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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시간 멈추고 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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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1.02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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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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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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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반칙왕

DUMMY

유도시합뿐만 아니라 레슬링시합에서도 낙법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경기자로 하여금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도록 해 부상을 방지하는 효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낙법을 치고 넘어지면 상대 선수에게 점수를 뺐기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에 걸려 쓰러진다고 해도, 땅을 바라보고 앞으로 전방낙법을 쳐 넘어지면 유도 룰에서는 실점하지 않는다. 레슬링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등 또는 어깨가 바닥에 닿아야만 상대의 점수가 올라가는 구조는 비슷하다.


여기에서 맹점이 생긴다. 유도선수들은 보통 전방낙법을 친 경우 즉시 그 자리에서 급히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상대의 메치기 다음에 연속기로 들어오는 굳히기나 누르기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유도 선수들은 자신의 소매를 자기 손으로 부여잡고 몸을 웅크려 상대가 유도기술을 걸 수 없도록 방어를 한다. 이래놓고 주심이 ‘마떼’를 선언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건 거의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유도의 규칙 안에서는, 이렇게 자기 소매를 잡고 땅에 웅크리는 동작보다 안전한 동작이 없다. 그러나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다. 땅에 배를 붙이고 납작 엎드리는 자세는,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해야만 하는 위험한 지경이다.


하물며 정방낙법을 치고 나서 웅크린 상태로 상대의 추가공격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방심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유도선수를 대적해야 하는 입장에서, 유도기술에 당해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지는 상황은 극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은 유도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다. 누구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연습을 하지는 않으니까.


굴다리 콘크리트 바닥 위에 넘어지면서도 성공적으로 전방낙법을 친 이현민이 순간 안도한다.


그러나 그 1초도 안 되는 정체와 안심을 뚫고, 정강준은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킥을 날린다.


이현민의 머리를 향한, 낮은 킥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격투기에서 금지되어 있는 반칙이다.


싸커킥Soccer Kick. 축구의 킥과 거의 같은 높이여서 붙은 이름이다.


퍼억!


정확히 맞지도 않았는데 이현민의 두꺼운 목이 단번에 홱 꺾인다. 머리통도 축구공처럼 한 뼘 가량이나 튕겨져 나간다. 땅에 납작 엎드려 있던 거구가 축 늘어져 버린다.


이현민은 바로 의식을 잃는다. 전방낙법을 치고 나서 실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사적으로 해버린 방심 때문에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정강준이 동전을 던진 뒤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공격을 당하고도, 투쟁본능은 이현민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 모습을 본 정강준은 재차 이현민을 공격하려 하지만, 방금 너무 낮은 킥에 체중을 싣느라 이쪽의 중심도 그만치 무너져 있다.


균형을 되찾으려는 마음과, 바로 공격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충돌을 일으켜 쉽게 중심을 되찾지 못한다. 정강준은 크게 휘청거리며 이현민에게서 떨어져나간다.


중력의 장난이다.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 때문에 자전거 핸들을 틀려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과 같다.


차라리 뒤로 몸을 던져 한 번 구른 다음에 다시 일어나려했더라면 더 빨리 이현민 옆에 붙어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급한 마음이 오히려 정강준을 버둥거리고 비틀거리게 해 균형의 공백을 연장시킨 것.


겨우 균형을 되찾은 정강준이 다시 공격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아예 발을 번쩍 들어 올린다. 사커 킥을 맞고 축 늘어진 이현민의 뒤통수에 발뒤꿈치를 내리찍고 승리의 여신에게 도장을 받으려 한다.


스탬핑Stamping.


쓰러진 상대의 얼굴 정면을 향해 내리찍어도 반칙이 되는 공격이다. 더군다나 이현민은 지금 바닥에 쓰러져 등과 뒤통수를 노출시키고 있는 상황. 상대의 뒤통수와 등에 대한 공격은 모든 격투기에서 금지하고 있는 반칙이지만, 정강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무방비상태에서 가해지는 공격은, 설령 그 공격의 위력이 강맹하지 않다고 해도 매우 위험하다. 부상의 위험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복싱시합에서 상대에게 큰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강펀치다. 하지만 강한 타격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린 경기자는 이를 맞고도 버틸 수 있다. 아무리 강한 주먹이라고 해도.


복싱경기에서 다운이 터지는 경우는, 경기자가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사각에서 기습적으로 나온 주먹에 적중되었을 때다.


이때 이 주먹은 강하지 않은 타격이어도 상관이 없다. 그저 턱에 툭 얹힌 것 같아 보여도, 맞은 사람은 몸의 통제력을 잃고 주저앉거나 쓰러져 버리게 되니까.


그러니 상대가 아예 보이지 않는 사각인 등 뒤에 서서, 체중을 실은 발로 뒤통수를 내리찍는 공격은 상대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흉악한 기술이다.


그 순간, 오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정강준에게 인터벌을 가르치던 날보다 더 빠르다.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의 속도다.


이성규와 임정권도 얼떨결에 뒤를 따른다.


세 명 중에 달리기가 느린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상대적으로 몸이 큰 이성규와 카메라까지 챙겨야 하는 임정권은 바로 뒤로 쳐진다.


굴다리 안의 상황도 급변한다.


이현민과 함께 온 유도부 후배 둘이 미친 사람처럼 정강준에게 달려든 것.


그렇지만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공격은 어설프기 마련이다. 거의 동시에 정강준에게 달려들기는 하지만, 그러던 중 서로가 서로의 몸에 부딪쳐 방해를 받을 정도로 이 공격은 엉성하다.


물론 이들은, 정강준이 김명진과 싸울 때 주위에 서 있던 일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력이다. 그렇지만 이 둘은 애초부터 이현민이 싸우다가 밀린다고 해서 집단구타를 놓을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그냥 참관만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반칙공격이 이현민에게 가해지자 뒤늦게 공세를 취한 것이다. 그런 즉흥적인 공격이 잘 될 리 없다.


싸움은 변수가 아주 많은 활동이지만, 준비하는 것이 거의 다니까.


유도부 후배1과 후배2의 공격을 감지한 정강준이 동물적으로 백스텝을 밟으며 홱 뒤로 빠져나간다. 정강준에게 백스텝을 가르친 오태영조차 정강준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백스텝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사악해 보일 정도의 영민함에 오태영은 혀를 내두른다. 다 잡아 놓은 먹이를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 있는 야생동물들은 흔치 않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맹수들이 사람이 쳐놓은 덫에 걸리는 거니까.


일직선으로 빠르게 몸을 빼낸 정강준는, 애초에 오태영이 추천하려 했던 전술을 그때서야 구사하기 시작한다.


옷깃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후배1의 손을 백스텝으로 피하더니, 상대와의 간격이 확보되자마자


콰각!


바로 땅을 차며 인스텝을 밟고 원투를 갈겨버린다.


원투는 후배1의 얼굴에 꽂힌다. 짧았던 연습기간을 생각하면 그림같이 깨끗하게 들어간 원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턱 한 가운데에 정확히 주먹이 꽂힌 것도 아닌데, 후배1의 무릎이 풀리고 몸이 밑으로 푹 가라앉는다.


그러나 아무리 펀치력이 강하다고 해도, 한두 대 맞을 것을 미리 각오한 채 결사적으로 달려드는 적을 간단히 주저앉힐 수는 없는 법이다.


무릎이 풀려서 쓰러지다시피 비척거리며 정강준의 간격 안으로 파고 들어온 후배1의 손이 정강준의 목깃을 잡아챈다. 그리고는 유도 메치기를 건다. 평소에 잘 쓰던 주특기가 아니다. 알고 있는 기술들 중에서 가장 낙차가 큰 기술을 골랐다. 복수심 때문이다.


얼굴에 강타를 허용하고 다리가 풀린 뒤라서 동작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기술로 시멘트 바닥에 사람을 메다꽂을 경우 그 누구도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 확실하다. 후배1은 이미 온몸으로 결과를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둘의 체중은 비슷하다. 또한 정강준은 이미 임정권에게서 수업을 받은 뒤. 그래서 기술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상대의 옷자락을 붙들고 버티는 법을 미숙하게나마 알고 있다.


너무 성급하게 큰 기술을 넣은 것도 문제였지만, 정강준이 입고 있던 체육복 상의가 늘어나고 터지면서 힘이 분산된 것도 후배1에게는 악재다. 사람들이 모두 유도복처럼 튼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까.


정강준은 가까스로 후배1의 메치기를 견뎌낸다. 첫 기술에 실패한 후배1이 태세를 재정비해 다음 기술을 걸려는 사이, 임정권에게 배운 더티 복싱이 빛을 발한다.


물론 더티 복싱으로는 큰 타격을 가할 수 없고, 다운도 잘 나오지 않는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가해지는 타격이기 때문에 힘을 싣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티 복싱에는 과녁이 가까워서 주먹이 빗나가지 않는다는 미덕도 있다.


실패가 없는 대신 이익이 크지는 않은 안전투자.


더티 복싱은, 유도시합과 규칙에 익숙해져있던 사람에게는 미지의 경험이다. 총소리를 생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문화충격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후배1은, 옆 턱과 얼굴을 두드리는 정강준의 잔 펀치를 이를 악물고 견뎌낸다. 하지만 귀와 귀 뒤의 목 부위에 주먹이 꽂히자 결국 정강준의 옷자락을 놓치고 만다.


그러자 다시 백스텝으로 거리를 낸 정강준이 다시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퍽!


그리고 마침내 후배1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는데 성공.


그러나 후배2가 아직 남아있다. 실신하듯 풀썩 쓰러진 후배1을 뛰어넘어 정강준에게 달려든다.


정강준은 방금 온몸을 쥐어짜 욕심껏 강타를 날리고 난 뒤여서 스텝과 폼이 무너져 있는 상태. 몸이 열려 있다. 후배2의 접근을 막기 위해 주먹을 던지지만, 힘이 실리지 않은 마구잡이 주먹질에 불과하다.


정강준의 추가타를 떨쳐낸 후배2의 몸이 아래로 푹 떨어져 내린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마술. 정강준이 이현민에게 썼던 레슬링 태클이다. 같은 반칙을 써야만 이현민의 복수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듯, 동작에 망설임이 없다.


물론 레슬러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동작은 아니지만, 워낙 정강준이 기초가 없고 몸이 가볍다 보니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홱 들어 올려지고 만다.


비슷한 체급이라고 해도, 중등부 시절부터 매일 혹독한 훈련을 거쳐 온 몸이다. 그 강인한 몸에 살의가 담겨 있다.


그대로 머리부터 땅에 내리꽂아 버린다. 뒷일 따위는 아랑곳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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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소고기집 상남자들 24.03.22 9 0 11쪽
57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5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10 0 12쪽
54 참패 24.03.16 12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6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2 0 13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3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3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6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8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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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무역수지 24.03.01 27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2.29 25 0 11쪽
41 링의 악마 24.02.28 27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2.27 26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2.24 28 0 11쪽
38 아나콘다 24.02.23 30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2.22 30 0 11쪽
36 현질 24.02.21 32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39 0 11쪽
34 우주인 24.02.17 41 0 11쪽
» 반칙왕 24.02.16 4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5 42 0 11쪽
31 결전 24.02.14 4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3 59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0 58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09 6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08 4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07 47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06 74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2.03 4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02 5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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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파링 세션 24.01.25 65 1 10쪽
16 낙관주의자 24.01.24 68 1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1.23 88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1.20 90 2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1.19 97 2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1.18 113 2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1.17 107 2 10쪽
10 똘마니들 24.01.16 107 2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1.13 112 2 10쪽
8 살인연습 24.01.12 121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1.11 127 1 10쪽
6 아리가또오 24.01.10 13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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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뭐가 들어있는지 24.01.05 183 2 10쪽
2 유산은 백억 24.01.04 217 3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1.03 32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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