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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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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연재수 :
111 회
조회수 :
44,476
추천수 :
1,046
글자수 :
629,500

작성
24.05.13 06:30
조회
919
추천
15
글자
11쪽

제 2 장 어린 팽욱의 뛰어난 재치

DUMMY


때는 벌써 오시 말, 해가 중천에 떠올라 몹시도 무더운 유월 초순의 어느 날. 나무기둥으로 밑을 받치고 널빤지로 바닥을 촘촘히 연결해 묶은 수상가옥형태의 초가집 여러 채가 하나처럼 연결되어 서 있는 아름다운 정경의 시골집. 들마루에는 시래기 줄기가 새끼줄에 묶여 길게 닿은 머리처럼 주렁주렁 늘어져 있고 집 옆의 냇물은 맑고 투명한 물을 흘렸다.


냇가 좌우 둑 위에 서 있는 버드나무는 아름드리나무로 여인의 풀어헤친 머리칼처럼 길게 뻗은 황록색의 가지를 사방 오장에 걸쳐 늘어뜨리고 있었다.


탁! 탁! 탁!


댕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년이 박달나무 방망이로 하얗게 표백된 닥나무의 백피를 평평하고 넓적한 차돌 위에 올려놓고 몇 시간째 두드리고 있다.


쪼그려 앉아 작업하는 것이 힘들었던지 수시로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주무르고는 옆에서 염색작업에 여념이 없는 중년인을 곁눈질로 힐끗힐끗 보며 연신 한숨을 내 쉬었다.


그 모습에 소리 없이 피식 웃는 중년인.


"욱아! 고해 작업 (백피의 섬유를 나무방망이로 분리하는 작업으로 종이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공정)은 잘 되어 가니?"


아버지는 물이 담긴 구유에 닥풀을 넣고 짓이겨 점액을 만든 다음 점액만을 걸러 내고 점액을 닥섬유 지통(紙桶)에 넣어 혼합하는 종이뜨기를 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섬유가 엉키지 않도록 막대기로 잘 풀어 준 뒤 부유하는 섬유를 외발 (갈고리형태)로 건져 내는(수초:手秒) 것으로 모든 과정에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절대 안 되는 중요한 작업 중 하나였다.


지금 팽욱이 하는 작업 역시 종이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 공정 중 하나. 일정한 힘으로 백피를 골고루 두드려 주어야 하는 것으로 너무 세게 치거나 오래 두드리면 섬유질이 파괴되어 한지 특유의 접착력이 약해져 상품가치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주의 깊게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집안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 작업 중인 팽욱의 곁을 지나다 화들짝, 무얼 보고 놀랐는지 빽 소리쳤다.


"팽욱아! 너 아까 티 고르기 작업할 때 잡티 제대로 제거하고 고해 작업 (두드리기) 하는 거냐?"

"예? 제, 제대로 했는데···."

"제대로 한 게 이 모양이니? 여기 이 백피에 잡티 섞여 있는 것이 보이니 안보이니!"


옆에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작업하던 외발을 휑하니 던져 놓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니 이놈이!···. 이걸 이렇게 버려 놓으면 닥묻이 작업부터 흑피작업, 백피작업, 저불작업(삶는 공정)까지 다 다시 해야 하는데, 이일을 어찌 할 거냐! 엉? 아이쿠 두야!"


아버지 호통이 아니더라도 팽욱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작업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한심하기 이를 때 없는 일. 수백 번도 더 했던 작업 아닌가.


죄송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던 팽욱, 이럴 땐 줄행랑이 최고라는 생각에 작업하던 방망이를 냅다 팽개치고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나무계단을 뛰어 내려서는 싸리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눈 깜빡할 사이였다.


호통 치며 나무라던 아버지는 어이가 없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 있던 놈이 사람? 아니 자기 자식이었었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귀신같은 놈!'


"욱아! 점심은 먹어야지!"


뒤늦게 아들을 부르는 엄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긴 여운을 태우며 잔영을 만들었다.


"점심은 무슨 점심이야!"


이미 사라지고 없어 먼지만 흩날리는 텅 빈 골목길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차가운 한마디에 눈썹이 역 팔자로 휘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이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누, 누가 중요하다 그랬어!"

"그럼 빨리 붙잡아요!"


두 사람의 목소리만 초가집을 맴 돌뿐 말을 들어야할 대상은 뽀얀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와~아! 큰일 날 뻔했네!"


한참을 뛰었더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도저히 더 뛸 수가 없는 데다, 배에서는 '꼬르륵' 정지신호를 보내고 팔다리는 맥이 풀렸는지 흐물흐물 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행선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뛰어 왔더니 어느새 향내 저자거리까지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숨을 푹푹 쉬었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붉은 색 현판이 쾡 한 동공을 채웠다. 길에는 누가 버린 쓰레기인지 심한 악취가 풍겨 왔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간판의 이 집은 파지향에서 유일하게 하나있는 찻집으로 향내(鄕內)에서 그래도 먹물깨나 먹었다는 사람들과 돈푼깨나 있다는 사람들 그리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향내에서 제일 유명한 장소였다.


주인은 낙양에서 유명한 찻집을 경영하다 뜻한 바 있어 산 좋고 물 좋은 이 곳 파지향을 찾아 일부러 온 것이라고 남들이 믿거나 말거나 떠벌이고 다녔다.


그래도 시골 찻집치고는 제법 전국에서 이름 있다는 차는 거의 다 취급하고 있으니 진짠지 가짜진 잘 모르지만 그렇게 허풍만 떨어대는 것은 아닌 듯싶은데.


'씨 배고파 죽겠네. 먹고 나올 걸. 이렇게 된 거 형한테 한 끼 식사라도 얻어먹어야겠다. 먹다 남은 거라도 있을까···.'


나원평과는 지난번 사건이후 친해져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가까워졌다.


팽욱의 무술에 대한 욕심을 잘 아는 원평은 틈틈이 찾아오는 팽욱에게 무관에서 배웠던 권법과 장법의 기초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기초부터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 팽욱은 훈장 선생님에게 배운 실용학문과 기타학문을 대가(?)로 교류하며 서로 상부상조.


이젠 너무 친해져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궁금해 안달에 오금까지 저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낸 지 벌써 2년.


그동안 몇 번 정문으로 들어가다가 주인 황씨에게 들켜 혼 줄 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는 본래 재료도 중요하지만 집의 터에 따른 기와 주변산세, 그리고 왕래하는 사람의 질에 따라 그 맛이 신의 맛이냐 그냥 보통의 맛이냐 로 갈린다며 여기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해 터를 잡은 명당이므로 오로지 경계할 건 사람뿐. 우리같이 천한 것들이 정문으로 들어와서는 부정 탄다며 후문 주방으로만 들어와야 한다고 개 거품 물고 무릎까지 꿇도록 한 뒤 전달했던 절대금기 사항이었다.


주방의 작은 미닫이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백이 아저씨가 용정차를 청자도기문병에 넣어 끓이고 있었다.


이 집 무릉도원에서 최고로 치는 모든 것이 동원되어 차를 다리는 것을 보니 정말 귀하고 대단한 손님이 내왕 하신 모양이다.


지금 끓이고 있는 용정차는 발효를 하지 않는 청차(淸茶)의 대표적인 것으로 좋은 차의 요소인 색(色),향(香),미(味) 3요소를 모두 갖춘 최고급 품종으로 사용하는 물 또한 멀리 소림사가 있는 숭산 소실봉의 청계약수를 아침이슬이 내리는 새벽 시간에 맞춰 백배 돈숙 하고 떠온 물을 사용한다며 자랑했다.


믿거나 말거나.


"백씨 아저씨! 죄송하지만 원평형 좀 불러 주실 수 있어요?"


빠끔 내민 작은 얼굴을 확인한 백이란 중년인은 아이의 키에 맞춰 허리를 숙인 뒤 귀엣말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지금은 귀한 손님 접대로 부를 수가 없구나. 이따 미시 말에 다시 오지 않으련?"


그가 없다는 말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꼬마는 돌아서려다 갑자기 싱긋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아저씨! 혹시 점심식사 하시고 남은 것 조금 없어요?"

"밥? 글쎄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차(茶)에는 절대 손대선 안 된다 알겠지?"

"예, 아저씨! 감사합니다!"



백씨는 팽욱을 무척 귀여워 해주셨다.


오년 전 심한 가뭄이 닥쳐 항주에서 피난 나왔을 때 외아들과 함께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며 이곳 하남성에 접어들었는데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괴질에 아들이 덜컥 걸리며 3일도 못 버티고 목숨을 잃은 슬픈 기억에 배가 고파 찾아온 아이는 누구를 불문하고 반드시 식은 찬밥이라도 챙겨 먹여 주곤 하셨다.


특히 팽욱이가 오면 죽은 자기 아들과 똑같다며 친자식 이상으로 반겨 주셨다.


잠시 후 아저씨는 찬밥 밖에 없어 미안하다며 식은 보리밥에 살짝 데워 익힌 우육(牛肉:소고기)을 찬으로 챙겨 내오셨다.


식은 밥이지만 배가 고프니 꿀맛이다. 허겁지겁 씹지도 않고 입안에 우겨 넣었다.


하지만 배에선 그것으론 모자랐던지 꼬르륵, 더 달라 하소연하는데.


"주인장! 이거 무슨 냄새야! 내가 모처럼 비싼 차 마시며 다도를 즐기는데 어디서 이런 삼류식당에서나 만듦 직한 천한 고기냄새가 풍겨 오는 것이냔 말이야!"

"예에···. 냄새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막 다 먹고 만족감에 트림이 나오려는 순간, 귓속을 더럽히는 소음이 들리자 팽욱의 눈이 핑 돌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고기나 밥도 먹지 않고 고고하게 풀이나 물만 먹고사시나 보죠?"

"뭐야! 어떤 놈이냐 당장 나오지 못해!"

"제가 오라면 못 갈까 봐 그러세요!"


겁을 상실했는지 내실로 통하는 주방문을 벌컥 열어 제치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는 욱. 어떤 놈이 겁도 없이 말대꾸하며 달려드는지 확인하려던 삼십대 중반의 장년인은 보는 순간,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일어선 자세 그대로 입을 크게 벌린 채, 혀를 끌끌 차며 겨우 허리께에 닿을까 말까한 팽욱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연신 훑어 내렸다.


이를 마주보는 팽욱, 육척 장신의 큰 키에 곰보얼굴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겁도 없이 마주 노려봤다.


"아우~ 이 구리구리한 냄새 도대체··· 뭐야! 동이족 새끼 아냐!"

“동이족 새끼요? 아저씨는 그럼 한(豻:들개)족 아닌가요!”

"뭐라고! 이 꼬마 새끼! 너 지금 뭐라 했어! “


코를 틀어막으며 욕설을 퍼붓는 사내, 팽욱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차림새를 보고 비웃는 사람과 동이족, 김치 냄새난다며 인상 찌푸리는 사람이었다.


"들개 족이라 그랬어요! 왜요!"

“우아악!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런 개새끼!”


울화통이 치민 사내는 벼락같이 달려와 꼬마의 멱살을 잡아채더니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콰당!


“아이코 아야!”


몇 개의 탁자와 함께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핑핑 도는 정신.


어지러운 중에도 거대한 덩치가 씩씩거리며 달려드는 모습을 가까스로 확인한 그는 머리가 핑 돌았다.


'좋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젓가락을 발견하고 덥석 손에 쥐었다.


그리곤 벌써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찔렀다.


“으악!”


장년의 사내는 지독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다리를 본 그는 허벅지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발견하고 꼭지가 돌아 길길이 뛰었다.


“내 이 꼬마 새끼, 오늘 죽이지 못하면 성을 갈아 버리겠다.”



작가의말

힘찬 월요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9 푸르강0813
    작성일
    24.06.13 05:49
    No. 1

    부모가 자식이름을 부를때 이름만 부르지 성까지 포함해서 부르지는 않지요 욱아,욱아 이렇게 부르지 엄마가 아이이름을 성과 같이 팽욱아,팽욱아 부르지 않는다.홍길동 부모가 자식부를때 길동아,길동아 부르지 홍길동아 홍길동아 하고 부르지 않는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7.17 10:49
    No. 2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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