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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엑시타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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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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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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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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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4화.

DUMMY

빛은 작디작은 창문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것 외엔 없었다. 새어 나오는 빛 사이로는 많은 먼지들이 떠다녔고 그것에 증명하듯 다락방 전체는 먼지로 가득했다.


발레르는 오래 걸리지 않고 쉽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다락방에 잡동사니가 많은 편이 아니기도 했고, 상자 자체의 크기가 꽤 독특하게 크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의아했다. 보통 상자와 다르게 가로로 길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뚜껑에 있는 먼지를 조금 털어보았다. 먼지의 두께만큼이나 상자 또한 오래되어 보였고 빛이 없어 그런지 색은 더욱 짙은 검은색으로 보였다. 모서리 부분마다 쇠로 둥글게 덧 감싸져 있는 것은 고급스런 느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정면에는 자물쇠가 채워지게 만들었지만,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채로 휑하니 비워져 있다. 발레르는 양손으로 뚜껑을 열어젖혔다.


“···.”


검이었다. 손잡이가 길며 검신은 일 미터를 조금 넘어 보였다. 날 밑은 평범한 듯 가로로 뻗어있었지만, 그곳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핸드 앤 어 하프 소드. 통념적으로 바스타드 소드라 불리는 검이다. 베기와 찌르기 둘 다 적당하며 한 손으로도, 두 손으로도 사용이 가능해 바스타드, 즉 잡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붙여졌다.


검을 꺼낸 그는 조금 묻어있는 먼지들을 대충 입으로 불어 날린 뒤 칼집에서 검을 꺼내었다.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날은 부식되지도 상해있지도 않은 채로 새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화감을 주는 게 범상치 않았고 그는 느껴졌다.


아직 어린 그도 충분히 들 수 있을 만큼 무게가 가벼워 진검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머니는 어디서 이런 걸 구하셨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이것을···.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타래가 더 꼬여지듯 어머니의 의도는 더 읽기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쩐지 어머니와 멀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차출식당일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여름 특유의 뜨거운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구름으로 가려져 전체적으로 선선한 날씨였다.


일반적인 곳과 다르게 대련이 펼쳐지는 곳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뒷마당에서 하기에는 널찍했지만, 가문의 사자들을 흙바닥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 기능을 잃은 수도원을 그 용도로 쓰고 있었다. 예배당 안의 뒷자리에는 사자들이 앉고 설교를 하기 위해 존재했던 자리는 조금의 손을 봐 학생들의 무대로 탈바꿈되었다.


자리는 아직 텅텅 비어있었지만, 학생들은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대체적으로 몸이 굳어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어했다.


며칠 전부터 손에 익히기 위해 잡았던 목검을 가볍게 휘두르기도 하며 긴장된 몸을 푸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학생까지 모든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놀드랑 바실은 나갈 준비하고 다음 순서는 누구냐··· 그래, 너희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교수는 마련해 놓은 대기실에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학예회라고 착각할만한 풍경이다. 교수를 포함한 아이들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도 기다리지 않기도 했다. 그중에서 여유를 부리는 건 리비오 뿐이었다. 그는 구석에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군.”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댔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순간 그는 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발레르가 멍하니 앉아 무언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그는 빨리 자신의 차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망할 놈의 콧대를 이번에야말로 꺾어줄 걸 생각 하니 리비오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구축해 높은 이 자리를 굴러 들어온 별거 아닌 놈이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맞먹으려 하는 게 그는 늘 아니꼬웠고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늘 최고여야 했다. 그게 누구든 아무도 자신의 위치에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고 그래선 안 되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건드린 사람은 좋은 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제 저놈도 자신에게 덤볐던 애들처럼 되리라.


마지막 경고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승부를 냈을 텐데···. 뿌득, 이를 갈며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레르와 주먹다짐을 하던 때 짓밟아 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아직까지도 그에게는 자존심에 상처가 남아 아물어지지 않은 채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는 꼴을 이제 안 봐도 되는 것이다.


발레르는 약간 지루해하고 있었다. 이 대련 시스템에도 나름대로 체계가 있는 게 나가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실력이나 기대치 그런 것을 계산해 하위권에 있는 아이들부터 먼저 나가다 마지막에는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내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사실 정해진 그런 것이 아니지만 분위기로서나 집중 면에서 그 방식이 효과가 좋았고 인재들이 묻혀지는 경우가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나간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적어지는 것이 심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초창기 때는 이 일 때문에 말이 많아 나라에서는 온통 이 얘기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차별은 거기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학교 자체의 명성이었다. 유명한 가문이나 유망한 아이들이 많이 나온 학교는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집중해서 관찰을 하고 지금 발레르가 있는 곳처럼 인지도도 없고 위치상으로도 좋지 않은 곳은 사실상 아이들을 뽑기 위해 오기보다는 ‘가문 선거‘를 위해 형식적으로 오는 것 그뿐이었다.


발레르는 좌석이 있는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벌써 중반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한편으로 이해했다. 그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수도 쪽이나 그 근방 아이들과는 갭 차이가 크면 컸지 절대 작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교수의 자질을 떠나 재정 쪽이나 지원이 열악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발레르는 문 앞에 서 있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초연함이 보이기도 했고 포기한 자의 그것이 보이기도 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닌 채 교수는 굳게 다문 입으로 그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교수는 고개를 돌려 발레르를 바라보았다.


“준비해라. 곧 너희 차례다.”


교수는 시선을 떼고 리비오를 찾아 눈짓을 보냈다. 여유롭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발레르는 아까도 분명 풀었지만, 손목이며 발목 등 관절을 또다시 돌려주며 근육을 푼다기보다는 긴장과도 같은 흥분을 풀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듯 그들은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이제 곧 이 식도 끝이 나리라. 그와 함께 이곳에서의 생활과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후련했지만 답답했다. 그 응어리짐은 몇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으리라.


“여기 서서 기다려라.”


손짓으로 교수는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교수님. 지금까지 몇 명이나 뽑혔나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교수였지만,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어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네 명이구나.”


“생각보다 꽤 많네요?”


학생 수가 서른 명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수였다.


“그래. 물론 이름 있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뽑혔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지.”


끝이 났는지 교수는 그들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며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련의 순서가 적힌 종이를 전부 나눠주지만, 간혹 어디쯤인지 놓치는 경우가 허다해 마지막 때는 총괄하는 담당자가 같이 나오는 것으로 신호를 준다.


대련장에 우뚝 서서 보니 정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관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와야만 느낄 수 있는 그 갑갑한 기분이 둘 다에게 조여져 왔다.


옆에는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심판 자격으로 부교수가 서 있었다. 이미 몇 번의 저지를 했었던 건지 그의 목검에는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다.


사람들은 교수를 발견하고 조금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천천히 둘러본 교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출구 앞으로 걸어가 나가지는 않은 채 팔짱을 낀 상태로 섰다.


“준비해라.”


발레르는 양쪽에 선이 그어져 있는 걸 보고는 자신에게 가까운 곳으로 가 자세를 취했다.


“...”


둘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았다. 발레르의 조금씩 떨리던 심장은 이제는 대놓고 펄쩍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다시는 없을 정당한 복수의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 셈이었다. 그는 이미 교수의 조언이나 가문에게 선택받는 일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뭉개버리는 것. 철저히 짓밟아 버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가능하면 깊은 상처를 입혔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소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오히려 귀가 먹먹해지는데 지금 발레르는 현재 그러한 상태였다. 그래서 스스로의 뛰는 심박 수가 자신의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착각이 들었고 그로 인해 이미 빨리 뛰는 심장은 더 거세게 뛰었다.


선공을 치냐 마냐. 그와 겨루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던 발레르지만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직접 나눠보진 않았지만 매일 지켜봐 서로 잘 알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한다면 꽤 지루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발레르는 생각했다.


몇 번이고 봐왔던 기분 나쁜 예의 그 미소를 발레르는 리비오를 향해 지어줬다.


“···.”


리비오는 화를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준비.”


리비오는 검을 꽉 쥐며 발레르를 봤고, 그가 검을 느슨하게 잡으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손잡이가 부서져라 힘을 주었다.


“시작.”


말이 나오자마자 리비오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흥분된 상태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으며 빈틈을 만들지 않은 동작이었다. 올려치며 튕겨낸 발레르는 그대로 뒤로 살짝 당겨 목을 겨냥하며 내질렀다. 하지만 리비오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사선으로 뒤로 빠지며 아슬하게 피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수없이 많은 합을 나눴다. 1, 2 위를 다툰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그들은 서로 한 치도 밀림 없이 대등하게 검을 맞대었다. 옷을 스치며 찢어지고 팔에 덧댄 보호구는 너덜너덜해져 갔다. 이건 대련을 넘어선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진검이었다면 벌써 피가 바닥을 적시고도 남을 혈투였다.


땀에 의해 머리칼이 달라붙고 긴장감과 짧은 시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대 체력이 많이 소비돼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감정이 이성보다 점점 커져갔다.


그동안의 수모와 치욕은 발레르의 검에 살기를 띄우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삼분의 시간 내에 많은 걸 보여준다는 생각은 애초에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남아있는 건 비록 자신이 악마가 될지라도 자신의 앞에 있는 악마를 자신의 손으로 지옥으로 보내는 것뿐이었다.


상대가 괴물이라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허나 그것을 이기려 한다면 자신이 괴물보다 더 해야 하길 자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발레르는 기세가 꺾이길 바라며 있는 힘껏 대련용 검을 내려쳤다.


파악,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목검은 반이 부서져 나갔다. 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할 의미는 없어진 셈이었다.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피우며 리비오는 몸을 움찔거렸다.


발레르는 온몸을 땀으로 적신 채 눈빛만은 지친 몸과 다르게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리비오 또한,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거친 숨을 쉬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발레르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부교수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불미스런 일을 만들지 않게 사전에 차단하며 손짓으로 정면을 바라보게 했다.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은 조금 오묘했다.


몸을 돌려 정면을 보자마자 발레르는 깜짝 놀랐다. 아니, 혼란스러울 만큼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자리에 앉아 오른손을 반쯤 든 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한 명을 빼고는 모두 그의 눈치를 보며 진즉에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짓거나 화를 삭이거나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들의 질투와 존경을 즐기는 듯 입가에는 가벼우며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이 취한 동작은 자신들이 데려가겠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더글라스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가문의 사자 또한 그 둘을 원하고 있었다.


“더글라스 가문에서는 누구를 데려가길 원하십니까?”


애초에 선택권의 순서는 그들 직급에 비례했다. 높은 가문들이 원할수록 타 가문들에게는 그만큼 기회가 적어진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눈도장을 찍게 만든 아이들은 크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다들 포기하기 마련이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들이 한 명만을 데려갈지 아닐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아무 말 없이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저희는···.”


어느새 교수는 그들 옆으로 와 일종의 중개 아닌 중개를 섰다. 리비오는 특유의 자신만만한 태도로 턱을 치켜든 채 자신이 여유롭다는 걸 과시하고 있었다. 발레르는 자신이 리비오를 찍어 누르지 못한 것이 충격이 꽤나 컸는지 지금 이 상황에 집중을 하고 있지 못했다.


“둘 다 원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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