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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림 님의 서재입니다.

절대검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한유림
작품등록일 :
2013.06.08 20:22
최근연재일 :
2013.08.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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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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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된 설정쳅터인 무림천하를 올립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보셔도 좋습니다.
















- 무림천하(武林天下) -


 


 


주원장이 중원을 수복한지 백 년, 그러나 천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황제는 장생술과 방중술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정치는 환관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다.


보다 못한 번왕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양명 같은 신하들에 의해 좌절 되었다. 나라는 몇 안 되는 충신들이 지탱해가는 위태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번왕들의 반란이 의외로 쉽게 진압되자 황제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게 되었고, 더욱 타락해갔다.


궁밖에 나가 아녀자를 겁탈하는 것은 물론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신분과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충언을 하는 신하는 귀향을 보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장수는 목을 베었다.


황제의 폭정은 이제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망한 충신들은 줄줄이 조정을 떠났고, 용맹한 장수들은 검을 내려놓았다.


중원을 둘러싼 상황마저 심상치 않았다. 남쪽에서 십만마도라 불리는 마교도가 그 세력을 급격히 늘리며 중원을 위협했고, 북쪽에서는 몽고족이 예전의 힘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무림맹은 황제의 타락과 관리들의 무능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떻게든 나라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삼백 년 전, 무림맹은 황제의 타락과 관리들의 무능을 방관했다.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해묵은 법칙을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몽고족은 대거 침입해 중원을 유린했고, 백 년 간 백성들은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무림맹 열사들은 이러한 일이 반복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무림맹의 대연회가 절강성 항주에서 열렸다. 연회의 주제는 당연히 ‘타락한 황제에게서 중원을 계속 맡겨야 하는 것인가?’였다.


황제의 직속 기관인 동창과 금의위는 무림맹의 대연회를 반적들의 모임이라 낙인찍고 진압에 나섰다.


과거 조정은 수천 또는 수만의 군대를 파견해 무림인들의 봉기를 손쉽게 제압하곤 했다. 동창과 금의위는 이번에도 똑 같이 대응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림맹 쪽이 달랐다. 무림맹에는 제갈현이라는 불세출의 기재가 존재했던 것이다.


제갈현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연의 차남으로 그 재주가 다섯 형제들 중에 가장 뛰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제갈연은 제갈현이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갈현은 열다섯이 되던 해에 제갈세가를 떠나 무당산에 올랐다. 그리고 오년 뒤, 그는 무당산에서 출가했다.


제갈현의 포부는 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제갈세가 안에서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고,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리라 다짐했다.


무당파 도사가 된 제갈현은 의협으로 강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제갈세가의 각종 기문진법과 무당파의 무공을 합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시했는데, 무당파에서는 이를 현원법이라 불렀다. 제갈현의 이 현원법은 당해낼 자가 없었고, 그는 곧 무당칠협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제갈현은 무당칠협에 그 이름을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무림맹의 군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 그는 부맹주 자격으로 항주에서 열린 대연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이 대연회에서 그는 드디어 부자를 때고 무림맹주란 칭호를 손에 넣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창의 환관들은 이 대연회를 막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무림맹주가 된 제갈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군대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는 과거와 같은 실패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무당의 무공과 제갈세가의 병법이 있었다.


제갈현은 싸움이 시작되기 전 의형제인 팽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관군의 수가 열이라면 한 사람의 고수가 능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백이 되면 그렇지 못하다. 우세를 점하는 것은 관군이 되고 만다. 그리고 천이 되면 무림인은 몇 명이 되던 도망칠 수밖에 없다.


제갈현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림인들이 배운 무공은 군대와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인들의 무공은 일대일 또는 일대다의 싸움을 가정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무림인들에게 수천수만의 관군과 싸우는 수법은 필요하지도 않았고, 또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제갈현은 무림인의 특성은 물론 관군의 특성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관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관군은 정면 대결에 강하다. 밤보다 낮에 강하고, 특히 머릿수가 많아지면 배로 강해진다. 하지만 관군은 유연성이 부족하고 겁이 많다. 게다가 상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휘부가 잘려나가면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는 이 점을 노려야 한다.’


제갈현 토벌군과 직접 칼을 맞대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항주에 모인 오천 영웅들 중 무공이 뛰어난 오백 명의 고수를 선발했다.


제갈현은 이들을 이끌고 항주부 주변 관청을 공격했다. 많아야 십수 명이 지키는 관청들은 무림 고수의 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지현들이 습격당했다는 비보가 들려오자 강소성을 다스리는 포정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포정사는 무림맹 고수들이 자신의 관청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포정사는 즉시 토벌군을 지휘하고 있는 도지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좌군도독부의 지휘를 받는 도지휘사가 성의 민정을 담당하는 포정사의 말에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도지휘사는 토벌군을 회군시켰다. 강소성 문신의 우두머리인 종이품 대관 포정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토벌군이 회군하자 연회에 참석한 영웅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영웅들은 앞을 다투어 제갈현의 지혜를 찬양했다.


제갈현은 별것 아니라며 다음 싸움을 구상했다.


그가 사용한 병법은 널리 알려진 손빈의 병법이었다.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


 


공격하는 적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는 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적의 수뇌부를 공격해 공격을 되돌리는 수법.


동창의 환관들은 제갈현의 이 같은 병법에 놀랐고, 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틀 뒤, 환관들은 황제에게 강소성에서 십만의 반란군이 일어났고, 제갈현이 반란군의 우두머리라 보고했다.


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다.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반란군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삼십만 대군이 무림맹을 토벌하기 위해 북경을 출발했다.


때는 입춘이 막 지난 초봄, 오천의 군웅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삼십만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진군했다.


황제가 이렇게 많은 대군을 동원한 것은 무림 고수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무림맹이 다시는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지 못하게 철저히 짓밟아 주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무림맹의 새로운 맹주 제갈현은 삼십만 대군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


대군이 북경을 출발하자 제갈현은 경공의 고하를 기준으로 오백의 고수들을 선발했다.


고수들은 경공 실력에 따라 다섯 명씩 백여 개 조로 나뉘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은 하북과 강소, 산동성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들이 잠입한 세 지방은 대군이 항주를 토벌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고수들의 목적은 이 세 지방을 다스리는 지부와 현령들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경공의 고수답게 그들은 재빨리 움직였고, 겨우 보름 만에 임무를 완수했다.


하북, 강소, 산동의 수많은 지현이 우두머리를 잃은 채 휘청거렸다.


이 소식을 들은 오군도독부의 장군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군의 진격로에 그들을 지원할 관리들이 없다면 보급이 불가능했다. 보급이 되지 않는 대군은 배가 없는 뱃사공, 마차가 없는 마부와 같았다.


제갈현은 대군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보급선을 공격해 그들을 막아낸 것이다.


조정은 납치 된 관리들을 대신할 자들을 선발해 급히 파견했다.


이런 조정의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대군은 하북에서 한 달 이상 발이 묶이고 말았다.


보급이 늦어지자 대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고, 이어 군기가 문란해졌다.


장군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병사들이 많아졌고, 초병들의 경계 또한 느슨해졌다.


제갈현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삼십만 대군이 머물고 있는 하북으로 이백 명의 일류 고수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앞서 관리들을 납치한 고수들보다 더욱 뛰어난 자들이었다.


고수들은 야음을 틈타 군영에 침투했다. 그들의 목표는 대군의 생명줄인 군량이었다.


군량창고를 지키는 병사들은 접근하는 고수들의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병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초병들을 제거한 고수들은 지체 없이 군량창고에 불을 놓았다.


시뻘건 불길이 오장 높이로 솟아올랐다.


두 시진, 겨우 두 시진만에 삼십만 대군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식량창고 여섯 개가 불에 타고 말았다.


대군은 전투를 벌일 때에는 매우 유용했으나 전투를 벌이지 않고 있을 때는 그 반대였다. 싸우지 않는 대군은 엄청난 군량을 먹어치우는 아귀에 지나지 않았다.


상황이 악화 되자 대군을 지휘하고 있는 대장군은 황제에게 회군을 청했다. 그러나 아둔한 황제와 고집 센 대신들은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황제는 자신이 성군이며, 뛰어난 전략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제가 대장군에게 내린 명은 군량을 자체 조달하라는 것이었다.


자체조달, 말은 그럴싸했지만 한 마디로 주변 마을과 도시를 약탈하면서 싸우란 뜻이었다. 대장군은 탄식했고,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군영 곳곳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이 생겨났다. 이로써 대군의 위세는 흐릿해 지고 말았다.


무림맹 고수들의 습격은 군량을 태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밤이 되면 하나둘 군영에 침입해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과 장수를 살해하고 해가 뜨기 전에 사라졌다.


대장군과 수하 장군들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며칠 사이 살해 된 천총만 서른둘이었고, 백 명을 지휘하는 백호의 시체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삼십만 대군은 이제 밤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대군은 고수들을 막기 위해 숙영지 주변에 깊은 해자를 파고 높은 담을 세웠다.


하지만 무림 고수들에게 이러한 장애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림 고수들은 담을 넘어 군영 안으로 들어왔고, 또 다시 보초들을 살해했다.


불안한 군심과 지체되는 보급, 탈주하는 병사들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급해진 대장군은 재차 상소를 올렸다. 대군이 위기에 빠졌으니 이를 구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조정에서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면 회군하겠다는 협박까지 상소에 담았다.


황제는 어리석었으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관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은 탐욕스러웠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동창의 우두머리인 제독동창 곽위영은 삼십만 대군을 구하기 위해 북경에서 고수를 파견하기로 했다.


동창은 물론 서창과 금의위에서 고수들이 차출 되었다. 그 수는 무려 삼천, 조정의 녹을 먹고 있는 고수의 팔 할에 이르는 막대한 숫자였다. 이만한 숫자면 무림맹 고수들의 침입을 격퇴하고도 남았다.


곽위영이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차출한 것은 대군의 보호는 물론 소림과 무당 같은 명문 대파에 대한 공격까지 함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제갈현이 바라마지 않던 것이었다.


제갈현은 황궁에서 고수들이 파견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싸움은 이겼다.’


제갈현은 한수가 아닌 두수 세수를 내다본다고 해서 도호마저 삼수진인이었다. 곽위영의 행동은 제갈현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고, 오히려 그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말았다.


제갈현은 삼십만 대군을 괴롭히고 있는 고수들의 수를 두 배로 늘린 뒤, 북경으로 전서구를 띠웠다. 그가 미리 북경에 잠입시켜 둔 해결사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북경에 잠입한 자들은 강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들뿐이었다.


각 문파에서는 이들을 그림자라 불렸다. 그들은 비밀리에 누군가를 죽이거나 납치할 필요가 있을 때, 이름이 알려진 자들을 대신해서 나서는 자들이었다.


그림자들은 음지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무공은 물론 은신술과 추적술에 정평이 나 있었다. 방비가 허술한 황궁에 이들이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승리는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럼에도 제갈현은 신중했다.


그는 그림자들이 황궁에 침입하기 전, 개방 고수들에게 명을 내려 북경성의 남문과 북문에 불을 지르고 수문장과 병사들을 습격하게 했다.


사례감과 동창은 이 미끼를 물었다. 그들은 황궁에 남아 있던 고수들 중 절반을 보내 개방의 공격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금군을 시내 곳곳에 보내 소요를 막았다. 그 결과 북경시내는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황궁이 비게 되었다.


황궁에 남은 고수의 수는 겨우 이백 명, 남은 자들은 숫자도 숫자였지만 질적으로도 많이 부족했다.


황궁에 남은 자들 중 일류 고수는 동창의 우두머리 곽위영을 포함해 열 명 남짓, 지금까지 황궁에 이처럼 고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다.


곽위영은 무림맹이 황궁을 향해 공격하더라도 시내 곳곳에 배치한 금군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제갈현이 어떤 사내이던가? 그는 이미 황궁과 인접한 곳에 그림자들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곽위영이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낀 순간 열여섯 명의 고수가 황궁으로 잠입했다.


그들은 전부 그림자였다.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담을 넘어 황제의 거처로 들어섰고, 단 일격으로 황제를 호위하는 고수들을 침묵시켰다. 그림자들에게 황궁의 무공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제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림자를 이끄는 자가 대답했다.


‘바로 당신의 목숨.’


황제는 물론 사례태감이었던 중승과 동창의 우두머리 제독동창 곽위영까지 한 자리에서 살해당했다.


뒤늦게 뛰어든 금의위 수장 박헌도와 병부상서 이태전은 황태후와 나머지 황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자들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무림맹과 조정의 전쟁은 끝이 나고 말았다. 삼십만 대군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해산 되었고, 천하는 황제가 아닌 무림맹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갈현은 명실상부한 천하의 주인이 되었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그는 고수들을 파견해 관청을 지켰으며, 악덕 상인과 탐관오리들을 처벌했다.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이 성과 마을을 지키게 되니 치안 상황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무림맹을 칭송하기 시작했고, 각 문파는 무공을 배우려는 문하생들로 붐볐다. 바야흐로 무림맹의 천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교 교주 왕도산, 그는 제갈현 못지않은 기재였다. 왕도산은 중원이 무림맹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탄식했다.


‘제갈현이 한 발 빨랐구나.’


일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왕도산은 중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승리를 위해 중원 진격의 시기를 앞당겼다.


그 결과 왕도산은 제갈현이 예상한 것보다 무려 삼 년이나 빨리 중원으로 쳐들어왔다.


십만마도라 불리는 마교의 십만 교도들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강남을 휩쓸었다. 제갈현은 그들이 강남을 휩쓰는 동안에도 힘을 기르며 고수들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 년 뒤 왕도산이 이끄는 십만마교도는 북상을 시작했다. 제갈현은 수하들에게 때가 되었다고 말을 한 뒤, 직접 고수들을 인솔해 산동성 태안에서 그들과 마주했다.


정사대전이라 불리는 싸움이 삼일 동안 밤낮으로 벌어졌다. 고수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뤘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 치열한 싸움의 끝에 승리한 쪽은 무림맹이었다. 마교의 교주 왕도산은 전사했고, 그와 함께 북상한 십만 교도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무림맹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십장로라 불리는 절정 고수들의 협공에 맹주인 제갈현이 쓰러졌고, 소림사의 백팔나한, 화산파의 매화검수, 무당파의 칠십이검자가 차례로 쓰러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명문대파 고수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쓰러졌다. 때문에 정사대전이 끝난 뒤, 무림맹은 맹의 판도를 다시 짤 수밖에 없었다.


제갈현의 후계자이자 의형제인 팽도원은 구파일방이 아닌 오대세가와 삼대표국을 중심으로 무림맹을 재건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팽도원은 부활한 몽고족의 침략에 맞서 오년의 북원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몽고와의 전쟁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림맹에는 팽도원이 있었다. 그는 천하의 무림인들을 하나로 묶고 그 힘을 바탕으로 라바도마라는 언덕에서 몽고족을 격파했다.


무림맹은 북원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손해는 정사대전에 육박할 정도로 막심했다.


구파일방의 남은 전력이 이 싸움에서 소진 되었고, 오대세가와 삼대표국은 무림맹에 고수를 파견할 수 없을 만큼 세력이 약화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흘렀다. 대영웅 팽도원의 죽음. 이 사건은 무림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무림맹에는 그의 뒤를 이을 인재가 없었고, 천하는 솥밭처럼 갈라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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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 아키세츠라
    작성일
    13.07.13 20:09
    No. 1

    재밌습니다, 아주. 요새 볼만한 몇 안되는 무협중에 하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8 광무암무
    작성일
    13.07.17 05:53
    No. 2

    설정이 무척 마음에 드는군요.
    황제의 군대의 머리라 할 수 있는 환관과 장군들 상당수가 썩었다고 하더라도
    무림인들이 똘똘 뭉쳐 대병력을 어떻게 하면 무력화 시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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