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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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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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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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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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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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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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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불치병(3)

DUMMY

산골 마을은 해가 빨리 진다. 하늘이 검게 변하고 그림자가 어둠에 섞였다.

내 안에 삽입된 생체 센서가 빛의 세기를 감지했다.


[야간 시야를 켜십시오. 특수 센서가 어둠 속에서 물체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1분에 20kcal입니다.]


독극물 감지 능력이 1분에 100킬로칼로리를 소모한다. 그에 비하면 야간 시야 능력은 에너지를 비교적 덜 쓴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정도는 아니다. 나는 배가 여전히 고프다.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야 한다.

나는 능력을 활성화했다. 시야가 연두색으로 변하며 어둠에 잠긴 물체의 윤곽이 드러났다.


풀숲.

주차장.

마을회관.


회관은 네모난 양옥 주택이다. 남쪽에 대문, 북쪽에 쪽문이 달려 있다. 주차장이 남쪽 방향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정문 쪽으로는 몸을 숨기기가 어렵다.


북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풀숲을 엄폐물삼아 마을회관 주위를 빙 돌았다. 적의 위치를 살펴보니 남쪽 정문에 경비가 셋, 북쪽 쪽문에는 둘이다.

경계병이 모두 담배를 피웠다.


멍청한 놈들이다.


이들은 경계 근무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야간에 담배를 피우면 멀리서도 담뱃불이 보인다.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알려주는 꼴이다.

놈들은 총만 들었을 뿐 군기는 동네 불량배 수준이다.

나는 북쪽 풀숲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았다.

경비병 하나가 투덜거린다.


“아오, 배고파. 밥 언제 먹지?”


모자 쓴 놈이 동료를 비웃는다.


“돼지새끼야. 아까 저녁 먹었는데 그새 배가 또 고프냐? 이런 새끼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지?”


투덜거리던 놈이 또 불평한다.


“우리는 풀떼기만 먹었잖아. 그러니 배가 금방 꺼지지. 고기는 형님들만 먹었고. 너무하지 않냐? 어떻게 자기들만 고기를 먹냐? 동생들한테 한 점도 안 나눠주네.”


모자 쓴 놈이 피식했다.


“좆같으면 네가 큰형님 해. 형님들 다 쓸어버리고 네가 짱 먹어.”

“내가? 그럴까?”

“말로만 떠들지말고 진짜로 도전해.”


배고픈 불량배가 망설였다.


“아 씨··· 큰형님 존나 센데. 사람 대가리를 도끼로 쩍쩍 가르던데.”

“네 대가리도 갈라지겠지. 그리고 형님들은 네 살로 또 고기 회식을 벌이겠지.”

“그건 싫다. 그냥 풀 먹을래. 무서워.”

“병신.”


두 놈이 서로를 마주보며 킥킥거렸다.

나는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자갈을 던졌다.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두 경계병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모자 쓴 불량배가 긴장한 듯 말했다.


“뭐지?”


배고픈 자의 반응은 달랐다.


“토끼다.”

“토끼?”

“여기 농장이잖아. 깨끗한 풀이 많으니까 토끼도 살겠지.”

“토끼가 깨끗한 풀을 먹고 자랐으면··· 고기도 깨끗한가? 먹을 수 있나?”

“당연하지.”


모자 쓴 놈이 군침을 삼켰다. 육식은 생존에 필수요소다. 인간이 생존본능을 거스르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들은 고기를 오랫동안 못 먹었다.

배고픈 자가 결심했다.


“잡자.”


모자 쓴 놈은 결단력이 부족했다.


“괜찮을까? 근무중에 딴청 피우다가 형님들한테 걸리면 좆나게 쳐맞을 텐데.”

“차라리 좆되는 게 낫다. 나는 고기 먹어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아침에 좆도 안 서.”


남자의 자존심이 화두에 오르자 망설이던 놈도 동조했다.


“사실 나도 그래.”

“형님들은 고기 자주 먹으니까 잘 서잖아. 그러니 아까 준구 형님이 여자애 데리고 조용한 데로 갔지.”

“그 여자애 어려 보이던데. 미성년자랑 그래도 되나?”


배고픈 놈이 혀를 찼다.


“멍청한 놈아. 요즘 같은 세상에 미성년이 어디 있어? 나라가 망했는데.”

“하긴 그러네. 경찰도 없고 감옥도 없으니 열여섯이랑 뭘 하든 상관이 없네.”

“그러니까 나도 고기 먹고 할 거야. 말리지 마라.”

“누구랑?”

“아까 그 여자애.”

“진짜로? 괜찮겠냐? 나는 설거지 싫은데.”

“싫으면 너는 풀만 먹고 딸이나 쳐. 나는 고기 먹고 떡 칠란다.”


둘 중에서 더 굶주린 놈이 자세를 낮추고 풀숲으로 다가왔다. 놈은 양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사냥감을 덮칠 자세를 취했다.

나는 놈의 명치를 칼로 쑤셨다.


“끄윽.”


놈이 풀숲 안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놈의 머리통을 붙잡아 반 바퀴 돌렸다.


- 으직


놈은 엎드린 채로 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모자 쓴 불량배가 킥킥 웃었다. 그의 시선에서는 배고픈 동료가 토끼를 잡으러 가다가 발을 헛디뎌 코가 깨진 것처럼 보였다. 시체의 상반신이 풀숲에 가려져 있었다.


“병신. 그럴 줄 알았다. 토끼는 개뿔. 동작이 굼떠서 바퀴벌레도 못 잡겠다.”


동료 경비병은 풀숲 안에 머리를 처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자 쓴 놈이 슬슬 불안해했다.


“야, 뭐 해? 자냐?”


놈이 동료에게 다가와 시신을 발끝으로 툭툭 찔렀다.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고깃덩이를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가 사태를 알아챘다.


“이런 썅···”


칼이 날아와 놈의 머리통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랐다. 머리 뚜껑이 열리고 피가 고였다. 분리된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졌다.

시체가 추가되었다.

나는 시체를 뒤져 나이프를 찾아낸 뒤 지금껏 쓰던 칼을 버렸다. 칼 하나로 사람 뼈를 세 번이나 잘랐더니 날이 무뎌진 느낌이었다.


마을 회관 안에는 형광등 불빛이 환했다.


나는 추측했다. 세상이 망했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따라서 한국전력이 이런 시골까지 전력을 공급하지는 못한다.

어딘가에 발전기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금방 찾았다. 발전기는 건물 뒤편에 설치되어 있었다. 가솔린 발전기였다.

나는 발전기 전원을 내렸다.

회관 안에 불이 꺼졌다.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불량배 무리가 당황했다.


“어어? 뭐야?”

“불 켜. 누구야?”

“짬밥 찌끄러기 새끼들이 쳐맞으려고···”


나는 창문을 통해 총을 쏘았다. 한 발에 한 명씩 죽였다. 총소리가 세 번 울렸다.

불량배 중 하나가 황급히 손전등을 켰다. 조직원 세 명이 쓰러져 있는 광경이 드러났다. 사망자 모두 머리통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헉.”


상대는 저격수였다.

손전등을 든 불량배가 주위를 살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손이 나타나 놈의 목을 과도하게 꺾었다.

그가 선 채로 축 늘어졌다.

다른 놈들이 소리쳤다.


“쏴! 죽여!”


그들이 죽은 동료를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침입자가 그 방향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소총이 불을 뿜었다.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시신은 순식간에 넝마가 되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불량배의 우두머리가 숨을 헐떡거렸다.


“불 켜. 얼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 탕


총알이 불량배 우두머리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꿰뚫었다. 손가락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우두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소총을 떨어뜨렸다.


“아악!”


나는 나이프를 우두머리의 뒷목에 꽂은 뒤 날을 반원형으로 그었다. 뼈 잘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절반 정도 열렸다.


- 푸슉


동맥이 잘려 피를 뿜었다. 바닥이 더러워졌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 발전기를 다시 켰다. 회관에 불이 들어왔다.


시신 열다섯 구.


나는 야간 시야를 종료하고 몸상태를 점검했다. 불량배를 처리하는 동안 에너지를 300kcal 정도 소모했다. 이제 내 몸에는 에너지 비축분이 2퍼센트만 남았다.

배가 고프다.

회관 안으로 돌아오니 노인이 의자에 묶인 채 벌벌 떨고 있다.


“살려주시오. 나는 농사밖에 모릅니다.”


노인의 얼굴에 상처가 가득했다. 피, 딱지, 멍. 고문의 흔적이다.

내가 그의 결박을 풀어주며 물었다.


“무슨 농사를 지으십니까?”

“감자요.”

“이 놈들이 감자를 빼앗으러 왔습니까?”


그가 안정을 찾고 끄덕였다.


“감자 상납을 거부했더니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른 주민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엌에 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인이 주름진 볼을 떨었다. 공포와 고통이 느껴졌다. 감자 때문에 사람이 죽고 고문이 벌어졌다.


“식료품 창고의 비밀번호를 나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놈들이 나를 살려둔 겁니다. 내가 죽으면 창고 자물쇠를 못 여니까.”

“그래서 고문을 당하셨군요.”

“놈들이 내 손톱을 뽑고 발가락을 송곳으로 쑤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어요. 창고 비밀번호를 실토하는 순간 놈들이 나를 죽였을 겁니다.”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혹시 경찰입니까? 정부가 다시 생겼나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냉동되기 직전에 나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수술을 받은 뒤 특수부대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관계자는 모두 사라졌고 나는 홀로 깨어났다. 내가 들어가기로 한 특수부대가 현실에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나는 지금 어떤 신분인가?

전역자.

예비역 병장 김민철.

내가 말했다.


“예비군입니다.”


노인이 살짝 당황했다.


“아아··· 예비군.”

“불량배는 이게 끝입니까? 놈들의 아지트가 또 있습니까?”

“다 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모조리 처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안전해요.”

“잘 됐네요.”

“내 손녀를 봤습니까?”

“근처의 가건물에 숨어 있습니다.”

“안 다쳤나요?”

“무사합니다.”


노인이 그제서야 안도했다. 그가 얼굴을 무릎에 묻고 한참을 흐느꼈다.


-


나는 갓 삶은 감자를 소쿠리 가득 대접받았다. 오로지 감자였다. 육류는 없었다. 반찬은 소금과 배추김치였다.

노인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우리가 가진 식량이 감자뿐입니다. 고기는 서울에서 가끔 보따리상이 올 때 사놓는데 요새는 도적떼가 들끓어서 그런지 장사꾼이 안 보이네요.”


나는 음식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감자 스무 개를 먹고 다섯 개를 더 먹었다. 날숨에서 감자 냄새가 날 정도였다.

상태 메시지가 업데이트되었다.


[감자 스물다섯 개를 섭취했습니다. 열량 1400kcal가 보충됩니다.]

[주의! 탄수화물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영양 불균형이 우려됩니다. 단백질과 지방을 골고루 섭취하세요.]


안다. 나도 고기 먹고 싶다. 없어서 못 먹을 뿐이다.

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돼지를 키워 보시죠. 감자를 사료로 쓰면 될 것 같은데요.”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안 됩니다. 우리 감자가 얼마나 귀한데요.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은 유기농 신선 감자입니다. 비싸게 팔려요. 돼지한테 먹일 수는 없죠.”

“바이러스에 오염된 감자는 싸게 팔립니까?”

“싸게 팔리는 게 아니라 아예 못 팔죠. 먹을 수가 없으니까. 조금은 먹어도 괜찮은데, 계속 먹다 보면 몸속에 바이러스가 쌓여서 탈이 나요.”


바이러스.

나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군의관의 일기장에서 읽었다.

일기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서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2033년도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 뒤로도 사람들이 더 죽은 모양이다. 그러니 세상이 이토록 막장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물었다.


“올해가 몇 년도입니까?”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2074년이죠.”


나는 씹는 행위를 잠시 멈추었다.

냉동인간 상태로 50년이나 흘렀다.

어머니.

노인의 말이 맞다면 어머니는 현재 100살이 넘었다. 살아 계실 가능성이 매우 낮다.

나는 감자 하나를 억지로 더 먹은 뒤 일어났다.


“서울이 어느 방향입니까?”


노인이 깜짝 놀라며 따라 일어섰다.


“벌써 가시게?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출발하시지. 밤길이 어두울 텐데.”

“급한 일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가요. 그러다 보면 서울이 나와요.”

“여기는 북동쪽이군요.”

“포천이지.”

“감자 잘 먹었습니다.”

“잠깐만.”


그가 서랍장에서 열쇠를 꺼내 왔다. 열쇠고리에 국산 자동차 회사의 상표가 박혀 있었다.

노인이 차 열쇠를 건넸다.


“아들놈이 타던 물건인데, 이제는 아무도 안 타니까 선생이 가져가요. 기름도 들어있어.”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나는 경운기 몰아. 도로가 엉망이라서 그쪽이 편해. 하지만 선생은 빨리 가야 하니까 자동차가 좋을 거요.”

“감사합니다.”


나는 오래된 SUV를 몰고 밤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은밀한 이동을 위해 헤드라이트는 껐다.

노인이 챙겨준 감자 봉투가 조수석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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