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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시간 멈추고 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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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1.02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740
추천수 :
29
글자수 :
315,549

작성
24.01.16 18:42
조회
107
추천
2
글자
10쪽

똘마니들

DUMMY

성큼!


균형을 잃은 정강준에게 후속타를 넣기 위해 김명진이 다가선다.


그러나 금방 쓰러질 듯하다가도, 정강준은 엎드려 졸던 학생이 놀라 깨어나듯 벌떡 일어나며 반격을 한다.


뮬론 제정신이 아니다. 본능이 일으켜 세운 몸이다.


쩍!


하필 다가서던 중이던 김명진은 카운터성으로 정강준의 주먹을 맞게 된다. 당연히 나가던 힘이 더해져 타격이 더 크다. 무쇠 같던 턱이 처음으로 홱 돌아간다. 주춤 뒤로 물러서는 발이 지면에 끌리며


지직!


불길한 소음을 만들어 낸다.


정강준은 분전해 김명진을 따라 들어가며 다시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퍽! 퍽! 퍼퍽!


김명진 거기서 더 밀려나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 역시 본능이 알려준 것.


결국 회피기술이 전혀 없는 정강준과, 평생 회피기술을 쓸 필요가 없었던 김명진의 난타전이 시작된다. 팔을 뻗기만 해도 서로의 주먹이 닿는 근접거리 안에서의 싸움이다.


뿔과 뿔을 맞댄 짐승 두 마리가 물러섬 없이 치고받는다.


사실 김명진은 거기서 굳이 맞불을 놓지 않아도 된다. 난타전을 피하고 다른 전술을 구사해도 정강준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싸움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보다 작은 상대에게 밀려나면서 상처 입은 위신이 냉정한 계산을 방해하고 있는 것.


이미 피가 뜨거워진 마당이라 다른 카드를 고를 여유도 이유도 없다.


실은 이것 역시 너무 성급히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다. 사실 정강준 입장에서는, 처음에 비열하게 등 뒤에 대고 발길질을 해준 임수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도 될 정도.


키 큰 상대에게 거의 뛰어오르다시피 해가며 정강준이 날린 주먹이, 찰진 소리와 함께 투실투실한 볼에 푹푹 꽂힌다. 그래도 김명진의 목과 턱은 대체로 제자리를 지킨다.


반면 정타가 아닌 타격을 허용해도 정강준의 턱은 이리저리 튕겨나간다. 마치 머리가 목을 끊고 떨어져나갈 것처럼 위태롭다.


체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한 번의 타격을 허용해도 충격량은 다르다. 정강준은 꿈속의 유령과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에 몸서리를 친다. 아무리 상대에게 주먹을 꽂아 넣어도 상대는 끄떡이 없다.


불공평하게도 타격을 당할 때마다 정강준의 턱은 이리저리 비틀리고 돌아가는 중. 그럴 때마다 시야는 홱홱 멋대로 휘둘러진다. 적은 보이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다.


목의 인대와 근육이 으적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그렇지만 주먹을 내는 것을 멈추면 모든 게 끝이다. 이를 악물고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거다.


김명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는가, 라는 의문 때문.


정강준은 알고 있다. 반드시 시간이 한 번 멈출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력을 다해 버텨도 역부족이다. 한 순간, 둘의 주먹과 주먹이 동시에 적의 턱에 적중한다.


퍼벅! 콰각!


정강준의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부딪치며 갈린다. 기괴한 소리가 귀를 찌른다. 마치 부싯돌을 쳐서 만들어낸 것 같은 불꽃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악착같이 버티던 정강준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쓰러진다. 그러면서도 추가타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기듯이 뒤로 물러나다가 또 넘어진다. 다시 일어서려 버둥거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허나 이것은 치명타가 아니다. 이때 정말로 큰 타격을 받았다면, 정강준은 엉덩방아를 찧는 게 아니라 앞을 보고 큰절을 하듯 쓰러져 의식을 잃었을 터.


하지만 김명진은 오인을 한다. 쓰러지는 정강준을 보고 승부가 결정됐다고 생각한 김명진이 거기서 전질을 턱 멈춰 버린다. 물론 지쳐서 바로 간격을 좁히며 따라 들어가지 못했던 것도 있다.


애초부터 방심한 채 내키는 대로 쉽게 싸움을 시작했던 김명진. 뒤늦게 차오르는 적의에 분을 못 이기고 진저리를 친다.


“아 이런 미친 새끼가...!”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어이없게 진흙탕에 휘말려들면서 개망신을 당한 김명진이, 손상당한 자존심을 만회하려는 듯 거칠게 욕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미 코피가 흐르고 있다.


김명진의 코에서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간 피가


이런 썅!


욕설과 함께 공중에 안개처럼 흩뿌려진다.


그냥 코의 혈관이 터진 것이 아니라 코뼈가 부러진 것이어서 피가 많이 흐른다. 당연히 코로 숨을 쉬는 일도 쉽지 않다.


푸우, 푸후.


승자의 호흡이 더 거칠다.


숨을 가다듬다가 뒤늦게 자기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확인하고 분기탱천한 김명진이, 넘어져 있는 정강준에게 달려가 머리를 발로 찬다. 축구공을 차듯이.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정강준은 간신히 몸을 뒤집으며 바닥에 몸을 굴린다.


김명진은 헛발질을 하고 만다. 사커킥을 피한 정강준이 의문에 휩쓸린다.


왜 손에서 피가 안 나는 거지? 분명히 칼로 상처를 냈는데?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해도 자기 손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긋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체했을 때조차도 자기 손가락을 스스로 찔러 피를 내지도 못한다.


떨리는 손으로 그은 상처다. 정강준의 칼질은 얕았다.


5초만! 아니 2초만이라도! 시간이 멈춰주기만 한다면! 뒤집을 수 있어! 언제든!


정강준은 종이 한 장 두께의 희망을 딛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거구는 거대한 만큼 더 빨리 지치는 법이다. 겨우 일어선 정강준을 따라가서 짓밟지 못한다. 땅에 피 섞인 침을 뱉고 코를 풀 뿐이다.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둘을 둘러싸고 있던 똘마니들은 모두 말이 없다. 울타리 역할 외에 다른 허튼 짓을 하는 놈은 없다. 마치 그 싸움의 배경화면이라도 된 것처럼 손톱만큼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우두머리가 싸울 때 그 뒤에 무리지어 서 있는 졸개들의 역할은 단순하다. 자기들의 대가리가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바로 등 뒤에서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는 것. 또는 그럴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비겁하고 하찮은 배역이다.


일대일 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크기라면, 싸움 자체의 판도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은 머릿수다. 여럿이 한꺼번에 정강준을 공격한다면 정강준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승부를 뒤집을 방도가 없다.


사실 정강준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던 셈이다. 만일 정강준이 초장에 김명진을 압도했더라면, 등 뒤에 서 있던 놈들이 바로 집단구타를 가했을 테니까.


하지만 정강준이 줄곧 열세였기 때문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들의 두목이 어렵지 않게 이길 것이라는 전망을 깔고 있던 놈들이 완전히 느슨해져 있던 사이, 김명진은 늪에 발을 들였다. 일이 그렇게 됐는데도 선뜻 나서는 놈들은 없다.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언더 독 정강준의 예상 밖 선전에 놀란 것이 반, 정강준이 뿜어내는 독기에 짓눌린 것이 반 정도?


놈들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경악과 일종의 경외심이 엑스트라들의 발을 잡아 묶고 있는 것이다.


그저 멍하니 멈춰서 있던 놈들 틈에서, 정강준은 귀기에 가까운 투지를 뿜어낸다.


시간은 멈출 거야. 반드시.


...그런데 도대체 언제?


좀체 와주지 않는 그 순간이 너무 멀고 야속하게 느껴져 정강준은 좌절하고 지친다. 싸우는 시간은, 그 싸움의 장본인들에게만 더없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정강준이 마지막 힘을 다해 김명진에게 일직선으로 달려든다. 절망 때문이다. 당장은 시간을 벌고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전술적 판단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자포자기식 돌진을 한 것.


작전도 계획도 없다. 죽을힘을 다해 치고받던 동안, 투쟁본능이 사고력을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 순간, 그날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기술이 등장한다. 그 첫 번째 기술은, 주먹을 휘두르며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정강준 앞에 주저앉듯 몸을 훅 숙이며 공격을 피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기술 뒤에 바로 두 번째 기술이 이어진다. 중등부 씨름선수였던 김명진이 자살돌격을 흘려보내고 정강준의 허리춤을 붙잡는다.


정강준의 온몸을 쑥 뽑아 들어 올린다. 김명진에게는 그리 무거울 리 없는 몸집인데도, 한 번 휘청한 끝에야 겨우 뽑아든다. 그리고는 버둥거리는 정강준의 몸을 머리가 땅으로 가게끔 뒤집어 맨땅에 패대기를 쳐버린다.


공중에 붕 떠오른 정강준의 몸이 시멘트 바닥에 퍽석 내리꽂힌다. 힘의 차이가 현격해야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천만다행으로 머리가 시멘트 바닥에 내리꽂히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단단한 바닥에 등으로 떨어지자 숨조차 쉴 수 없다. 뭔가 부러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정강준의 귀를 긁는다.


여기서 씨름선수였던 김명진이 어째서 그때까지도 자신의 씨름기술을 쓰지 않고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초반에 임수산이 뻘짓을 하는 바람에 아무런 대비 없이 싸움에 말려든 탓이기는 하지만, 싸움 초반에 씨름기술을 쓰지 않았던 데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


그것은 김명진이 자신의 주종목을 숨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십 여 년 전 국내 종합격투기 시장이 막 태동하던 시절 선수로 활동하던 지인이 하나 있다.


현대 MMA의 시조새라고 해도 될 노인네(?)였는데, 당시 작가와 그 지인은 모 입식타격기를 함께 수련하고 있었다. 해당 선수는 종종 작가에게 같이 팀을 만들어서 종합격투기에 도전해보자는 제의를 해오곤 했었다(그래놓고 어이없게 자기가 먼저 운동을 그만둬버린 게 함정).


그 시절은 MMA가 아직 체계적으로 자리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시합자는 자신의 베이스가 되는 격투 스타일을 프로필에 친절하게 적어 주고 시합을 뛰게끔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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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거대한 링 24.03.26 7 0 11쪽
59 소의 성추행 24.03.23 12 0 11쪽
58 소고기집 상남자들 24.03.22 10 0 11쪽
57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5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10 0 12쪽
54 참패 24.03.16 12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6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2 0 13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3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3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6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8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20 0 11쪽
46 폭파범들 24.03.06 19 1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5 2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2 27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1 27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2.29 25 0 11쪽
41 링의 악마 24.02.28 27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2.27 26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2.24 28 0 11쪽
38 아나콘다 24.02.23 30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2.22 30 0 11쪽
36 현질 24.02.21 32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39 0 11쪽
34 우주인 24.02.17 41 0 11쪽
33 반칙왕 24.02.16 4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5 42 0 11쪽
31 결전 24.02.14 4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3 59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0 58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09 6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08 4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07 47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06 74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2.03 4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02 55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01 6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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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파링 세션 24.01.25 65 1 10쪽
16 낙관주의자 24.01.24 68 1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1.23 88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1.20 90 2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1.19 98 2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1.18 113 2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1.17 107 2 10쪽
» 똘마니들 24.01.16 108 2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1.13 112 2 10쪽
8 살인연습 24.01.12 121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1.11 127 1 10쪽
6 아리가또오 24.01.10 13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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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산은 백억 24.01.04 217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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