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청록깃 노트

엑스트라의 천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멜LOT
작품등록일 :
2021.09.19 01:48
최근연재일 :
2021.11.03 14:29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43
추천수 :
15
글자수 :
89,511

작성
21.10.20 19:07
조회
33
추천
0
글자
12쪽

4. 미식 대회

DUMMY

페리의 중앙 광장.


미식대회의 개최를 위해 쳐둔 안전선 안으로 본선 진출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제까지만 해도 검은 입이 난리를 쳤던 광장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히려 원령이 잠깐 등장했다는 이슈가 있었기에 대회 시작 전 다른 가판이나 좌판을 쫓아내는 수고를 덜었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이야 미식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 덕에 아주 북새통이지만.


대회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총 70조의 1등을 차지한 사람들이 얼추 모였다.

드문드문 번호가 빠지긴 했지만, 대부분 2인 1조니 약 140명에 가까운 인원이다.


예선에는 대부분 혼자 참여했으나, 그건 전략적인 선택이다. 예선 조에서 우승한 사람만 본선 진출패를 받는 데다, 본선 진출자는 자신의 파트너 한 명을 데려올 수 있다는 아주 편리한 조건이 붙은 대회니, 나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에 채강과 강적이 힘을 합치기로 해놓고 따로따로 예선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본선패를 취득하면 둘을 같은 조에 밀어 넣을 생각이었는데.


“요리사는 진짜 필요 없다니까?”


어째서. 미식대회에 참여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던 내가.

마력차에 타고 있는 건지.


‘당신은 키퍼니 당연히 음식을 잘하겠죠?’로 시작된 강적의 목소리에, 채강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시발점이었다.

먹어본 것이라고는 염통 꼬치밖에 없으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지만, 강적이 ‘그럼 키퍼를 데리고 가면 되겠어요.’ 같은 양보성 발언으로 내가 채강의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양보니 뭐니가 아니라, 수상한 두 명을 한 팀에 몰아넣고 뒤에서 우리를 감시하며 따라오려는 수작이 분명했지만. 채강은 아무렴 상관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강적과 같은 팀으로 합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인 듯했다.


확실히 지금 내가 스킬창을 열 수 없다고 해도 생산직 스킬인 ‘요리’는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자신 있게 내어놓은 염통 꼬치가 맛있기도 했으니 적어도 염통 꼬치의 음식 레벨은 제법 될 것 같고.


그렇지만, 이 미식대회는 일반적인 미식대회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제 에피소드 5를 진행하는 쪼렙 해방자에게 세계인이 참여하는 미식 대회에서 일등을 할 정도의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겜딥포는 나름 스토리를 중시하는 쪽이라 우연찮게 엄청난 요리 실력자와 파트너가 된다는 개연성 말아먹은 이야기도 밀어 넣지 않았다.


당연히 일등을 하기 위한 다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절대 요리사 따위는 필요 없는데.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응?”

“그렇지 않다면 요리에는 일가견이 없는 제게 이런 의뢰가 들어왔을 리 없지 않습니까.”


채강이 갑자기 주인공의 통찰력을 여김없이 드러냈다.


“그럼 난 왜?”

“당신을 혼자 둘 순 없습니다.”


역시 너도 그게 이유였구나.


강이 덤덤하게 말하며 본선 진출과 함께 주최 측에서 빌려준 마력차를 점검한다.

35번이라는 숫자 표기가 되어있는 것 외에는 헤스티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마력차다.

평범한 사륜마차와 다름 없게 생겼는데 말 대신 마력차의 앞머리에 둥그런 수정구슬 형태의 동력이 달려있는 형식이다.


동력에 마력을 집어넣으면 바퀴와 이어진 동력이 빛을 내면서 움직이는데, 그 이펙트가 상당히 눈부시다.


밝기를 최저로 하고 봐도 순간 오백 럭스는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 무엇이든 마법을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잘하게나마 전부 시선을 강탈하게 하는 이펙트를 때려 박은 것이 원령요람의 특징이다. 예쁘지만 집중해서 살펴보면 눈이 빠르게 피로해진다.


나는 마차 내부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다가 그에게 발열석을 받았다. 요리는 여기 이 협소한 테이블에서 이루어진다. 끓이거나 굽는 등 불이 필요한 것은 합격패와 함께 보급받은 마법 발열석으로 진행된다. 다행히도 마차 뚜껑도 열리고 창도 넓어서 연기 걱정은 없다.


“이상은 없습니다.”


점검이라는 게 이게 끝인가 보다.

그는 바퀴에 바람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동력은 제대로 반응하는지, 보급받은 식재료와 요리도구가 제대로 있는지 정도만 체크하고서는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비해, 바로 옆의 사람들은 아주 번잡했다. 누군가는 마력차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합판 같은 걸 가져와 뚱땅거리고, 바로 옆의 34번은 바퀴에 수상한 장치 같은 걸 달고 있다.


자고로 이 미식 대회의 마력차 점검이라면 저렇게 해야 한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채강과 강적에게는 쓸모없는 짓이긴 하겠지만.


저 평범한 사람들은 이 ‘미식 대회’의 대회 방식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삐이이익.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트린 듯한 괴상한 고음의 기계 소리가 들렸다. 고막을 긁는 듯한 짜증 나는 소리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아, 누군가 목소리를 냈다. 머리 위에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느리게 울려 퍼진다.


어디 스피커 같은 거라도 있나. 물론 여기는 판타지 세계이기 때문에 스피커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머리 위에 있는 건 아직 날이 밝기에 켜지지 않은 조명들 뿐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대회 규칙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그 조명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성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는 백작님께 가장 맛있는 음식을 가장 먼저 가져올 것. 그 외, 다른 참가자의 생명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나머지는 아무렴 상관 없습니다. 백작님께서 만족하신 순간의 음식을 진상한 사람이 이 대회의 우승자로 결정됩니다.”


고작 백작에게 음식을 진상하는 것 뿐인 대회가 메인인 축제가 왜 세계인의 축제일까.

왜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면서 출입증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가장 먼저’ 가져올 것.

이 간단한 규칙에는 아주 지독한 맹점이 있다.


백작님께 진상되는 음식이 단 하나뿐이라면 그 음식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다.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음식을 얼마나 빨리 가져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놓을 요리를 전부 없애버리면 되니까.

그 치열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이 축제의 핵심이니까!


34번 참가자가 파트너에게 ‘비장의 무기를 가져왔으니 걱정 말라’며 가슴을 폈다. 확실히 비장의 무기처럼 보인다. 마력차의 타이어 양옆으로 꼬챙이 같은 창날을 달아뒀으니, 나란히 달리는 마력차의 타이어는 죄다 구멍이 나겠다.


도시 내부인데다 함께 달리는 마력차가 상당한 덕에 쌩쌩 움직이지는 못할 테니, 구멍이 뚫린다고 마력차에 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지도 않을 테고.


“저런 것도 허용이 되는 대회입니까.”

“뭐, 저 정도는 양반이지.”


너희가 나를 감시한다고 여관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원령요람에서 했던 것처럼 주변을 탐문수사 했으면 알 수 있었던 정보들인데 말이야.


“저런 조잡한 것에 의지한다니, 참으로 같잖군요.”


어째서인지 우리 마력차의 지붕 위에 걸터앉은 강적이 무감히 말했다. 정말 오늘 하늘이 맑다는 날씨 이야기처럼, 자신이 느끼는 바를 그대로 읊은 거였다. 헤카의 핏줄 자체가 범인과 다른 놈들인데, 심지어 얘들은 천재 먼치킨이라는 설정이니까.


강적의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모두를 적으로 돌릴 뻔했다.


마침 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시간이 되었군요. 그럼, 카운팅 후에 미식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출발!


레이싱처럼 출발 신호와 함께 미식대회가 시작되었다. 이곳저곳의 마차가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전략은 보통 세 개다. 먼저 달려서 골인 지점에서 요리하기. 가면서 요리하기. 요리하고 달리기. 원작에서는 어떤 것을 선택하든 같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채강이 선택한 것은 일단 달리기였다.


굳이 내가 달리자고 하지 않아도 그럴 줄 알았다. 채강은 요리를 하지 못하고, 요리 담당이라는 구실로 나를 마력차 내부에 태웠으니 본인이 할 일은 달리기밖에 없다.


그리고 나도, 지금 할만한 것이 요리밖에 없고.


“정말 요리를 할 줄 아나 보죠?”


마차의 위에 타고 있던 강적이 아주 유연한 몸짓으로 커다란 창으로 쏙 들어왔다. 채강의 과격한 운전 덕분에 밖의 풍경이 흐릿할 정도로 빠르게 뒤로 밀리고 있는데도 그녀는 평온했다. 물론 잠깐 거꾸로 몸을 뒤집어 쏙 들어온 그녀의 머리는 평온하지 않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강적이 화려한 금색의 단발을 슥슥 만져 정리하며 재차 물었다.


“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거든.”

“무슨 의미죠?”

“배달 음식은 회사에서 맨날 먹고 집에 오면 새벽인데 야식은 특히 더 비싸니까. 주말에는 월세와 건강을 위해서라도 직접 밥을 해 먹게 되어 있어.”


그녀는 알쏭달쏭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래, 네가 어떻게 알겠냐. 이건 한낱 평범한 지구인의 생활인 것을. 삶을 판타지로 살아온 강적에게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삶일 것이다.


“그건 키퍼가 되기 전의 일인가요?”

“어, 그렇지.”

“키퍼들은 어릴 때부터 키퍼의 교육을 받는 게 아닌가요?”


애석하게도 이 우물 안 개구리는 세습적인 삶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애초에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는 어른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 마을의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하게 포획자가 되어야만 하니까.


“아니지. 말했잖아. 갑자기 어느 날 인수인계도 없이 똑. 키퍼가 되어버렸다고.”

“어느 날 갑자기라는 말은 처음이지만. 그렇군요. 그럼 당신도 키퍼의 업무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건가요?”

“어. 그렇지.”

“······저는 다섯 번째인데요.”


잠깐 침묵을 지키다 내뱉은 강적의 목소리가 아주 싸늘하다. 아무래도 새싹이니 뭐니라고 떠들었던 내 말이 아주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반응하니까 오히려 더 신참이라고 놀리고 싶어진다.


내가 해방자와 포획자의 경험이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어서, 그냥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데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군요. 저와 해방자에게 동시에 의뢰서를 넘기는 대범함까지 갖추고 있고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정말 수상한 사람처럼 들리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나와 해방자를 불러 이 의미 없는 설득을 시작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당신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는 일 아닌가요? 아니면 당신 역시 키퍼로 위장하고 있는 다른 존재인가요? 우리의 세계의 규칙과 규율을 뒤흔들려는 악의 무리인 거죠.”

“비약이 너무 심한데.”

“하지만 당신은 너무 허약해요. 제대로 힘을 드러내지 않은 원령에게조차 쓸려갈 정도라니. 쓰고 버릴 패라면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기엔 또 너무도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녀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분명 채강과 강적은 말수가 적은 주인공이었다. 심지어 굳이 비율로 따져보면 강적보다야 채강이 더 감정을 표현하는 둥의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이 더 많은 편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녀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뱉으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손에 쥐고 있던 발열석을 내려놓고 요리 재료를 꺼냈다. 기본 지급품답게 도마와 칼, 냄비 등과 요리수도 준비되어 있다.


내가 재료를 다듬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탐욕의 낱말은 어째서 당신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걸까요? 분명 재물을 가장 먼저 취하고 있었어요. 원령의 탐욕이란 인간의 기준과 다르니,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집어삼키려고 했을 거에요. 그러니 금이나 은으로 된 화폐나 보석 등을 삼켰던 것이고······.”


그녀는 중얼거림을 관두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가치 있는 존재인가요?”


갑자기 날아온 철학적 물음에 손을 베일 뻔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엑스트라의 천칭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수정 공지(21.11.03) 21.11.03 22 0 1쪽
16 5. 선임 수호자 21.10.30 21 0 12쪽
15 5. 선임 수호자 21.10.29 23 0 13쪽
14 4. 미식 대회 21.10.24 28 0 16쪽
13 4. 미식 대회 21.10.22 28 0 12쪽
12 4. 미식 대회 21.10.22 31 0 13쪽
» 4. 미식 대회 21.10.20 34 0 12쪽
10 3. 적의 적은 21.10.18 28 0 12쪽
9 3. 적의 적은 21.10.16 35 0 12쪽
8 3. 적의 적은 21.10.14 30 1 12쪽
7 3. 적의 적은 21.10.13 40 1 12쪽
6 2. 싸우지만 말자. 21.10.09 39 1 12쪽
5 2. 싸우지만 말자. 21.10.05 46 1 13쪽
4 2. 싸우지만 말자. 21.10.03 44 2 11쪽
3 1. 일단 화해하자. 21.09.29 45 3 12쪽
2 1. 일단 화해하자. 21.09.26 65 2 15쪽
1 0. 여관 주인 21.09.19 85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