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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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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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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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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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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500

작성
24.05.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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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1-1

DUMMY

"찬물에 담근 이유는 껍데기를 쉽게 벗기기 위함이지. 그건···."


훈장 선생님의 눈과 입을 뚫어지게 보던 아이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듯 싱긋 웃더니 앙증맞게 오물거렸다.


"껍데기가 잘 벗겨지는 이유는 달걀의 흰자위와 껍질 사이에 생기는 물 때문입니다!"

"호오, 그래 맞다! 달걀을 삶게 되면 달걀 내부에 포함된 수분이 열을 받아 팽창했다가 찬물에 담가 식히면 팽창됐던 수분이 어려운 말로 응결(凝結)하여 속껍질 막과 흰자위 사이에 수분이 맺혀 쉽게 껍데기를 깔 수 있게 되는 거지"

"와~! 제가 맞힌 거네요."


매를 칠 때 맺혔던 잔잔한 미소의 의미, 이제 알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명색이 한림원 학사를 꿈꾸던 식자(識者)를 이렇게 4년씩 주저앉혔던 이유를 말이다.


"스승님!"

"그래, 말해 보거라."


칭찬에 상기됐는지 사과처럼 발그레해진 아이의 얼굴. 귀여운 녀석. 스승의 투박한 손길이 얼굴에 와 닿자 꼬마는 헤벌쭉 웃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하렴."


주저하던 아이는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스승 앞에 펼쳐 보였다.


그것은 회색과 자주색의 명주 보자기와 둥근 은패였다.


이 물건들은 팽욱이 말을 하고 사람을 알아보기 전부터 신주 모시듯 장롱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것으로 절대 손대지 말라 하셨던 물건이다.



“욱아! 이 은패와 보자기는 네가 태어나고 세 살 되던 해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귀한 보물이다. 그때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이 패와 보자기는 네 나이 이십 넘었을 때 찾아오는 세 번의 인연을 연결해 줄 귀한 물건이라 하셨다. 아빠 엄마는 무식해 비밀을 풀어줄 수 없다. 다만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부단히 수신제가,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게 되면 자연히 풀린다고 말씀하셨다.”

“에~ 그럼 아빠 그 나이 전에 풀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 이십 이전에 이것을 풀게 되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하셨어. 그러니 넌 풀어보려는 모험, 절대 해서는 안 되며 몸에 지녀서도 안 된다. 하지만··· 후~ 중요한 건 네 나이 이십이 넘어도 이걸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큰 위험에 직면한다 했으니···”

“위험? 그, 그럼 죽는다는 거야?”

“그건 애비도 모르겠다만 다만 너는 이것을 풀기 위해서라도 죽어라, 공부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나이는 뭐고 위험은 뭐야! 그리고 어떻게 하늘에서 이런 것이 내려와! 순 거짓말!”

“떼끼 이놈! 어디 어른 말에 토를 달아! 물론 하늘은 아니다만, 파천에서 얻은 것이니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해석도 참! 공부하게 하려고 별 꼼수를 다 부리시네···. 우리 살림에 이런 물건 어떻게 얻었어요!”

“뭐? 네 이놈! 그건 몰라도 된다!”



아버지께 누차 물었지만, 더 이상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글을 배운 이후 팽욱은 들끓는 호기심에 아빠, 엄마 몰래 물건을 꺼내 비밀을 풀어보겠다며 끙끙 고민했지만 결국 풀지 못하고 선생님을 통해 푸는 것이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슬쩍 서당까지 갖고 왔다.


별건가 싶어 무심히 확인하던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예사 물건이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건성으로 넘긴 아이의 말을 다시 새기며 진평은 꼼꼼히 살폈다.


두 종류의 보자기. 보자기는 보기보다 무척 커서 넓이가 사방 삼척(1척은 30cm 내외)에 달했다.


이불보로 쓴다 해도 무방할 큰 크기. 먼저 펼쳐본 것은 회색 보자기였다.


언뜻 봤을 때 표식이 없어 보였으나 귀퉁이를 보니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작은 자구가 눈에 띄었다.


動(동)!


자구는 동이란 자구로 선명한 빨간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번에는 자주색 보자기. 같은 크기의 이 보자기에도 앞서 봤던 회색 보자기처럼 작은 한자 자구하나가 쓰여 있었다.


綠(녹)!


푸를 녹이란 청색 글자였다.


두 개의 보자기는 단 한자의 자구만 보일 뿐 일체의 다른 표식은 없었다.


두 개의 보자기를 유심히 살피던 진평은 천천히 시선을 다른 한쪽에 놓인 둥근 은패로 옮겼다.


찌릿하게 전달되는 차가운 금속 감촉, 마치 낯선 사람을 경계라도 하는 듯 보였다.


은패의 차가운 감촉을 음미하듯 손에서 굴리던 그는 천천히 패에 각인된 내용에 시선을 집중했다.


패의 전면, 상측에 천(天)이라는 문자와 중앙에 정문 각주를 상징하는 그림이 하측에는 소(少)라는 문자가 양각된 단순한 모양이었다.


후면에는 철(鐵)이란 글자와 알 수 없는 계곡 형상의 그림이 도드라지게 양각되어있었다.


한참 뚫어지게 보던 스승은 일각(15분)의 시간이 흐른 뒤 잡힐 듯 말 듯 뇌리를 스치는 그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다 아이 팽욱을 향해 물었다.


“이 각인 각주는 무슨 문파를 상징하는 것 같고 천이라는 글자는 문파의 이름을 이르는 것 같구나. 이 아래 소(少)는 추측이지만 지위를 뜻하는 같고 그런데···.”


이런 패는 그 시대에 통상 신분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통용되던 시기였기에 그는 객관적인 지식을 토대로 해석을 내놓았다.


“이런 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파나 각주문양은 일반적으로 너무 흔하기에 내 식견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느 곳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구나, 어찌 됐든 스승이 보기에 정교하게 조각된 문양이나 글자, 그리고 귀한 은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루어 꽤 전통 있는 가문의 작은 주인, 즉 소문주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뒷면의 그림은 지형을 나타낸 것 같은데, 철(鐵)자 계곡 형상이라···."


선비로 문파에 대해 지식이 짧았던 그는 유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답답했지만 스승은 은패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회색 보자기를 들여다보았다.


'동(動)'


유일하게 쓰여있는 붉은 글자.


"동이라 함은 움직인다는 뜻이고 동은 무거움(重)과 힘(力)이 합쳐 만들어진 글."


그는 들었다 놨다 흔들기도 냄새도 맡았다.


"흠, 냄새는 없는데 무게는 보통의 다른 보자기에 비해 약간 무게가 있어 보이는구나."


이번에는 상하좌우로 구겼다.


"이상하게 뻣뻣하구나, 아마도 보자기 안에 어떤···."


다시 한번 보자기를 유심히 살피는 진평.


"그래, 이 문자와 보자기는 연관이 있어 무거울 중···. 욱아!

뻣뻣하고 무게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스승이 보기에 표면에 어떤 중금속이 발라져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이 드는구나."


오랜 비밀이 풀릴까, 팽욱은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 선생 곁에 바짝 다가섰다.


"스승님! 그럼 이 보자기가 중금속으로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죠, 그리고 이 문자 동(動)이 뜻하는 건요?"

"글쎄다, 그 정도 외에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구나. 아마도 네가 이 은패와 보자기를 함께 얻었다면 패에 새겨진 그림과 보자기가 상호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추측이 드는구나.”

“이 모든 물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요?”


그의 반문에 주름진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건 긍정의 의미,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긍정의 다른 표현이리라.


팽욱은 시원스레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답하긴 했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풀린 것 같아 마냥 기뻤다.


"헤헤! 스승님! 그럼 이 자주색 보자기는요?"


밉지 않은 시선으로 아이를 쳐다본 진평은 앞선 두 물건을 치우고 자주색 보자기를 펼쳐 들었다.


'녹(綠)'


초록빛 또는 푸른.


"이것도 아까 것과 마찬가지로 문자풀이를 해 보면 실(絲)에 나무를 새긴다는 뜻과 원래, 본디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글쎄다 이것도 풀어보면 푸른 어떤 것과 그것에 무엇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 듯 보이는구나, 그리고 녹이라 함은 다른 뜻으로 안정되고 편안하다는 의미도 있으니···."


보자기의 색이 자주색이라 함은 녹색의 반대개념. 이번엔 코를 바싹대고 냄새를 맡았다.


색깔은 자주색으로 매우 고운 빛깔이라 혹하는 마음에 맡았으나 역시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스승이 이리저리 만지고 흔들며 확인하는 것을 지켜보던 팽욱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스승님! 자주색은 봉선화 꽃잎을 물들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봉선화? 봉선화라 했느냐?"


뜬금없는 제자의 말에 진평 선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해 너는 보자기가 봉선화 꽃잎을 물들인 것이라 보느냐?”

“스승님, 잘 보십시오!”


아이는 말없이 보자기를 방구석에 갖다 댔다.


그러자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가 보자기가 놓이는 순간 구석으로 우르르 도망갔다.


순간 놀란 듯 크게 떠진 진평의 눈.


“옳거니! 그래 맞다! 자주색 빛깔이 봉선화 빛깔과 같고 벌레들이 물건을 피해 흩어지는 것을 보니 분명한 듯싶구나. 허허.”

“예! 예로부터 봉선화는 해충의 접근을 막아주는 꽃으로 무색무취이지만 빛깔은 자주색에 밝은 윤기를 내는 식물로 저의 집 화단에도 해충을 막기 위해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것을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것은 아까 보자기를 바닥에 펼쳐놓았을 때 벌레들이 피해가기에 괴이하다 여겨 곰곰이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허허, 기특한 녀석!”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스승의 얼굴엔 뿌듯함과 대견스럽다는 기쁨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노소의 티 없이 맑은 웃음이 한없이 정겨워 보였다.


“그래 거기까지 단서를 찾았으니 더 유추해 보자구나!”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빠진 두 노소(老少).


“흠, 내 생각이 틀렸는지 모르겠다만 대략 추측해보면 이 보자기는 자주색과 녹색의 상반된 상징이 하나의 단서가 될 것 같고 또 하나는 봉선화, 봉선화가 해결의 열쇠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스승님! 아까 말씀대로 무엇을 하는 행위가 포함되었다면 이 세 가지를 조합해 풀면 어떤 해답이 나오겠네요."

"그래 요놈아!"


앙증맞은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특하다는 듯 크게 미소 지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스승을 통해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된 아이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내 다가서는 또 다른 의문의 파도. 아이는 스승의 눈치를 보며 허리춤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그의 앞에 내놓았다.


“이건 또 뭐냐?”


검고 칙칙한 볼품없는 형상의 반척 길이의 짧은 단도, 칼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날이 서 있지 않은 데다 손잡이 역시 뭉툭했다.


언 듯 보면 마치 목검처럼 보였지만 묵직한 무게로 미루어 목검은 절대 아녔다.


“앞선 물건들을 꺼내다 그 밑바닥 판자 밑에서 찾아낸 건데 기름종이로 똘똘 말아 은밀한 깊은 곳에 넣은 것을 보면 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아닐까요?”

“녀석! 그런 귀한 물건이면 절대 손대면 안 되지! 난 보지 않았다. 얼른 다시 갖다 놓도록 하여라!”


칙칙한 색깔에 아무 문양 없는 물건이 께름칙했던 그는 손사래 치며 밀쳐 냈다.


무속에 사용되는 신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승의 날선 반응에 아이는 더 묻지 못하고 주섬주섬 챙겨 자신의 허리춤에 다시 넣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놓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라.”


스승의 눈치를 살피던 아이는 의혹을 풀었던 앞선 물건엔 큰 거부 없이 받아 주었던 사실을 상기하고 마저 질문을 이었다.


“아까 그 물건들 조금 더 물어봐도 될까요···."


끊임없이 터지는 꼬마의 질문에 지겨울 만도 하건만 진평은 마다치 않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함께 의혹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인석아! 너는 공짜로 이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냐?”

“스승님 역시, 은근히 이런 걸 즐기시는 것 아닌가요?”

“뭐라고! 이런 어린 녀석이! 감히 어른을 갖고 놀려···.”


두 사제(師弟)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하얗게 피웠다.


해는 기울어 붉은 저녁노을 속으로 발갛게 동화되어 물들어 가는 시간. 그러나 오늘의 이 두 노소의 대화, 그 작은 깨달음과 큰 거부가 향후 커다란 반향이 되어 돌아올 줄 그 누구도 몰랐다.


복잡하고 오묘한 운명의 열쇠가 되어서 말이다.


‘$*&@’


팽욱이 허리춤에 챙겨 넣기 전 살짝 비친 칼날 위 상형문자(?)다.


손톱 크기로 각인된 문자로 칙칙한 검은 색에 묻혀 두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이 물건은 대체 무엇이고 새겨진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작가의말

본격적인 이야기의 문제를 풀 세가지 물건과 후일 5천년 신화의 비밀을 풀 중요한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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