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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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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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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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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불치병(2)

DUMMY

이곳은 국방부의 비밀 연구소가 맞았다.

다만 건물 전체가 폐허로 변해서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의사, 간호사, 연구원, 군인까지 내가 잠들기 전에 마주친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에 인간으로 추정되는 뼈가 굴러다닌다.

두개골의 구멍.

부러진 팔.

폭행의 흔적.

살인이다.


사망자가 국방부 직원은 아니다. 복장이 다르다. 인간의 뼈를 넝마가 감싸고 있다. 아까 마주친 부랑자처럼 외부인이 이곳에 무언가를 훔치러 들어왔다가 공격을 받고 죽은 것이 분명하다.

문명의 파괴는 오래 전부터 벌어졌다.


나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다가 군의관 진료실 명패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수술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군의관.

이름은 정필승이다.

나는 진료실로 들어가 내부를 수색했다.

벽장.

바닥.

책상.


책상 서랍에서 일기장이 나왔다. 군의관은 손으로 일기를 써서 진료실 책상에 넣어두었다. 도둑놈들 입장에서 일기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덕분에 일기가 멀쩡히 보존되었다.

나는 군의관의 일기장을 펼쳤다.


[2033년 1월 20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신종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살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벌써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치명률 70퍼센트. 열 명 중에 일곱 명이 죽는다.

이것은 학살이다. 끔찍하다.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왜 이런 명백한 증거에도 침묵하는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2033년 2월 3일. 청와대가 우리 연구소를 폐쇄시켰다. 인체 개조 프로젝트도 중단되었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이다. 중국의 안보 위협이 명백한 이 시기에 국방력을 약화시키다니. 우리 정부는 대체 누구의 편인가? 나는 이제 그들을 못 믿겠다.]


[2033년 3월 15일. 나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인체 개조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 대상자는 모두 15명. 성공률은 미지수다. 아마도 10퍼센트 미만이겠지. 아직 연구가 부족했다. 죄책감이 든다.

나는 수술 중에 손을 떨지 않기 위해 마약성 안정제를 과도하게 사용했다. 이 행위는 나의 목숨을 갉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프로젝트 지원자들은 나에게 목숨을 맡겼다. 부디 수술이 성공해 환자들이 무사히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바이러스.

전염병.

연구소 폐쇄.

그 이후로는 일기의 내용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중구난방이었다. 알아보기 쉬웠던 글씨도 괴발개발 날림이 되었다. 아마도 군의관은 마약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잃어버린 듯했다.


긴장을 많이 하던 외과의사.

살아있을까?

나는 일기장을 챙겼다.


캐비닛을 열어보니 옷가지가 들어있다. 평범했다.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양말. 아웃도어 가방.

공대 복학생 패션이다.

옷을 챙겨 입으니 핏이 넉넉하게 맞았다. 군의관은 살집이 꽤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컴퓨터나 노트북은 없었다. 도둑놈이 싹 쓸어간 모양이다. 공대 복학생 패션은 도둑놈조차 손대지 않을 정도로 촌스러웠다.


그렇다면 오늘은 몇 년도일까?


달력은 낡았고 시계는 망가졌다. 유일한 단서인 군의관의 일기장에 따르면 2033년도는 지났다.

그렇다면 지금은 적어도 2034년 이후다. 나는 최소 10년동안 냉동되어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났다.


냉동 중에 인체 개조 수술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인 듯하다. 나는 살아있다. 루게릭 병의 징후가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5년 안에 사망했어야 한다.

신체능력은 전보다 훨씬 향상되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연구진은 유능했다.


내가 치료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또 있다.

배가 고프다.

강렬한 생존반응.

건강하다는 증거다.


다만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다. 시체뿐이다. 바깥 상황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도둑놈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신선한 고기라고 외쳤겠지.


인간이 인간을 먹는 세상.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창궐.

우리나라는 어떤 세상이 된 걸까?

어머니는 무사하실까? 동생은?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아직 부족하다. 밖으로 나가서 마을을 찾아야 한다. 주민을 만나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문제.

배가 너무 고팠다.


-


위장이 비명을 지른다. 뱃가죽이 꿀렁거린다.

수술 후유증일까? 10년 동안 굶었기 때문일까?

배가 심각하게 고팠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군대 훈련병 시절 야간행군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와 육개장 컵라면을 받았는데 뜨거운 물을 붓다가 실수로 내용물을 쏟아서 한 젓가락도 못 먹은 때보다 심각했다.


굶주림.

아사.


시야 우측 상단에 상태 메시지가 나타났다. 내 몸 속에 이식된 시스템이 신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경고! 에너지 비축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열량을 신속하게 보충해 주십시오.]


음식을 먹으라는 뜻이다.

나도 안다. 먹고 싶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 연구소 건물을 한참 뒤졌지만 음식물은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자판기, 매점. 모조리 털렸다.

남은 가능성은 오직 하나.

내가 죽인 부랑자들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맨 처음 깨어난 장소로 돌아갔다. 지저분한 넝마주이의 시체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시체 아래에 가방이 깔려 있었다.

군용 더플백.

나는 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쏟았다. 여기서도 음식을 찾지 못하면 시체라도 구워먹을 생각이었다. 그만큼 배가 고팠다.

더플백에서 잡동사니가 우수수 쏟아지고 그 사이에서 반가운 물체가 자태를 드러냈다.


참치캔. 150그램.

2036년 3월 4일까지 유통 가능.


먹어도 될까? 유통기한이 지났으면 어떡하지?

일단 통조림의 겉모습은 멀쩡했다. 뚜껑이 단단히 막혀 있고 찌그러진 곳도 없었다.

나는 뚜껑을 따서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


- 스읍


군침이 돌았다. 위장이 아우성쳤다. 생존본능이 참치를 당장 입안에 털어넣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나는 신중했다.

오래된 통조림은 독극물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혐기성 세균 보툴리누스가 밀폐된 공간 안에서 치명적인 신경독소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신체에 내장된 시스템이 친절하게도 방법을 알려주었다.


[독극물 감지 센서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센서는 1분에 100kcal를 소모합니다.]


문득 수술 직전에 군의관이 해준 말이 기억났다. 그는 나를 저격수 특기로 개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격수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 오랜 기간 생존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야생동물도 먹는다고 들었다.

아마도 연구진은 저격수의 생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내 몸에 독극물 감지 센서를 삽입한 모양이다.


훌륭하다.


다만 이 능력은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센서를 활성화시키면 열량을 1분에 100킬로칼로리나 소모한다.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의 열량이 약 3000킬로칼로리다. 치킨 먹고 독극물 감지 센서를 작동시키면 30분만에 치킨을 안 먹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다이어트에 최고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다이어트는 필요가 없다. 식량이 부족한 환경에서 비만은 유지하기 어렵다.

내가 감지 센서를 작동시켰다.


- 킁킁


코가 참치캔의 냄새 분자를 흡입한다. 분자의 정보가 시스템에 입력된다. 3초 정도 지나자 분석 결과가 나왔다.


[독성 없음]

[섭취 가능]


나는 센서를 서둘러 껐다. 기운이 쭉 빠졌다. 눈앞이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열량이 꽤나 소진되었다.


이제 먹자.


참치를 씹어 삼키니 내가 에너지를 얼마나 섭취했는지 나타났다.


[195kcal 섭취]

[에너지 비축량 7퍼센트]


빠듯하다. 앞으로는 음식 섭취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참치를 먹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칼과 더플백을 챙겨 연구소 건물 밖으로 나갔다.


-


대자연은 때로 공포스럽다.

연구소 주변은 인간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듯 수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벽마다 덩굴이 올라오고 나무뿌리가 보도블록을 헤집었다.

그나마 인공의 손길이 남아있는 주차장에서 자전거 두 대를 발견했다.

자전거는 기괴했다. 시골동네 폭주족의 오토바이처럼 온 군데에 형광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랐고, 핸들 앞부분에 플라스틱 보호막을 세운 뒤 겉부분을 가시 철사로 휘감았다.

전투용 자전거였다.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자전거를 몰았다.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도로가 군데군데 파여 있어서 운전이 불안정했다. 나는 날카로운 감각을 동원해 장애물을 피했다.

한 시간쯤 달리자 저 아래에 마을이 보였다.

집.

회관.

컨테이너.

대부분이 부서졌다. 멀쩡한 곳이 드물었다. 폭탄이나 철거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너진 듯했다.

오직 마을회관과 집 몇 채가 형태를 유지했다. 이들 주위를 철조망이 둘러싸고 있다.

철조망은 부실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났고, 녹이 슬었고, 지지대가 기울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침입이 가능했다.


마을에 사람이 있을까?


나는 풀숲에 자전거를 숨기고 낮은 지대를 따라 마을 입구로 접근했다. 배가 고플 때 살짝 흐려졌던 미니맵이 원래의 성능으로 돌아와 주변의 생명체를 감지했다.

생체 레이더.

뱃속이 다시 쓰렸다. 에너지 비축량이 5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 개조된 신체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대신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철조망 안쪽 가건물에서 생체 반응을 찾아냈다.

인간.

두 명.

이들이 적인지 중립인지는 아직 모른다. 연구소에서 마주친 부랑자 무리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공격해온 것을 보면 마을 사람들 역시 낯선 사람에게 적대적일 가능성이 있다.


나는 마을에 조용히 들어가기로 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철조망을 뛰어넘어 방어벽 안쪽 풀밭에 착지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여 가건물에 다가갔다.

조용했다. 풀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양이 같은 발걸음이었다. 나는 완벽한 은신 상태다.

건물 창문이 열려 있다. 내가 창문 옆에 붙어서 남녀의 대화를 들었다.


여자가 말한다. “살려주세요. 시키는대로 다 할게요.”


남자가 말한다. “벗어.”


다시 여자다. “아저씨. 저 열여섯살이에요.”


다시 남자. “알아.”


남자는 소총을 들고 있다. 총구가 소녀의 머리를 겨눈다. 그가 허리띠 버클을 푼다. 이어서 바지가 내려가고 속옷도 내려간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신체부위가 드러난다.

소녀가 더욱 격하게 운다.


“제발요. 다른 거 할게요.”

“벗으라고.”

“아저씨.”

“썅년이···”


남자의 벌어진 입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혀와 목젖 일부가 잘렸다. 신체 조각이 턱에 묻었다. 놈이 꾸루룩 소리를 내며 죽었다.

내가 시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소녀에게 물었다.


“아는 놈이야?”


소녀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 붙잡혀 있어요.”

“나쁜놈들이 얼마나 돼?”

“열··· 스물··· 많아요.”

“알았다. 너는 안전해질 때까지 여기서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


나는 소총을 챙겨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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