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엑시타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0,083
추천수 :
54
글자수 :
233,206

작성
17.06.11 21:40
조회
314
추천
2
글자
11쪽

5화.

DUMMY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각기 다른 의미지만 발레르와 리비오. 그리고 교수의 눈빛은 흔들렸다.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았던 분위기는 그 한마디에 착 가라앉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함께 하겠습니다.”


리비오는 어찌 됐건 자신에게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같이 간다 해도 리비오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다시 벌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음침하고 말도 없는 저런 녀석보다야 사교성 좋은 자신에게 더 사람이 많이 생기는 건 당연한 사실이기에 방금까지는 내키지 않았던 그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 것은 그 역시 화가 낫지만, 그것은 그거대로 돌려줄 심산이었다. 발레르가 거절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로서는 그것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글라스 가문을 내치는 놈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으니 말이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가 말을 끝내고 나서 몇 초 동안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던 사람들은 그 상태 그대로 멈춘 채로 발레르를 쳐다보았고 더글라스 가문의 사자는 당연히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지 못해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적막과 함께 모두가 발레르를 바라보자 그는 일종의 폐쇠공포증 같은 갑갑함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교수조차 깜짝 놀란 듯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동조차 하지 않았다.


질겼던 짧은 침묵은 이내 곧 깨져버렸고 그 빈 공간을 채우기라도 하듯 장내는 삽시간에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워졌다. 곧 사태를 파악한 다음 순서의 사자는 열의를 띄웠다.


“그럼, 그럼 우리 가문은 어떻나. 산소네 가문이라고 들어봤겠지?”


발레르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거기도 가지 않겠습니다.”


충격의 연속인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발레르 뿐이었고 당황한 교수는 그에게 다가갔다.


“발레르. 네가 원하는 가문이라도 있는 것이냐.”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 그 말이 기폭제가 되듯 사람들은 발레르에게로 시선이 쏠린 채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근히 남은 사람들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더글라스에 이어 산소네 가문까지 내쳤다는 건 저 소년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다른 이유가 있어서임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사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단지 유망한 아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목메는 건 어떻게 보면 해괴할 만큼 이상한 장면이다. 더군다나 이런 촌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자라는 직책을 맡고 온 사람들은 괜히 아무나 뽑혀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같이 데리고 온 사병은 그냥 평범한 사병이 아니라 그 가문 내에서 지위가 꽤 높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검사는 검사를 알아본다고 조용하던 그들이 발레르와 리비오가 검을 맞대자마자 재빨리 대표자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저 아이들은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건 책상놀음을 하던 사람들조차 단번에 알아볼 정도의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더글라스 가문이 원한다. 그것만으로 이야기는 끝난 셈이었다. 정치, 군사 어느 것 하나도 타 가문들에 뒤지지 않는 그들이 원한다는 건 모르긴 몰라도 예사 재능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다시는 없을 기회를 포기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고 그는 지금을 계기로 깊게 느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고 존경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발레르는 이제 그들의 시선에 지쳐 어서 이곳을 벗어나기만을 바랄 뿐 다른 건 존재하지 않았다. 빨리 집에 가 짐도 꾸려야 하고 음식도 사야 하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시간이 모자랄 것만 같다고 그는 느꼈다.


“아니요. 전 아무데도 가지 않겠습니다.”


*****************************************


졸업식 당일은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워지게 돼 있다. 만족스러운 생활이거나 아니어도 어찌 되었건 졸업은 해당되는 모두에게 후련함과 해방감 그리고 설렘을 가져다줘 들뜨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그 시기엔 마을을 넘어 지역까지 말랑한 포근함을 주는 매력적인 날이다.


꽃다발을 든 부모님과 결실을 맺은 이들은 웃음을 나누고 이별을 겪는 아이들은 눈물을 나누며 서로 간의 작별을 고한다. 그 날만큼은 사람들의 지갑 인심이 후해져 대부분 가게의 매출은 증가해 상인들에게도 기대감에 부푼다.


그 고귀함을 맞이하는 이른 새벽바람은 계절의 영향을 받아 시원한 날씨였다. 가게 주인들만이 이날을 맞이하기 위해 일찍이 분주히 준비할 시간에 발레르는 깨어났다.


오늘 있을 일에 대해 부풀려진 맘에 잠에서 깬 것도,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의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그는 자신조차 모를 뿐이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자신의 발로 직접 차버렸고 어머니를 잃고 가족이 없어진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몰랐다. 남은 건 오직 자신의 옆에 눕혀져 있는 검 한 자루와 묵직해진 가방··· 그게 전부였다.


그는 초라한 자신의 전부를 짊어 멘 뒤 어제의 일로 인해 찌뿌둥해진 몸을 일으켜 공동묘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무의 울음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소리는 그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아린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그제야 실감 났다. 언제고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하기에 그는 열쇠를 문 앞 깔개 밑에 넣어 숨겨두었다.


한걸음, 한걸음 문밖으로 향할 때마다 익숙하던 공기의 냄새는 점점 희미해져갔고 그 빈자리는 낯선 것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고 그는 느꼈다.


공동묘지는 늘 그렇듯 한산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그렇다. 죽은 자의 쉼터에 발레르는 발을 들여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곧장 질러갔다. 어머니는 늘 그렇듯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저 이제 떠나요. 오늘 작별인사하러 온 거예요.”


진하게 잘 익은 블루베리 색이던 하늘은 어느새 옅어지고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 찬 검 한 자루를 톡톡 두드렸다.


“어제 말이에요 어머니, 더글라스 가문에서 저를 원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아, 그렇다고 다른 곳에 간다는 건 아니고··· 어머니 말씀대로 하려고요.”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듯 그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어머니가 그 자리에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저 되게 멋있었다고요.”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그는 노력했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금방 가서 죄송해요. 북적북적 해지기 전에 떠나려고요. 시먼 아저씨한테 잠깐 들렀다 가려면 서둘러야 해요. 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은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에는 이미 물기가 잔뜩 묻어나와 그는 소리를 뱉기가 힘겨웠다.


“잘··· 지내고 계세요. 또 올게요···.”


****************************************


달과 해의 경계선에서 아직까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몇 있지 않았다. 발레르는 늘 가던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마음의 갑갑함을 가진 채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지만, 주변 풍경을 눈에 담으려 주변에 집중하며 걸었다.


“아저씨.”


분주히 과일 상자들을 나르던 시먼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춘 채 돌아봤다. 어깨에 짊어진 짐과 허리에 찬 검은 졸업식이라는 걸 떠나 마을 사람들이 본다면 누가 봐도 그가 영락없이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왜 그랬냐.”


시먼은 무엇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인생역전이 가능한 출셋길보다 말이냐?”


“네.”


진지한 얼굴과 굳게 다문 입은 그의 처지를 대변했다. 시먼은 어제의 그 소동을 듣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여서인지 발레르는 이 마을에서 한 번도 없었던 역사적인 기회를, 자신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그것을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 그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지만, 한숨이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더 묻지는 않으마. 너도 너만의 사연이 있을 테지. 인사라도 하러 온 거냐?”


어째서인지 시먼은 마지막임을 알았지만, 평소보다 더 딱딱하게 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적어도 아저씨한테는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시먼은 의자를 빼 앉았다.


“고맙구나. 이제 어디로 가느냐.”


“저는 일단 몬토야 마을로 가려고요.”


시먼은 잠시 시선을 멀리 두었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못난 놈. 그럴 거면 그냥 여기에 눌러앉아 내 밑에서 일이나 할 것이지. 그럼 또 몰라 내가 또 물려줄지.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도망치듯 새벽부터 가려고 하느냐.”


발레르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아니고요 아저씨. 저는···”


시먼은 상자에서 무얼 하나 꺼내 그에게 휙 던졌다. 사과였다.


“아침 안 먹었지? 가는 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구나. 줄 게 그것밖에 없어.”


발레르는 베어 물면 과즙이 엄청날 듯 잘 익은 사과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시먼은 그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또래에 비해 성숙한 편이고 생활력도 강해 대견했지만, 역시 아직 애는 애였다.


“다시 올 거지?”


발레르는 황급히 고개를 연신 크게 끄덕이며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삼켰다.


“네, 꼭 올게요. 꼭.”


“그래···.”


한숨을 삼킨 시먼은 이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 가 봐라. 어디 다치지 말고 조심히 가라. 밖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란다. 돈은 좀 있니?”


“네. 충분해요. 아저씨.”


끝까지 어리광을 피우지 않는 모습이 그는 대견스러웠다. 시먼은 천천히 일어나 돈이 담겨 있는 곳에 손을 집어넣어 대충 한 움큼 집어 들어 발레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그의 주머니에 넣어줬다.


“헤프게 쓰지 말고 아껴 써야 해. 알았지?”


“아, 네. 저··· 감사...합니다.”


시먼은 뒤로 돈 채로 말하며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약간 그의 목이 조금 메어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가 봐라. 아저씨도 할 일이 많구나.”


그는 허리에 양손을 댄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시먼 아저씨.”


끝내 돌아보지 않는 그를 잠시간 바라보던 발레르는 겨우 발을 뗄 수 있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그제야 시먼은 뒤돌아 멀어져가는 발레르를 바라보며 축 늘어진 채 의자에 앉아 깊은 상념에 빠진 듯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에스테르, 당신 아들 하나는 잘 키웠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엑시타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7화. 17.06.12 390 3 16쪽
6 6화. 17.06.11 326 1 18쪽
» 5화. 17.06.11 315 2 11쪽
4 4화. +2 17.06.11 357 5 14쪽
3 3화. 17.06.10 368 3 12쪽
2 2화. 17.06.09 394 3 13쪽
1 1화. 17.06.08 989 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