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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깃 노트

엑스트라의 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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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LOT
작품등록일 :
2021.09.1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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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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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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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식 대회

DUMMY

일단 강적의 천재성을 기반한 악의 없는 질문에 마음과 손가락이 함께 날아가 버릴까 식칼을 내려놓았다.


“적아.”

“네?”


먼저 질문을 한 건 그쪽이면서, 내가 이름을 불러오자 놀란 듯이 되묻는다. 아무래도 나를 보기는 했지만 질문의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눈앞에 있으니까 본 것뿐이지.


“인간은 모두 가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너는, 영웅씩이나 되어서 사람보고 가치 있는 존재냐고 하냐. 덕분에 게임 세계까지 떠밀려와서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할 뻔했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아니면 뭔데?”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지’같은 눈으로 ‘네가 가치 같은 게 있냐?’고 물어봐 놓고. 아주 그냥 소크라테스 같은 소리를 해놓고 저렇게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 나도 아주 어처구니가 없다.


이보다 더 어이가 출타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다시 식칼을 들었다. 요리나 해야지.


일단 내가 만드는 것은 닭꼬치다. 염통꼬치만 만들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는 재료 준비를 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놈의 발열석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해서, 대충 강중약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운 불 조절이 없는 놈으로 골라 닭꼬치를 하기로 했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이곳을 일단 모호한 시기와 상관없이 서양이 베이스이기 때문에 고추장이나 간장도 없다. 분명 여관에서는 뭐든 찾는 족족 발견했는데 말이야. 고추장이나 간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튼, 소금 후추간이 전부이기 때문에 양념이 탈 염려를 하며 열심히 뒤집어야 하는 불상사도 없다는 의미로. 내가 할 게 별로 없다는 말도 된다.


대충 손질을 끝낸 닭을 꼬치에 끼워 넣고 있으려니, 강적이 짧은 한숨과 함께 진지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진짜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탐욕의 낱말이 당신을 삼키려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당신의 가치의 절댓값이 금은이나 보석은 물론 다른 평범한 사람들 혹은 저보다 월등하다는 거죠.”

“다른 사람은 안 먹고 나만 잡아가서? 나보다 사람들 지갑을 먼저 턴 것 같은데.”

“그건 부피 때문에요. 원령이라고 해도 자신이 삼킬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건 부피에 따라 결정되는데, 생명의 가치는 당연히 재물보다 높으나 그만큼 부피가 부담스럽기에 작고 귀한 것부터 삼키는 거죠. 효율적으로요.”

“보석 같은 작은 거 쓸어먹고 난 뒤에 인간으로 눈을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거지?”


강적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채강처럼 ‘다 아는 줄 알았더니 모르는군’ 하는 얼굴이다.


일단 생명이 재물보다 귀하다는 영웅의 정석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옳은 말인 것 같다. 원령 요람의 원령들에게 그런 디테일한 기준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그렇다면 그 자리에 있던 인간 중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는 건데.

그 자리에는 강적도 있었고. 그녀는 이 세계를 구할 영웅님이다. 심지어 본인도 자신이 이 세계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천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존심이 상한 듯하다.


그래서 나한테 가치가 어쩌구 하는 무례를 범했구나? 이 멘탈 약한 자식. 내가 너 플레이 할 때부터 알아봤다.


“뭐, 그런가 보네. 내가 몸값이 좀 되는 모양이야.”


그래도 뭐, 세상에 두 명씩이나 있는 영웅보다야 다른 세계에서 똑 떨어진 내가 더 귀할 수 있지. 무려 두 배다. 너희는 유이한 영웅이고 나는 유일한 이세계 사람이니까.


원령에게 꿀꺽 당할 뻔했다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일단 내가 귀한 몸이라고 하니 나쁘지는 않다. 솔직히 ‘눈 떠보니 이세계, 특전은 제로!?’ 상황인데 얼굴에 금칠이라도 해줘야 얼추 수지가 맞지.


강적은 내 당당한 발언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다시 심각한 얼굴로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는 강적을 내버려 두고 꼬치를 마저 꽂았다.


“아무리 무능해도 키퍼라는 건가······.”


방금 굉장한 중얼거림을 들은 것 같은데. 못 들은 척해야겠다.


손질해둔 닭의 살덩이를 전부 꼬치로 만드니 제법 양이 되었다. 아무래도 한 명이 먹기에는 조금 과한 양이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한국에서는 1인 1치킨이 국룰이고 파라파 백작은 더한 것도 수십 개를 먹을 텐데.


이야, 그러고 보니 닭도 손질하고 꼬치도 다 꽂는 동안 나는 아주 편안했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였다. 과학적으로 마력차를 아주 잘 몰고 있는 채강에게 칭찬이라도 해주려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강아, 너 드라이······.”


브 실력이 죽인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머리를 내미는 순간 바로 옆을 달리던 마력차가 단숨에 부서지는 걸 확인했다.


채강은 드라이브 실력뿐 아니라 남의 마력차도 죽여버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에피소드 5를 해방자로 플레이할 당시 먼저 달린다를 선택하면 이런 이벤트가 일어났던 것 같다. 폭주족처럼 야만적으로 운전하는 마력차들이 악당만의 텐션 같은 느낌으로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양쪽에서 중간에 낀 마력차를 괴롭히는.


말 그대로 ‘이벤트’같은 느낌이라서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해방자를 플레이하고 있는 나는 아주 간단하게 방향키+A 이후 B와 R2 A+B의 연계로······. 커맨드로만 기억해서 스킬 이름을 하나도 모르겠다. 뭐, 컨트롤 콘솔 게임이라는 게 다 그렇지.


그래도 방금 분리되는 건 진짜 멋있었다. 동력이 끊어지면서 마법의 빛이 비산하고. 그에 가죽옷의 스터드처럼 사방의 겉면에 제법 긴 창날을 빼곡히 박아둔 마력차가 와르르 무너져 나뒹구는데.


이야, 거의 마력차가 만들어진 모양새 그대로 합판이 분리되는 것은 마술보다 더 했다. 왜 판타지 소설이든 게임이든 마법사보다 검사 주인공이 더 많은지 뒤늦게 깨달았다. 해방자가 짱이다.


······생명에 지장이 있으면 실격인데, 그래도 막 빨리 달리진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괴, 괴물! 미쳤어! 어, 어떻게 마력차를 한칼에!”


바로 옆의 마력차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걸 구경한 너머의 참가자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그리고 험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래서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그쪽도 방금 그 창날에 마차 긁혀서 조각조각날 뻔한 주제에 이쪽에 삿대질이다. 이쪽은 방어운전을 했을 뿐이다 이거야.


“무슨 소리야! 지금 강이가 너 구해준 거거든? 아이고, 마력차 때깔 봐라. 그 창날에 죽죽 긁혀서 얼룩말이 형님 했을 텐데 아주 판판하고 맨들맨들한 피부를 유지시켜준 게 누군데! 어디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겨?!”


같이 삿대질을 해주자 얼굴에 혈색이 확 돌며 무어라 입을 벙긋거리려다, 갑자기 핏기가 싹 가신다. 그래도 제법 거리가 있는데도 아주 해쓱해진 저 참가자의 혈색과 질린 표정까지 잘 보이는 걸 보면 둘 다 그리 쌩쌩 달리는 건 아닌 듯싶다. 시선도 내가 아니라 운전석 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체를 더 쑥 빼내서 바라본 채강은 한 손을 동력에 올리고 한 손으로 칼을 꺼내 쥐어 들고 있었다. 저 칼로 묘기를 부린 게 분명했다.


그리고 방금 ‘너도 해체해줄까?’ 같은 느낌으로 슬쩍 검을 들어 보였다. 이것 봐, 얘가 영웅치고는 조금 멍청하고 과격하기는 해도 먼저 물어보고 행동하는 놈이라고!


보다. [해체] 스킬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스킬이 없더라도 칼질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나 보다. 그럼 강적도 초능력처럼 냉장고 문 열어 물가져오기나 침대에 누워서 불 끄기 같은 건 할 수 있으려나? 역시 포획자가 최곤데.


“35번이다! 35번을 막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두명이 아닌 상당한 무리다. 사람들이 마라톤 구경꾼처럼 안전선 밖에 모여서 경마에 월세라도 꼬라박은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있다.


“35번을 먼저 탈락 시켜!”

“35번을 못 막으면 미래는 없다!”


이건 뭐, 우리 마력차가 악당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잖아. 자세히 보니 진짜 마권처럼 길쭉한 종이 같은 걸 들고 펄럭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개인의 미래를 뒤흔들 것 같은 흉흉한 종잇조각이다.


“진짜 내기라도 했나.”

“몰랐나요?”

“엉?”

“어느 팀이 일등을 하는지는 흔한 내기 거리잖아요.”


아니 뭐, 축제이기도 하니 사사롭게 내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무슨 경마도 아니고 일단 표면상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는 건데 일등 내기를 하냐고.


파라파 백작이 엉큼한 마음만 먹는다면 승부 조작이야 아주 손쉽게 이루어지는 거 아닌지. 아무래도 이 헤스티카 사람들의 사고구조가 걱정이다. 진짜 몇 사람은 눈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데, 월세가 아니라 월급을 때려 넣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민간인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다니, 야만하기 그지없군요.”


강적이 저는 그런 적이 없는 것마냥 혀를 차며 비난했다.


그녀는 에피소드 4에서 밀밭을 죄다 태워버린 원령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가는 민간인들을 위해 도적단을 직접 약탈한다. 일단은 ‘악랄한 도적단 소탕’이라고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약탈이었다. 애초에 포획자는 원령을 포획하는 스페셜리스트, 치안대나 할 법한 그런 자질구레한 일은 그녀의 권외다.


하지만 이런 컨트롤류 게임은 다 그렇다. 일단 덤비는 적이 야만한 거고 주인공은 그저 신념이나 신의나 약자나 어쨌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대의의 싸움을 하는 것일 뿐이다.


해방자에 과몰입해 열심히 A와 B를 누르며 주변을 쓸어버렸던 나는 강적의 힐난을 뒤로한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채강을 응원했다.


“엇시!?”


갑자기 바나나 껍질이든 거북이 등껍질이든 던져버리는 레이싱 게임마냥 뒤를 달리던 마력차가 부우웅 속도를 올려 차체로 들이받을 기세로 다가온다.


놀라 반응하지 못했는데, 눈앞에 얇은 녹빛의 막이 생기며 창문을 덮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보려는 순간, 강적이 내 목덜미를 잡고 슬쩍 뒤로 잡아당겼다.


“위험해요.”

“어, 어어어.”


쾅!

소리와 함께 차체가 울린다.


얼른 몸을 뒤로 빼고 창문까지 닫았다. 동시에 강적의 마법이 사라지면서 연두색의 낱말들이 빛으로 떠올라 허공에 섞이듯 사라졌다.


공수표가 아니라, 정말 약속한 대로 날 지켜준 건가? 지금 조금 감동할 타이밍······


“어, 고마······워어어!?”


인 것 같은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급기야 쿵, 쿵 마력차가 울리며 휘청이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한쪽에서 계속 들이받으면 한쪽으로 기울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반대쪽에서도 쿵, 하면서 차체가 거칠게 울리며 기우뚱 넘어가던 차체가 돌아왔다.


“괜찮은 거야?!”

“이정도야 알아서 하겠죠.”


창을 살짝 열어 목소리를 높여 물었으나, 워낙 차체가 부딪치는 소리와 여기저기에서 떠드는 소리에 묻힌 것 같다.


쿵쿵거리던 소리가 줄어들더니, 창밖으로 무언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채강은 우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마력차를 반으로 쪼개버린 뒤, 우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오는 참가자를 한 손으로 잡아 바로 옆의 마력차에게 하나씩 선물해주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서 날아오는 마력차의 잔해나, 바로 옆 운전자의 품에 쏙 안긴 낯선 이를 보면 대충 그런 행동이 이루어졌음을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채강의 플레이어는 레이싱 게임과 무쌍류 컨트롤 게임의 고인물이 틀림없다. 이렇게 매끄러운 드리프트를 자랑하면서 적을 해치워버리다니.


슬그머니 강적을 흘겨봤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나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감시하는 건 분명한데 약간 사고뭉치 조카를 억지로 떠맡은 것 같은 피곤함과 귀찮음이 가득한 눈이다.


얘는 분명 커뮤니케이션 스킬 [눈으로 말해요]를 마스터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스킬은 없지만.


“······얌전히 요리나 할게.”

“좋은 생각이에요.”


안 그래도 슬슬 구워야 하나 싶기는 했다. 창 너머로 저 멀리 파라파 백작의 성이 보이니까.


페리는 제법 부유한 도시이기 때문에 제법 고층의 화려한 저택이 많지만, 성은 말 그대로 성이기에 아주 눈에 띈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 벌꿀색이라 그런 것같기도 하고.


초벌을 해두는 게 좋겠지. 하고 일단 발열석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강적은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그저 가볍게 깃펜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허공에 불을 피워냈다.


역시 판타지는 마법사가 최고다. 아무래도 강적이 내 옆에 있어 주는 것을 아주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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