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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엑시타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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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0,075
추천수 :
54
글자수 :
233,206

작성
17.06.0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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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
추천
5
글자
14쪽

1화.

DUMMY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며칠 사이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거기에 뜨거운 태양 아래 있으니 그는 더욱 기운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규칙 없이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느릿하게 대충 정리하고 있었다.


“발레르, 아직도 못 끝낸 거야?”


발레르가 뒤를 돌아보니 문 앞에 서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언짢은 듯 굳게 다물어진 입가에는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금방 끝낼게요.”


맥없이 고개를 푹 숙인 발레르를 본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빨리 좀 해줘. 오늘 바쁜 거 알잖아.”


남자는 한소리 하려다 무슨 이유인지 꾹 눌러 참았다.


“시먼 아저씨, 이것 좀 주시겠어요?”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먼은 잽싸게 뒤돌아 쿵쿵거리며 뛰어나갔다. 바깥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들으며 발레르는 뒷목을 문지른 후 아까보다는 빠른 속도로 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쉬고 있는 발레르에게 시먼이 다가가며 일당을 건넸다.


“자, 여기.”


어둠이 깔리고 달과 별들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여름의 밤공기는 미적지근했다. 천천히 다시 자리로 돌아간 시먼은 계산대 의자에 앉아 오늘 벌어들인 돈을 천천히 세고 있었다. 끔뻑끔뻑 하며 눈을 깜빡이는 걸 보아하니 그도 오늘은 꽤나 지친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평소보다 바빠 참외고 사과고 양파건 대부분 다 팔려나가 버렸고 진이 빠질 대로 빠진 그들은 이미 녹초였다. 발레르는 텅 비어버린 상자들을 둘러보고는 한 손은 허리춤을 짚고 한 손으로는 선반을 잡으며 몰려오는 피로감을 쫓아냈다.


새삼 그는 가게 안을 쭉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가게가 그렇듯 똑같이 나무로 지어진 작은 건물 앞에 나무 상자 채로 과일과 채소를 내어놓는 별다를 바 없는 구조였다. 가게 분위기에 맞게 벽지 색은 연한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건물 바로 안에는 계산대가 있었고 그 주변은 앞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의 여분들이 상자채로 쌓여있었다. 그 뒤로는 문이 하나 있고 열고 들어가면 오늘 그 자신이 혼났던 장소인 창고가 있다.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매일 같이하는 말이지만, 그는 오늘 더욱 진심을 담았다. 돈 세느라 정신이 없는 시먼은 그저 고개만 끄덕여줄 뿐이었다. 끝났다는 생각에 발레르는 벽에 기대어 놨던 의자를 빼 앉았다.


과일도 속이 중요한 걸 보면 어쩌면 아저씨는 이 직업과 잘 어울린다고 발레르는 생각했다. 작지만 고된 일의 반복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은 처음 보는 사람이 쉽게 무시할 만한 그런 게 아니었다. 살도 많이 타 구릿빛인데 그는 아예 작정하고 외모를 피부에 맞추려는 듯 수염을 길러 정돈하고 머리도 올려쳐 시원한 인상을 풍겨주었다.


의자 끄는 소리에 시먼은 눈동자만 굴려 발레르를 슬쩍 쳐다보았다.


“왜 안가고.”


발레르는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신발을 바라보며 쓰읍 하는 소리를 냈다.


“그냥요···.”


또다시 얼굴에 그늘이 지자 시먼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 센 돈을 탁자 위에 얹어놓았다.


“들어가라. 갈 때 저거 가져가고.”


그 말을 끝으로 시먼은 무슨 이유인지 괜히 다 센 돈을 다시 또 세기 시작했다. 발레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구에 놓여있는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게감이 꽤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과일들이 들어 있었다. 신선도가 높은 걸 보아하니 그가 꽤나 신경 써서 담아준 게 분명했다.


“잘 먹을게요.”


그는 여전히 시선을 옮기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너 먹으라고 준 거 아니야. 아주머니 드리는 거야.”


순간 발레르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몸을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내일 뵐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라.”


마을에서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한 집이 보인다. 처음엔 흰색이었겠지만, 빛바래지고 세월의 무게에 주름이 져 약간은 누렇게 되어버린 벽과 지붕의 탁해진 검은색은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을 주었다.


마당에 깔린 잔디들도 최근에 관리를 하지 않아서인지 제법 자라 불규칙하게 솟아나 있었다. 마당 안쪽에는 나무로 된 작은 의자와 탁자가 하나 놓여있을 뿐이었다.


발레르는 집 앞에 서 있기 뭐해 의자에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그는 삐걱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으며 어머니 생각을 했다. 햇빛이 좋을 때면 나와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으시곤 했다. 늘 다정다감하시고 그 자신에게 화 한번, 매 한번 든 적이 없으신 분이었다.


무뚝뚝한 자신과는 다르게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해 주시며 보듬어 주셨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머니에게 남은 건 그리움과 외로움이었다. 어쩌면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배웅해주고는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외로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그랬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우울증이라는 건 하루 만에 오는 게 아니니까.


“...”


하늘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은 신의 조울증이라 했던가. 한없이 기쁘다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지금은 아마 추락에 속도가 붙어갈 때일 것이다.


며칠 전부터 그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하루하루 빠르게 늙어가고 병세가 심해지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게 그는 두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찾아온 의원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 그의 어머니는 책장의 마지막 책을 꽂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는 매일 밤 집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게 신호가 될까 봐. 그렇게 자신을 떠나 홀로 남겨질까 봐. 어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켜보기엔 그는 아직 어린 열여덟 살이었다.


“하···.”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대해 무엇이건 아무 생각도 하기가 그는 싫었다. 자꾸 혼자인 채로 상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지푸라기를 잡아보기엔 겉으로도 상태가 또렷이 보이는 어머니였다.


톡. 굵은 빗방울 하나가 탁자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 되어 곧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내렸다. 발레르는 옷과 봉투가 젖지 않게 재빨리 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열쇠를 꽂고 돌리며 그는 차라리 자신이 조울증인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조증일 때는 즐거울 테니까.


“저 왔어요.”


“...”


문을 걸어 잠그며 들어오는 그에게 환영의 인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발레르는 시먼에게 받은 과일을 식탁에 올려놓은 채 옷을 갈아입었다. 그가 막 샤워를 하러 가려는 순간 안쪽에서 연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왔니?”


굳게 닫힌 방 너머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발레르는 곧장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어머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그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멀쩡히 깨어 있었다.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눈빛은 빛이 났다.


“할 얘기가 있으니 여기 앉아 보렴.”


작은 방 안을 밝히고 있는 초는 여느 때와 다르게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좁은 이 공간이 넓게도 느껴지는 건 아마도 책상과 의자뿐이어서 아니라 언제부턴가 작아지기 시작한 어머니 때문이리라. 창문을 열지 않았지만 촛불은 계속 흔들렸다. 무엇이 그리 불안해서 떠는 걸까.


“아들 이제 졸업 얼마 안 남았지? 며칠 뒤라고 했었더라.”


그가 몇 번이고 말해줬던 대답이었다. 제정신을 가지고 있기도 어려운 상태라 그는 이해해야 했지만, 인형극을 하는 듯한 이 기분은 그로서는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다음 주면 끝이에요.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허공을 응시하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는 자신에 대한 괴리감이 얼핏 보여졌다.


“그래 그랬지. 그랬었지···.”


허공을 만지던 눈동자는 돌고 돌아 흔들리지만 발레르에게 옮겨졌다.


“아들 여기서 계속 살기 싫지?”


발레르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벌써 정착해서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시는 건지, 꿈도 없이 젊음을 보내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지 그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눈을 내려 시선을 회피한 채로 발레르가 가만히 있자 그의 어머니는 이불 속에 있던 손을 꺼내 그의 손 위에 얹어놓았다.


“끝나는 대로 여길 떠나렴. 어디로 가야 하는 걱정은···.”


참지 못한 발레르는 말을 자르며 눈썹을 찌푸린 채로 역정을 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세요!”


어머니의 약한 모습에 그는 울컥 무언가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발레르는 어머니가 미웠다. 아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미웠다. 그에겐 어머니가 필요했다. 다른 게 아니라 발레르에겐 그저 어머니가 필요할 뿐이다.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착하고 여리신 분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약한 소리를 하신 적은 자신의 기억으로는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주면 지켜줬다고 생각했다. 발레르는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불안했다. 마치 갑자기라도 떠나버릴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이 두려웠다.


“죄송해요. 어머니. 그런데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아셨죠? 오늘은 그만 주무세요.”


옅은 미소만 짓고 있는 어머니를 보던 그는 슬슬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들, 한 번만 안아보자.”


움찔하며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오늘 평소와 너무 다르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쓰러움이 몰려와 그는 부드럽게 어머니를 꽉 안아주었다. 발레르는 순간 어머니에게서 어색함을 발견했지만, 그 생각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기도 전에 금세 잠식되었다.


“사랑해, 발레르.”


작디작은 물기 어린 진심의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


별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발레르는 들려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 정말 정신없고 피곤했던 날이었지만, 오히려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멀쩡했다. 어머니 방을 나온 직후부터 가슴이 답답한 게 아직까지 가시지 않아 그는 불안했고 거기에 오지 않는 잠이 더해져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


그는 눈을 뜨며 기억이 잘려진 느낌을 받았다. 언제 잠들었을까. 한 시간? 아직도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불편한 찌뿌둥함에 거실로 나온 그는 물 한잔을 따라 마셨다. 탁, 하고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적막과 함께 그의 정신을 조금 깨워주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발레르는 잠시 그 자세 그대로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했다. 리비오··· 이제 다음 주만 지나면 그 녀석과의 악연도 곧 끝이 나리라. 자신을 이 마을 또래들에게서 유령 취급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자 자신의 라이벌.


학교 안에서 시작된 왕따는 그 특성상 유행처럼 빠르게 퍼져나가고 흔들림 없이 굳건해져 밖에서조차 이어지게 돼 있다. 그리고 그건 발레르 그가 이 마을에 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였고 계속 살아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일이다.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마음 같아서는 졸업 후 떠나버리고 싶지만, 어머니가 불편해하실 것이고, 중요한 건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더러운 수레바퀴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로서는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


“어머니 주무세요?”


발레르는 방문 앞에서 쟁반을 든 채 노크를 하고 있었다. 쇠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그는 아침마다 먹기 편한 음식을 만들어 방 안으로 가져다 드렸었다. 어느 날은 깨어 계시기도 하셨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기에 발레르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혹여 깰까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날씨와는 다르게 한기가 느껴졌다. 그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어머니는 이불을 덮고 계셨다. 발레르는 머리맡에 쟁반을 살포시 내려놓고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조용했다. 뭔가 이상함이 느껴질 만큼 너무 조용했다. 그는 약간의 초조한 마음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어머니의 코 밑에 가져다 대었다.


“···.”


삼 초가 지나고 오 초, 십 초가 지났지만, 그의 손가락에는 생명의 느낌이 닿질 않았다.


“어머니...?”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받으며 그는 어머니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일어나 보세요... 어머니.”


속이 텅 비어버린 인형마냥 어머니는 축 늘어진 채 발레르의 손을 따라 흔들렸다. 그는 이제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마땅히 들려야 할 소리가,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다. 메어버린 목으로 발레르는 부질없이 계속 애타게 어머니를 불러대었다.


“제발··· 어머니··· 제발...”


발레르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찢어질 것처럼 너무 아팠고, 숨이 들이쉬기만 될 뿐 내쉬어지지 않아 숨쉬기가 되지 않았다. 얼굴에 눈물을 적신 채로 그는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들어 안았다. 어떠한 미동도, 표정도, 말도, 체온도 그에게 느껴지지도, 들려오지도 않았다. 이대로··· 정말 이대로 작별인사 없이 헤어져야 하는 걸까. 어머니가 미웠다.


“저도··· 사랑해요. 어머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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