어오는 한여름의 상쾌함을 좀 더 즐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


그는 그냥 이대로 살았으면 좋을 것 같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알려준 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모두 잊고 사람 좋은 한적한 곳에 가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그걸 바라셨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지는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날들을 처절히 짓밟아 버렸던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쉽게 물러설 순 없었다.


상인이나 그런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 자신도 알고 있는, 얼마나 될지 모르는 그 재능을 싹도 틔우지 못한 채 방치해둘 수 없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는 적어도 억울해서라도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모든 편린들은 오히려 오기를 불러내 그가 멈추고 싶을 때마다 채찍질이 되어주었고 지금 그가 창틀에서 멀어지며 나갈 준비를 하게끔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들은 일종의 먼지였다. 집안에 있으면 보기 싫어지지만, 그로 인해 오랜만에 집 안 청소를 하게끔 도와주는 아이러니한 존재. 그것은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


피레네 산맥은 입구부터 제대로 닦여진 길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기야 있되 전문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주민이 대충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만든 거라 발레르는 올라가다 길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주 놓였다.


무작정 길을 벗어나 서쪽으로 갈 수는 없었고, 집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니 일단은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 볼 셈이었다. 굳이 오늘 안에 찾아야 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두어 시간을 묵묵히 올라가던 그는 아직 멀어 보이는 정상을 보더니 끝이 없겠다 생각하고는 걷기를 그만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산은 훨씬 크고 넓었다. 아무리 낮이 긴 여름이라지만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발레르는 이미 올라오기도 많이 올라왔으니 서쪽으로 빠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한참을 헤매며 돌아다니던 발레르는 쉬지 않고 움직인 탓에 잔뜩 지친 채로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이 넓은 산에서 서쪽이라는 방향만으로는 생각보다 찾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는 아직 한창인 상태였지만 그는 조급해졌다. 아무래도 규칙 없이 우연히 발견될 그런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구간을 나눠서 며칠을 통해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신발을 벗으니 뭉쳤던 다리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들자 숲의 상쾌한 바람이 그에게로 다가와 땀을 말려줬다. 규칙 없이 늘어진 채로 끝이 없을 정도로 이어진 푸르디푸른 나무들과 거칠지만 따뜻한 흙이 전부인 곳에 앉아 있으니 무리에 이탈한 짐승처럼 조금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뜨끈한 신발 안으로 다시 발을 집어넣으며 왠지 모를 불쾌감을 맛봤다. 조금만 더 찾아보고 내려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한 그는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발을 내딛으려는 그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나절 가까이 산짐승 한 마리 못 봤던 그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안도감을 가진 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에는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등에는 화살 통을 멘 채로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지 면도는 깔끔히 되어 있었고 바깥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옷차림과 체격이었지만 피부는 아주 하얬다. 눈썹은 짙어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얼굴 자체가 웃는 상이라 무서운 이미지는 아니었다.


편안하면서 가볍고 통풍이 좋아 보이며 조금 달라붙는 옷에 신발도 꽉 조여 맨 것을 보니 산을 자주 타는 듯 보였다.


발레르는 그 자리에서 서서 미소를 지어 보았다.


“혹시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남자 역시 간격을 둔 채로 더이상 움직이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받아쳤다.


“여기에는 산나물이 없습니다.”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발레르가 나물을 담을 바구니가 없는 것과 복장이나 가지고 있는 검을 보아 그러려고 왔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말투가 이곳을 떠나라는 강요 아닌 강압적임을 느꼈고 짧은 순간이지만 그가 자신의 등에 멘 검을 본 것을 알아챘다.


“나물을 캐러 온 게 아니라 사실 여기 근방에 누가 산다고 해서 찾고 있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경계하는 그를 보며 발레르는 조심스럽게 단어를 머릿속으로 골라가며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조심했다. 그의 뒷말에 남자는 미비하게 움찔거렸다.


“제가 여기 지리를 잘 아는데 사람은 살지 않습니다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발레르는 뭔가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공격성마저 느껴졌다.


“네? 그럴 리가요. 저희 어머니가 여기에 아는 사람이 산다고 그랬거든요.”


“어머니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여긴 정말 아무도 안 살아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서 발레르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가 거짓말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그에게 다가가려 한 발 내디뎠고 그와 동시에 남자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


발레르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는 기분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다시 한 발짝 내디뎌 보았다. 그러자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듯 남자는 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저기···.”


남자는 그의 말을 자르며 오른손을 화살 통에 가져갔다.


“누구냐.”


삽시간에 굳은 표정과 함께 적개심이 가득 찬 상태로 남자는 발레르를 경계했다.

발레르는 당황했지만, 상황을 진정시키려 천천히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일단 진정하시고··· 저는 저쪽 뒷마을 알레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발레르 칼로프고요. 단지 어머니···.”


말을 더 잇기도 전에 남자는 말을 자름과 동시에 발레르가 반응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재빨리 화살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어디서 감히 그 성을 거론해!”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어찌나 목청이 큰지 산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팽팽히 당겨져 있는 시위는 당장에라도 그의 가슴을 꿰뚫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발레르는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고 속이 메스꺼웠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남자가 한 말을 놓치지 않았다. 성? 칼로프라는 성이 뭐 어쨌다는 거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이야기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을 이으려 노력했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신께 맹세코 거짓이 아니고 저희 어머니 에스테르 칼로프께서 돌아가시기 전 피레네 산맥 서쪽으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셔서 와본 것뿐입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결코 공격 의사가 없습니다.”


흔들림 없이 발레르를 겨냥하던 남자는 그가 어머니의 이름을 거론하자 다시 한 번 움찔거렸고 발레르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남자는 이제 화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지만, 아직 경계는 풀지 않았다.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자 그는 초조해졌다.


“원하신다면 저희 어머니 유언장을 보여 드릴게요.”


남자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고 발레르는 더는 다른 수가 없어 오른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가져가 엄지와 검지만을 넣어 접힌 편지지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느린 동장으로 자신의 가슴 앞에서 편지지를 펼쳐서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가 잘 보이게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그 자세 그대로 세 발자국 다가오더니 눈을 찡그리며 그가 펼친 편지지를 한참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에스테르가··· 죽었다고?”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활을 거두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있던 남자는 주먹을 꽉 쥔 채 어깨를 떨었다.


***********************************************


산속 깊숙한 곳에 한 공터가 펼쳐져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아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사람의 손을 거친 흔적이 다분하다. 그 공터 가운데에는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집이 있었고, 공터와 마당을 경계 짓기 위해서인지 둥글게 울타리가 쳐져 있다.


겉으로 보기엔 전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뒷문 없이 문은 정문 하나였다. 발레르가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는 벽으로 발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벽으로 짓고선 겉을 나무로 덮은 듯싶었다.


그 덕분에 내부는 좀 더웠지만 산속에서 추운 날들을 보내기에는 걱정 없어 보였다. 사방으로 탁 트인 곳이라 그런지 내부 벽이나 바닥과 천장은 조금 어두운 계열의 색이었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방 안 구석구석을 밝혀줘 우중충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더 강했다.


남자는 여전히 축 늘어진 어깨로 차를 내려 탁자 옆 의자에 앉아 있는 발레르 앞에 놓으며 자신도 반대편에 앉았다.


“에스테르가 죽었다니.”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힘 빠진 눈으로 발레르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선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자신을 향한 분노와 질책과 자책이 엿보였고 발레르를 향한 눈빛에선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서려 있었다.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기에 발레르는 차를 만지작거리며 잠자코 있었다. 남자는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발레르의 슬픈 눈동자를 보고선 그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추스른 남자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왜 자신에게 보낸 걸까, 였다. 다른 보호자가 마땅히 없어서? 혹시 모를 불미스런 일을 대비해 숨겨달라는 건가? 그녀가 정녕 그것을 바란 걸까? 이 어린아이가 그저 숨어서 아무 탈도, 꿈도 없이 배 굶지 만을 않기를 바라는 걸까. 그녀가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가기를 원하는 것일까? 남자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냐. 아마 그녀는 그저 우리가 풀지 못한 채 버려두고 달아난 ‘그것’이 우리에게만 국한되지 않을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아저씨. 티보 아저씨?”


깊은 상념에 빠진 지 십 분쯤 지나자 발레르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티보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묻는 작은 소리였지만 티보는 놀란 듯 고개를 황급히 들어 올렸다.


“어? 어··· 그래.”


너무 조급한 것일까. 티보는 친구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성급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래,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뒤에 감춰져 있는 당황함을 본 티보는 아차 싶었다. 슬픔의 크기를 따지자면 아무래도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가 더 컸을 텐데 자신은 어른이 되어서 달래주기는커녕 감정을 주체를 못 했으니 보호자로서 낙제인 셈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그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녀의 의도가 어떤지 그는 몰랐기에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하는지 아니면 감춘 채 살아가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할 수 없었다.


아까 보아하니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 같은데 역시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시작과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창 너머를 봤다. 햇빛은 이제 많이 빛을 잃어 서서히 색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좋다. 다시 시선을 돌린 그는 발레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배고프지?”


발레르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 아, 네.”


“하루종일 산을 타느라 피곤했겠어. 내 집이라 생각하고 푹 쉬고 있어.”


말하며 일어난 티보는 그대로 뒤돌아 저녁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딱히 할 게 없어진 발레르는 열려있는 반대편 방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도 작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아내분이랑 둘이서 사시는 건가요?”


멀리서 주방도구를 꺼내는 소리와 말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아니. 아들놈이랑 둘이 살고 있지.”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 온 그는 머리카락이 눈 밑까지 덮여 있는 반 곱슬머리였고, 짙은 눈썹과 매력적인 눈을 가졌고 오똑한 코에 피부도 백옥같이 하얘서 누가 봐도 꽃미남이었다. 그는 발레르와 또래로 보였고 그 역시 티보와 같이 활을 들고 있었다. 신기한 건 그의 어깨에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노루를 들쳐 메고 있었다.


“응? 아빠, 아빠 친구도 있었어?”


그의 입에서는 익살스러운 말이 흘러나왔고 덩달아 받아치는 티보의 말투에도 활기가 돌았다.


“이놈아 내가 아니라 네 친구야. 둘이 인사 나눠. 그건 여기다 놓고.”


티보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재잘거림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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