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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시간 멈추고 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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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1.02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743
추천수 :
29
글자수 :
315,549

작성
24.01.13 18:45
조회
112
추천
2
글자
10쪽

오직 시간이 문제

DUMMY

이상한 낌새를 느낀 민다혜가 묻는다.


“너 어디 가?”


정강준은 대답도 없이 교실 밖으로 나간다. 민다혜의 데시벨이 올라간다.


“지금 뭐하려고 그러는 거냐고!?”


이번에는 민다혜가 정강준의 손목을 붙들고 매달린다.


아 성가시게 진짜... 뭐라고 해야 떨어질까.


정강준은 바로 말을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아무거나 주워섬긴다.


“지금 나 체해서... 손 따야 돼.”


그건 민다혜가 그때까지 살면서 들은 소리 중에 가장 황당한 소리.


“체했다고 커터 칼로 손 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나는 이렇게 해야 돼. 안 그러면 안 풀려.”

“거짓말하지 마.”


그러거나 말거나 정강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선다.


민다혜가 바로 그 뒤를 따라붙는다.


“어디 갈 건데? 점심 안 먹을 거야?”


흘깃 민다혜를 돌아보며 정강준이 악에 받친 얼굴로 픽 웃는다. 그게 꼭 다른 사람의 얼굴 같아 보여 깜짝 놀란 민다혜가 우뚝 멈춰 선다.


“나 지금 저 새끼랑 붙을 건데.”


한 순간 민다혜의 얼굴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다.


“무... 무슨 소리야 그게? 안 돼!”

“내가 붙자고 해서 온 거야. 가야 돼 지금.”

“말도 안 돼! 그러지 마! 너 왜 그래 진짜?”


민다혜가 앞서 걷던 정강준의 옷소매를 붙들고 늘어진다. 정강준은 그 갑작스런 행동에 크게 당황한다.


“가지 말라고! 나... 나 몰래 자료 만들고 있었단 말이야. 그거 경찰청이랑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면...!”

“무슨 멍청한 소릴 하고 있어? 그런 걸론 해결 안 돼.”

“가지마! 너 진짜 큰일 나!”

“야 야 이거 놔봐. 왜 이래? 아 미치겠네 진짜!”


정강준은 거의 내동댕이치듯이 민다혜를 뿌리치지만, 민다혜도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손 치워! 비키라고!”

“가지 마 제발! 너 죽을지도 몰라. 무서운 놈이야!”

“알아. 나도 아는데!”


답답한 마음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사실 나는, 시간을 멈추는 이능을 가지고 있거든? 그걸 잘 써먹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역시 말할 수 없다. 뭐라 말하려는 듯하다가 민다혜의 손을 모질게 뿌리친 정강준이 달린다. 민다혜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애쓴 보람도 없이 끝내 복도에 혼자 남겨진 민다혜의 얼굴이 절망으로 범벅이 된다.


벌써 눈물이 옅게 배어있는 눈으로 교무실 쪽을 돌아본다. 그렁그렁거린다.


정강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어디 보자... 일단 칼로 손바닥을 그은 다음에, 주먹을 쥐면 알아서 지혈이 될 거고. 필요할 때 주먹 펴고 피를 내면 되는 거잖아. 간단하네?


물론 시간의 이능을 백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정강준이 손바닥을 펴 눈앞에 들어 올린다. 드륵, 커터날을 밀어 올린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니 손이 생각처럼 잘 안 나간다. 자기 손에 대고 칼질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는다.


*


체육관 뒤다. 질이 안 좋아 보이는 얼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멀리서 정강준이 달려온다. 김명진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일진들을 밀치고 헤집으며 김명진 앞까지 한 번 멈추지도 않고 뛰어온다.


똘마니들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 있던 김명진이 헛웃음을 짓는다. 절반 정도 타들어간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소리 지른다.


“야! 먼저 붙자고 한 놈이 나보다 늦게 와?”


정강준은 대답도 없이 서서 거칠어진 숨을 고른다. 김명진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정강준을 내려다본다.


“쫄아서 도망가진 않았네? 요즘은 너 같은 놈들이 드물지.”


그 말을 들은 임수산이 김명진 쪽을 흘겨본다. 불만이 있는 듯한 눈이다.


김명진의 정면에 선 정강준이 눈을 들어 김명진의 눈을 맞받는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어 일견 피곤해 보이는 눈이지만, 분명 싸움을 걸고 있다. 무언의 재촉을 받은 김명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178센티미터에 71킬로그램인 정강준은 고1 기준으로 볼 때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김명진과 마주서니 중학생이나 그 이하의 어린애로 보인다.


“그러지 말고 그냥 잘 지내보는 건 어때? 당장 집 문제는 네가 손해인 것 같겠지만, 다른 쪽으로 얻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얻는 게 있‘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 김명진은 엉큼하고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러나 이미 싸움에 정신이 팔린 정강준은 그 수상쩍은 억양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듣지도 않고 대답도 않는다.


시간. 오직 시간이 문제다. 시간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하니까.


좋아. 일단 싸워보다가, 틀렸다 싶어지면 손을 펴고 피를 내는 거야.


정강준은 속으로 두 가지 공격 옵션을 두고 치열하고 짧게 고민 중이다.


1. 방심한 적이 이빨을 까는 동안 선빵으로 아구창을 후리고 후속타를 넣는다.


2. 욕으로 김명진을 도발해 먼저 공격하게 하고 허점을 노린다.


사정이 어떻게 되든 간에 먼저 손을 쓰는 놈이 가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겁도 없이 2번 옵션을 선택한 정강준이 김명진의 말을 자르고


“개 족 빠는 소리하지 마라. 못생긴 호모새끼야.”


라고 내뱉어 버린다. 김명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지만, 그렇다고 정강준이 원하는대로 바로 달려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순간, 몰래 정강준의 등 뒤로 돌아간 임수산이 정강준 앞의 김명진에게 눈짓을 한다. 김명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기습적으로 정강준의 등허리를 발로 걷어찬다.


배후로부터의 급습에 바로 균형을 잃은 정강준이 앞으로 확 쓰러진다. 순식간에 안면을 바꾼 김명진이 의자를 자빠뜨리며 달려든다. 정강준의 얼굴에 오른손 훅을 넣는다.


풀스윙. 이미 같은 트릭을 몇 차례 써먹었던 적이 있었던 듯, 손발이 잘 맞는다. 동작 또한 꽤 안정적이다.


정강준의 2번 계획은 당연히 무산. 선공을 빼앗긴 정강준은 그저 눈을 치켜뜰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빠각!


“윽...!”


공격은 적중했으나, 신음소리를 낸 것은 김명진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김명진의 주먹이 정강준의 이마에 꽂힌 것. 애초에 정강준의 아래턱을 노렸던 일격이 빗나가 상탄이 난 거다.


정강준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히 달려왔던 데다, 비열하게 등 뒤에서 칠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터라 공격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그래서 김명진이 원하는 각보다 더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힘없이 고꾸라졌고, 결국 얼굴 높이가 공격자의 주먹보다 더 낮아졌다.


물론 주먹은 사람의 신체부위 중 꽤 단단한 부분에 속한다. 그래서 싸움이 날 경우 주된 공격수단으로 선택되지만, 두개골은 주먹 뼈보다 더 단단하다. 비열하게 기습을 한 김명진은 오른손 손등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는다.


물론 정강준도 멀쩡할 리 없다. 균형을 잃고 쓰러져 손으로 땅을 짚은 것도 그렇지만, 균형감각 면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두개골이 주먹 뼈보다 강하고 단단한 것은 사실이나, 그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뇌는 말랑말랑한 젤리나 마찬가지다. 급소인 아래턱에 결정타를 맞는 것을 간신히 면하기는 했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주먹질에 이마를 정면으로 가격 당하자 뇌가 흔들리기는 했던 것.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늘과 땅이 휘청대고 뒤흔들린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척댄다.


김명진이 유리하다. 오른손이 부상을 당했어도 왼손은 남으니까.


이익!


김명진은 이를 악물면서 바로 왼 주먹을 날린다. 그러나 당황해서인지 팔이 펴진 채로 휘두르는 바람에 주먹이 흐른다. 하지만 만일 주먹이 흐르지 않았다고 해도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균형을 잃고 비척대는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격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김명진의 왼 주먹이 빗나간다. 겨우 한 수를 번 정강준이 바로 포문을 연다.


쩍! 퍽!


양주먹이 연달아 적의 얼굴에 꽂힌다. 어차피 정강준은 이미 팔을 뻗으면 상대에게 주먹이 닿는 간격 안에 들어와 있다. 이러면 리치 차이가 무색해진다. 정강준은 상대적으로 민첩하기 때문에 김명진이 한 번 주먹을 낼 때 1.5번 주먹을 낼 수 있고, 그래서 기세가 올라간다.


사실 이것은 우연 덕분이다. 하체의 균형이 완벽히 잡히지 않은 상태로 주먹을 날린 정강준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중, 오른손을 다친 김명진이 치기 어려운 사각으로 돌아들어가게 된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아무리 죽기 살기로 주먹을 내질러도, 크기의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늑대 대 불곰, 혹은 SUV 대 버스의 경우만큼이나 체격 차이가 현격하다.


사실 일대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기’다. 그 강력한 변인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격투기 종목은 체급을 만들어 경기자의 크기를 세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크기뿐만이 아니다. 힘의 차이 역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섯 번째 주먹을 김명진의 안면에 깨끗이 꽂아 넣고도, 뒤늦게 허용한 왼 주먹 한 방에 정강준의 다리가 풀려 버린다.


그렇지만 김명진의 공격에는 독기와 예리함이 부족하다. 몸이 제대로 준비를 하기 전에 발작적으로 싸움을 시작했던 덕분이다.


휘청한 정강준의 자세가 확 낮아지자마자, 바로 김명진의 무릎이 훅 치고 올라온다. 그러나 오랫동안 훈련을 하지 않았던 몸은 민활하지가 않고, 무릎은 선수 시절보다 0.몇 초 정도 늦게 올라간다.


그래서 이 무릎은, 타격력이 발생하기 직전에 정강준의 몸과 충돌한다. 니킥에 맞았다는 말보다는, 강하게 떠밀린 것에 더 가까운 효과가 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정강준은 바람 만난 낙엽처럼 주먹 간격 밖으로까지 튕겨나가면서 허우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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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대박 이후 24.03.28 7 0 11쪽
60 거대한 링 24.03.26 7 0 11쪽
59 소의 성추행 24.03.23 12 0 11쪽
58 소고기집 상남자들 24.03.22 10 0 11쪽
57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5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10 0 12쪽
54 참패 24.03.16 12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6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2 0 13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3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3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6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9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20 0 11쪽
46 폭파범들 24.03.06 19 1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5 2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2 27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1 27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2.29 25 0 11쪽
41 링의 악마 24.02.28 27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2.27 26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2.24 28 0 11쪽
38 아나콘다 24.02.23 30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2.22 30 0 11쪽
36 현질 24.02.21 32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39 0 11쪽
34 우주인 24.02.17 41 0 11쪽
33 반칙왕 24.02.16 4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5 42 0 11쪽
31 결전 24.02.14 4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3 59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0 58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09 6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08 4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07 47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06 74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2.03 4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02 55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01 60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1.31 56 1 10쪽
20 피가 붉다 24.01.30 58 1 11쪽
19 첫 다운 24.01.27 59 0 10쪽
18 첫 스파링 24.01.26 57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1.25 65 1 10쪽
16 낙관주의자 24.01.24 68 1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1.23 88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1.20 90 2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1.19 98 2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1.18 113 2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1.17 107 2 10쪽
10 똘마니들 24.01.16 108 2 10쪽
» 오직 시간이 문제 24.01.13 113 2 10쪽
8 살인연습 24.01.12 121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1.11 127 1 10쪽
6 아리가또오 24.01.10 137 1 10쪽
5 실험성공 24.01.09 167 1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1.06 174 1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1.05 183 2 10쪽
2 유산은 백억 24.01.04 217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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