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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시간 멈추고 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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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1.02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741
추천수 :
29
글자수 :
315,549

작성
24.01.03 18:55
조회
320
추천
2
글자
10쪽

사라진 아버지

DUMMY

아버지가 사라졌다.


납치되듯 빈소로 끌려간 아들은 느닷없이 상주가 되었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정강준은 계속 어안이 벙벙하고 어리둥절했다.


실종,


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시신이 발견된 건 아니지만 5년이 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하릴없이 장례를 치르기로 한 것이라며,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정강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말로는 백부라고 했다.


황망했다. 그러나 그 혼란은 실종 이전부터 소년에게 아버지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것은, 정강준라는 이름 세 글자 중 한 글자에만 남아있는 희미한 지분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내내 그 한 글자의 뒤에 숨어 살았다.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엄마와 이혼한 뒤의 사정은 그 아들에게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아들 역시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히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죽은 뒤부터 아들은 양육비를 직접 확인해야 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통장에 박힌 이름을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강준에게 상기되었다.


아버지는 매달 돈을 입금했지만, 정강준을 만나러 오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이체된 사람이었다.


사라져 있던 사람이 다시 사라진 것이어서 큰 슬픔은 일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의 후처들과, 그 여자들이 데려온 배다른 여동생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순간만은 꽤 어색했다. 그건 그쪽도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후처들은 둘 다 젊었고 그 딸들은 어렸다. 아버지가 실종될 당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은 세 번째 처였다.


상주는 문상객들의 바로 옆에 앉고 서게 되어 있어 영정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처음처럼 계속 멀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와서 묵념을 하거나 절을 했다. 외국인 조문객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해외에서 보낸 조화까지 도착했다.


정강준은 기계처럼 정신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터여서 모든 순간이 다 퀴즈 같았다. 그렇지만 누구도 답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장례는 꾸역꾸역 진행됐다. 공을 돌리는 축구선수들처럼, 그들은 정강준을 가운데 두고 여러 절차들을 일사불란하게 주고받았다.


상주의 손을 타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를 되새길 수 있는 기억들 역시 남아 있지 않았다. 황당하고 엉뚱한 사람이기는 해도 함께 있는 시간이 재미있기는 했던 듯싶은, 기시감 몇 점만이 기억보다 옅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선산에 가묘를 만드는 것으로 장례가 끝났다. 나중에 혹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된다면서 백부가 잔소리를 했다. 성가신 놈이었다.


끝나고 보니 처음보다 더 간편하고 쉬워보였다. 다들 언제 슬피 울었느냐는 듯 각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흩어졌다. 정강준은 영영 볼 일이 없을 것처럼 해산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꾸 두리번거렸다.


태도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였다. 이렇게 건성으로 헤어져도 되는 건가 싶었다. 모든 것이 음모가 아닌가 싶어 수상쩍어지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정말 죽은 건가?


장례식장의 사람들이 나를 속인 거라면?


혹시 아버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살해당한 거 아닐까?


하지만 아비 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라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아니 어쩌면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인지도 모를 빌라 한 채뿐이었다. 물려 입은 옷처럼 면목 없는 곳이었다.


사은품처럼 지급된 영정 액자를 들고 정강준은 집으로 돌아왔다. 시신도 없는 사망자가 된 뒤에야 아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아버지가 그제야 얼마간 애달파졌다.


소년은 아버지의 영정을 죽은 엄마의 사진 옆에 올려놓았다.


정강준은 상주가 되기 전과 같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막 고등학생이 된 뒤여서 더 불안하고 서글펐다. 실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더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영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즉시 잊히고 어렴풋해졌다. 아무리 외우려고 해봐도 허사였다. 혹시 그 얼굴을 아예 잊을까봐 거실 불을 끄는 일마저 망설여졌다.


혼자였다. 그것만이 전과 같았다.


*


3월.


새 학기의 정오.


빌라는 호화롭지 않지만 비좁지도 않다. 그러나 그 널찍함이 도리어 고충이 되는 공허의 정각에 아비 잃은 자식이 놓여있다.


겨우 열일곱이다. 며칠 전 고등학생이 되었을 뿐인데 소년에게 남겨진 것은 빈집과 영정뿐.


소년은 소파에서 계속 자고 있다. 태아처럼 둥글게 몸을 만 채로. 두려움이 굴곡을 만들어낸 것일까.


장례가 끝나 이제는 다시 학교에 나가야 하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졸려. 더 잘 거야.


소년에게는 잠이 부족했다. 밤새 앞날의 계획을 세우느라 고심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든 터였다.


소년은, 대학 같이 성가신 것들은 그냥 건너뛰어 버리고 바로 취업을 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팔자 좋은 놈들이 대학에서 시간낭비를 하고 있을 때 일찍 돈을 벌어 성공을 하면 자신에게도 빛들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단순한 계산 같아 보이지만, 답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소년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여러 번 마음을 다잡고 난 뒤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양육비... 앞으로도 계속 받을 수 있는 걸까? 그 동안은 아빠가 보내준 돈으로 어렵지 않게 살았었는데.


소년은 눈치를 살핀다. 마치 영정 속에 엄마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엄마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소년의 오랜 습관.


장례를 치르고 난 직후이건만 슬프기보다는 자신의 앞일이 더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것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소년도 안다. 하지만 소년이 오래 전부터 감내하고 있었던, 그래서 만만하게 여기고 있던 부재가 이미 결핍으로 둔갑해 소년의 삶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바꾸는 순간처럼, 너무나 간편하게 세상이 바뀌었다. 온 세상이 다 각박하고 버겁다.


엄마. 앞일이 어떻게 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제발. 꿈속에서라도.


*


딩동.


초인종이 울리며 비디오폰 액정에 화면이 뜬다. 잠이 많을 시기다. 소년은 당연히 계속 자고 싶다.


무시하려 했지만 소리는 집요하다.


담임인가? 그럴 리는 없는데.


소파에서 고개만 겨우 들어 올린 소년이 잠긴 목소리로 묻는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비디오폰이 있는 곳까지 확인하러 가는 일만도 귀찮다. 좀비처럼 일어나 액정화면으로 간 소년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잔뜩 찌푸린다.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다. 소년은 머뭇거린다.


오래 전 사이비종교 포교원들에게 문을 열어줬다가 한참 귀찮은 일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지 않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여자는 스피커에 가까이 입을 대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만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한다.


“정강준 학생. 아버지하고 같이 일하는 변호사예요.”


소년의 눈이 번쩍 뜨인다. 변호사라는 말 때문이 아니다. ‘일하는’ 이라는 말이 현재형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 말 한 마디는 소년에게 희망을 준다. 현재형의 문장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 버튼을 누른다. 1층 입구 문을 열어주고 나서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그제야 엉망진창인 집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 리 없다. 잠들어있던 소파만 대강 정리하고 다른 곳은 포기할 요량이었으나, 다행히 방문객은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


후다닥. 이불을 치우고 소파와 테이블 앞에 방문객이 앉을 의자를 갖다놓은 소년이 음료수를 찾지만, 냉장고는 비어있다.


그러는 사이 5층까지 올라온 방문객이 문을 두드린다.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다.


문을 여니 20대 중반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여자가 서 있다. 소년의 얼굴에 노골적인 의심이 떠오른다.


여자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바로 명함을 내민다.


“유온 변호삽니다.”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명함을 들고 선 여자의 숨은 가쁘다. 가쁜 숨을 감추려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한다.


하지만 그 거친 숨소리에 소년은 도리어 신뢰를 느끼고 명함을 받아든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일부러 5층까지 걸어 올라온 것이 분명하다. 소년의 중학교 동창 중에 공부를 잘해 특목고에 간 놈이 그랬었다.


따로 운동하는 시간이 아깝다면서 쉬는 시간에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맨손운동을 하고, 다들 공차고 노는 체육시간에는 숨어서 단어를 외웠다.


변호사처럼 안 보이기는 하지만, 일부러 운동을 해 시간을 아끼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을지를 짐작한 것이다.


거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간다.


“유산문제 때문에 왔어요.”


밖에 있을 때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말하지 않았던 것도 새삼 미더워진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엿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용무를 밝힐 정도로 입이 가벼운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유산이라는 말은. 혹시 아버지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려버렸지만,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소년은 낙담하는 일마저 까맣게 잊어버린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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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나콘다 24.02.23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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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39 0 11쪽
34 우주인 24.02.17 41 0 11쪽
33 반칙왕 24.02.16 4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5 42 0 11쪽
31 결전 24.02.14 4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3 59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0 5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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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투명 올가미 24.01.19 98 2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1.18 113 2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1.17 107 2 10쪽
10 똘마니들 24.01.16 108 2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1.13 112 2 10쪽
8 살인연습 24.01.12 121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1.11 127 1 10쪽
6 아리가또오 24.01.10 13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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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산은 백억 24.01.04 217 3 10쪽
» 사라진 아버지 24.01.03 32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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