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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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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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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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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흔적(2)

DUMMY

꿈에서 가족을 만났다.

전역하는 꿈이었다. 모자에 예비군 마크를 달고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삼겹살을 구웠고, 동생은 18개월동안 고생했다며 선물을 건넸다.

나는 그 장면에서 지금이 꿈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챘다.

친동생이 친오빠에게 선물을 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이다. 칙칙한 공기가 햇빛을 분산시킨다. 서울의 하늘은 흐리고 눅눅했다.

나는 잠시 누워 있었다.

여기는 군대가 아니다. 복장은 사복, 숙소는 모텔이다. 나는 군복무를 나도 모르게 끝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군대를 제대하지 못했다. 군복무를 끝내기 전에 냉동되었다. 어머니가 구워준 삼겹살은 상상의 결과물이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50년 전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늦게라도 가족을 만날 줄 알았다. 의사는 나에게 치료가 금방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예상이 틀렸다. 정신을 차리니 반 세기가 지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식당 일로 바빠서 평소에 면회를 자주 오지 못했다.


아쉽다.

외박이라도 나갈 걸.


나는 성격이 무던해서 외박이나 휴가에 집착하지 않았다. 나가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런 태도가 후회스럽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머니가 소중한 줄 몰랐다. 어머니는 항상 곁에 있어서 언제나 곁에 계시리라 생각했다.

마치 공기처럼.

하지만 군대에서 생활하다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항상 투닥투닥 싸우지만 내가 정말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은 가족이다.


그립다.


인간이 평소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물에 빠지면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발악을 하듯이, 어머니가 곁에 없으니 어머니를 더욱 만나고 싶어진다.

돌아가셨을까?

상관없다.

어머니의 무덤이라도 찾고 싶다. 어머니의 사진이라도 보고 싶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왕 사장이 받았다.


“오오, 민철이. 며칠 쉰다더니 그새 다시 일하려고?”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가 의뢰를 넣고 싶습니다. 혹시 사람도 찾아 주십니까?”

“흐흐, 당연히 찾아주지. 그게 심부름센터의 기본 업무야. 사람 찾는 일.”

“비용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왕 사장은 과도하게 친절했다.


“착수금 300만 원. 최대 5일까지 찾아보고 그래도 못 찾으면 추가 비용이 하루에 30만 원씩 발생해.”

“1년 내내 찾으면 10억 원이 넘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어. 한 달 안에 거의 다 찾아. 시간이 그 이상 걸리는데도 우리가 못 찾으면 사실상 아무도 못 찾는 거야.”


자신들이 업계 최고라는 말이었다. 나는 왕 사장의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의뢰 내용을 밝혔다.


“찾으려는 사람이 두 명입니다. 박선주. 여성. 1971년생. 김민아. 여성. 2003년생.”


왕 사장이 탄식했다.


“오래된 분들이네. 한 명은 백 살이 넘었어.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는데. 쉽지는 않겠구만.”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찾아주십시오. 만약 돌아가셨다면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가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는 다시 말했다.


“얼굴은? 사진이나 동영상 있나?”

“없습니다.”


왕 사장이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러면 자네가 우리 사무실로 와야겠는데. 기억을 스캔해서 몽타주를 만들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오늘 말고 일주일 뒤에 와. 기억 스캐너가 꽤 비싼 물건이거든. 당장 주문해도 일주일 지나서 도착해.”


기억 스캐너. 인간이 가진 기억을 영상으로 전환시키는 장치 같았다. 세상이 망해가도 신기술은 발전했다.

내가 약속했다.


“기계 구입 비용도 저한테 청구하십시오.”


왕 사장이 왠지 모를 부드러운 어조로 거절했다.


“에이, 그럴 수는 없지. 음식점에서 냉장고 새로 샀다고 음식값을 올려 받지는 않잖아. 그러다 장사 망해. 음식값은 옆 음식점이 가격을 올렸을 때 슬그머니 따라가는 거야.”

“좋은 내용 배웠습니다.”

“그러니 비용은 걱정 마. 최대한 싸게 해줄 테니까. 자네는 우리 센터의 우수 고객이거든.”

“감사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가 다시 멀어졌다. 훼방꾼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여자는 한국어 발음이 어색했다.

왕 사장이 말했다.


“다음주에 사무실로 와. 심심하면 그 전에 놀러 와도 되고. 요새 한가하지?”

“그럴 겁니다.”

“여기 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여튼 그렇게 해. 앞으로 오래오래 자주 볼 사이니까. 알았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질문이 끈질겼다.


“잠은 어디에서 자나?”

“근처 모텔입니다.”

“저런. 모텔은 건강에 안 좋아. 바이러스가 득실거려. 내가 깨끗한 방으로 하나 알아볼게. 99퍼센트 무균실로.”

“그렇게까지 저를 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에헤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신경 쓰지 마. 하여튼 또 보자고.”


통화가 끝났다.

나는 모텔 침대에 앉아 왕 사장이 친절하게 구는 이유를 곱씹었다.

그는 장사꾼이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돈이 안 되면 관심을 주지 않는다.

나는 돈이 된다. 1억 5천짜리 의뢰를 하룻밤만에 해결했다. 왕 사장은 내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그에게 큰 돈을 벌어줄 예정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왕 사장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간다.

무조건적인 호의는 위험하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나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친 친절을 베푼다면 그는 강도나 사기꾼이다.

왕 사장은 내가 실력을 유지하는 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텔방에서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


며칠이 지났다.

신체의 컨디션이 서서히 올라왔다. 삐걱거리던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딱딱했던 근육이 풀어졌다. 운동 덕분이었다.

나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 스스로 움직이게 되었다. 힘들고 지겨워도 꾹 참고 견뎠다.


팔굽혀펴기, 맨몸스쿼트, 턱걸이.

500번, 1000번, 2000번.

타는 듯한 근육통.


나는 어떤 면에서 축복받았다. 루게릭 병에 걸려 온 몸의 근육이 흐물흐물해질 예정이었는데 현대 과학의 도움을 받아 우수한 신체능력을 얻었다.

물론 단점이 명확하다.

밥값이 어마어마하게 지출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자주 고픈데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쓰니 허기가 더욱 빨리 찾아온다.

나는 한 끼 식사에 대략 5000kcal를 섭취했다.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7배를 더 먹는다.

먹을 것이 풍부했던 과거에는 이러한 특성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온갖 곳에 바이러스가 퍼져 노동력이 줄고 식량 산업이 붕괴되고 음식 가격이 치솟았다.

신체에 내장된 점검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영양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세요!]

[부족한 영양소 : 단백질, 비타민A, 비타민C 등]

[예상 증세 : 피로감, 잇몸 출혈, 탈모, 야맹증]

[추천 음식 : 소고기 안심, 닭가슴살, 삶은 계란, 우유, 사과, 오렌지, 아몬드···]


고기를 먹으라는 소리다.

이곳 사람들은 고기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섭취한다. 강한 자는 인육을 먹고, 약한 자는 쥐를 잡아먹는다. 쥐는 바이러스 투성이다.

나는 두 가지 다 싫었다.

그래서 밥만 먹었다. 쌀과 밀가루는 비교적 구하기 쉬웠다.

하지만 언젠가는 고기를 먹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식인을 거부할 수 있을까?


왕 사장과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나는 심부름센터로 찾아갔다.

사무실에 낯선 여자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금색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이 민철 오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오빠 소리를 들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줄리아야. 엔지니어. 여기서 일해.”

“엔지니어? 무엇을 만드시길래?”

“무기, 기계, 정보. 이것저것 다 만들어.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거든. 요즘 기술을 몰라.”


줄리아는 우중충한 사무실과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가 밝았다. 왕 사장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김새가 백인에 가까웠다.

혼혈.

이름도 서양식이다.

한국은 국제화되었다.

왕 사장이 커튼을 젖히고 카운터로 나왔다.


“왔나? 여기 앉아. 자네를 위해 새로 들여온 기억 스캐너야.”


기억 스캐너는 미용실 의자처럼 생겼다. 나는 스캐너에 앉아 머리에 전극을 붙인 뒤 반구형 헬멧을 썼다.

줄리아가 장비를 조작했다.


“오빠, 아무 기억이나 떠올려 봐. 테스트하게.”


나는 지금껏 살면서 여동생 말고는 오빠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줄리아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자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발머리.

안경.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살.

동생은 키가 작고 귀여웠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어도 사람들이 중학생으로 오해했다.


작고 약한 동생.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줄리아가 화면에 나타난 동생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누구야? 오빠 여친?”


나는 본능적으로 눈살을 찡그렸다.


“친동생이다. 김민아. 내가 찾으려는 사람.”


줄리아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 너무 어린데? 김민아는 2003년생이라며. 그러면 지금은 70살 할머니야.”


왕 사장이 꾸짖었다.


“어허, 할머니라니. 요즘 70살은 예전 70살과 달라. 정정하다고.”


줄리아는 왕 사장의 지적을 무시했다.


“하여튼 오빠, 이 모습은 안 돼. 너무 어려. 더 나중의 기억을 떠올려 봐. 가장 최근의 모습.”


이것이 가장 최근의 모습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동생은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 모습은 없다. 이것이 가장 최근이다.”

“엥?”


줄리아가 머리를 긁었다. 얇은 금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진짜 이해가 안 되네. 70살 할머니가 친동생이면, 오빠도 70대 할아버지라는 뜻이잖아. 근데 오빠는 왜 이렇게 어려? 보톡스 맞았어?”


내가 왕 사장을 흘깃 보았다. 그러자 경험 많은 장사꾼이 손님의 의도를 알아챘다.

왕 사장이 줄리아를 말렸다.


“줄리아. 고객님에게 나름 사정이 있겠지.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냐? 우리는 사람만 찾으면 되는 거야. 내막은 알 필요 없다.”

“흐응··· 그렇긴 하지만··· 의뢰 목표의 현재 모습을 모르면 찾기가 힘들잖아. 이름만으로는 못 찾아. 한국에 김민아랑 박선주가 한둘이야?”

“노화 시뮬레이션을 돌려 봐라.”

“시뮬레이션은 한계가 있지.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망가졌을 수도 있고. 무리야. 이걸로는 불가능해. 정보가 더 필요해.”


내가 물었다.


“예를 들어 어떤 정보?”


줄리아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드렸다.


“생일.”


그거라면 알고 있다.

동생이 태어난 날짜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생일은 기억한다. 어렸을 때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려고 어머니의 주민번호로 게임 아이디를 만든 적이 있다.

내가 어머니의 생일을 말했다. 그러자 줄리아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잠깐만 기다려 봐.”


그녀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가끔씩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기도 했다. 암산을 하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분석이 끝났다. 그녀가 결과를 알려주었다.


“오빠 기억 속의 얼굴로 노화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박선주 씨의 생김새를 10년 단위로 추정했어. 그리고 전국의 71년생 박선주 중에서 시뮬레이션 결과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찾았어. 오빠가 찾는 박선주가 이 사람 맞아?”


모니터에 그리운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니.

지치고 힘든 표정.

주름진 피부.

고난의 흔적.

어머니는 얼굴에 흉터가 깊이 생겨 있었다. 수십 바늘을 꿰맨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상처였다.

나는 분노를 애써 누른 채 물었다.


“지금 어디 계시지?”


줄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몰라. 박선주는 2035년에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성동구 마장동으로 이사 갔어. 그 뒤로는 정보가 없어.”

“마장동 어디?”

“축산물시장이래.”


문득 왕 사장이 길게 탄식했다.


“어허, 저런.”


줄리아가 물었다.


“왜요, 할아버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중증 감염자의 서식지다. 살인과 식인이 수시로 벌어지지. 인세에 펼쳐진 지옥이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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