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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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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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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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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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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서울 2074(1)

DUMMY

나는 도시의 어둠을 기억한다.

서울은 발전된 곳이다. 인구가 천만 명이고, 역사는 600년이다. 고층 아파트와 최신식 빌딩이 즐비하고, 깨끗한 도로와 정확한 지하철이 생활수준을 높인다.

치안도 괜찮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가로등이 거리 곳곳을 비춘다. 커피숍 자리에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물건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전거 도둑만 조심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나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나는 어렸을 때 골목길에서 동네 깡패에게 삥을 뜯겼다. 어머니가 주신 용돈 5천 원을 양말 안쪽에 꼬깃꼬깃 접어서 숨겨 놓았지만 고딩 양아치는 초등학생의 술수를 쉽게 간파했다.

그때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꼬마 시절이라 감수성이 풍부했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나를 달래주었다.


고속도로에 간판이 보인다. 곧 서울이다. 나는 차를 몰고 강북구로 들어서고 있다.

궁금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어두운 쪽이 승리했을까? 아니면 모범 시민들이 멸망의 위기에 맞서 인간성을 지켜냈을까?


낡은 저층 아파트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아파트 주차장은 절반이 부서졌고 나머지 구역은 잡초투성이였다. 인간의 손길이 사라지자 대자연이 인공 구조물을 끈질기게 갉아냈다.

우리집은 3층이다.

계단을 올랐다. 오줌과 토사물이 복도 구석에 말라붙어 있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현관문에 도착했다.

복도 쪽으로 뚫려 있는 다용도실 창문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빛의 세기가 불규칙하다. 전기 등불이 아니고 촛불이나 모닥불이다.


나는 창틀을 붙잡고 몸통을 들어올려 자그마한 창문을 통과했다.


숨소리가 들린다. 거실이다. 세 명이다. 자는 중이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모두 십대 청소년이다. 더러운 이불 근처에 주사기가 뒹군다. 이미 사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마약.

나는 남자놈들 중에서 더 푹신한 이불에 누워있는 녀석을 깨웠다.


“야.”


불량 청소년이 돌아눕는다.

나는 녀석의 코를 막았다. 그러자 녀석이 입을 벌린다. 나는 입안에 지저분한 양말을 쑤셔 넣었다.

그제서야 놈이 눈을 떴다.


“으윽···”


내가 놈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희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어?”


양아치 청소년이 발버둥을 치다가 망막 가까이로 다가온 나이프를 알아본 뒤 저항을 포기했다.


“욱··· 욱···”


내가 요구했다.


“손가락으로 말해.”


녀석이 손가락 세 개를 편다.


“3년?”


놈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다시 묻는다.


“3달?”


또 아니다.


“3일?”


그제서야 녀석이 끄덕인다.

무의미한 취조였다. 나는 50년전 가족의 흔적을 찾으러 이곳에 왔고, 이 놈들은 3일 전에 여기에 둥지를 틀었다.

시간 간격이 너무 넓다.

이 놈들에게서 유의미한 정보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녀석의 경동맥을 눌러 뇌로 흘러가는 혈류를 차단했다. 녀석이 잠시 버둥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이윽고 수면과 동일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다시 정적.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탐색은 금방 끝났다. 이곳에는 내게 익숙한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가구도 없고, 가전제품도 없고, 오로지 맨살을 드러낸 콘크리트와 바닥을 굴러다니는 오물뿐이다.

버려진 집.

그곳에 사는 불량 청소년 무리.

더는 볼 것 없다.

나는 옛 집을 떠났다.


-


너무 늦었다. 50년의 시간은 과거의 흔적을 모조리 지웠다.

어디로 가야 어머니와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두 명 다 사망한 뒤 흙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씁쓸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은 단서를 찾지 못했지만 계속 돌아다니다보면 언젠가는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먼지만큼의 가능성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냉동인간이 된 지 50년만에 무사히 깨어났듯이 어머니와 동생도 기적적인 확률로 생존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생존.

의식주.

수입 창출.


나는 밥을 많이 먹어야 산다. 평범한 인간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려면 돈이 들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단 살아남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결론을 내렸다. 일거리를 찾아야겠다.

나는 차를 몰고 번화가로 향했다.


-


50년 전 미아사거리는 번화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클럽과 헌팅 포차가 있던 자리에 지금도 클럽과 술집이 있고, 음식점과 옷가게가 길거리 여기저기서 영업을 한다. 번화가의 근본적인 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세부 사항이 변했다.

우선 패션이 낯설었다. 여자들은 반쯤 벗었다. 가슴에 주입한 보형물이 존재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속옷을 겉옷처럼 입은 여자도 있었다.

퇴폐.

남자들도 비슷했다. 근육질, 문신, 흉터, 염색. 어떤 놈은 권총을 가랑이 사이에 끼운 듯 바지 앞이 불룩했다.

향락.

힘과 성적 매력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교양과 절제는 유행이 지났다. 문명의 사이클이 과거로 돌아갔다.

나처럼 청바지에 남방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평범했던 옷차림이 이제는 특이했다.


나도 유행을 따라야 하나?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특히 혓바닥 피어싱은 도무지 따라하기 싫었다. 얼굴 문신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복장 변경은 보류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도 달라진 모양이었다. 약국 간판 아래에 펜타닐 판매중이라고 현수막을 대놓고 붙여 놓았다.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다.

50년 전에 마약류로 관리를 받던 약물이 이제는 길거리에서 버젓이 팔린다.

고통 때문인가? 살기 힘들어서? 바이러스가 몸을 아프게 만들어서?


브라탑 차림의 삐끼가 지나가는 남자에게 손짓한다.


“오빠, 놀다 가. 싸게 해줄게.”

“얼마나?”

“듬뿍.”


나는 유흥업소 종사자의 음란한 멘트를 뒤로 하고 근처의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안내판에 관심 가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302호 : 심부름센터 왕(王).]

[무엇이든 해드립니다. 나쁜 짓부터 더 나쁜 짓까지.]

[최강 해결사 항시 대기. 러시아, 조선족, 동남아, 흑인 해결사까지 입맛대로 고르세요!]


나는 계단을 올라 심부름센터 사무실로 찾아갔다.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나이는 60대, 머리카락이 벗겨졌고 흰색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났으며 복장은 형형색색의 등산복이었다.

탑골공원에 어울렸다.

다행이었다. 이제야 익숙한 인상착의를 만났다. 60대 중년 남자까지 혀에 피어싱을 달고 있다면 나는 절망했을 것이다.

내가 용건을 말했다.


“일거리를 찾습니다.”


심부름센터 사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후줄근한 인상과 다르게 눈빛은 예리했다.


“힘 좀 쓰나?”

“예.”

“무기는?”


내가 단검을 꺼내 보였다.

왕 사장이 혀를 찼다. 실망스럽다는 뜻이었다.


“그걸로 되겠어? 미아리가 얼마나 험한 동네인지 몰라? 다른 데 살다가 왔나? 총 없어?”

“저는 조용한 수단을 좋아합니다.”

“크로스보우 써봤어?”

“안 써봤습니다.”

“써 봐. 조용하고, 멀리 날아가. 100미터 밖에서 쏴도 사람 머리통을 뚫어.”

“흥미롭네요.”


사장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하나에 500만 원. 확장 탄창으로 업그레이드하면 600만 원. 싸다 싸. 완전 거저야. 화살도 100개나 줘.”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돈이 없습니다.”

“쳇. 그럴 줄 알았지. 요즘 세상에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어? 청바지에 남방? 대학생이야? 촌스럽게. 방탄조끼도 안 입었지?”

“입어야 합니까?”

“동네 양아치가 총질하는 세상이야. 방탄조끼는 필수지. 마침 나한테 좋은 물건이 있는데. 가볍고 튼튼해. XL 사이즈. 200만 내.”

“200도 없습니다.”


왕 사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한심하다는 눈초리였다.


“한심하네. 젊은 친구가 200만 원도 못 모으다니. 돈 버는 족족 술 먹고 약 빨았나? 술집 여자한테 꽂혔어?”

“궁금하십니까?”

“아니.”


왕 사장이 말을 멈춘 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가판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자세는 좋은데. 눈빛도 맑고. 얼굴도 깨끗해. 술이나 약물과는 거리가 멀어. 멀쩡해. 모범생 스타일이야. 모범생은 싸움을 못 하지.”


내가 부정했다.


“저는 모범생 쪽은 아니었습니다.”

“사람 죽여봤나?”

“죽여야 합니까?”

“그럴 때도 있지.”

“아무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왕 사장이 피식 웃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하는군. 실전이 문제겠지. 알았어. 채용할게. 요새 우리가 일손이 워낙 부족해서 말이야. 얼마 전에 해결사 몇 놈이 저세상 갔거든.”

“그렇군요.”

“일단 자네한테는 쉬운 일부터 줄게.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하면 더 어려운 의뢰를 맡길 수도 있어. 당연히 보수도 올라갈 거야.”

“기대하겠습니다.”


왕 사장이 사무실 벽면의 지도를 가리켰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가져온 듯했다. 번화가 인근 상가에 초록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미아팜 약국으로 가서 약사를 만나 봐.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니까.”


내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대가는 얼마입니까?”

“백만 원.”

“싸네요.”

“일이 쉬우니까 대가도 싸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큰 돈 벌고 싶으면 큰 일을 해결해.”


내가 감탄했다.


“자본주의의 첨병이십니다.”

“당연하지. 나는 홍콩 출신이거든.”


왕 사장이 히죽 웃었다. 앞니 대신 박혀있는 황금색 임플란트가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


나는 심부름센터에서 나와 미아팜 약국으로 갔다. 눈부신 간판을 지나 헐벗은 삐끼를 거쳐 원룸 빌라가 모여있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주택가는 음침했다.

가로등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렸다. 다음 가로등은 아예 깨져 있었다. 술에 취한 여자가 담벼락을 붙잡고 구토를 했다.

비둘기가 구토물을 쪼아먹었다.

미아팜 약국은 원룸촌 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철창살로 막힌 유리문을 두드렸다.


“심부름센터에서 왔습니다.”


철창살이 올라가고 자동문이 열렸다. 방비가 철저했다. 약물 중독자의 강도짓에 이골이 난 듯했다.

약사는 40대 남자였다. 피부가 푸석하고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왕··· 인가요?”


내가 대답했다.


“예.”

“무서운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러시아나 동유럽 쪽으로···”

“저도 꽤 무섭습니다.”

“진짜요?”

“경험을 시켜드릴까요?”


약사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심신이 허약했다. 팔다리가 가늘고 등이 앞으로 굽고 목은 거북이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왕 사장님이 알아서 잘 보내주셨겠죠.”


예나 지금이나 손님은 적은 돈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는 없다. 값이 싸면 서비스도 저렴하다.

왕 사장은 의뢰금 백만 원에 어울리는 해결사를 보냈다.

내가 물었다.


“의뢰 내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심약한 약사가 손톱을 뜯으며 말했다.


“근처에 약국이 새로 오픈했어요. 거기를 문 닫게 만들어주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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