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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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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연재수 :
111 회
조회수 :
44,418
추천수 :
1,046
글자수 :
629,500

작성
24.05.09 13:52
조회
1,553
추천
19
글자
12쪽

1-2

DUMMY

* * *



"너희들은 무술을 배우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첫째 신체의 강건함, 둘째 건강의 증진, 셋째 강한 정신력과 바른 마음을 키우고 지키기 위함입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오후 한나절, 높이 삼장(1장 3m)에 폭이 칠장에 달하는 커다란 기와전각이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아래, 청무관(淸武館)이라 쓰인 붉은 편액이 방금 칠한 것 같은 붉은 빛을 선명히 드러냈다.


전각의 양옆으론 칠 척에 이르는 기와담장이 십 오장에 걸쳐 어깨에 훈장을 두른 듯 길게 펼쳐져 있고 끝에는 편액과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태극문양의 정문과 병장기를 꽂아 놓은 병가(兵架), 그리고 각양각색의 병장기들이 줄지어 늘어서 붉고 노란 수실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우~ 힘들어!”


담장 한쪽, 소나무를 버팀목 삼아 한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담장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하얀 옷에 긴 댕기 머리. 꼬마 팽욱이 다. 힘겹게 담장 기와에 올라선 그는 소나무를 은폐물 삼아 바싹 엎드려 자리 잡고는 연무장을 바라봤다.


“어? 왜 수련을 하지 않지?”


고개를 갸웃거린 그, 그의 말마따나 맨땅의 연무장에는 웃통을 벗어부친 십여 명의 소년들이 두 손을 앞으로 내민 기마자세(騎馬姿勢)로 꼼짝 않고 서 있는데, 오랜 시간 서 있었는지 고통스러운 표정들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하얀 무복의 검은 띠 청년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들을 노려봤다.


"상대와 대련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 했느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복창하는 소년들.


"하나! 상대의 힘에 순응하며 그 힘을 이용한다. 둘! 먼저 잡고 멈출 곳을 안다. 셋! 오만함을 버리고 낙담하여 굴복하지 않는다. 넷! 안전한 곳에 있다고 마음을 놓지 말고, 위험한 곳에 있다고 두려워 말라. 이상 네 가지입니다."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외침. 이로 미루어 소년들이 얼마나 반복해 외우고 또 외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 잘 아는 놈들이 정신을 어디 두고 대련했기에 정무문 놈들에게 일방적으로 지고 왔어!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그가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지도했던 십이 세 소년 반 아이들이 이웃 마을 정무문과의 정기 대련에서 팔 대 이로 크게 졌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었기에 권(拳), 장(掌)으로만 자유대련을 시켰는데 삼 년 만에 처음으로 하수라 여겼던 그들에게 두 명 빼고 모조리 지고 말았으니 창피하기도 열 받기도 해 이렇게 모아 놓고 얼차려(정신교육) 중이다.


“나원평! 혁린천! 둘 이리 나와!”


또래 아이보다 한 뼘은 큰 아이 둘이 성큼 앞으로 나왔다.


“너희 둘만 이번 대결에서 이겼다. 하지만 나머지 모두는 졌는데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원평! 네가 말을 해봐!"



지적받은 아이의 이름은 나원평(羅元萍), 동네 유일의 문화공간인 무릉도원이란 찻집(茶店)에서 점소이로 일하는 소년이다.


혈혈단신 고아의 몸으로 지난 십여 년 내 불어 닥친 흉년에 부모님은 산적들에게 비명횡사하고 가산은 땡전 한 푼 남지 않아 마을을 전전하며 구걸로 연명하며 살아오다 파지향에 10살 때부터 정착, 벌써 4년째 삶을 이어왔다.


무관내에서는 백호 반(白虎班:12~16세) 반장으로 나이는 14살로 어리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총명하고 무술 실력 또한 출중하였기 때문에 고아임에도 불구, 반장으로써 이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반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저나 린천은 운이 좋아 약한 상대를 만나 이길 수 있었던 듯합니다.“

“그럼, 너희들 역시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란 뜻이냐?”


질타하는 사범의 불같은 호통에 모두 움찔했다.


“짧은 소견이나마 제자가 생각한 패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투로(套路)에서 강권(剛拳)을 기본으로 외가권(外家拳:剛拳)과 장권(長拳:遠攻長打)을 집중 연마 한 우리에 비해 정무문 아이들은 유권(柔拳)을 기본으로 한 단타(短打)와 내가권(內家拳:柔拳)을 주로 익혀 서로 부딪치는 순간 물과 기름처럼 초식이 뒤엉켜 버렸고 접근 전을 기초로 한 변칙권법에 우리의 용권(龍拳) 호권(虎拳)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것이 패인인 것 같습니다."


소년은 아이들과의 위화감을 고려해 운이 좋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낮춘 뒤 사범의 질타를 유도하며 생각해 두었던 문제점에 대해 소신 있게 말했다.


지혜로운 소년이 아닐 수 없었다.


소년의 말에 음미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사범이 입을 열었다.


"극유연후극강(極柔軟後極强)이란 말이 있다. 즉, 한없이 부드러운 가운데 지극히 강한 힘을 끌어낸다는 이치다. 너희들이 진 것은 강(極强)함만을 추구, 부드러움(柔軟)을 배제하였기 때문에 삼절(三節), 그러니까 발과 다리(根節)와 허리(中節), 팔(初節)에 힘이 쏠리며 변칙적인 상대방의 유권에 당한 것이다. 따라서 너희들이 약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실전 위주 권법에 능동적으로 대치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말을 마친 뒤 잠시 입을 닫은 사범의 얼굴은 아까 주체치 못해 씩씩거리던 흥분에서 앙금이 가라앉듯 편한 모습으로 변했다.


비록 졌지만, 잘못 가르치지는 않았구나 하는 만족감을 느낀 듯했다.


”원래 권법의 기초는 찌르기. 때리기. 치기. 차기 네 동작을 기본으로 던지기 기법을 주체로 하는 솔각(角)과 관절 및 통각(痛覺)을 공격하는 금나(擒拏)로 분류할 수 있다. ···(중략)···.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정신교육 하는 것은 무인의 기본인 승부근성과 패기, 오기(傲氣)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나!“

”예, 사부님! 명심 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그러진 말투에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으나 무시무시한 정신교육과 육체단련을 또 받을까 두려워 악을 쓰며 복창하자 소리에 놀란 처마 끝 참새무리가 푸드득, 떼를 지어 날갯짓했다.


“아야!”


동시에 들린 비명, 모두의 시선이 소리를 향했다.


얌전히 숨어 보던 팽욱이 새들의 날갯짓에 놀라 중심을 잃고 담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동이(東夷)새끼! 또 저기서 도둑 강의 듣고 있네!"


한 아이가 외치자 나머지 아이들 역시 웅성웅성 한마디씩 욕을 해댔다.


그런데 욕을 퍼붓던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얄궂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웃는 듯 우는 듯 참느라 시뻘겋게 변해 갔다.


그러다 하나, 둘 벌을 받고 있으면서 무엇을 그리 못 참겠는지 입술까지 깨물고 피식거렸다.


이유를 살펴본즉 담장에 매달린 팽욱의 바지가 기와 끝에 걸려 풀렸는지 흘러내리면서 허연 엉덩이 속살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고 말았던 것.


거기에 버둥대며 흔들자 작은 고추까지 흔들흔들, 이 모습에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소년들은 고통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너! 어서 내려오지 못해!"

"무서워서 못 내려가요!"


칠척(2미터)이나 되는 담장 높이에 무서워 내려오지도 못하고 울먹이자 사범이 크게 호통쳤다.


"이놈아! 사내자식이 이정도 높이도 못 내려와, 꼬추를 떼라 이놈아! 딴 때는 개구멍으로 훔쳐보더니 오늘은 왜 담장 위까지 올라갈 생각을 했느냐?"

"개구멍으로 보니 조금밖에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올라간 거예요."

"이렇게 무서움 많이 타는 놈이 무슨 무술을 배우겠다고 쯧쯧!“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올라와 보니 너무 무서워서···."


사범의 손에 목덜미를 잡혀 끌려오던 아이의 작은 입은 두려움에 삐쭉삐쭉, 금방이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기세였다.


사범의 솥뚜껑만 한 손이 하늘로 번쩍 들리며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를 향하자 그렇지 않아도 무서움에 바들바들 떨던 아이는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 냈다.


"아아~앙!"

"이놈이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우네, 너 계속 울면 정말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때린다."


무서운 사범의 한마디에 세상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이는 뚝 울음을 그쳤다. 아이를 땅에 내려놓은 사범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 너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팽욱!"

"팽욱? 특이한 성(姓)이로구나. 너 무술배우고 싶으냐?"

"응!"

"그럼, 내일부터 배우련?"

"정말! 내일부터 배워도 되는···."


아이는 사범의 부드러운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이내 코맹맹이 소리로 대꾸했다.


배우고 싶으냐는 말에 표정이 밝아졌던 아이는 갑자기 말문을 닫고 시무룩한 표정이 되더니 맨땅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욱아! 서당에 가는 것도 훈장님이 봐주셔서 갈 수 있었는데 무술 도관까지 보내 달라 조르면 어찌하겠니!’


엄마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오는 듯싶어 고개를 크게 저었다.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구나!"

"아니야! 우리 집 엄청 부자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 시대는 오랜 흉년에 부정부패로 곳곳에서 도적이 창궐하던 시기. 따라서 하루 세끼 밥조차 잇기 어려운 상황에 이런 무술을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에 가까운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나 아이들은 지긋지긋한 농사나 피고용인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 번 돈을 모두 쏟아 무술을 배우려 노력했다.


표국의 표사나 쟁자수 또는 무림인이 되어 당당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무관도 수입이 있어야 운영되는 곳, 돈이 없다면 사범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욱, 한마디 했지만 그건 그냥 반사적으로 뱉어낸 말.


‘씨, 이거 팔아서 업신여김, 받지 말까···’


그는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맨 작은 헝겊 주머니를 연신 주물럭거리며 갈등했다.


그건 집안의 유일한 가장 값나가는 물건, 부모님이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그 물건이었다.


하지만 꼬마는 이내 체념했다.


사실 배우고 싶은 마음 굴뚝같아, 팔아 무관에 등록할까 고민하며 들고 나왔지만, 막상 팔려니 아버지와 부처님의 노한 얼굴이 떠올라 두려움에 접었다.


힘없이 돌아선 꼬마는 정문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갔다.


와글와글!


그의 뒤로 사범과 소년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한꺼번에 묻혀 들렸다.


“너희 놈들은 아이를 보고 배우는 점이 없느냐! 돈이 없지만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훔쳐 배우는 아이도 있는데.”


이때 한 아이가 씩씩거리며 나섰다.


“돈을 줬으면 제대로 가르쳐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저렇게 돈도 내지 않고 훔쳐보는 놈들은 그냥···.”


딱! 퍽!


흥분에 불쑥 나섰던 아이는 사범으로부터 버르장머리 없이 대든 대가를 온몸으로 톡톡히 치러야 했다.


'씨! 우리 집은 왜 돈이 없어? 배우고 싶은데······.'


쓰린 마음을 홀로 달래며 걷는 팽욱, 그의 귀에 뒤에서 벌어진 일이 들릴 리는 만무.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떼쓴다고 될 일은 아니었기에 투덜거리며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야!! 거기 서!”

"인마! 돈도 없는 놈이 뭘 배우겠다고 촐랑거려!"

"아우~ 이거 무슨 냄새냐!"

"우슈는 위대한 우리 한족이 창안한 것이니 너 같은 동이족이 배우면 안 돼! 알았어! 집에서 잘난 종이나 만들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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