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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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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피에르와소
작품등록일 :
2019.03.09 00:54
최근연재일 :
2019.06.03 17: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3,877
추천수 :
251
글자수 :
635,842

작성
19.05.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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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추천
1
글자
21쪽

42화

DUMMY

숨을 거둔 거대한 용.


리피트는 그 앞에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데르카스도 올카누도 움직이지 않았다. 올카누와 데르카스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르네와 아르보레 또한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뜨겁기만하던 방안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묵념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몰키베와 누구보다 친했을 올카누였다.


"데르카스 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어두운 표정을 짓는 데르카스. 리피트는 그의 표정을 통해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리피트 님도 제 친구를 위해 데르카스 님을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리피트 님 덕분에 제 친구가 아무걱정없이 행복하게 눈을 감았어요."


"아닙니다. 제가 뭘 한게 있다고..."


"리피트 님. 이걸 잠시만."


그때 옆에 있던 데르카스가 리피트에게 들고 있던 책을 내밀었다. 리피트는 그걸 받아들었다.


"아공간에 넣어두십쇼.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은 잠시.. 다른 곳에 있고 싶군요."


데르카스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지팡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울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바라보는 리피트를 올카누가 불렀다.


"리피트 님. 원하시던 검을 지금부터 제작 할 겁니다."


"네?"


올카누는 붉어진 눈으로 리피트를 바라봤다.


"이 친구는 항상 죽게되면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했어요. 그리고 본인이 마지막에 리피트 님의 검이 되고 싶다고 정했습니다."


"왜 저에게 그런.."


"제가 바쁘다고 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네? 네."


올카누는 눈을 감고 죽어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를 쳐다봤다.


"드래곤들은 죽게 되면 그동안 몸에 지니고 있었던 엄청난 마나들이 흘러나와요. 그건 주변엔 큰 변화를 만들어내죠. 죽음을 앞둔 몰키베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피해를 걱정했고, 저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저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이 깊은 동굴에 몰키베를 억지로 밀어넣은 거에요."


올카누가 고개를 잠시 숙였다. 그녀에게서 슬픈, 미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고개를 든 그녀가 리피트를 쳐다봤다.


"몰키베의 죽음 이후 나타날 마나 폭풍은 우리 두 사람의 걱정거리였어요. 분명히 큰 피해를 낳을테니까요. 그런데 리피트 님께서 오시곤 그 걱정이 사라졌어요."


리피트는 자신의 옆에 자리한 알을 내려다봤다.


"신수의 알이 대부분의 마나를 가져가준 덕분에 몰키베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거에요. 아까 보셨다시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 모습이 바로 저와 몰키베가 항상 원하던 광경이었어요. 몰키베도 저도 리피트 님께 큰 빚을 진거에요."


이번엔 리피트에게 고개를 숙이는 올카누. 그녀는 리피트를 쳐다보곤 말했다.


"원하시는 검의 형태가 있으신가요?"


리피트는 그동안 생각하던 검의 형태를 말했다. 가볍고 얇고 날카로운 운검. 고개를 끄덕여보인 올카누가 자신위의 아공간에서 칼을 꺼냈다. 그녀는 드래곤의 사체 위에 칼을 얹었다.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최고의 드워프는 결국 눈을 꼭 감은채 칼을 사용했다.


ㅡㅡ


칼이 들어간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올카누는 병을 하나 꺼내 피를 받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눈짓으로 리피트를 불렀다. 리피트가 가까이 다가오자 리피트가 입을 열었다.


"피를 좀 받아주세요. 가지고 계신 병을 사용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리피트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쉼없이 흘러나오는 드래곤의 피를 받았다. 슬쩍 그녀를 보자 그녀는 굳은 얼굴로 더이상 눈을 감지않고 드래곤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결심이 가득 차 있었다.


오랜시간이 흐르고 리피트가 받아낸 혈액이 수백개의 커다란 병들을 채울때쯤 올카누의 작업이 끝이 났다.


리피트의 눈앞엔 올카누가 마법으로 깨끗이 씻어낸 드래곤의 뼈들, 고기, 비늘 그리고 병에 담긴 혈액들이 자리했다. 올카누는 무언가를 따로 빼놨는데 이는 몰키베의 심장과 두개골이었다.


올카누는 사체의 뒤로 돌아갔다. 그곳엔 어느새 준비해뒀는지 거대한 용광로와 대장간의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뼈와 피가담긴 병을 들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올카누는 몰키베의 심장을 집었다. 그녀가 마나를 불어넣자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다.


그 뜨거운 불꽃에서 용의 뼈들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조금씩 녹아없어져 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올카누는 망치를 들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리피트가 무언가 도울게 없을까 서있었다. 그런 그를 올카누가 돌아봤다.


"나중에 검이 완성된다면 제가 리피트 님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그 말만을 내뱉고는 다시 망치질에 집중하는 올카누. 그녀는 무한한 집중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리피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차에 미르네와 아르보레가 모두 탔다. 두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분위기에 리피트 또한 입을 열지 못했다. 숙소에 돌아올때까지 소리를 내는것은 작게 떨리고 있는 알 뿐이었다.


ㅡㅡ


"으으음."


"괜찮아? 몸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 너... 또 밤 샜구나. 그만 들어가서 눈이라도 붙여. 이러다 너가 나보다 먼저 죽겠어. 올카누."


"장난치지 말구. 나 어차피 안 죽는다는 거 알잖아. 그리고 네 몸이 괜찮아지기 전까지는 이 동굴에서 나가지 않을거야."


몰키베와 올카누. 올카누는 태초의 드워프 중 한명인 드워프 장로였고, 몰키베는 용들 사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용이었다.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둘은, 어릴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사이로 지내왔다. 서로 종족은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터놓았던, 소울 프렌드, 영혼의 단짝. 하지만 둘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면, 한쪽은 영생을 사는 이였고, 다른 한쪽은 오랜 세월을 살긴 하지만 영생은 살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결국. 한 쪽의 수명이 다하는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예전엔 아주 예쁜, 혹은 아주 멋진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던 몰키베.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는 더 이상 어떤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몸안의 마나가 더이상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가 마법을 쓰려고 할때마다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쿨럭, 쿨럭."


후우웅.


기침을 내뱉는 몰키베의 몸에서 빨간 비늘이 산산히 조각나며 떨어져 나왔다. 마법을 더이상 못 쓰게 되었을때보다 몸이 훨씬 더 안 좋아진 지금, 몰키베는 약간의 기침만으로도 몸 속의 마나가 날뛰어 주변에 마력으로 인한 충격을 주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아무도 살지 않는 폐광 동굴에 몰키베와 올키누가 옮겨와 살게 된 것도 몰키베가 기침을 할때마다 사방에 퍼져나가는 충격파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었다.


"허억... 허억... 올카누... 내가 죽을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지? 무조건 다른 도시로 가야해. 미리미리 근처 마을에 모두 알리고."


"모두 알린 다음엔 다시 돌아올거야. 난 태초의 드워프 중 한 명이고, 절대 죽지 않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네가 숨을 거둘때 니 옆에 있을거야. 해결방법은 계속해서 찾고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말고 편히 쉬기나 해."


다른 모든 것들은 이 폐광 동굴에 있으면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이 말도 안되는 세월을 살아온 고룡이 평생동안 쌓아온 마나가 주인을 잃고 흘러나온다면, 그 여파는 도시 하나를 잡아먹고도 남을 재앙이 될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카누는 밤을 밥먹듯이 새며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한 모든 드래곤들이 숨을 거둘때 엄청난 마나 폭풍을 동반했다는 건 여지없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그들 모두가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올카누가 생각한 한가지 방법은 죽기 전에 마나를 모두 쏟아내는 것. 마나가 하나도 없는 빈껍데기가 되어버린다면, 제어되지 않는 마나가 불러 일으키는 폭풍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가 이 고룡의 끝없는 마나를 모두 받아들일수가 있겠는가. 또다시 다른 해답을 찾아 돌아다니는 올카누에게 몰키베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 또 하루. 몰키베에게 허락된 시간은 점점 줄고 있었고, 올카누가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올카누."


"어?"


돌아서있는 올카누에게 말을 거는 몰키베.


"어제 밤에 말이야. 내가 오랜만에 공원에 갔었어."


"..."


올카누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올카누가 아는 어떤 이들보다도 공원에 가는걸 좋아하던 그였다. 하지만 몸이 나빠진 이후 그는 공원 근처에 가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마력폭풍이 그가 아끼는 공원의 풍경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몰키베가 그런 위험들을 무릅쓰고 공원에 갔다는 건... 즉, 그의 죽음이 정말 한치 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벤치에도 앉아보고, 공원 길을 걸어도 보고."


가쁘게 숨을 내쉬는 몰키베.


"그러다가 문득, 그 어두운 밤에 공원에 온, 두 드워프의 이야기를 들었어."


"어떤 이야기?"


"드워프로써 태어난 이상 자신은 꼭 드래곤을 이용한 무기를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바라보지 못할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그렇게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니, 친한 친구들이었나 보네."


"응. 마치 너랑 나처럼."


잠깐 올카누를 쳐다보는 드래곤은, 다시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올카누."


"응?"


"너도 드워프잖아."


"그렇지."


"그러면 너도 드워프로써의 꿈이 있겠지? 다른 모든 드워프들이 그런것처럼?"


"몰키베..."


"내가 죽으면... 네가 직접 내 몸으로 무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


"세계 최고의, 둘도 없을 대단한 무기로.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인 올카누가 있으니까 가능하겠지?"


몰키베에게서 등을 돌린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는 올카누. 상냥하게 자신에게 전할 마지막 말을 남기는 듯한 그에게 올카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ㅡㅡ


숙소에 돌아와 방으로 들어간 리피트 일행. 다른 이들은 모두 우울한듯 서로의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중 비교적 우울함이 덜한 리피트는 혼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바깥을 바라보던 리피트는 문득 데르카스가 줬던 책이 생각났다.


"마법서네?"


건네받은 책들은 모두 마법서 였다.


'나보고 익히라고 가져온건가?'


리피투는 마법서 안쪽의 내용을 슬쩍 살펴봤다.


'텔레포트?'


데르카스가 가져온 마법서들은 텔레포트와 아티팩트 제작과 관련된 것이었다.


'마법서는 엄청 비쌀텐데 돈이 어디서 났길래...'


리피트는 데르카스에게 돈을 쥐어줬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만약 데르카스의 돈이 아니라면 이 돈은 모두...


'밀레느한테 빌린 돈인거잖아.'


데르카스덕에 왠지 테르덴 가에게 빚이 생긴듯한 느낌이 든 리피트였다.


리피트가 데르카스의 생각을 계속해서일까, 리피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데르카스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리피트 님."


"이젠 좀 괜찮아?"


몰키베의 죽음 이후 울것 같은 표정으로 사라지던 데르카스. 리피트는 데르카스가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이젠 괜찮습니다. 전 이래뵈도 굉장히 냉정하거든요."


살짝 미소짓는 데르카스. 리피트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어쩔수없는 슬픔이 엿보였다.


"그나저나 밀레느는 어쩌고 돌아온거야?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여긴 지상도 아니야. 공작가로 쉽게 돌아가지도 못해."


데르카스는 씩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리피트의 앞에 있는 마법서들을 가리켰다.


"제가 언제까지나 밀레느의 곁에 있을수도 그리고 영원히 리피트 님의 곁에 없을수도 없죠. 그래서 해결책을 들고 왔습니다."


데르카스는 마법서를 집어 리피투에게 내밀었다.


"제가 거금을 들여 사온 마법서들입니다. 진짜 비싼 마법서들이죠. 제가 이걸 드리는 대신, 리피트 님께서 이 마법을 익히신 후 아티팩트를 만들어주시면 저는 밀레느에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몸이 됩니다."


"데르카스, 하나만 물어볼게. 이거 니가 산거야, 아니면 밀레느한테 빌린 돈으로 산거야?"


데르카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당연히 제 돈이죠."


"돈이 어디서 나서?"


의심하는 리피트. 리피트의 기억 속엔 그에게 거금을 준 기억이 없었다.


"질문은 하나만 하시기로 하셨잖습니까?"


자연스레 리피트의 질문을 피하는 데르카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자! 어서 마법을 익히시죠."


데르카스는 리피트에게 마법서를 억지로 안긴뒤 지팡이 속으로 사라졌다.


"야! 잠깐만!"


리피트는 데르카스를 붙잡았지만 그는 연기가 되어 지팡이 속으로 사라졌다.


"에휴."


리피트는 마법서를 들었다. 오랜만에 익히는 새로운 마법. 리피트는 마법서들에게 하나씩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마법서들이 부서지며 마나가 되어 리피트의 몸에 흘렀다.


'데르카스, 이 녀석...'


리피트는 데르카스가 왜 리피트에게 마법서를 줬는지 알 수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과 아티팩트를 만드는 마법, 그리고 좌표 지정 마법까지. 리피트는 공간마법과 기계마법을 알고 있었으니 이 마법들이 더해지면 언제든 밀레느에게 갈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었다.


"어짜피 올카누 님 한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진 할 일도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 이런걸 구해오는 데르카스의 마음을 봐서 이 정도쯤은 해주기로 했다.


'그동안 신세 진 것도 있... 있나?'


리피트가 아티팩트를 만들 준비를 하자, 눈치를 보고 있던 데르카스가 밖으로 나왔다.


"리피트 님 여기.. 이걸 쓰시면 됩니다."


데르카스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건넸다. 아티팩트에 사용될 보석이었다. 리피트는 보석을 건네받았다.


"바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내일부터 제대로 만들기 시작할거야. 오늘은 예비로 연습해보는거고."


"그렇군요."


리피트는 잠들 시간이 될 때까지 남아있던 청마수정들로 연습했다.


다음날, 리피트는 일어나자마자 퓌락을 찾아갔다. 퓌락은 찾아온 리피트를 반기며 맞아주었다.


"너가 나를 먼저 찾아오다니 왠일이야?"


"미안한데, 오늘은 일을 못할것 같아."


퓌락은 의아하다는 듯 리피트를 쳐다봤다. 그런 그의 눈길에 리피트는 조금 마음이 찔렸다. 사실 요 며칠간은 한 두개의 일만 빠르게 처리하고 계속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겠지. 푹 쉬어."


"왜 쉬는지 이유는 안 물어봐?"


퓌락는 리피트를 쳐다봤다.


"이유고 뭐고 간에 애초에 지금 너를 제외한 수리기사들은 모두 파티중이야. 니가 일이란 일은 다 순식간에 해치워준 덕에 걔네들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월급 받아가거든. 난 너도 계속 쉬는 줄 알았는데, 너는 계속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그 뭐야.. 하루에 한 두건 정도..?"


"그게 어디야. 애초에 요즘 고장도 거의 없어. 며칠은 더 쉬어도 돼."


"고마워."


리피트는 퓌락의 허가를 받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그대로 눌러 앉아 또다시 연습을 해보는 리피트.


데르카스가 리피트에게 원하는 아티팩트는 지정된 좌표로 텔레포트를 시켜주는 아티팩트였다. 이런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를 리피트 밖에 모르는 데르카스는 거금을 들여 재료들과 마법서를 모두 챙겨왔다. 데르카스는 아까부터 리피트의 옆에 붙어 구경하고 있었다.


"데르카스."


"네."


"그러고보니 이 많은걸 어떻게 들고온거야?"


데르키스는 대답대신 왼손을 내밀어보였다. 셋째, 넷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데르카스는 그중 세번째 쭉 펴서 리피트에게 보여줬다. 리피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욕하냐?"


당황한듯 급히 손가락을 접는 데르카스.


"아뇨아뇨. 잘 보십쇼. 아공간 반지입니다."


"그렇구나... 가 아니라 반지는 무슨 돈으로 샀어?"


"그..뭐야.. 저번에 음식을 담아두던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 다행이다."


리피트는 대화하는 사이 완성된 연습용 반지를 봤다. 리피트가 마나를 불어넣은뒤 옆에 있던 작은 조약돌 하나를 갖다대자 조약돌 밑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다른곳에서 뿅하고 돌이 튀어나왔다.


"이 정도면 시작해도 되겠다."


리피트는 놓여진 재료들을 모두 가져왔다.


"원하는 장신구 있어? 내가 만들줄 아는건 반지밖에 없지만 최대한 원하는걸로 만들어볼게."


"팔찌가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한번 해보자."


리피트가 건네받은 아티팩트 제작법은 보석에 새겨 반지로 만드는 방법뿐이었다. 리피트는 '반지를 크게 만들면 팔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피트는 당연히 난관에 봉착했다.


"리피트 님. 손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너무 작게 만들거나,


"그냥 훌렁 빠집니다."


너무 크게 만들거나,


"크기는 맞습니다만... 팔찌는 원래 풀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반지처럼 통짜로 만들어 벗을 방법이 없다던가..


결국 리피트는 팔찌를 만드는 걸 때려치고 그냥 보석에 텔레포트 마법을 새겨넣었다. 아티팩트는 마법이 새겨진 보석을 어떻게 장비하느냐에 따라 구별되는 것, 리피트는 그냥 마음에 드는 두꺼운 팔찌 하나를 사오라며 데르카스를 내보냈다.


밖으로 즐겁게 달려나가는 데르카스. 마치 억지로 즐거워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리피트의 마음이 씁슬했다.


'근데, 내가 저녀석한테 음식 보관용 반지를 줬었나?'


"뭐해?"


"데르카스 기다려."


미르네와 아르보레가 리피트의 방으로 놀러왔다. 아르보레는 책상위에 놓여진 보석에 눈을 반짝였다.


"예쁘다아."


"미안하지만 그건 데르카스에게 줄 거야. 데르카스가 부탁한게 있거든."


"데르카스가?"


"응."


리피트는 두 사람과 함께 데르카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점심이나 먹을까?"


"그러자."


그리고 저녁까지, 해가 어둑어둑 질때가 되서야 데르카스가 돌아왔다.


"대체 어디를 갔다 오는거야?"


"팔찌를 고르느라..."


리피트는 데르카스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자기가 알아서 잘 했겠지.'


"팔찌 줘 봐. 만들던건 완성해야지."


리피트의 말에 데르카스가 아공간에서 팔찌를 꺼내 건넸다. 그걸 받은 리피트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보석을 뚝닥 팔찌에 박아넣는 리피트. 팔찌와 보석이 서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조정했다. 데르카스가 적어준 좌표를 설정한 뒤, 리피트는 데르카스에게 팔찌를 돌려줬다.


데르카스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해보려는 순간,


틱.


보석에 불빛이 잠깐 생기고는 꺼져버렸다. 당황한 표정의 데르카스가 몇번 더 시도를 해봤지만 약간의 불빛만 생기는건 그대로 였다.


데르카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리피트를 쳐다봤다. 리피트는 무언가 깨달은듯 작게 박수를 쳤다.


"맞다. 너 그러고보니 지팡이나 나를 통해서 마나를 집어넣을 수 있지? 이리 줘봐."


리피트는 팔찌에 마나를 가득 채웠다. 이정도면 5번 정도 무리없이 사용가능한 양이었다.


팔찌를 다시 건네받은 데르카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아티팩트를 사용햤다.


우웅.


보석이 떨리고, 데르카스 주변을 하얀 빛무리가 감쌌다.


"어?"


리피트는 당황했다. 자신이 배운 마법서는 마법진을 통해 이동하는 텔레포트였는데, 데르카스에게 나타나는 마법은 전혀 다른것이었기 때문.


'괜찮...겠지?'


서서히 사라져가는 데르카스. 리피트는 혹시 몰라 황급히 말했다.


"이상한데로 옮겨지면 바로 돌아와!"


리피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데르카스.


'내 말 들었겠지?'


리피트는 불안함이 조금 남았지만, 애써 무시하기 위해 급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ㅡㅡ


테르덴 공작가의 어느 방 안, 한 여인이 마법등을 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법등을 끄는 그녀의 왼손에 반지 하나가 빛났다. 마법등에 비친 반지에 문득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그녀는 손목에 걸린 팔찌를 쓰다듬었다. 팔찌에 박힌 보석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얼마나 걸리려나... 마법서를 이해하는데만 해도 빨라도 한달일텐데..."


그때, 그녀의 팔찌에서 빛이 생겨났다. 깜짝 놀란 그녀가 뭉쳐져가는 빛무리를 쳐다봤다.


잠시 뒤 아름답게 빛나던 마나들이 형체를 이뤘다. 큰 키의 남자가 그녀를 안아줬다.


"밀레느, 보고싶었어."


리피트의 걱정이 무색하게, 데르카스는 행복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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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4화 19.05.20 149 2 21쪽
54 53화 19.05.19 157 1 14쪽
53 52화 19.05.18 178 1 19쪽
52 51화 19.05.17 183 2 23쪽
51 50화 19.05.15 178 1 16쪽
50 49화 19.05.13 173 1 30쪽
49 48화 19.05.12 189 1 21쪽
48 47화 19.05.11 202 2 25쪽
47 46화 19.05.10 182 1 22쪽
46 45화 19.05.08 208 1 21쪽
45 44화 19.05.06 220 1 31쪽
44 43화 19.05.05 175 1 16쪽
» 42화 19.05.04 185 1 21쪽
42 41화 19.05.03 178 1 19쪽
41 40화 19.05.01 183 1 12쪽
40 39화 19.04.29 200 1 21쪽
39 38화 19.04.19 196 1 30쪽
38 37화 19.04.17 190 1 20쪽
37 36화 19.04.15 188 1 22쪽
36 35화 19.04.14 224 1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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