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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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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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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흔적(3)

DUMMY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아리에서 남동쪽 방향이다.

거리는 멀지 않다. 지하철 타고 30분 걸린다. 물론 지금은 서울에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지하철을 움직일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처음 가봤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그곳에서 고기를 먹었다.

소고기는 비싸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소고기를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축산물시장에 우리를 데려갔다.


즐거운 추억이다.

나는 그 날 적당히 먹었고, 동생은 많이 먹었고, 어머니는 고기를 거의 안 드시고 냉면으로 배를 채우셨다.

그래도 좋았다. 다들 웃었다. 나는 어머니가 고기를 거의 안 드신 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곳에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뒤에 강북구를 떠나 성동구 마장동으로 이사를 갔다.

나도 가야 한다.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마장동에서 어머니의 행적을 찾아낸다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

어디에 계신지.

살아 계신지.

나는 헬멧을 벗고 이마에 붙은 전극을 떼어냈다.


“과연 빠르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박선주의 정확한 주소지는 메신저로 보내주십시오.”


나는 암시장에서 구입한 핸드폰을 왕 사장에게 들어 보였다.

왕 사장이 나를 만류했다.


“잠깐, 민철이. 어디에 가려고? 마장동?”

“예.”

“안돼. 위험해. 내가 방금 말했잖아. 그곳은 지옥이라니까.”

“지금은 모든 곳이 지옥입니다.”

“아니야. 마장동은 달라. 중증 감염자가 득실거려. 놈들은 식인종이야. 자네처럼 몸이 깨끗한 사람은 축산물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될 거라고.”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예전과 비교해서 판매 상품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상인들이 가축의 고기를 팔았다. 정형사가 소와 돼지를 통째로 가져와 가죽을 벗기고 뼈를 자르고 고기를 떼어냈다. 신선한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마장동에서 사람 고기를 판다. 가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에 전염병이 펴져서 항구가 봉쇄되었고, 사료를 수입하지 못하니 축산 농가가 망했다.

이제 고기는 사냥으로 얻어야 한다.

짐승을 사냥하거나, 사람을 사냥하거나.

마장동 축산업자는 사람 사냥을 택했다.

왕 사장이 말했다.


“중증 감염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 어차피 곧 죽거든. 운이 좋으면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겨서 안 죽을 수도 있지만, 남은 평생을 극도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해. 그러니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지.”


잃을 것이 없는 인간은 무슨 짓이든 저지른다. 마장동의 정형사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인간백정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장동이 유일한 단서입니다.”

“40년 전 주소지야. 박선주와 김민아가 아직도 그곳에 살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왕 사장은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쉬었다.


“없지.”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줄리아가 나서서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오빠. 내가 도와줄게.”


그녀가 카운터 아래로 손을 넣더니 어딘가를 꾹 눌렀다. 벽에 달린 장식장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비밀 작업장이 나타났다.

왕 사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비밀 공간을 외부인에게 들켜서 못마땅한 듯했다.

줄리아가 작업장으로 들어가 드론을 가지고 왔다.


“내가 만들었어. 정찰용 드론이야.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려 있고, 영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해. 어때? 죽이지?”


나는 테크놀로지와 친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문과였다. 다만 줄리아가 워낙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탓에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하다.”


줄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넓어. 오빠가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그 넓은 공간을 한 번에 살펴보기는 불가능해. 내가 드론을 날려서 지형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줄게.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그녀의 제안이 납득되었다.

만약 줄리아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조력은 나에게 커다란 이득이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으니 잠입하기가 쉬워진다.

내가 물었다.


“얼마를 내면 되지?”


줄리아가 표정을 확 구겼다.


“돈은 필요 없어. 내가 오빠를 도와주고 싶어서 돕는 거라고.”

“어째서?”

“그냥!”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고성이 날카로웠다.

물러나 있던 왕 사장이 흥정에 나섰다.


“민철이, 공짜로 서비스를 받는 게 정 불편하면 5백만 내. 싸다, 싸. 완전 거저야.”

“할아버지!”

“크흠···”


왕 사장이 줄리아의 성질을 못 이기고 헛기침과 함께 물러났다. 심부름센터의 권력 서열은 줄리아가 1위, 왕 사장이 그 아래였다.

나는 줄리아가 나를 왜 도우려는지 추리했다.

근거 없는 호의는 위험하다. 하지만 줄리아의 호의가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가 나를 해쳐서 무슨 이득을 얻는가?

오히려 가게의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따라서 줄리아는 내가 마장동에 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와야 이득이다. 가게의 영업이 잘 되어야 그녀의 생활도 윤택해질 것이다.

우리 셋은 이익공동체다.

나는 추측을 마쳤다. 줄리아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동기가 합리적이다.


“알았다. 네 도움을 받을게. 혹시 총도 있니?”

“당연하지!”


줄리아가 신을 내며 작업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


김민철이 떠난 뒤, 왕 사장이 손녀딸에게 물었다.


“줄리아, 네가 웬일로 가게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냐? 지금까지는 작업장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더니. 진작부터 이렇게 하지 그랬어?”


줄리아가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싫다는 뜻이었다.


“해결사는 전부 문신충 양아치잖아. 꼴도 보기 싫어.”

“그 문신충 양아치들이 우리한테 돈을 벌어준다.”

“그래도 싫어. 마음이 안 가는 걸 어떡해?”

“그러면 김민철한테는 마음이 가냐?”


줄리아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민철 오빠는 문신이 없잖아. 패션도 수수하고. 내 스타일이야.”


그녀가 손바닥으로 볼을 가렸다.


-


우리는 마장동 지역의 항공 사진을 띄워놓고 침투 경로를 논의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저층 상가 지대다. 시장 골목 양 옆으로 3층에서 5층 높이의 상가 건물이 오밀조밀 몰려 있고, 그들 사이사이에 연립주택과 빌라가 섞여 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은 드물다. 근처의 현대아파트 정도가 그나마 관측 지점으로 적당했다.


나는 청계천을 건너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 뒤 현대아파트 101동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파트는 버려진 건물이었다.

길 건너로 축산물시장이 내려다 보였다. 시장 북문과 서문이 오픈되어 있고, 나머지 출입구는 전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바리케이드는 철조망과 가시, 썩은 고기와 인간의 뼈로 장식되었다.

파리와 구더기, 썩는 냄새.

가시에 찔리면 세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소형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줄리아, 관측 지점에 도착했다. 내가 보여?”


무선 이어폰에서 줄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근처 승합차 안에서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응, 보여. 오빠 춥지?”

“목표 지점을 표시해 줘.”

“잠깐만.”


잠시 후 눈앞에 흰색 점선이 나타났다. 증강현실이었다. 점선은 축산물시장 북문으로 들어가 남쪽으로 이어진 뒤 좁은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여 다세대 주택에 다다랐다.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어머니와 동생이 살았다.

목표 지점.

진입 루트는 최단거리다.

나는 아파트 옥상에 쭈그려 앉아 어둠에 싸인 시장 골목을 주시했다. 골목길이 지붕으로 덮여 있어서 내부를 관측하기 어려웠다.

적이 있을까?

얼마나?

어디에?

내 안에 삽입된 생체 미니맵은 감지 가능 범위가 좁다. 적이 가까이 다가와야 인식이 가능하다.

바로 이럴 때 엔지니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줄리아가 드론에 달린 적외선 센서를 작동시켰다. 센서 영상이 나의 시신경에 전달된다. 골목길 지붕 아래에 붉은색 형태 수십 개가 나타났다.


사람이다.

인육 판매상.

그들은 주변에서 사람을 잡아와 고기로 가공한 뒤 다른 지역에 판매한다. 희생자가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을수록 고기의 등급이 올라간다.

길거리 부랑자는 B등급.

건강한 남자는 A등급.

젊은 여자가 A+등급.

어린이가 A++등급.

홍보 전단에 따르면 등급이 올라갈수록 맛이 좋다고 한다.


나는 그 고기를 맛보고 싶지 않았다.

줄리아가 말했다.


“확인된 적만 98명이야. 전부 중증 감염 상태에 고기 써는 칼로 무장했어. 나머지는 지하에 있나 봐.”


예상대로 경비가 삼엄했다. 이들에게 살인은 경제활동이자 취미다. 숫자가 많아서 정면돌파는 힘들다.

왕 사장이 걱정스레 말했다.


“민철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야. 제발 그만둬.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제가 찾는 사람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건 정말 쥐똥만큼··· 아휴, 모르겠다. 하여튼 다치지 마. 무사히 돌아와야 해!”


그가 나의 안전을 진심으로 염려했다.

내가 말했다.


“진입하겠습니다.”


나는 크로스보우에 특수 화살을 장전한 뒤 시장 골목 가장자리의 상가 건물을 노리고 발사했다. 화살이 꼬리에 등산용 밧줄을 매달고 날아갔다.


- 푸슉


화살이 상가 옥상에 박혔다. 화살촉이 사방으로 갈고리를 펼쳐 스스로를 콘크리트에 단단히 고정했다.

나는 밧줄의 반대쪽 끝을 아파트 옥상 난간에 노출된 철근 다발에 묶었다.

짚라인이 완성되었다.

내가 밧줄을 타고 활강했다.


- 스으으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줄리아가 활강 도구에 소음 저감 장치를 달아주었다. 과연 그녀는 왕 사장이 자랑한 대로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내가 상가 건물에 착지해 앞으로 굴렀다.


“음.”


무릎이 아팠다. 아파트 옥상에서 45도 각도로 활강했더니 운동에너지가 상당했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무릎 관절이 부서졌을 것이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멀쩡했다.

군의관에게 고마웠다.

나는 신발 바닥에 고무 덮개를 씌운 뒤 골목길 지붕 위로 이동했다.


증강현실이 목표 지점을 알려준다. 시야 상단에 남은 거리가 표시된다.

500미터.

400미터.

300미터.

붉은색으로 표시된 생체 반응이 지붕 아래로 지나간다. 그들은 내가 아케이드 위를 달리는지 모른다. 소리가 안 나기 때문이다.

절반은 나의 신체능력, 절반은 줄리아가 제작한 은신용 신발 덕분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끝낸 뒤 그녀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사주어야 될 듯했다.


저 앞에 사거리가 보인다. 사거리 지붕의 일부가 무너졌다. 아케이드 덮개가 약 10미터 정도 벌어져 있다. 그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고민이다.

무너진 지붕 사이를 뛰어서 건널 수 있지만 사거리 아래에 모인 적들에게 내 모습이 노출될 것이다.

지금은 못 건넌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사거리에 모인 마장동 도살자들이 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제사상에는 돼지머리 대신 사람 머리가 올라갔다.


“이번 달에도 장사 잘 되게 해주십시오.”


상인회 회장이 사람 콧구멍에 지폐를 꽂았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절을 했다.

지금이 지나갈 타이밍이다.

나는 10미터 거리를 뛰어넘어 건너편 지붕에 도달했다.

도살자들은 한참 뒤에 고개를 들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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