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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시간 멈추고 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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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1.02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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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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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31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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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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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소고기집 상남자들

DUMMY

“헛수고겠죠? 가드에 막혔는데 벌써 이쪽 손은 나갔으니까, 빈 자리는 더 위험해질 거고, 스트레이트 냈을 때보다 훅 냈을 때가 주먹 원위치 시키는 게 더 힘들 거니까.”


“훅 연습을 할 때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상대방 가드를 상상하면서 해야 돼. 알겠냐? 자기 얼굴 상대방한테 내주고, 내 면상 네 훅으로 좀 세게 갈겨주쇼, 하고 대주는 놈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상대방 가드를 깰 수 있는 훅들이 있거든? 트릭키한 방법들이기는 한데, 너는 이걸 배워야 돼. 아메리칸 훅으로는, 팔을 11자로 올려서 하이 가드High Guard 취한 놈들 측면에서 빈틈을 비집어 깔 수가 있어. 아메리칸 훅은, 손목과 팔 각도에 신축성과 유연성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해지지.”


“가드를! 까고 팰 수 있다고요?”


정강준에게는 복싱을 시작한 이래 들었던 것 중 가장 좋은 소식이다. 물론 경력은 한 달도 안 된 초짜지만.


“필리 쉘 가드Philly Shell Guard는, 또 멕시칸 훅에 약하지? 오버 핸드 라이트! 아 그런데 일반적인 오버 핸드 라이트로는 안 되고, 극단적으로 각이 커지게 변형시킨 오버 핸드를 쓸 수 있으면 그 가드 너머로 주먹 꽂을 수 있어. 또 멕시칸 훅은 변칙적으로 쓰면 더럽게 성가신 무기가 되니까. 물론 신체조건이 받쳐줘야 하는 거지만. 그렇게 하려면 어깨가 엄청 강해야 되거든.”


응? 갑자기 내용이 너무 많아지니까 알아듣기가 힘드네? 님아 지금 접수가 다 안 되고 있어요. 의욕이 너무 넘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다 알려줄게. 전부 다. 지금까지 너랑 주먹을 섞어본 놈들조차도 다 너를 몰라보게 될 거야.”


그래요? 오오오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그놈의 훅을 기필코 필살기로 승화시키겠습니다! 필쌀기이!!! 아싸!!!


거의 이단종교 신도처럼 열광하는 정강준 앞에서, 한 순간에 안면을 싹 바꾼 오태영이 심술궂게 웃는다.


“자아,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높이 별로 설정해놓은 기본기를 반복한다. 눈앞이 까매질 때까지. 알겠냐? 흐하하핫.”


뭐야 또 기본기를 하라는 거야!? 님아 기본기 좀 자제요!


*


“충아, 선아. 준비 됐나? 행님 인자 들어가면 됩니까?”


“응. 마이크 입에서 너무 떨어뜨리지 말고. 마이크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인터뷰 할 때 상대방 입에 잘 갖다 대줘야 돼. 그리고 이번에는 라이브니까 용어 같은 거 조금만 더 신경 쓰자. 욕 같은 거 하면 절대 안 된다. 알겠지?”


“아이 행님, 알았어예. 나도 이게 두 번째 방송인데!”


프로듀서 겸 카메라기사 겸 엔지니어 겸 방송작가까지 맡게 된 임정권이 빙긋 웃으며 이현민에게 사인을 보낸다.


“레디... 액션!”


방송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레디, 라는 말이 꽤 웃겼던 모양. 이현민은 임정권 몰래 슬쩍 웃고 나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근본 없는 서울 말씨.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튜브 ‘소고기집 상남자들’ BJ 이현민이에요. 어제는 주말 대학로에서 저희 정육식당 홍보 영상을 찍어서 올렸었는데요, 낮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아서... 아니, 아니지. 반응은 괜찮았는데! 그 뭐시냐... 아무튼 홍보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오늘도 방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방송에 선플 남겨주신 분들은 추첨을 통해 고기값 할인 쿠폰을 드립니다. 쿠폰 받으실 분들 지금 안내해 드릴게요.”


호명이 끝나자 카메라가 뒤로 멀어지면서 주변 풍경을 담아낸다.


정강준이 체육관에서 미친 듯이 훅의 기본기를 닦고 있는 일요일 오후다. 이현민과 임정권 황충 황선은 시골에 와 있다.


“오늘은 주말이라 로케이션을 와봤어요. 저희 식당에서 팔고 있는 쇠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직접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소를 키우는 축사로 가볼까요?”


시청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 중에도 실시간댓글을 써주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낭아퐁퐁권(nangnang12) : 야 BJ! 너 지금 손이랑 발이 같이 나가잖아. 로봇이냐?


복숭아부라더스(peach3s) : 생긴 건 삼국지 장비처럼 생겨먹어 가지고 저렇게 긴장하는 또 뭐임? 컨셉 독특하네?




이현민이 축사에 도착한다. 황충과 황선은 벌써 축사 안으로 들어가 청소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의외로 냄새에 민감한 듯, 이현민은 축사 냄새에 얼굴을 확 찡그렸다가 다시 편다.


음머~! 하는 소 울음소리.


“요즘 뉴스를 보면, 수입소를 한우로 둔갑시켜서 파는 못된 업자들이 많이 나오죠? 그렇지만 저희 정육식당은, 물 좋은 시골에서 직접 기른 한우만 잡아서 팔고 있습니다. 여기 사장님과 인터뷰를 해볼게요~!”


물론 축사 주인은 임정권의 삼촌이다. 대범한 척 뒷짐을 지고는 있지만 눈은 감히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 시선을 앵글 외곽으로 돌리고만 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금 제가 소들을 보니까, 다른 공장식 축사보다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자유롭게 노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넓은 장소를 주고 키우면 육질에 어떤 효과가 있나요?”


삼촌은 손사래를 친다.


“아니 그게 아니고, 장사가 안 돼서 소가 별로 없어가지고 그래. 소를 많이 못 키우니까, 한 마리당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질 수밖에 없지.”


카메라도 움찔한다.


“...아항?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이현민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입술에 침을 바르는 사이 또 실시간댓글이 등록된다.



철컹철풍철컹(ironmaiden21) : BJ 한숨 쉬는 거 보소ㅋㅋㅋㅋ


유도부화이팅(judo_saiko) : 현민이 형 안녕하세요? 저 유도부 진웅이에요. 요즘 방송하시나 보네요? 애들한테 연락 돌리겠습니다!


이현민은, 임정권에게 미튜브 동영상을 직접 제작해 식당을 홍보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안 그래도 식당일을 하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던 임정권은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식당 홍보를 위해 애써 찍어 올린 토요일 방송의 조회수는 정말 처참했다.


그래도 이현민은 낙담하기는커녕, 이번에는 소를 키우는 축사에 가서 직접 소들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준비도 조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멀지는 않았어도, 시골이어서 교통편이 많이 불편했다. 이동시간만 해도 꽤 걸렸다.


촬영에 필요한 것들은 각자 준비해오기로 약속했는데, 일이 개같이 돌아가려고 보니 서로에 대한 믿음이 너무 과했다.


임정권은 야외에서 찍은 방송을 바로 미튜브로 생중계하는 법을 배우느라 바빴고,


이현민은 정강준에게 야식을 챙겨 먹이고 아침 운동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황충과 황선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촬영현장에서 대학교 조별과제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멈출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대강 긁어온 질문들이 계속된다.


“어... 그... 저가의 수입산 쇠고기가 범람하고 있는 요즘, 이렇게 열심히 우리 농촌을 계속 지켜나가고 계신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별 생각 없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여길 떠나고 싶은 사람이야. 축사 팔고 다시 도시로 가면 좋겠는데.”


이현민이 또 카메라를 쳐다본다. 하지만 임정권이라고 해서 뽀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여기 출신이 아니셨던 건가요?”

“그렇지. 원래는 도시 살았었는데, 귀농한지 7년 됐어. 사기를 당해가지고 내가.”

“...아하. 그러셨구나...”


사기를 당해 실패할 당시의 금전적인 상황과 역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이현민이 묻지 않은 말들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데다 방송이 익숙치 않아 긴장한 이현민은, 그런 괴상한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저 멀뚱히 임정권만 바라보고 서 있다. 입술에 침만 바르는 중.


임정권 삼촌의 흥분은 점점 고조된다.


“조고담! 이 개쌔끼야! 너 어디 길 지나가다 나한테 걸리면 진짜 뒈질 줄 알아! 이 족 같은 사기꾼 새끼...!”


그때 올라오는 실시간 댓글.


전쟁과의범죄(waragainstwar) : 이거 격투기 채널인 줄 알았더니 너는 자연인이냐 채널이었구나. 구독 추가요.


먹방만조진다(mukbangheaven) : 자연인. 요리 언제 해요? 오늘은 소 잡아먹는 거야?


“...그래도 이렇게... 물 맑고 산 좋은 곳에서 귀농 성공하셨으니까... 조금만 진정해주시고요. 그리고... 어... 그... 요새는 환경문제 때문에 살기 좋은 농촌으로 귀농 준비하시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이런 분들한테 귀농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살기 좋기는 무슨? 시발 여기가 텃세가 얼마나 심한데? 혹시 귀농하실 분들 있으면 여기로는 절대 오지 마세요. 열 받아서 폭삭 늙어! 나는 원래 동안이었는데! 지금 이 꼴을 좀 보라고! 아니 이놈의 나라는 시벌 무슨 나이만 처먹으면 지가 나폴레옹이라도 된 줄 알아? 전부 쌍지팡이 짚고 설쳐 가지고 시발 내가 진짜! 외지인들 괴롭히는 데서 삶의 희열을 느끼는 거야 뭐야? 여기 처음 온 날부터 막 발전기금 내라면서 사람 들들 볶는데! 아 그때 진작 고소를 해버렸어야 되는 건데 진짜...!”


처음 귀농했을 때부터 7년의 세월 동안 겪었던 귀농 비화들이 무작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전부 다 방송을 탄다.


물론 이현민이 묻지 않은 말들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평소에 과묵하던 삼촌의 멈출 줄 모르는 토크 본능을 생전 처음 목도한 임정권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간다.


아 그러게 다 감안을 해서 방송을 짰어야지. 원래 마이크 들이대면 다들 말이 많아지는 것이 한국인 종특 아니던가.


“현민아! 괜찮아. 당황하지 마! 나중에 편집하면 되니까 그냥 가! 누가 보겠냐 이런 걸?”


그러나 워낙 가까이에서 촬영하고 있었던 데다, 임정권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누가 보겠냐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히면서 그마저 방송을 타고 만다.


묻고뉴진스로가(i_luv_bts) : 지금 들었음? 영상 찍는 사람이 이런 걸 누가 보겠냐고 안심하래ㅋㅋㅋㅋ


“그래도 저... 이 축사에서 자란 소들만의 특징 같은 게 있을까요? 뭐 육질이라든지... 하다못해 소새끼들 영혼이 행복하다거나 뭐냐 그...”

“글쎄...? 그런 게 뭐 있나? 아 맞다. 요즘 소들 먹이는 사료엔 거의 GMO 농산물이 들어가거든.”

“아하... GMO! 그렇죠.”


까방권소멸(bang7891) : 야 GMO가 뭐냐?


부랄까기인형(nutcracker233) : 유전자 변형시켜서 억지로 키운 작물들 말하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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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공이 울린다 24.03.30 7 0 11쪽
62 어퍼컷 24.03.29 6 0 11쪽
61 대박 이후 24.03.28 7 0 11쪽
60 거대한 링 24.03.26 7 0 11쪽
59 소의 성추행 24.03.23 12 0 11쪽
» 소고기집 상남자들 24.03.22 10 0 11쪽
57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5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10 0 12쪽
54 참패 24.03.16 12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6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2 0 13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3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3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6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8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20 0 11쪽
46 폭파범들 24.03.06 19 1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5 2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2 27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1 27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2.29 25 0 11쪽
41 링의 악마 24.02.28 27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2.27 26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2.24 28 0 11쪽
38 아나콘다 24.02.23 30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2.22 30 0 11쪽
36 현질 24.02.21 32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39 0 11쪽
34 우주인 24.02.17 41 0 11쪽
33 반칙왕 24.02.16 4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5 42 0 11쪽
31 결전 24.02.14 4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3 59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0 58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09 6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08 4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07 47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06 74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2.03 4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02 55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01 60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1.31 56 1 10쪽
20 피가 붉다 24.01.30 58 1 11쪽
19 첫 다운 24.01.27 59 0 10쪽
18 첫 스파링 24.01.26 57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1.25 65 1 10쪽
16 낙관주의자 24.01.24 68 1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1.23 88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1.20 90 2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1.19 97 2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1.18 113 2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1.17 107 2 10쪽
10 똘마니들 24.01.16 107 2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1.13 112 2 10쪽
8 살인연습 24.01.12 121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1.11 127 1 10쪽
6 아리가또오 24.01.10 137 1 10쪽
5 실험성공 24.01.09 167 1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1.06 174 1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1.05 183 2 10쪽
2 유산은 백억 24.01.04 217 3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1.03 32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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