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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피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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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피에르와소
작품등록일 :
2019.03.09 00:54
최근연재일 :
2019.06.03 17: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3,870
추천수 :
251
글자수 :
635,842

작성
19.06.02 13:00
조회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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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20쪽

63화

DUMMY

리피트는 어느새 아르칸의 성물이 꽂혀있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르칸의 성물은 미르네가 가져갔을 터인데, 막대기가 여전히 한가운데에 꽂혀있었다.


'어쩌면 저게, 그 방으로 이끄는 방법이었던걸까?'


리피트는 고개를 돌려 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시간은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되어있었다.


"리피트!"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리피트. 그곳엔 좀 전까지도 보아서 익숙한 미르네가 자리하고 있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 거 아니야?"


"어? 어,어. 문이 닫히더니 다른데로 이동되더라고, 잠깐 기다리니까 다시 여기로 돌아왔어."


"삐이이잇!"


리피트가 미르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하얀색의 털뭉치가 리피트의 품속으로 뛰어 들었다. 리피트는 그 털뭉치를 포근히 안아들었다.


리피트에게 열심히 몸을 부비는 털뭉치는 바로 루아였다. 그리고 루아가 뛰어든 쪽엔 디위티가 자리하고 있었다.


"멀쩡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루아가 엄청 걱정했거든요."


"그래? 우리 루아 아빠 걱정했어?"


"삐이이"


얼굴을 부비는 루아에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리피트는 일행과 함께 신전 밖으로 나왔다.


리피트는 아공간에서 차를 꺼냈다.


"일단은... 일단은 돌아가자."


리피트는 여전히 울적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ㅡㅡ


그 날 밤, 리피트 일행은 차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그 중 한명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제가 보이시나요? 리피트 씨?"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는 리피트. 하지만 리피트가 눈을 뜬 것은 마차의 안이 아니라 꿈속이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리피트는 눈 앞에 비춰들어오는 후광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아르칸 주신과 똑 닮아있었다.


그러나, 아니무의 비석에 갔다온 리피트는 무엇때문이었는지, 그녀가 아르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시죠?"


"제가 누구인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리피트는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리피트는 그녀가 '악'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악'이 아니라 미르네의 몸에서 완잔히 빠져나온 '악'의 본신.


더이상 아르칸의 모습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르칸의 모습은 검은 색의 물체로 바뀌었다. 후광은 사라졌고, 리피트는 그에게 눈을 똑바로 맞출 수가 있었다.


"저를 신전으로 보낸 것... 당신이 한 일입니까?"


"맞습니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복수인가요?"


리피트의 앞에 있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는 단지,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가 정확한 사실들을 알았으면 했던 것 뿐입니다."


"그게 다라구요? 하지만 아니무 그가 보여주려 하고 실행 하려고 했던 건..."


"그건 모두 끝났습니다. 저희의 복수는 끝났고, 그들은 후회를 하면서도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일은 그들이 모두 마무리 지었어요. 인간과 신들 사이에서 벌였던 전쟁은 듣고 싶으시다면 말해드리겠지만, 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마 내일까지 일어나시지 못하실 겁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나 씁쓸한 웃음을 짓는 그. 리피트는 그의 말에 더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 지금 이렇게 저를 찾아오신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리피트의 눈 앞에 서있는 '악'은 조금씩 이야기를 늘여놨다.


"저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저를 품은 자, 그게 미르네든 아르칸이든 저에게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요. 그런데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은 서서히 영향을 받죠. 착한 이가 나쁜 이로 변하고, 법을 어기는걸 죽도록 싫어하던 자가 범죄자들의 수장이 되고... 그렇게 변합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아르칸은 제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서 영생을 뺏어버린 거겠죠. 그들이 죽으면 그렇게 퍼졌던 내가 없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이 신들과 인간의 전쟁의 원인이 된거구요 ."


"아주 옛날, 인간과 신의 전쟁. 그 과정에 인간도 신도 수없이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미르네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들이 죽으면 '악'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키워놓은 만큼의 '악'이 그녀에게 돌아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리고 그걸 알게된 미르네는 스스로를 봉인합니다. 아마 죄책감, 괴로움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미르네가 사라지며 인간과 신들의 전쟁에서 신들은 대패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아르칸의 곁을 지키던 중요한 신들이 모두 봉인이 되어 버리죠. 그리고 그들을 나타낸 게 바로 당신이 보았던 대신전의 석상들입니다."


"인간들의 승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칸과 데르카스가 미르네의 봉인 속으로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때, 아르칸은 저를 미르네에게서 떼어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써 그 둘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만큼 힘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리피트는 그의 마지막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아르칸과 미르네에 버금갈만큼 힘을 모았다니, 리피트는 두려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리피트의 표정을 본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무언가 다른 걸 할 생각은 없습니다. 복수는 이미 끝났거든요."


제가 리피트 씨를 부른 이유는,


"아르칸 미르네, 두 사람에게 제 뜻을 전달해주었으면 해섭니다."


"전달이요?"


"네. 저는 그동안 제 힘의 영향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열심히 시도해왔고, 그를 위해서 역설적으로 저의 힘을 키워왔습니다. 이젠 제 힘이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일이 없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참. 그리고 봉인된 신들도 플어주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


"그 두사람이 그 말을 믿을까요?"


"아마도요? 리피트 씨가 직접 설명하시면, 아마 믿을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말도 전하세요. 제가 협력하지 않으면, 알리모가 당신들이 풀어준 마지막 신이 될거라고."


리피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악'은 리피트에게 미소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일은 나지 않을거니까요."


'이걸 어떻게 걱정을 안해.'


"이런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리피트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악'. 그는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듯, 리피트를 불렀다.


"이걸 말해주는 걸 잊었네요. 리피트 씨."


리피트는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꿈속에서 나가는 과정이라 눈이 슬며시 떠지고 있었다. 조금씩 사라지는 꿈 속의 공간. 그럼에도 리피트는 왠지 모르게 최선을 다해 '악'을 쳐다보려 애썼고,


"이게 당신이 경험했던 아니무의 모습이랍니다."


리피트는 데른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을 눈에 담는 것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ㅡㅡ


"허억!"


빡!


"악!"


"아악!"


벌떡 일어난 리피트는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던 누군가와 이마를 세게 부딪혔다.


"아야야."


머리를 부딪힌 주인공은 다름아닌 디위티. 그녀는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리피트를 걱정했다.


"괜찮으세... 헉!"


디위티의 앞엔 리피트가 이마에 큰 혹을 붙인채 기절해 있었다.


잠시 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혼자서 일어나다가 그렇게 된건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리피트는 차갑게 만든 물수건을 이마에 난 혹에 문지르고 있었다. 데른에게, 아니 아니무에게, 어쩌면 '악'에게 개조를 받은 이후, 일상생활에서 이정도로 다친 건 처음이었다.


'엄청 단단하네.'


아무래도 보석의 정령이기 때문일까, 리피트는 부딪힌 그 순간에 디위티는 절대 깨지지 않는 벽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정도 강도에 있는 힘껏 헤딩을 해서 인지, 리피트의 머리에 난 혹은 생각보다 치유가 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고, 겨우 혹이 다 가라앉을 때 쯤.


"도착이다!"


미르네의 목소리와 함께 리피트는 테르덴 공작가에 도착했다.


ㅡㅡ "잠깐만! 도착이라고?"


짧게 지나가려던 스토리의 한 자락을 리피트가 붙잡았다. 리피트의 표정엔 당황이 가득했다.


'늦잠을 잔 게 아니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르칸 성국과 테르덴 공작가는 하루만에 왔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무리 빨라봐야 3일정도는 걸리는 거리. 그리고 리피트는 분명 성국을 벗어난 첫날 잠이 들었었다.


"응. 도착했는데 왜? 아, 맞다 너 계속 자고 있었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 며칠동안 잠들어있었어?"


"음... 거의 4일? 4일반이라고 해야하나. 그정도?"


"4, 4일?"


"응. 뭐 위험한 거 같지도 않고 그냥 진짜 잠만 자길래 냅뒀지.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


'그 짧은 사이에 4일이나 지났다고?'


리피트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번에 아르칸 성국을 간 김에 부모님을 잠시 뵙고 싶었는데, 잠에 빠져들어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모시러 갈때가 되야 뵙겠네...'


"왜? 거기서 해야할 일이 남았었어?"


"아니. 그런건 아니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리피트 일행은 테르덴 가로 돌아갔다.


ㅡㅡ


"아르보레~"


"어, 엄마!"


미르네에게 달려와 폭 안기는 아르보레. 아르보레는 정말 다행이란 표정으로 리피트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으이구, 남자나 만나러 다니구! 아예 오지도 않다니, 엄만 살짝 실망했어."


"그게 아니에요! 지팡이로 이동이 안되서... 혹시나 무슨일이 생겼을까 엄청 걱정했단 말이에요."


"이동이 안됐다고?"


"네."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보레. 그녀의 모습에 리피트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리피트가 아니무의 기억이 담긴 방에 있었다면, 아르보레가 올 수 없을 법했다. 그런데, 리피트가 아는 아르보레라면, 분명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이동을 시도했을터.


"미르네. 잠깐만 지팡이 속으로 들어가봐."


미르네 또한 리피트와 생각이 똑같은 것 같았다. 굳은 표정의 그녀가 스르륵 흩어지며 지팡이 속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잠시 뒤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안 돼."


"안 돼?"


"응. 아예 들어가지지가 않아."


"이런..."


리피트의 표정이 굳었다. 지팡이 덕분에 누가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는데, 이러면 다른 이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맞다. 리피트, 이따가 잠깐..."


"리피트 님!"


미르네의 말이 누군가의 외침에 묻혔다. 덕분에 미르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리피트는 외침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데르카스와 밀레느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 배가 조금 불룩해진 밀레느와 데르카스의 모습은 젊은 부부 그 자체였다.


"사람 다 됐네. 밀레느 님 힘드시게 뭐하러 여기까지 데리고 나왔어."


"제가 가자고 했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허허, 미르네 님도, 아르보레도, 리피트 님도 다들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그래. 니네 얘기는 쥘렌 님한테서 다 들었어. 아,참 우리 일행이 늘었어. 이쪽은 보석의 정령 디위티, 그리고 신수인 루아."


"안녕하세요."


"삐이!"


"저는 태초의 용이자 아르칸 주신 님의 첫번째 생명체 데르카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아내이자 테르덴 가의 공녀, 밀레느입니다."


"반가워요."


서로간의 소개를 마친 그들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작가의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갔다.


밀레느는 건물에 들어와선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레 떠나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데르카스의 눈이 떠날 줄을 몰랐다.


"저흰 이쪽으로 가시죠."


아무래도 밀레느가 걱정되는지 빠른 발걸음으로 리피트 일행을 안내하는 데르카스. 그가 안내한 곳은 방음 마법 등이 빽빽하게 설치된 비밀스런 곳이었다.


마련된 자리에 앉은 리피트 일행. 데르카스는 망설임없이 이야기를 꺼내놨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지팡이를 통한 대화도, 이동도 되지 않습니다."


리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왜 그렇게 된건지 혹시 아십니까?"


"짐작이 가는게 있긴 해. 하지만 정확하진 않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데르카스.


"아마 미르네 님도 아시고 계시겠지만, 잠시 뒤 밤에 아르칸 주신님께서 찾아오실 겁니다."


"아르칸 님이 찾아오신다고? 아르칸 님은 여기..."


리피트는 갑옷을 가리키려다가 말았다. 아르칸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말하지 말아달라 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르카스가 뒤이어 한 말은 리피트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르칸 님은 충분한 힘을 되찾으셔서 한참 전에 그곳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지금은 신계에 가 계시죠. 오늘은 급한 일 때문에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신것 같습니다."


'여기서 나갔다고?'


리피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언제 성물에서 빠져나갔던 것일까.


"아니야. 내가 불렀어."


그리고 옆에 있던 미르네가 데르카스의 말에 대답을 하며, 그녀또한 이를 알고 있었단 사실을 암묵적으로 드러냈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좀 이상해서. 그래서 내가 언니를 불렀어. 직접 올라가서."


"그렇군요."


데르카스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아르칸 님께서는 미르네 님과 리피트 님 두 사람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을 좀 찾아달라고도 하셨구요. 그래서 여기.."


데르카스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리피트 일행에게 건넸다. 슬쩍 보니 이 근방을 그려놓은 자세한 지도였다.


"미르네 님과 리피트 님. 두 분께서 이곳으로 가주셨으면 합니다."


"알았어."


"그럼 저는 이만."


할말을 다 마친듯 데르카스가 밖으로 나갔고, 그에 따라 리피트 일행들도 모두 방을 나왔다.


"디위티, 일단 루아를 데리고 손님용 방에 가 있어. 아르보레는 디위티랑 왠만하면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어."


"네."


"루아야, 아빠 조금만 이따가 올께. 걱정하지말구 자?"


"삐이."


리피트는 루아의 앞발을 잡고 잠시 흔든 후 미르네와 함께 데르카스가 찍어준 곳으로 향했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걸어가다보면 아르칸이 원하는 시간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거리는 마법등 덕분에 상당히 밝았다. 리피트와 미르네는 아무말없이 길을 따라 나아갔다.


"리피트."


"응?"


"언니가 너한테 공격적이어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공격적이라니?"


"언니는 그냥... 원래 그렇지 않으니까, 무서워서 그런거니까. 너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리피트는 미르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데르카스가 정해준 곳에 도착한 두 사람. 그곳엔 후광이 나지 않는 아르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네."


리피트는 아르칸의 눈빛에 멈칫했다. 그녀는 리피트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리피트는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르네. 이쪽으로 와."


아르칸의 말에 미르네가 리피트의 반대쪽에 가서 섰다. 미르네가 자리를 잡는 순간, 아르칸에게서 엄청난 신격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뿜어내는 신격에 리피트는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다. 리피트가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미르네 또한 신격을 내보냈고, 리피트는 두 신의 힘에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리피트. 그가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던 것이 무엇인가요."


'으으윽.'


리피트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격의 차이 때문인지 딱딱히 굳은 몸은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리피트는 할 수 없이 움직임을 포기하고, 꿈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제와서 봉인을 풀어주고 싶다? 이 자식이!"


아르칸의 몸에서 엄청난 신격이 뿜어져나왔다. 말그대로 주신만이 가질수 있는, 그런 강력한 힘. 그리고 그걸 직격으로 맞는 리피트는 죽을 맛이었다.


"당장 밖으로 나와라! 언제까지 숨어있을 셈이냐!"


아르칸에게서 나오는 기세는 더욱더 강해져만 갔다. 리피트가 더이상 버틸수 없다고 생각할 무렵, 아르칸의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갑옷 안에 들어있는 작은 내용물만으로 거기에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군. 아르칸."


"너. 이 놈, 아니무!"


아르칸의 뒤에서 나타난 것은 데른의 모습을 한, 아니 아니무의 모습을 한 '악'이었다.


"아니무라니. 이 몸엔 데른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있어. 그러니, 데른이라고 불러주지 그래? 그리고, 저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나? 이거야 원, 주신이란 이름이 울겠군."


데른이라 자신을 칭한 '악'은 손짓 하나로 리피트에게 가해진 압박을 모두 날려보냈다. 물론 그를 위해 리피트의 주변을 검은 기운들이 둘러쌓지만, 그덕에 리피트는 털썩 엎어질 수라도 있었다.


"미르네. 나를 보는 건 처음인가? 뭐, 이 모습은 구면일거고 나도 너랑은 구면이지만, 어쨌든 반가워."


미르네는 울듯한 표정으로 데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데른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 동생에게서 떨어져라!"


또다시 엄청난 신격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데른은 아무렇지 않은듯 그 힘을 밀어냈다.


"이거 왜이래. 난 이래뵈도 너희들과 협력하러 온거라고. 이 아이한테서 이야기를 다 들었잖아? 난 신들에게의 마음을 깔끔하게 털었고, 봉인된 신들을 풀어주는 걸 도와주겠다는데 나한테 이런식으로 할거야?"


"그들이 누구땜에 봉인이 되었는지 잊었느냐!"


"누구긴! 그 잘나고 잘나신 주신님께서 그들이 봉인되도록 사지로 내몰아준 덕이지!"


"이 놈!!"


리피트로서는 엄두도 못낼만큼 엄청난 힘이 몰려왔다. 데르카스가 빈 공터를 잡아주었다고 했지만, 공터 수준으로는 버티지 못할 힘들. 아니나다를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르칸의 분노에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허허, 이게 주신이냐? 이 마을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거냐? 하긴,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라면 절대 그들을 내쫓지 않았겠지!"


"너를 이 세상에서 지울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감수할 것이다! 네가 아무리 그동안 힘을 키웠다고 해도, 내 봉인을 이길수 있을 것 같으냐!"


아르칸은 반쯤 미쳐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악'은 원수와도 같았다. 대부분의 신들을 죽이고, 남은 이들은 전부 봉인되게 만든, 그 전쟁의 원인. 아르칸은 그를 이곳에서 어떻게든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데른에게도 아르칸은 원수와도 같았다. 악의 결정체이자, 미르네의 일부. 그리고 강렬한 분노를 품었던, 신에서 인간이 되어버린 이들의 모든 기억을 안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아르칸은 수많은 친구들을 죽음으로 내몬 폭군일 뿐이었다.


"봉인? 어디 한번 해봐라! 나를 봉인하는 순간 너또한 영원히 봉인되게 해줄테니까!"


이 세상에서 다시는 일어나면 안될 힘의 충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미르네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마치... 예전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서 일어났던 인간과 신들의 전쟁. 미르네는 죽어간 이들에게, 소멸된 이들에게 항상 미안했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악이라는 걸 막아낼 수 있었더라면. 전쟁도중, '악'이라는 힘이 오히려 늘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걸 깨달았던 미르네는 곧장 자신을 봉인했었다. 그게 전쟁을 멈추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인 속에 갇혀서 보게된 결과는 처참했다. 몇명의 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고, 또 그들의 대부분은 영원히 풀려날수 없는 봉인을 당한, 최악의 결과. 그리고 지금은 최고의 신과 그에 맞먹는 힘을 가진 존재가 싸우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저번 전쟁보다 피해가 더 클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히 더 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엔, 혼자서 몰래 답이랍시고 끌어안는게 아니라, 무조건 해답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아르칸!!!"


"이 놈!!!!"


그래서, 누가보아도 자신이 가진 힘들보다 훨씬 강한 두 힘들의 사이로.


미르네가 몸을 던졌다.


"안 돼!"


뒤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리피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르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괜찮을거야. 왜냐면...'


그리고 그렇게.


리피트의 눈 앞에서.


미르네가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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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19.05.05 175 1 16쪽
43 42화 19.05.04 184 1 21쪽
42 41화 19.05.03 178 1 19쪽
41 40화 19.05.01 183 1 12쪽
40 39화 19.04.29 199 1 21쪽
39 38화 19.04.19 196 1 30쪽
38 37화 19.04.17 190 1 20쪽
37 36화 19.04.15 188 1 22쪽
36 35화 19.04.14 224 1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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