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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개 짖는 소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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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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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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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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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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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만세형이 되어버린 조씨에게서 옷을 벗기려다 시간을 빼앗긴 그는 오분이 남았다는 알람이 들리자 옷을 벗기는 것도 팔을 내리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다. 옷 하나로 설마 자신을 찾아낼까 싶었고, 조씨의 정체가 발각되면 입은 옷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라는 매우 안일한 생각에 접어들어 버렸다. 다급해지면 두뇌활동이 느려지는 그였기에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만세형의 상체를 안아들고 담장 너머 안쪽을 본 그는 돌연 막막해졌다.


‘넓어...’


생각보다 차와 담장의 거리가 멀었다. 그는 최소한의 공간을 두고 차를 떨어트려 두었다. 그 최소한의 기준은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조씨가 나올 수 있는 정도다. 딱딱하게 굳은 조씨는 생각보다 많은 공간을 요구했고, 그는 그를 봉으로 표시한 후 문을 열고 담장 가까이 대는 연습을 수없이 했었다. 그렇게 몸에 익은 감각으로 정확히 연습한 만큼 거리를 둔 채 차를 댔지만, 그는 담장 안으로 조씨를 넘기는 연습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조씨를 안고 주춤 앉은 자세로 그를 깨달았지만,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곧 경비들이 오늘 첫 순찰을 돌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침 일찍 나가는 이들이 차를 움직일 것이다. 내일 다시 올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차를 돌려 나가기 전 경비들에게 발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틀 연속 차가 잘못 들어오면 의심을 받는다. 혹은 입구경계가 강화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가 더는 견디지 못했다. 그는 오늘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다.


주춤 걸어가던 그는 조씨를 담장으로 내밀어 보았다. 힘주어 던져볼까, 고민하던 그는 조씨의 쭉 뻗은 팔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조씨를 돌려 담장에 걸치는 것에 성공하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조씨의 팔은 힘이 없었다. 쭉 뻗은 팔은 걸쳐져 있지만, 상체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냥 두면 땅에 떨어지게 생겼기에 그는 급히 힘주어 조씨를 잡았다.


‘아...로프.’


로프를 풀어버렸기에 그는 조씨를 잡기 어려워졌음을 깨달았다. 높은 기온으로 빠르게 녹고 있는 조씨의 옷에서는 수분이 나와 그의 손을 자꾸 미끄러지게 했다. 바지를 잡아보지만, 고무줄로 지탱되던 바지는 온도차로 삭았는지 뚝 끓어지며 훌렁 벗겨져 버렸다. 그는 다급히 조씨의 맨살을 잡았다. 얼굴 가까이 성기가 위치했지만 다급했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미끄러져 떨어진 조씨가 박살나며 머리가 몸에서 떼어져 굴러 내려가고, 팔은 바퀴 아래, 다리는 또 다른 곳으로 흩어지는 상상이 들어 놓을 수도 없었다.


‘씨발! 내게 왜 이러는데!’


울분에 눈물까지 났다. 그런 그의 귀로 경비원들이 다가오는 소리까지 들렸다.


‘도망가야 해!’


그는 급히 손을 뻗어 조씨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마찰력을 얻은 후 당기자 허벅지를 쥐는 것보다는 수월하게 조씨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담장에 발을 디디고 있던 그는 그 자세라면 조씨를 담장 안으로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급히 조씨를 차 위에 올렸다. 안고 내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조씨가 너무 미끄러웠다. 해동된 고기에서 기름이 빠져나온 듯 잡고 내려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당황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당황한 그가 선택한 것은 조씨를 차 위에 두는 것이다. 그냥두면 떨어질까 봐 걱정은 되었는지 그는 조씨의 손을 난간아래에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나온 포장용 끈으로 조씨의 양 손목을 난간에 묶었다. 내려간 바지고 추켜올렸다. 그런 후 급히 내려와 차 옆문을 닫고 조수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운전석에 올라탔을 때, 멀리 경비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을 느꼈는지 그 중 일부의 걸음이 빨라져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그랬다.


-또 차가 잘못 들어왔나 보네.

-누가 가서 말해줘. 여기 길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려 다가오는 이들을 그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으로 착각했다.


“씨발!”


부우웅!


그는 급가속하며 차를 급히 돌렸다.


-어어! 왜 저래!

-위험하게 좁은데서 차를 왜 돌려! 이봐요! 저 안으로 가서 돌리세요! 그러다 부딪히면...


그에게는 ‘거기 서!’ 라고 외치는 듯 들렸다. 급히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던 차는 물의 집 벽을 한차례 박기까지 했다.


쿵!


-어, 도망간다!

-신고! 신고 해!


이번엔 그도 제대로 들었다. 신고란 말이 들리자 그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그는 달렸다. 차 없는 새벽이라는 것이 그마나 다행이었다. 그는 달리며 생각했다. 이대로 잡히면 처음 조씨를 만났을 때 떠올린 상상처럼 번쩍이는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을 떠올렸다. 인나의 냉정한 눈, 준서의 실망한 표정, 마나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싫어! 씨발! 내가 왜!!”


*


얼탱이 출동신고를 받은 것은 6시 30분의 일이다. 시내를 돌며 폭주하는 차량에 대한 신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졸다 급히 파트너와 순찰차에 올라탄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신 교신내용을 확인했다.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 말입니다.”


-폭주차량이 현재....로를 지나 통조교 방면으로 달리고 있다.


무전이 들어오자 얼탱은 낯설지 않은 이름에 지난 2월의 기억을 떠올렸다.


“통조교라고 했지?”

“예, 경사님.”

“거기 공사 끝났나?”

“아직 한창입니다.”

“다리 새로 만든다지?”

“예, 터널 뚫리고부터 통행량 많아져서 왕복 팔차선으로 넓히려고 진행중이라 들었습니다.”

“으음...”

“그리로 갈까요?”

“아니... 우린 통조교 건너편으로 가자. 지름길 알지? 거기 논 옆에 다리로 넘어가서 올라가면...”

“예, 압니다.”


얼탱은 폭주하는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제대로 검거하는데 도움을 주면 인사평가에 좋은 기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


한동안은 뒤를 쫓는 이가 없었다. 그는 괜한 일을 했나 싶어 도시를 빠져나가려던 생각을 접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 경찰차 한 대가 정지명령을 내리며 쫓아왔다. 그는 다시 도주를 선택했다. 혹시라도 카메라가 자신을 찍을까봐 쓰고 있던 마스크는 다시 고쳐 쓰고 또 달렸다. 차가 없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봐 교외로 향했다.


‘어디로 가야하지. 어디로...’


대리운전을 하며 머리에 가득한 지리정보들이 이 순간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순찰차가 나타나면 그를 피해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이 몰아가는 방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가고 있었다. 다섯 번째 순찰차가 나타났을 때, 그는 자신이 몰이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과감하게 순찰차를 향해 돌진했다. 급히 피하는 순찰차를 지나 그는 순찰차가 나온 곳으로 움직였다.


‘이쪽으로 가면....’


-몰랐는데 터널이 생겼더라고요. 그 산을 빙빙 돌아서 다녀서 어지러웠는데, 더 빨라지고 편해졌어요.


왜 평소보다 10분이나 늦게 나가는지에 대한 이유를 인나는 말해주었었다.


-차가 너무 막혀서 빨리 가야 해요.


터널이 생겨서 출퇴근이 빨라진 것도 며칠뿐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일찍 나가고 더 늦게 퇴근하게 되었는데, 터널을 지나 도시로 들어오는 다리가 왕복 이차선 도로였기 때문이다. 그는 몇 번 이용해 본 아래쪽 농로로 연결된 다리를 알려주었고, 인나는 다시 얼굴을 편 채 다녔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잠겨버리는 다리였고,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워 이른 출근이나 늦은 퇴근에는 인나와 마나 모두 이용하지 않았다.


민원이 폭증하면 조치가 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었다. 이미 터널이 완성되기 전부터 유동량이 많아질 것을 예상한 도로공사에서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나와 마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다리를 보며 조금만 참으면 된다며 위안을 삼는다고 그에게 말했었다.


‘지금 시간이면 다리를 건널 수 있겠지.’


그는 도시를 벗어나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 터널을 지나는 아는 이들만 아는 한적한 도로들이 나타난다. 그곳으로 들어가 경찰을 따돌린 후 위에 올려둔 조씨를 다시 차에 싣고....


“아니지, 산에 버려야지.”


야산의 절벽 아래로 던지고 다시 차를 타고 나와 자수를 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왜 도망갔는지 묻겠지...’


“경비원들이 쫓아와서 무서워서 도망갔습니다.”


‘경찰은 왜 피했는지...’


“절 쫓는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절 쫓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갔습니다.”


-띠리리링!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자신의 차번호를 조회해 전화번호를 알아낸 경찰이 전화를 걸었구나 여겼다.


“...젠장.”


받을까 말까 고민하며 보던 그는 낯익은 전화번호라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

-아, 정기사님.

“네...? 아... 물류팀장님!”

-아이고, 전화를 안 받으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저기 다름이 아니라... 어제 배송한 물품 중에 저희 쪽 실수로....


‘또...’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는 냉정을 잃지 않았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바빠서요!”

-아아.... 다른 일 나가셨습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이 새끼야!’


-허허, 이거 어쩌지. 다른 기사님들도 다들 바쁘시다고 하고.

“저기 제가 정말 도와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안 나요!”

-아! 오늘 내라면 언제라도 괜찮습니다. 양쪽 모두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희가 알아내고 연락을 했습니다.


‘오늘 이후에 감옥에 가 있을 거라고!’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쫓 씨발!”


앞에서 툭 튀어나온 차량을 피하느라 그는 급히 핸들을 틀었다.


-예? 정기사님? 지금 뭐라고...

“아니, 쫓고 있는가 뭔가! 나중에 전화하죠!”


통화종료를 누르고 그는 차체의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때, 멀러졌던 순찰차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돌겠네...”


농로로 들어가 낮은 다리를 건너려던 그는 그곳이 막혀있자 차를 돌려야 했다. 급회전에 차가 뒤집힐 듯 휘청 일 때, 맞은편에서 순찰차들이 다가오다 멈춰 섰다.


“치란 거지?! 어! 치라고!”


그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멈칫 멈칫 거리던 순찰차들은 그가 멈추지 않고 달리자 급히 차를 피했다.


“푸하하! 씨발! 이거 몇 년이더라... 젠장! 젠장!”


핸들을 내리쳐보지만 손의 통증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앞이 흐려지려 할 때, 그는 준서를 떠올렸다.


‘오빠가 죽어도... 너희에게 해는 가지 않게 해줄게.’


그는 굳은 결심을 하며 가속패들을 밟았다.


*


추격을 당한지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인근에 모일 수 있는 순찰차는 거의 다 그의 차 뒤를 쫓는 중이다. 그에 차에 대한 조회가 되고, 곧 그가 근무하는 곳으로도 전화가 갔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도 통화를 했는데요? 경찰이라니...”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일에 대한 것을...아, 그러고 보니 어딘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습니다. 계속 바쁘다고 하고... 아! 쫓고 있다고 했던가? 뭐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저기 정기사님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아직 자세한 것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통화를 끊고 기분이 좋지 않던 물류팀장은 혼자 알 내용이 아니라 판단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류팀장입니다. 방금 정기사님 일로 경찰이 전화를....”


*


왕복 사차선 도로는 다리 앞 사거리로 이어져 있다. 사차선 도로에서는 차를 피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닿아갔다. 다리는 오가는 차량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양쪽 모두 그렇게 차로 채워져 있었다. 오래된 다리는 좁은 보행로를 제외한 갓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행로도 난간이 너무 낮아 실족사고가 잦자 최근에 높이는 공사를 했었다. 차들이 꽉 차 있는 도로를 보고 그는 끝을 실감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다치게 하는 것은 그의 선택지가 아니다. 그는 급히 차를 우측으로 돌렸다.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강 중앙에 닿지 못한 다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큭!”


그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쭉 뻗은 사차선 도로를 타고 가면 다시 시내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쓰인 임시 벽을 부수며 다리로 올라갔다. 아침이지만 공사를 위해 나온 이들이 급히 좌우로 피하는 것을 보고 그는 가속했다.


부아아앙!!


트럭도 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증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후회했다. 급히 시트와 안전벨트를 잡고 충격에 대비할 때였다.


‘아...만세형.’


눈앞에 조씨가 나타났다. 팔을 쭉 뻗고 날고 있던 그는 어째선지 활짝 웃고 있었다.


‘형도 마음 편해졌구나...나도 그.’


퍼걱! 촤아아악!!!


창이 깨지며 물이 들어올 때, 머리를 부딪친 그는 의식을 잃었다.


*

*

*


-니 엄마 죽었어. 그렇게 생각해.


차가운 얼굴. 그는 오래전 잊은 엄마의 얼굴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분명 엄마가 죽었다고 말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럼 누구일까. 그래도 보고 싶던 사람이었는지 그는 반가웠다. 소독약 냄새가 나기에 그는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를 이곳에도 사람이 다치고 치료받나 생각했다.


‘그럴 리 없겠지.’


하얀 석고보드로 된 천장을 보고 그는 자신이 병원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죽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지 못한 채, 그는 커져가는 불안감에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편해지고 싶은 자신의 나약함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깨어났다는 것을 숨기려 했지만,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에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놀란 간호사의 얼굴을 보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는지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죄인도 치료받는 세상이라는 것은 안다. 어쩌면 이곳이 교도소 안 병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딱 봐도 형사로 보이는 이들이 들어왔다. 그들 중에는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이들도 있었다. 그는 아는 척 하지 않는 그에게 일부러 반가워하지 않았다.


“자, 검사를 해볼게요.”


아이를 다루듯 말투부터 유별난 의사라 그는 생각했다. 뒤에 선 이들이 침묵하며 보는 것도 그는 짜증스러웠다. 의사의 간단한 검사가 끝나자 뒤에 선 조사관이 앞으로 나섰다.


“몇 가지 간단한 문답을 할 것인데... 가능하십니까.”


그는 미뤄 뭐하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복합골절이지만 크게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몇 달 요양하면 뼈도 붙고, 부러진 뼈는 더 튼튼해지는 것은 아시나요? 모르셨죠? 더 건강히 지낼 수 있어요. 이 사람들이 억지로 들어왔지만, 원하면 제 권한으로 내 쫓을 수 있어요. 그래줄까요?”


그는 거북한 말투를 쓰는 의사보다 형사들이 더 편했다.


“그 컥!”


입을 열려다 그는 거칠게 몸을 떨었다.


“아아, 폐에 물이 차 있었어요. 빼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좋아요. 오늘까지 오일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어요. 알았어요? 그러니 답할 때는 눈을 한번으로 예스. 두 번은 싫어요. 엑스에요.”


‘보통 노가 아닌가?’


“알아들어요? 기억이 나지 않거나,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나요?”


그는 복합적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할지 몰라 조사관을 보았다.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는 급히 눈을 깜빡였다.


“오! 뇌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군요. 환자분 나중에 퇴원할 때 꼭 구해준 구급대원들에게 감사하세요. 그분들 아니었으면 죽었어요. 장비도 제대로 차지 않고 물에 뛰어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아셨죠?”


그는 또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음,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아직은 괜찮아 보이네요. 그래도 질문은 되도록 간단하게 하시고요. 이분 가족들이 곧 온다고 하니, 짧게... 아셨습니까.”


“네.”


대답을 듣고 의사는 나가지 않았다. 형사들이 보자 의사가 피씩 웃으며 말했다.


“아시면서 왜 그리 보시는지....?”

“...험. 알겠습니다. 여기서 들은 내용은 어디에서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읊을까요? 의사 윤리에 대해 제게 강연이라도 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허허... 알겠으니 그만 물러나 주시죠.”

“으음... 환자분 나중에 가족분들, 특히 그쪽 변호사분들에게 이 상황 잘 전해주세요. 전 이 형사들의 강요로 물러났을 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깜빡여주었다. 겨우 의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억하신다니 제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먼저 드릴 질문은....”


아쉽게도 그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갑자기 쏟아진 수면 욕구에 잠이 들어 버렸다. 며칠을 비몽사몽하며 보냈는지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주라는 시간동안 그는 간간히 깨어나 가족들에게 미소를 보여주곤 했다. 한때는 중환자실로 옮겨간 적도 있지만, 그건 과하게 걱정한 의사의 조치였을 뿐, 그는 중환자실에서 한 시간 후 다시 일반병실로 이동되었다. 다리는 골절이 심해 깁스를 하고 있었고, 목은 안전을 위해 풀지 않았지만 팔과 가슴에 행해진 깁스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정신도 더는 잃지 않았기에 그는 본격적으로 경찰들을 만나야 했다. 그가 거동할 수 없는 상태라 형사들이 그를 방문해 간단한 질의를 하고 떠나곤 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긴 상담이 될 것을 예상하며 조사관 앞에 앉았다. 침대 곁에 이동 테이블을 둔 조사관은 그에게 물었다.


“왜 그곳에 가신 겁니까.”


“어디 말입니까.”


“부촌이라 부르는 곳이죠. 저도 이 도시 출신이라 그 단어가 익숙합니다.”


몇 번이나 들었던 질문이다. 그는 형사들이 이미 그가 부촌을 배회한 사실을 알고 있음을 이전 질의를 통해 알고 있다.


“조깅을 했습니다.”

“흠... 확실히 부촌 내 CCTV에 잡힌 화면 속에서는 조깅을 하고 계셨습니다.”


‘CCTV에 찍혔구나...’


“집과 먼 그곳까지 가서 조깅을 하신 이유는 뭡니까. 찾아보니 시간도 일정하지 않던데.”

“시간이 나면 가서 뛰었습니다. 동기는... 제 자신을 부추기기 위해서라고 하면... 믿으실까요.”

“동기부여 말입니까?”

“네... 그게 더 적당한 표현이군요.”

“과연.”


‘음?’


그가 예상한 반응은 아니다. 그는 부촌을 돌며 미움을 더 커지게 했었다.


“알겠습니다.”

‘으음?’


이 또한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먼저 이 화면을 봐 주십시오.”


처음 화면은 CCTV에 찍힌 그가 조깅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는 참 열심히 달린다 여겼다. 그리고 이어진 화면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예... 접니다.”


그는 죄를 고백했다. 조사관이 보여준 화면은 차량의 위쪽이 찍혀 있었다. 거기에 매달고 달리던 조씨의 모습도 찍혀 있었다.


“역시. 정선생님이었군요. 그럴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무모하셨습니다.”


“...예?”


얼떨떨해 보자 조사관이 돌연 웃었다.


“어쿠, 죄송합니다. 생각할수록 이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차에 매달릴 생각을 하셨습니까?”


“에... 그게....?”


그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상황판단이 안 되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대기하던 변호가가 입을 열었다.


“피곤하신 듯 합니다만.”

“아아, 곧 끝납니다. 정선생님, 내일 다시 할까요?”

“에, 아... 아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빨리 끝내고 싶고, 그래야 정 선생님도 쉬시는 것을 알기에 오늘 무리를 조금 하더라도 조서를 끝내겠습니다.”

“예...예...”

“그러니까, 새벽 5시 30분 경에 부촌에서 차량을 도난당하신 것이죠?”


‘도난...!’


그는 그제야 조사관의 태도가 왜 자신의 생각과 다른지 깨달았다.


‘그런가... 내가 운전자가 아니라...’


그날 같은 옷을 입었음을 그는 떠올렸다. 차에 매달려 있던 조씨를 경찰은 그로 여겼다. 고동색 줄무늬 운동복을 입은 그가 차 안에서 발견되었다면 경찰도 그를 의심했을 테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와 탈출을 시도한 후 의식을 잃었다.


“그... 사람은...”

“누구... 아,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면과 충돌할 때, 튕겨 나간 것으로 생각하고 강하류를 수색중입니다만... 얼마 전 비가 와서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강이 서해로 연결되어 있어 그대로 바다로 나갔을 가능성도 높고... 살아있다면 발견되겠죠. 혹시 범인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아...뇨.”

“현장을 보니 차 위로 올라가려고 벽을 짚으셨던 것 같던데... 맞습니까?”


조씨를 떨어트리지 않으려 벽을 발로 지탱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차를 안에 세우지 않으시던 것 같은데, 그날은 왜 그곳에 차를 주차하셨습니까.”

“여유 있는 공간이 그곳뿐이라서... 전에 한번 길을 잘못 들여서 들어간 적이 있어서 세우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밖에는 길이 좁아서 그곳에 댔습니다.”

“평소에는 밖에 대셨습니까?”

“아뇨, 제 지인들의 차를 빌려 타고 가서 편의점 인근에 주차하고 조깅을 했습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그는 술술 거짓말을 했다.


“경비원들이 소리치는 것을 들으셨습니까.”

“들은 것도 같고...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차가 느려질 때 뛰어내릴 생각은 못하셨습니까.”

“....대출금이 남은 차입니다.”

“저런... 그렇겠죠. 생계수단이니... 그런데 키는...”

“배송 일을 하면서 키를 뽑고 다니는 기사는 없을 겁니다. 습관이 되었죠, 저도. 가끔은 집에 들어갈 때도 키를 두고 내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시 껐다가 다시 켜면 되지 않습니까.”

“냉동차 특성상 키를 빼면 냉각기가 꺼집니다. 냉동실 온도가 1도만 낮아져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온도기록지로 늘 기록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으음... 알아본 것과 같은 내용이군요. 알면서 물어보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이것도 다...”

“이해합니다.”


질문은 통화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6시 40분이 넘은 시각에 통화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예. 물류팀장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전화기가 있었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더군요.”

“제정신도 아니었고... 폐를 끼치기 싫어서였을까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요. 잘 모르겠네요... 제가 뭐라고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시군요. 제가 통화기록을 적어왔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더 크게 소리를 치시면서...쫓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쫓...고 있다...아아, 그랬군요.”


쫓기고 있다고 말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참 범인도 독특하더군요. 그 와중에 피해가 전무...는 아니군요. 공사 중인 곳을 덮치며 약 23만원의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런 어중간한 수치의 피해를 입혔다니, 그는 스스로 대견스러워졌다.


“아침이었고, 통행량이 적은 곳을 찾아다닌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저희 쪽에서 범인을 몰아갔었습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유턴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때 선생님이 위에 계시다는 것이 통보되어서 길을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차량이 전복되면 선생님이 위험해지기에....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는 조사관의 말이 끝나기 전 변호사를 보았다. 그를 눈치 챘는지 조사관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압력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나중에 온 것이니 그리 보지 마십시오. 저희 OO시 경찰서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선생님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몰이를 하고, 강제 추돌이나 강압적인 정지등의 매뉴얼은 제했습니다.”


-몰아가서 강에 빠트렸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변호사의 말에 조사관이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거기서 강으로 돌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쪽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외각 도로를 돌게 했다면 선생님도 지금처럼... 죄송합니다. 더 세밀하지 못한 저희의 불찰입니다.”


“아니...뭐... 괜찮지는 않지만, 고소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정날씨, 그런 말은 나중에...


“변호사님. 전 돌아가서 쉬고 싶어요. 여기 있으니 불안하기도 하고... 앞일이 막막하고...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경찰분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전 믿어요.”


최선을 다해 몰아붙이는 것을 그는 느꼈었다. 시민의 차에 돌진할까봐 그 앞을 막는 순찰차도 보았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저희 쪽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범인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겠죠. 선생님께서 차에 매달려 두 시간 넘게 다닌 것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용감한 시민상이라도....”


“그건 됐습니다. 전 제 재산을 지키려고 한 것뿐입니다.”


그의 눈은 진지했다.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던 이유는 그의 진심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이다.


“다시 하라고 해도, 전 그렇게 할 겁니다.”


이 또한 진심이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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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조씨의 정체 20.06.11 22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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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가족의 의미 2 20.06.10 19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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