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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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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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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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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23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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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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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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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7화.

DUMMY

한 여자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레르마저 가슴이 아려왔다. 여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여자는 쭈그려 앉아 그녀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고 있었고 남자는 양손을 허리춤에 짚으며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모두 살과 옷. 팔과 다리에 많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아파하는 기색이 아닌 것으로 보아 자신들이 흘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슬피 울고 있는 여자의 눈물은 흐르며 피와 섞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그는 마른 체형에 비해 배가 불러온 것을 보니 홀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울고 또 울던 그녀는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려 그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상기된 얼굴에 머리는 산발인 채로 피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모습은 최근이 아닌 젊었을 적의 상태였다. 그렇다면 저 뱃속의 아이는···.


그의 어머니는 절규하며 무어라 소리치더니 별안간 일어서며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려 했지만 동료들이 악착같이 그녀를 말렸다. 팔을 붙잡으며 막는 여자는 덩달아 같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다시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녀는 정신이 나간 듯 눈에 생기는 돌지 않았고 초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듯 보였다. 겨우 잠잠해지는 것 같아 보이자 동료들은 천천히 그녀를 놓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검을 뽑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뱃속을 찔러 넣었다.


“안 돼!”


********************************


몸부림치며 일어난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그는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공포감을 떨쳐내려 애썼다.


주변은 아까보다 훨씬 어두운 걸로 보아 발레르는 아직 새벽이라 짐작했다. 덱스터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고, 모닥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걸 보다 보니 경계에 서 있던 정신은 서서히 현실로 넘어왔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단순히 개꿈이라기에는 모든 게 또렷했고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마냥 생생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살면서 예지라던가 예감이라는 건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대체로 믿거나 의지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꿈은 무언가 석연찮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발레르는 진정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짧은 순간에 정신적인 소모를 많이 해서인지 잠들기 힘들 거라 예상한 그의 느낌과는 다르게 금세 잠에 빠졌다.


“푹 잤어?”


자리를 정리하고 닦여진 길로 나오면서 덱스터는 한쪽에 짊어진 배낭을 다시 들쳐 맸다.


“네... 괜찮았어요.”


발레르는 굳이 지난밤의 꿈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야영은 몇 번 해본 거니?”


이른 아침부터 햇살을 후덥지근해 발레르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덱스터는 눈에 빛을 내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내가 볼 때 너는 딱 천생 검사구나.”


“왜요?”


“첫 야영인데도 크게 불편해하는 것도 없는 걸 보니 적응력이 아주 좋은 것 같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잖아. 보통 검술은 잡는 사람의 성격을 따라간단다.”


발레르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제 검술은 정직하다는 이야기로군요. 근데 그래도 변칙적인 검을 구사하는 사람이 더 위협적이지 않나요?”


그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위협적이지. 알아채기도 힘들고 말이야. 그래서 주도권도 뺏기기 십상이지.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기초가 탄탄한 사람은 제아무리 화려해도 이기기 힘들단다.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공격을 잘하면 우위를 점하지만, 수비를 잘하면 승리한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땅을 바라보았고 덱스터는 그런 발레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순전히 내 의견이야. 사람마다 추구하는 건 다르니까 말이야. 발레르 너는 내 관점에서 아주 훌륭한 자질을 가졌다고 봐.”


발레르는 그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 혹시 리비오는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덱스터는 그가 말한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래 그 친구. 너와 겨뤘던 애 말하는 거지? 걔는 뭐 별일 없이 합류해서 같이 복귀할 거야. 많이 친했니?”


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발레르는 우물쭈물 거리며 유치한 질문을 던졌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는 발레르가 거의 처음으로 질문하는 것에 화색을 띄웠다.


“검사님이 보실 때 걔랑 제가 끝까지 싸웠으면 누가 이겼을 것 같나요?”


약간은 어린애다운 질문에 덱스터는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곧 진지하게 그때의 상황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글쎄다. 솔직히 나도 확언하기는 어려워. 그만큼 대등했으니까. 체력이나 여타 다른 변수는 무수히 많으니까 함부로 뭐라 확답을 주진 못하겠구나.”


발레르는 실망감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리비오는 멀리 떠난다. 어쩌면 이제 죽을 때까지 마주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비록 증오하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검에 대한 재능만큼은 무시할 게 못되어 그는 내심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걸 제삼자에게서 듣고 싶었다.


그 처음이자 마지막일 대결에서 찍어 누르기는커녕 우위를 점하지도 못한 게 그는 너무 미련이 남았고 아쉬웠으며 자신 스스로에 대해 짜증이 났다. 이제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그를 생각하니 어쩐지 자신이 밀리는 느낌마저 들어 분한 감정 또한 생겨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스스로 목표도 없는 마당에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어머니의 유언을 끝내고 나서의 자신의 앞날이다. 그는 아직 그 이후를 생각하지 못했다. 끌리는 것도 원하는 것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심 그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초조해졌다.


******************************************


여름의 긴 낮도 결국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와 더불어 찌는 더위도 함께 말이다. 부지런히 걸을 결과 그들은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 몬토야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막상 마을 앞에 도착하니 피로감이 발레르를 덮쳤다.


노을빛을 받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을은 포근함을 자아냈다. 발레르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저 조금 커진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옷이나 건물 실내장식은 그의 마을보다는 월등히 좋았다. 서서히 저녁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고 활기가 넘쳐 발레르 조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별말 없이 자신의 옆에 있는 덱스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별이네요.”


“그렇구나. 이제 어디로 간다고 했었지?”


덱스터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눴다는 듯 은근슬쩍 그에게 질문했다.


“일단은 피레네 산맥으로 가려 해요. 누굴 좀 만나려 해서요.”


그는 누군가에 대해 묻지 말라는 듯 딱딱하게 말했다.


“피레네 산맥... 그래.”


덱스터는 어쩐지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자리를 지켰다.


“역시 다시 권유해도 거절하겠지?”


“죄송해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는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하기는 내가 미안하지. 언제라도 좋으니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너라. 내가 책임지고 자리 마련해줄 테니.”


“기회가 닿으면 꼭 갈게요. 감사해요.”


노을빛은 어느새 치고 올라와 세상을 반쯤 덮고 마을을 덮고 그 둘을 덮어버렸다. 집을 나서고 처음 만난 사람이 좋은 분이라는 것에 그는 왠지 힘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이별이었다.


멀어지는 덱스터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그는 털어버리는 한숨과 함께 허기짐을 느꼈다. 오늘은 푹신한 침대와 함께 육포나 과일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발레르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간 시먼의 가게에서 일하며 번 돈 덕분에 그의 주머니는 생각보다 꽤 여유로운 편이었다. 게다가 긴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기에 그는 좀 더 호화를 부리기로 마음먹고 길거리를 걸으며 외관상으로 좋아 보이는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하루 동안이라지만 몸에 묻은 먼지와 모래나 흙과 섞인 땀은 생각보다 끈적이고 더러워 불편했었지만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니 몸이 풀리며 깨끗해지는 느낌에 발레르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거의 다 온 셈이었다. 피레네 산맥은 마을 바로 옆에 있기에 찾을 필요는 없다. 대신에 서쪽이라고만 알고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아까 돌아다니며 봤을 때의 산 크기로 보아 서쪽의 전부를 헤집고 다녀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듯싶었다.


홀로 내려가 잠시 앉아 있자니 들어오며 같이 주문했었던 요리가 곧 나왔다. 레몬 사 분의 일 조각 하나와 콩 요리와 함께 구운 통마늘이 한쪽에 자리 잡았고 하얀 크림에 덮인 구운 생선요리가 나왔다. 그는 소스 맛이 궁금해 살짝 찍어 먹어보니 아무래도 달짝지근한 게 꿀이 들어간 것 같다고 느꼈다.


홀 안에는 반보다 조금 안되게 자리가 찼는데 저녁 시간이 지난 것에 비해 볼 때 꽤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았다. 조용히 앉아 식기를 놀리니 몇몇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 게 발레르는 느껴졌지만 그러려니 하며 무시한 채 먹는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이거 세상 살기 팍팍해서야 원.”


반쯤 넘게 먹었을 때 배가 불러오자 슬슬 먹는 것에 집중이 풀려 그는 자연스레 옆자리의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예끼 이놈아, 그래도 더글라스 가문 덕분에 이 정도까지 살 수 있는 거야.”


받아치는 남성은 혀를 차며 상대를 나무랐다. 목소리로만 짐작하면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상대는 기세가 꺾였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인 듯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잖아요.”


나무라던 사내는 답답한지 탁자를 탁탁 내리쳤다.


“으휴. 너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냐, 어?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시작되는 본인은 모르겠지만 지루하고도 약간은 부풀려진 이야기가 시작되자 발레르는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제 아무리 지도 구석에 박힌 마을이라도 유명한 이야기나 역사는 알기 마련이다. 희대의 살인마 유스터스의 목을 치고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으며 인정받아 가문을 세운 더글라스 말루스는 암흑기였던 나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어떤 사람들은 더글라스 가문의 이전과 이후로 경제를 나눠 말하기도 할 정도로 그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불과 이십 년이 되지 않았지만, 무용담처럼 사람들은 줄곧 이야기를 꺼내어왔고, 발레르도 그걸 모를 수는 없었다.


어느새 옆 테이블은 잠잠해졌고 분위기를 풀려 설교 당한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더글라스 가문이 가져가겠죠?”


보이진 않았지만,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는 듯 밝아진 톤으로 대답했다.


“그렇겠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서민들이 잘살아진 대신 더글라스 가문을 제외한 나머지 가문들은 전체적으로 힘을 잃었으니까. 풍문으로는 왕권까지 노린다고 하더라.”


“예? 설마요. 지금까지 세습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요? 암만 대단하다 해도···.”


설교했던 남자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고급 정보인 양 고개를 숙인 채 말하는 것 같았다.


“못 할 건 또 뭐냐? 소문이 괜히 도는 건 아니라지. 내 저번에 수도에 갔을 때 상인한테 들었는데 하나뿐인 왕세자가 어리기도 어리지만, 어느 하나에 두각을 내기는커녕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 그래서 골머리를 앓는다는 거야. 근데 마침 친한 아랫사람 중에 일 잘하고 무예도 깊은 사람이 있는데 눈이 안 가고 배겨? 모르긴 몰라도 이미 많이 진척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오, 일리 있는 말이네요. 아니 근데 저 놔두고 또 언제 수도까지 갔대요?”


“어? 어··· 일이 있었어.”


삐걱 거리는 의자 소리로 보아 젊은 남자는 엉덩이를 들썩이는 듯싶었다.


“일이 있기는 개뿔이 딱 보니까 주사위 던지러 갔구먼, 아니에요?”


분위기가 넘어간 듯 젊은 남자는 기세등등하게 소리 높여 상대를 추궁하자 상대는 당황한 것이 역력한 말투로 지지 않겠다는 듯 큰 소리로 맞불을 놨다.


“아니 근데 이놈이 어디 어른 앞에서 목소리가 담을 넘으려고 해?”


그 둘의 티격태격 때문에 조용했던 홀 분위기는 전염이라도 된 듯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를 이기려 서로가 점점 커져 시끌벅적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발레르로서는 좋아하지 않았기에 마침 식사도 거의 마쳤고, 배도 불러오기에 그만 정리하고 일어날 준비를 했다.


“저 여쭤볼 게 있는데요.”


발레르는 일부러 식기를 들고 여관 주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돌아보는 여주인은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지만 긴 머리를 뒤로 잘 말아 묶어 시원한 인상은 조금 동안으로 보이게 했다. 큰 눈과 오똑한 코에 흰 피부를 가진 그녀는 젊었을 적이나 지금이나 남자의 관심을 꽤 받았을 것처럼 꽤 미인이었다. 눈 밑에 있는 주근깨들은 오히려 그녀를 더 청순한 이미지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발레르를 보자 어린아이를 보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피레네 산맥에 사람이 사는 곳이 있나요?”


그녀는 선반에 양손을 얹고는 눈알을 굴렸는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글쎄다. 아마 없을걸? 아 맞다. 산에 가는 사람 중 누가 그랬는데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집 한 채가 있다고는 하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는 무언가 가닥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미안,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네.”


잡을 줄 알았던 가닥은 날아갔지만,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봤다는 사람이 있으니 아주 깊숙이 있는 곳은 아닌 셈이었다. 발레르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포만감으로 배가된 피로감을 안고 자신의 방으로 곧장 올라갔다.


**************************************


잠을 뒤척이다 문득 눈을 뜬 발레르의 시야에 창으로 새어나오던 옅은 어둠이 매우 짙어져 있는 게 들어왔다. 몇 시쯤 되었을지 모를 시각이었지만 그는 몸의 피로함과는 반비례 적으로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지난밤 꾸었던 꿈은 몰래 숨어있다가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불쑥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보통 꿈을 꾸면 금세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어쩐 연유에서인지 점점 선명해져 이제는 눈을 감으면 마치 그의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마냥 펼쳐져 그를 더 괴롭게 했다.


목 놓아 울던, 그래서 보는 이마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머니의 눈물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배를 찌를 때의 그 눈빛.


문득 그는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은 아버지처럼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딱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게 없으셨지만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을지, 그리고 그토록 남편을 기다린 이유는 무엇인지.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유복하지 못한 집안이었지만 그것이 불만이거나 그가 어머니와 다툰 적은 적어도 그의 기억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는 아무리 따져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 깊숙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나 원한 따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발레르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써 억지로 잠을 정했다. 정신적으로 지치며 그와 함께 영상은 흐릿해져 갔지만, 알 수 없는 분노와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에 흐르는 눈물은 그가 어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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