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예 님의 서재입니다.

은하의 심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토마스코
작품등록일 :
2018.04.09 15:40
최근연재일 :
2018.08.06 18:29
연재수 :
107 회
조회수 :
138,256
추천수 :
2,770
글자수 :
528,074

작성
18.08.01 17:32
조회
598
추천
8
글자
13쪽

20. 여행 시작 (8)

DUMMY

사실 성진에게 이들을 도와야 할 의무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작별 인사를 하고 그냥 떠나더라도 그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생명을 구해주고, 병을 치유해준 뒤 잠시나마 의식주를 제공해 주었으니 감사해할 것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그만한 힘과 재력이 있었으니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그도 그냥 떠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넘치는 재력을 가지고 이들을 외면해도 된다는 것은 그의 머리 속에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능력이 있으니 상황에 따라 이 사람들을 돕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선행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법론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이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고 약간의 재물을 정착자금으로 나눠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체 중에 섞여 있는 몇 명의 어린이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른들이 겪는 고통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지만 저 아이들은?’


오랜만에 기운을 차리고 식사를 한 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수백 명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백 명의 장례를 간략하게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오랜만에 겪어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한 켠에서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시름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들에게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모두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족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죽음과 애도와 체념은 이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었고 거의 일상사나 마찬가지였다.


한 쪽에서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한 쪽에서는 깔깔대며 뛰어 노는 아이들이. 뭔가 부조화를 이루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것은 전생에서 많은 전쟁과 죽음을 겪은 성진으로서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삼삼오오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성진은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일은 아마 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라 점에 대해,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 희망이 거의 없다는 데 대해 불안감을 웃고 떠들면서도 언뜻언뜻 표출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성진을 어렵게 생각하여 간단한 인사만 하고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특히 거친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성진의 모습을 보고 모두 경외감을 느껴 근처에 오지 못하였다. 속으로는 다가가서 감사의 말을 표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다음 성진은 밤새 명상에 잠겼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성진은 전쟁에 휩쓸려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하지만, 그것을 휩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피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성진에게 아트만 연방군과 싸워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는 크게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여행을 계획한 이유 중에는 더 이상 전쟁이나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크게 한 몫을 하였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한 첫날부터 일이 꼬여 이 난민들의 일에 끼어들게 되었다.


성진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살고 죽거나 지구가 멸망하거나 하는 등의 일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게 되고 지구는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고 그 이전에 전 인류는 멸종할 것이었다. 아마 어쩌면 먼 옛날 인류 이전에 고등생물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지구의 데이노를 보면서 그 가능성은 무척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멸망을 기억하거나 애도하는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인류가 멸망해도 나중에 이를 애통하게 생각할 존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 그런 고등생물이 있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전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수백만 년, 수천만 년, 혹은 수억 년 전의 일들을 어찌 알겠는가. 수백 만년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한국 사람들은 발해, 고구려, 옛 조선 등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몇백 년 전의 조선 시대 풍습도 다 잊고 있었다. 예를 들어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까지도 남존여비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전통적인 유교적 사상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고려시대나 조선 중기 이전에는 여자들의 권리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출가외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시집간 딸들에게도 아들들과 똑 같이 유산을 나눠줄 만큼 말이다. 하지만 단 일이백 년 만에 그 전통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왜곡된 시선으로 역사와 전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몇백 년 전의 일만 해도 이러니, 인류 이전에 다른 고등생물이 존재하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훗날 인류가 멸망한 뒤 새로운 고등생물이 나타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아등바등해봤자 별 의미는 없다고 성진은 생각했었다. 이것은 성진이 성격이 모질거나 사상이 허무주의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자신도 그런 인류의 일원이었으므로 결국에는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이 허무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성진은 그렇게 생각하는 단계는 예전에 초월하였다. 이 세상은 단순히 그런 관점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허무하지만 또한 허무하지 않기도 하였다. 인류나 지구가, 나아가서는 우주 전체가 멸망하는 것은 허무하게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단순히 삼차원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요가나 불교 등의 참선이 우수한 이유였다. 삼차원의 의식세계를 벗어나서 진리를 찾아나갈 길을 제시하여 주기 때문이었다.


문득 성진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였어도 처음에는 엮이는 것을 마다했었다. 자신이 나서봤자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를 따라나선 후에는 나중에 생명이 갉아 먹히게 될 만큼 열심히 일을 하였다.


성진은 그런 내용을 읽으면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을 약간 비웃었었다.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한 데 대해. 그리고 기왕 나섰으면 성공을 해야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낸 데 대해. 만약 그가 제갈공명이었다면 결코 유비를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기는 했지만, 성진은 제갈공명이 범했던 우를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봤자 세상은 크게 바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제갈공명의 입장이 다른 측면에서 이해가 되고 있었다.


‘어차피 훗날의 성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가 중요한 것이지.’


***


먼동이 터오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막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새 꼼짝 않고 결가부좌를 한 채 명상을 하고 있는 성진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모두 조용조용 말을 하였다.


성진은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성진은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네.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잘 잤습니다. 그런데 주무시지 않고 여기 계속 계셨던 것입니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성진의 인사를 받아주며 다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제게는 이게 자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성진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고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성진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전날에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진이 스스럼 없이 잡담을 나누자 사람들은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성진은 타이탄을 다시 소환하여 음식을 꺼내 아침식사를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주었다.


“식사를 제공하는 타이탄이라,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데 원래 타이탄이 이렇게 음식들을 보관하는 것일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만 해도 처음인데.”


“하기는 신기한 건 음식뿐만이 아니지. 이런 막사는 어떻고. 아공간 창고라는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물자가 나오는 아공간 창고는 들어본 적도 없어.”


“그나저나 식사를 끝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다시 가낭으로 가면 되나? 가는 길에 음식과 물을 좀 주시려나? 설마 다시 공격 받지는 않겠지? 공격받지만 않으면 며칠 내로 도착할 수 있을······”


“아악! 저기 몬스터다!”


말이 씨가 된다고, 멀리서 몬스터 세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일어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성진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몬스터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갑자기 모두 쓰러졌다. 성진이 가볍게 무형의 검강을 날려보내 1km 밖의 몬스터들을 죽인 것이었다.


“휴, 감사합니다. 아마 마카트라들이 전에 풀어놨던 몬스터들이 떠돌아 다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온 모양입니다. 최하급 몬스터들에 불과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저도 혼자서는 저놈들을 다 상대하기는 어렵고요. 보호해야 할 사람들만 없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겠지만.” 아르망이 성진에게 말했다.


“저 몬스터들에게도 영혼석이 있을 거니 챙겨야겠군요.”


“제가 하겠습니다.” 아르망은 이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달려가서 세 개의 영혼석들을 채취하여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아르망은 가지고 온 영혼석들을 성진에게 내밀며 말했다.


“제게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가지십시오.”


“네? 하지만, 이 귀한 것들을··· 더구나 저놈들은 진 님께서 처치하신 건데······”


“그보다 사람들이 식사를 다 마친 것 같으니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해야겠군요.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아르망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엉거주춤 대답했다.


‘앞으로의 일이라···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 것일까?’


아르망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성진 앞에 모두 모여들었다.


“여러분이 가낭으로 가던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제가 가낭에서 본 것과 300번 지구의 상황을 근거로 추론해 보니 여러분들이 그곳에 가도 나중에는 몰라도 한 동안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진의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마 원래 계획했던 대로 5주쯤 전에 가낭에 도착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때는 가낭이나 300번 지구에도 아직 난민들의 수가 많지 않았으므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었을 거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도 사방에서 몰려든 난민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반기지 않을 것이 뻔했다.


성진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나마 지구연맹에서 신경을 써줘서 300번 지구와 협정을 잘 맺어놨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난민 캠프로 가게 될 거고 약간의 구호물자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나중에 사정이 좋아질 수도 있고요. 많은 기업들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난민 캠프는 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적들의 공격 사정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진의 말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은 약간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이에 여러분에게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하의 심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은하의 심장 (이 많은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2 18.04.25 2,700 0 -
107 20. 여행 시작 (10) +2 18.08.06 603 11 12쪽
106 20. 여행 시작 (9) 18.08.02 588 11 13쪽
» 20. 여행 시작 (8) 18.08.01 599 8 13쪽
104 20. 여행 시작 (7) +1 18.07.30 637 8 13쪽
103 20. 여행 시작 (6) 18.07.27 667 11 12쪽
102 20. 여행 시작 (5) +1 18.07.24 696 12 13쪽
101 20. 여행 시작 (4) 18.07.23 695 14 13쪽
100 20. 여행 시작 (3) +4 18.07.20 757 17 12쪽
99 20. 여행 시작 (2) 18.07.18 851 13 12쪽
98 20. 여행 시작 (1) +1 18.07.16 785 14 12쪽
97 19. 천외천의 초인 (11) 18.07.12 812 15 12쪽
96 19. 천외천의 초인 (10) +1 18.07.10 822 13 11쪽
95 19. 천외천의 초인 (9) 18.07.09 815 16 12쪽
94 19. 천외천의 초인 (8) +1 18.07.06 841 18 12쪽
93 19. 천외천의 초인 (7) 18.07.05 828 22 13쪽
92 19. 천외천의 초인 (6) 18.07.03 864 17 12쪽
91 19. 천외천의 초인 (5) 18.07.02 865 18 13쪽
90 19. 천외천의 초인 (4) +2 18.06.29 881 20 13쪽
89 19. 천외천의 초인 (3) 18.06.28 890 19 12쪽
88 19. 천외천의 초인 (2) +1 18.06.26 921 21 12쪽
87 19. 천외천의 초인 (1) 18.06.25 928 25 12쪽
86 18. 제11군단의 침공 (10) 18.06.22 939 23 14쪽
85 18. 제11군단의 침공 (9) 18.06.21 906 24 12쪽
84 18. 제11군단의 침공 (8) 18.06.20 932 25 13쪽
83 18. 제11군단의 침공 (7) +2 18.06.19 960 23 12쪽
82 18. 제11군단의 침공 (6) +1 18.06.18 953 28 12쪽
81 18. 제11군단의 침공 (5) +1 18.06.16 984 24 15쪽
80 18. 제11군단의 침공 (4) 18.06.14 1,004 30 13쪽
79 18. 제11군단의 침공 (3) +1 18.06.12 998 2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