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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암살의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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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3.20 11:11
최근연재일 :
2022.03.30 09: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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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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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수 :
4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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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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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흔적(1)

DUMMY

나는 왕 사장이 스마트폰을 확인할 동안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배가 또 고팠다. 나의 육신은 열량 보충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더플백을 열었다.

비닐봉투 안에 감자가 두 개 남아 있었다.

서울에 들어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식량이 거의 다 떨어졌다. 식량을 소모하는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게 빨랐다. 감자 한 봉지로 3일은 버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밥 먹는 하마였다.

식량.

칼로리.

생존 유지 비용.

그것이 나의 약점이다.

왕 사장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흥분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다. 노련한 중개인마저도 지나치게 빠른 일처리 효율에 당황했다.


“김대형의 전화기가 맞아. 제대로 가져왔어. 심지어 손가락까지 잘라올 줄은··· 예상을 못 했는데. 창의적인 일처리 방식이야.”


내가 감자를 삼킨 뒤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왕 사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아니라고 말하기가 힘들구만. 과격하긴 한데, 확실해. 평범한 해결사는 의뢰 목표의 소지품에서 지문을 떠 오거든. 3D 프린터로 지문을 복사할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물론 원본을 가져오는 게 가장 정확하지. 위험해서 문제야. 자네는 조폭 두목의 손가락을 어떻게 잘라왔어? 잘 때 몰래 뽑았나? 마취제를 썼어?”


내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죽였습니다.”


왕 사장이 혀로 입술을 핥은 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우려낸 지 오래 되어서 미지근하고 텁텁했다.


“거짓말은 안 돼. 조사하면 다 나와.”

“저는 정보상에게 거짓말을 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죽였어? 김대형은 자기 본거지에서 거의 안 나오는데. 그 놈 집무실 앞에 중무장한 경호원만 수십 명이야.”


비결은 단순하다.

노스힐 인더스트리의 보스는 집무실 앞에만 경호원을 배치했다. 창문 바깥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23층 건물 바깥에서 침입했다.

죽은 놈을 멍청하다고 욕할 생각은 없다. 그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평범한 인간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고층 건물의 꼭대기층으로 올라간다. 그러니 경호원을 문 앞에 배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내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말했다.


“제 나름의 수단을 썼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영업비밀입니다.”

“으음···”


왕 사장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내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감을 못 잡는 듯했다.

그가 마침내 인상을 폈다.


“오케이. 방법은 상관없지. 결과만 가져오면 되니까.”

“의뢰 해결입니까?”


그가 끄덕였다.


“그래. 성공이야. 완벽하게. 물론 자네 때문에 길거리가 당분간 시끄러워지겠지만. 크크크.”

“좋으십니까?”

“당연하지. 세상이 어지러워야 우리 가게 장사가 잘 되거든.”

“축하드립니다.”

“칩 내밀어. 돈 줄게.”


왕 사장이 내 손등에 달린 마이크로칩에 암호화폐 1억5천만 원을 입금했다. 이로써 내가 가진 재산은 약 1억6천95만 원이 되었다.

확실해서 좋았다. 왕 사장은 약속한 돈을 깔끔하게 지급했다. 지저분한 핑계를 대지 않았다.

예전에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때는 편의점 점주가 요즘 경기가 어렵다느니 내가 인상이 더러워서 가게에 손해를 입혔다느니 별의별 이유를 들어 급여 지급을 미루었다.

그에 비하면 왕 사장은 모범 고용주였다. 앞으로도 이 업체와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 듯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돈을 벌 만큼 벌었으니 며칠 쉬다가 오겠습니다.”


왕 사장이 따라서 일어났다.


“정말로 다시 올 거지? 노스힐 인더스트리의 잔당한테 맞아 죽는 거 아니지?”

“그들은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흐흐. 훌륭해. 잘 가게. 또 보자고. 나갈 때 명함 챙겨 가고. 나는 여기에서 먹고 자니까 언제든지 찾아와.”


나는 짐을 챙겨 심부름센터에서 떠났다.


-


심부름센터 사무실의 문이 닫히고 복도가 조용해졌다. 왕 사장이 잠시 기다렸다가 가게 출입문을 걸어잠근 뒤 카운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줄리아, 잠깐 나와라.”


사무실 벽면에 놓인 장식장이 옆으로 움직이더니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그 안에서 금발의 미녀가 나타났다.

황인과 백인의 혼혈이었다. 그녀는 손에 드라이버를 들었고 얼굴에는 고글을 썼다.

줄리아가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리며 물었다.


“왜요, 할아버지?”


왕 사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신인 해결사가 찾아왔다. 하룻밤만에 의뢰 두 건을 해결했어. 백만 원짜리, 그리고 1억 5천만짜리.”


줄리아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인상적이었다.


“1억 5천? 그거 일반 등급 의뢰 중에서 가장 비싼 것 아니에요?”

“맞다.”

“꽤나 어려운 임무였을텐데. 그걸 신입한테 맡겼어요? 왜? 요즘 해결사가 그렇게 없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이걸 봐라.”


왕 사장이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과 손가락을 가리켰다. 노스힐 인더스트리 보스의 물건이었다.

줄리아가 잘린 손가락을 드라이버로 쿡쿡 건드리며 감탄했다.


“와우. 핸드폰에 지문 인식 장치가 걸려 있으니까 지문까지 잘라왔네. 이걸 하룻밤만에 어떻게 가져왔지? 대단하다.”


왕 사장이 탄식했다.


“나도 모른다. 그 녀석한테 이런 의뢰가 있다고 말했더니 주머니에서 갑자기 물건들을 꺼냈어. 마치 겸사겸사 얻었다는 듯.”

“겸··· 사겸사? 무슨 뜻이에요? 발음 귀엽다.”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의미다.”

“꿩?”


왕 사장이 영어로 말했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죽인다.”


줄리아가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그런 뜻이구나. 한국어 아직 어려워. 그런데 이거 겸사겸사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에요?”

“아니지. 나름 실력 좋은 해결사들이 이 의뢰를 맡았다가 전부 죽었다.”

“그런데 오늘 나타난 신입이 뚝딱뚝딱 해결했다요?”

“맞다.”

“와우. 어떤 사람이길래? 궁금하다.”

“그 녀석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겠니?”


줄리아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풀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CCTV 해킹하면 돼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모니터에 각종 문자가 스쳐 지나가고 CCTV 화면이 잡혔다. CCTV는 성북 힐스테이트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줄리아가 모니터를 짚었다.


“녹화 영상을 거꾸로 돌려볼게요. 신입 해결사가 노스힐의 보스를 오늘 처리했다면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을 거예요.”


영상이 거꾸로 재생되었다. 일진 양아치 문신충 조직원들이 아지트 입구를 뒷걸음질로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외부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줄리아가 갈색 눈썹을 찡그렸다.


“없어. 안 보여. 조직원들만 들어갔다 나갔다 해. 그 사람 어떻게 생겼어요?”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문신은 없다.”

“정말? 홀리. 요즘에 누가 그렇게 입고 다녀? 눈에 확 뜨일 텐데.”

“이 영상에서는 눈에 안 뜨이는구나.”

“그러네. 변장? 뭐야? 으으, 자존심 상해.”


줄리아가 CCTV 영상을 앞으로 뒤로 몇 차례 돌려보았다. 그러나 청바지에 남방 차림의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의자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으아, 몰라. 포기. 나중에 그 사람 오면 직접 물어볼래. 이름이 뭐예요?”

“김민철.”

“활동명 치고는 엄청 흔하네. 남들은 막 사신, 고스트, 이렇게 짓는데. 진짜 내추럴 본 어쌔신이다.”


왕 사장이 화면 속 건물의 위쪽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는 뭐냐?”


줄리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먼지.”

“확대해 봐라.”

“할아버지 시력 안 좋아? 카메라 렌즈에 먼지 묻은 거잖아요.”

“어서.”


줄리아가 투덜거리며 화면을 확대했다. 두 배, 네 배, 여덟 배.

화면이 확대될수록 먼지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이었다. 그는 23층 건물 외벽에 붙어 있었다.


김민철.


줄리아가 숨을 들이쉬었다.


“미친놈.”


왕 사장이 희열을 드러냈다. 보물을 발견한 고고학자의 눈빛이었다.


“크크크. 김민철. 인재다. 암살의 천재야. 복덩이가 스스로 굴러왔어. 줄리아, 저 녀석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우리 센터의 전속 해결사로 끌어들여야 해. 그러면 매출 열 배도 꿈이 아니다.”


그가 자본주의자의 미소를 흘렸다.


-


밤이 깊었다. 새벽 세 시.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잠들었고, 마약에 취한 사람들은 버려진 건물로 숨었다.

나는 길을 걸었다.

손님을 유혹하던 삐끼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오로지 밥벌이 걱정 없는 금수저만 아침까지 달린다.

나는 배가 고팠다.


음식점이 보인다. 24시간. 김밥의 천국.

내가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포장 됩니까?”

“그럼요.”


한쪽 팔이 기형적으로 구부러진 아주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뭘로 드릴까요?”


메뉴판이 두 개였다. 하나는 가격이 저렴했고, 다른 하나는 가격이 비쌌다.

김밥 한 줄에 5천 원. 혹은 5만 원.

내가 물었다.


“똑같은 김밥인데 어째서 가격이 다릅니까?”

“음식에 바이러스가 많이 섞여 있으면 싸고, 바이러스가 적게 섞이면 비싸죠.”


바이러스가 몸에 누적되면 질병이 생긴다. 나는 아프기 싫다.


“비싼 메뉴로 주십시오. 김밥 10줄, 떡볶이 10인분.”


김밥집 아주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잔치하세요?”


나는 음식 값을 치렀다. 백만 원. 김밥집 아주머니는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 A급 재료를 모조리 꺼내 김밥과 떡볶이에 퍼부었다.

VIP 고객이었다.

포장된 음식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비닐봉투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깡마른 거지가 깨진 유리조각을 들고 다가왔다.


“씨벌놈아. 그거 내놔. 얼른.”


나는 거지를 무시한 채 호텔을 향해 걸었다. 거지가 유리조각을 흔들며 나를 따라오다가 걸음이 뒤쳐지자 이내 포기한 뒤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호텔은 깔끔했다. 인테리어가 멀쩡하고, 번화가 특유의 시큼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주변에서는 고급이었다.

와이셔츠 차림의 카운터 직원이 체온계 비슷하게 생긴 기계를 내밀었다.


“감염도 체크하겠습니다.”


기계가 내 손목에 닿자마자 결과를 출력했다.

바이러스 감염도 0.3퍼센트. 극히 양호.

호텔 직원이 열쇠와 세면도구를 건넸다.


“303호입니다.”


나는 방으로 올라갔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방은 모텔이었다. 더블베드에 작은 냉장고. 싸구려 노트북. 천장에 달린 거울. 그리고 통유리 욕실이 있었다.

1박에 30만 원.

나는 오늘밤 식비와 숙박비로 벌써 130만 원을 지출했다.


돈 먹는 하마.


물론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 바이러스에 절여진 음식을 먹고 잠은 버려진 집에서 자면 된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나는 몸을 아껴야 한다. 육체가 내 재산이다.

나는 김밥 10인분과 떡볶이 10인분을 꾸역꾸역 먹었다.


[에너지가 보충됩니다. 김밥 5000kcal, 떡볶이 4000kcal.]

[에너지 비축량 92 퍼센트.]

[주의! 탄수화물이 너무 많습니다. 단백질과 비타민도 섭취하세요!]


농업이 망가진 시대에 비타민을 섭취하기는 쉽지 않다. 전염병 때문에 인구가 줄어드니 농촌에 사람이 없고,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농작물도 생산되지 못한다.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이 만성적인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거지,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이가 성한 사람이 별로 없다.

수입산 과일?

수입이 잘 안 된다. 전염병 때문에 국경이 봉쇄된 탓이라고 음식점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나는 식사를 끝낸 뒤 냉장고를 열었다. 오렌지 주스가 있다. 한 캔에 2천 원.

음료수 겉면에 바이러스 오염도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다.


[오메가 바이러스 오염도가 겨우 4.5퍼센트!]

[스무 캔을 마셔도 죽지 않아요!]


바이러스 오염도가 100퍼센트에 다다르면 죽는다. 모텔 냉장고에 들어있는 오렌지 주스는 오염도가 4.5퍼센트이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20캔을 연달아 마셔도 오염도는 90퍼센트까지만 오른다.

23캔을 마셔야 죽는다.

마셔야 할까?

아니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의 바이러스 오염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느낄 수 있었다. 바이러스는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

물, 침대, 공기.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서서히 죽어간다. 예전에도 원래 그랬지만, 지금은 속도가 더 빠르다.

안전한 음식, 안전한 숙소, 안전한 물은 비싼 돈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다.


돈.

시간.

생명.

어머니와 동생.


나는 50년만에 푹신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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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치병(2) 22.03.21 480 10 11쪽
1 불치병(1) +1 22.03.21 659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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