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검마 - 이름을 얻다 01-
- 이름을 얻다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잘해야 아버지의 뒤를 잇는 소작농, 운이 나쁘면 흉년 동안 굶어죽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한 사내가 소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의 이름은 광천(廣天), 광천은 점창파의 고수였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무공에 재질이 있는 아이들을 찾아 점창파로 보내는 일을 맡고 있었다.
광천의 눈에 소년이 들어온 것은 삼 일 전이었다. 또렷한 눈동자와 튼실한 근골이 마음에 들었다. 절정고수는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잘 가르치면 일류고수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광천은 소년을 선택했다.
소년의 부모에게 은자 두 냥이 주어졌다. 부모는 그 돈을 받고 아이를 점창파에 넘겼다. 자신들은 물론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점창파는 소년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네 이름은 묵혼이다.”
소년의 사부는 그림자였다.
그림자란 각 문파에서 어두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림자가 있는 문파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문파였으며, 정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정파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없는 일을 그림자가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그림자에게 맡겨지는 일은 보통 살인이나 납치였으며, 이를 위해 그림자는 최고 수준의 무공과 은신, 추적술을 익혀야만 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기도 했다.
‘소림에는 그림자가 없다. 하지만 무당은 모른다. 그리고 화산에는 있다.’
사부는 원래 점창파의 정식 제자였다. 타고난 자질도 뛰어났고 머리도 명석했기에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단 하나 가문이 좋지 않기에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이 좋았다면? 그랬다면 점창파의 후기지수로 길러졌을 것이다.
사부는 제자인 묵혼처럼 소작농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묵혼을 동정하지도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 생각했다. 아무 배경도 없는 소년이 점창파 최고의 무공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점창파의 전면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점창파 최고수는 바로 그였다.
사부에게는 다섯 명의 제자가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묵혼처럼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사부는 그 아이들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묵혼은 사부를 만난 첫날,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사부는 엎어진 세 그릇의 공기 안에 주먹밥을 감춰놓고 묵혼에게 고르게 했다. 흔한 야바위였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묵혼은 두 번을 잇달아 틀렸고 그날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사부가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머리를 쓰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최고가 될 수 없다.”
묵혼은 밥이 들어 있는 공기가 매번 다른 공기들보다 낡고 때가 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주먹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다음 날은 그 반대로 깨끗한 공기에 밥이 들어 있었고, 묵혼과 제자들은 식사가 때가 되면 항상 사부와 머리싸움을 해야만 했다.
사부는 무공을 가르치기 전 살아남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
‘그림자는 문파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문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문파의 도움 없이 살아남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사부는 제자들을 목우산에 풀어놓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목우산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묵혼은 좌절하지 않았다. 산과 들은 그의 고향이었고, 친구였다. 소작농의 아들인 그는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무뿌리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사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형제들 중에는 화섭자 없이 불을 피울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단지 산에서 사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사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수련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목우산에 굶주린 들개를 풀어놓았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굶주린 들개는 무서운 상대였다.
사형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묵염이 몽둥이를 들었다. 그는 광천의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소년이었다.
묵염은 어부의 아들이었지만 체격이 좋았고, 당당함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아이였다. 광천은 망설임 없이 그를 점창파로 데려왔다.
묵염은 몽둥이를 휘둘러 잇달아 두 마리의 들개를 물리쳤다. 하지만 사형제들 모두가 무사할 수는 없었다.
“아앗!”
순식간에 막내인 묵영이 들개에 물려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은 앞다투어 큰 목소리를 냈다.
“사부님!”
“사부님! 묵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도와주세요!”
아이들은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사부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수련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사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과 달리 사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사형 묵염은 둘째인 묵혼에게 묵영을 돌보라는 명을 내렸다.
“묵영은 네가 지켜야 한다. 할 수 있겠지?”
묵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몽둥이를 들었다.
“예, 사형! 묵영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묵혼은 묵영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다시 한 명의 아이가 쓰러졌다. 아이는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요! 제발!”
하지만 사형제들은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없었다. 들개의 수는 십여 마리가 넘었다.
“사... 살려......”
들개들에게 물려 비명을 지르던 아이의 신음 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잠시 뒤 아이는 더 이상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들개에 물려 죽은 것이다. 사부는 죽어가는 제자를 구해주지 않았다.
묵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사부는 우리를 지켜줄 생각이 없다.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시험이다.’
그는 판단이 빨랐다.
“제기랄!”
묵염은 욕을 내뱉고는 나무를 향해 달렸다.
‘십 수 마리의 들개를 상대로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리고 약한 사형제들 역시 짐에 불과하다. 아직 포위망에 틈이 있을 때 돌파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다.’
묵염은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들개를 피하기로 했다. 나무 타기는 그의 주특기였고, 들개들이 따라 올라온다고 해도 나무 위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묵혼은 사부에 이어 대사형인 묵염마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사형!”
셋째인 묵광도 금방 알아차렸다.
“둘째 사형, 대사형이 우릴 버렸어.”
묵혼은 충격을 받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대사형 묵염의 장점이 빠른 상황판단이라면 묵혼의 장점은 침착함이었다.
묵혼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부러진 면은 뾰족해 찌르기에 좋았다. 그는 이런 나뭇가지를 여럿 만들어 부상당한 묵영의 주변에 꽂았다. 그러고는 묵영에게 말했다.
“그걸로 다가오는 개들을 찔러,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묵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잡았다.
“예, 사형.”
묵혼은 사제인 묵광을 불렀다.
“묵광, 옆으로 와서 불을 피워라.”
“불이라고요?”
“짐승은 불을 무서워해. 니가 불을 피울 수만 있으면 우리 셋은 살아남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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