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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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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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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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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서울 2074(2)

DUMMY

미아팜 약국의 허약한 약사는 근처에 새로 오픈한 경쟁 약국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매출 감소.

고객 이탈.

임대료 연체.

그는 얼마 전에 사채에 손을 댔다.


“나쁜 놈들이에요. 이자가 200퍼센트예요. 미친놈들. 천만 원 빌렸는데 삼천을 갚으래요.”


시간이 50년이나 흘렀지만 사채업자의 행태는 여전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내가 물었다.


“손님들이 그 약국으로 옮겨간 이유가 있습니까? 약국에도 오픈빨이 작용합니까?”


허약한 약사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가늘어서 위협적이지 못했다.


“그 약국은 평범한 약국이 아니에요. 마약 공장이에요. 분명해요. 펜타닐을 저렇게 싼 가격으로 팔기는 불가능해요.”

“여기도 펜타닐을 팝니까?”

“안 파는 약국이 없을 걸요.”


원래 펜타닐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이 가능했다. 처방전 없이는 못 산다. 만약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펜타닐을 판매하면 약사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내가 살던 시절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펜타닐을 사고 팔 수 있는 모양이다.


마약의 대중화.

불법의 일상화.

범죄의 양성화.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세상이 변했고 시대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마약중독자가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마약을 안 하는 사람이 겁쟁이 소리를 듣는다.

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냉동인간이다.


“만약 고객님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새로 개업한 약국은 범죄조직과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약사가 우물거렸다.


“그렇··· 겠죠. 조직의 허락 없이 마약을 만들다가는 성북천 바닥에 매장될 테니까요.”

“어떤 조직이 미아리를 관리합니까?”

“노스힐 인더스트리요.”


내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다국적 제약회사 이름 같습니다.”

“요즘 조폭은 다들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요. 어디 멀리서 오셨어요?”

“조용한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헐··· 감옥?”

“그보다 더욱 위험했습니다.”


약사가 입을 헤 벌렸다. 그는 상남자의 세계에 환상을 가진 듯했다.


“세상에. 해결사님 진짜 무서운 분이시네요. 얼굴만 보면 옛날 케이팝 아이돌처럼 생겼는데.”


내가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그가 끄덕였다.


“해결사님은 안면에 문신이 없잖아요. 이빨도 가지런하고. 요즘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마약을 하도 빨아대서 이가 위산에 죄다 녹았어요. 약쟁이는 오바이트를 자주 하거든요. 덕분에 우리 약국의 자가치료용 임플란트가 잘 팔려요.”


펜타닐로 손님의 이빨을 녹인 뒤 임플란트를 판매한다. 창조경제다.

내가 그의 상술을 인정했다.


“자가발전이네요.”


약사가 히죽 웃었다.


“맞아요. 똑똑하시네요. 이해력이 빠르세요. 요즘 사람 답지 않아요.”

“하지만 새로 개업한 약국이 약사님의 영업 사이클을 방해했군요. 그래서 저를 불렀고.”


그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네.”

“경쟁 약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 두 번째 골목이요.”

“상주 인원은?”

“몰라요.”

“안 가보셨습니까?”

“무서워서···”


약사가 눈을 내리깔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거친 세상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것이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고민했다.

의뢰 내용이 예상보다 위험해 보였다. 의뢰인의 설명에 따르면 새로 개업한 약국은 마약 카르텔의 직영점이다.

카르텔 놈들이 어째서 기존의 판매망을 깨고 상품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 약국에 조직원이 다수 깔려있을 것은 확실하다.


폭력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사람이 죽을 것이다.

나는 칼로리를 많이 소모할 것이다.


비용을 올려야 마땅하다.

내가 말했다.


“의뢰 내용을 들어보니 예상보다 위험할 것 같습니다.”


약사가 애처롭게 물었다.


“그러면··· 해결이 안 되나요?”

“추가 비용이 발생할 듯합니다.”

“얼마나요?”

“제가 몇 놈을 처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으으··· 저는 돈이 없는데···”

“그렇다면 어렵습니다.”


내가 몸을 돌릴 것처럼 발을 슬쩍 움직이자 약사가 황급히 말했다.


“잠깐만요!”


그가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보관함을 꺼냈다. 스마트폰 크기였다. 약사가 엄지손가락을 생체 인식 장치에 가져다 대자 보관함 뚜껑이 열렸다.

보관함 안에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주사기의 내용물이 초록빛을 띠었다.

약사가 제안했다.


“이걸 드릴게요.”


내가 물었다.


“뭡니까?”

“바이러스 치료제요. 순도 100퍼센트 정품이에요. 이거 한 방 맞으면 말기 환자도 단박에 살아나요. 명약이에요, 명약.”


우리나라를 멸망으로 몰아간 바이러스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전국 곳곳에 퍼져 사람들의 생명을 여전히 위협하고 있다. 일종의 풍토병이다.

주위를 맴도는 죽음.

현재의 사람들은 매일을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탈출구는 없다. 병들어 일찍 죽거나, 혹은 막대한 돈을 들여 치료를 받는 방법뿐이다.

돈이 없는 자, 살지도 마라.

나는 빈민가 주민들이 미래 설계를 내팽개친 채 현재의 쾌락에만 탐닉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마약은 가장 저렴한 현실 도피처다.

내가 물었다.


“가치는?”

“저는 천만 원 주고 들여왔어요.”

“그렇다면 이걸 팔아서 의뢰 비용을 마련하십시오.”


약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건 힘들어요. 바이러스 치료제는 마약중독자한테 효과를 못 내거든요.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안 팔려요. 왜냐면 여기 주민은 전부 마약중독자니까요.”


그가 문득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렸다.


“내가 미쳤지. 이런 고급 명품을 싸구려 동네에 들여오다니. 비싼 물건은 부자 동네에서 팔아야 한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는 주사제를 보았다.

바이러스 치료제 순정품. 정가 천만 원.

의뢰 보상금보다 열 배가 많다.

괜찮군.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


빌라 지붕으로 올라갔다. 나는 옥상을 타고 목적지에 접근할 계획이다. 사람의 눈은 정면을 보고 있어서 위쪽을 경계하기가 어렵다.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난개발 지역이라서 집 사이 공간이 좁았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옆집에 닿을 정도였다.

목표 지점에 다다랐다.


나는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간판 없는 약국이 불을 밝히고 있다.

약국.

벽면이 유리라서 가게 내부가 훤히 보인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누구도 이 가게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자신감.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있음이 틀림없다.


폭력배.

노스힐 인더스트리.

미아사거리의 지배자.


그들은 얼마나 강할까? 감자 농장을 습격한 약탈자 무리처럼 무늬만 번지르르할까? 아니면 과거 멕시코 마약 카르텔만큼 잔인하고 과격할까?

나는 계속 지켜보았다.


마약중독자 하나가 비틀대는 걸음걸이로 약국에 들어간다. 나는 청력을 증폭시켜 손님과 점원의 대화를 엿들었다.

가래 끓는 목소리가 주문을 넣는다.


“펜타닐이랑 식염수 주세요.”


휴대폰 판매원처럼 생긴 종업원이 손님을 상대한다. 생김새를 보니 약사는 아니다. 팔뚝에 용 문신이 있다.

종업원이 물었다.


“얼마나 드릴까요?”

“있는 대로 주세요.”

“선불입니다.”


마약중독자가 지저분한 바지 주머니에서 지폐와 동전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 놓는다.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가 뒤섞여 있다.

문신충 종업원이 돈을 세었다.


“3만9천7백 원이네요. 다섯 알 드리겠습니다. 3백 원 깎아 드렸습니다.”


마약중독자가 머리통을 벅벅 긁으며 둔한 뇌를 굴렸다. 그리고는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항의했다.


“다섯 알은 너무 적어요. 지난번에는 3만 원에 열다섯 알을 주셨잖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열··· 하여튼 더 많이 주셔야죠.”


종업원이 느끼하게 웃었다.


“가격이 올랐습니다.”

“말도 안돼!”

“죄송합니다, 손님.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져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씨발!”


마약중독자가 쉽게 흥분했다. 감정 조절 기능이 망가진 탓이었다. 그가 계산대를 발로 차고 동전을 벽에 던졌다.


“약 내놔! 더 내놔! 죽여버린다!”


종업원은 손님의 난동이 익숙하다는 듯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손님, 그러면 현금 말고 다른 수단으로 값을 치르는 건 어떠실까요?”


마약중독자가 난동을 멈추고 종업원에게 귀를 기울였다. 감정 기복이 금붕어 수준이었다.


“어떤 수단?”

“렌즈 끼시나요?”

“아니요. 나 시력 좋아요.”

“잘 됐네요. 눈알 하나에 펜타닐 500개 드리겠습니다.”


중독자가 눈을 크게 떴다. 펜타닐 500개. 표정에 탐욕이 드러났다. 그는 오로지 마약 생각뿐이었다.

약국 종업원이 계산대 너머로 손을 뻗어 마약중독자의 왼쪽 눈을 가렸다.


“잘 보이시죠?”

“어? 네···”

“그것 보세요. 눈 하나 잃어도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하지만 약을 못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견딜 수 있으세요?”

“아니요.”

“답이 나왔네요. 눈은 없어도 살지만, 약 없이는 못 산다. 그렇다면 약을 선택하셔야죠. 어떤가요, 저의 제안이?”


마약중독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네요.”

“잘 결정하셨습니다. 바로 빼실까요? 박 주임?”


가게 구석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언더아머 운동복 차림의 문신충이 의자에서 일어나 마약중독자를 안내했다.


“고객님, 저 따라오세요.”

“네에···”


언더아머 문신충이 상가 뒤로 돌아갔다. 쓰레기통 옆에 철문이 있었다. 그가 철문에 달린 안면인식 장치에 얼굴을 가져갔다.

안면인식 장치가 푸른빛을 뿜어 문신충의 얼굴을 스캔한 뒤 자물쇠를 풀었다.


- 철컥


문이 열렸다.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문신충을 뒤에서 끌어안고 양쪽 폐를 한 번씩 찌른 뒤 목을 그었다.

죽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도비닉이 유지되었다. 마약중독자는 나에게 머리를 맞고 이미 기절했다.

나는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작업실이었다. 또다른 언더아머 문신충 여러 명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약을 작은 봉지에 나누어 담았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 냉장고에 보관했다. 연관 산업이 한데 모여 효율을 창출했다.

구석에 놓인 스피커에서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과연.

문신과 힙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농부가 모내기를 하며 노동요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잘 됐다.

나는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베이스 소리에 맞추어 조직원을 하나씩 처리했다.


10초, 20초, 30초.

뒤통수, 관자놀이, 심장.

피, 뼈, 힘줄.


작업은 금방 끝났다. 1분 20초가 걸렸다. 에너지 350칼로리를 소모했다.

불만족스러웠다. 나는 더 빨라져야 한다.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이 죽여야 한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나는 주머니에서 감자를 꺼내 먹었다. 에너지가 약간 보충되었다.


문득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 지이잉


날카로운 청력이 시끄러운 음악 사이에서 모터의 소음을 감별했다. 나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철문이 열리고 손에 종이박스를 든 조직원이 작업장 안으로 들어오다가 동료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운반물을 떨어뜨렸다.

상자가 찢어지며 마약이 쏟아졌다.


“으··· 으···”


놈이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윗사람에게 보고를 하러 본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했다.

일망타진의 기회.

나는 놈의 뒤를 밟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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