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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개 짖는 소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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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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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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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골목길 앞 삼거리. 그는 차를 멈추고 가만히 골목길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저기 금이 간 회색 시멘트 바닥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고, 우측 소공원 옆 담장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주차구역표시도 뚜렷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부쩍 줄었는데 그건 매달 3만원의 이용요금을 그에게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과 시의원이 선출되고 그동안 쌓인 시의 재정으로 미루던 사업들을 진행하는 중인 시에서도 폐촌에는 손을 못 대고 있었고, 도로포장까지 새로 할 여유는 없었다. 도로포장은 모두 인성이 자비를 들여서 공사한 것이다. 그의 차 바닥이 낮기에 오가며 고생을 하던 터라 완만한 진입로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했던 것이다. 덕분에 그도 오늘 처음 차를 타고 길을 오르는 것이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던 곳이 그의 소유지로 변경된 이유는 그가 골목길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성의 강요 때문이다. 사람이 살던 때라면 소유권을 주장해 인근 주민에게 피해줄 것을 반대했겠지만, 현재 길을 이용하는 이들은 모두 그와 인나, 마나의 관계자들뿐이다. 인성이 그의 집에서 잠을 자던 때 쓰레기 투척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쓰레기 투척을 당하고 인성은 화가 나 길을 막아버리려고 골목길을 사려고 했다.


-골목 제 명의로 되어 있는데요....


그때 그가 그동안 숨겼던 사실을 전했고, 인나와 마나도 크게 놀랐었다. 회의 끝에 길을 막지는 않고 길의 주인이 누군지 보여줘야 한다며 인성은 귀찮아하는 그를 대신해 나섰다.


반환소송을 할 필요도 없이 예전에 맺은 계약을 들먹이는 사람이 큰 회사의 후계자와 법적 조언자들이다. 소송에 들어가면 그동안 시에서 무료로 사용한 대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라 시에서는 급히 그의 소유지인 골목길을 돌려주었다. 아래쪽 소공원과 위쪽 공터는 유지관리가 필요한 오래된 고목들이 있어 그도 시에서도 난감함을 표했는데, 이에 그는 위쪽 공터는 소유지로 반환받고, 비탈진 소공원은 시에 기부했다. 소공원의 이름을 과거 시에 땅을 내준 증조부의 이름으로 변경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정재익공원이라...’


공원 표지판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주차구역에 주차된 차들을 보았다. 3만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러웠는지 평소 차를 대던 이들 중 그에게 주차요금을 내는 차는 세대뿐이었다. 그 중 한 대는 수행기사였고, 나머지 두 명은 인근 원룸에 차 댈 곳이 없던 직장인이다.


도로포장을 할 때 주민들과 마찰이 있었다. 길을 막고 공사를 하자 차를 대던 이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던 이들이 항의를 했었다. 공사담당자는 그들에게 골목길이 사유지라는 사실을 전했고, 그날 이후 삼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의 수도 줄었다.


그는 그런 과정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고통 받은 시간들을 아쉬워했다. 그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부분은 길의 소유권을 미리 주장하고 안내판이라도 설치했다면 조씨가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씨는 더는 그에게 존경과 미안함의 대상이 아니다. 귀찮은 쓰레기일 뿐이다. 고귀한 생명을 가졌던 육체도 아니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도 아까운 불편한 것이다. 그런 존재를 싣고 그는 일을 나가고, 유지해주고 있다.


“부드럽네.”


차 바닥이 높았던 그의 차도 진입로가 좁아 후진을 한번 이상 했었다. 반대쪽에서 차가 오면 멈춰서야 했고, 그럼 뒤에서 빵빵거리며 그의 신경을 건드리곤 했다. 다급하게 돌다 안개등을 깬 적도 있었다. 정비를 한 골목길 입구는 그의 차가 가볍게 돌아서 들어갈 수 있도록 입구가 확장되어 있다. 완만해진 경사 덕에 기어를 급히 변경할 필요도 없었다.


골목길의 주권을 회복하며 그에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좌측 집들이 모두 쓸려나간 현장을 보며 그는 웃지도 못한다. 인나의 가족들이 언제 집과 땅을 매입했는지 그도, 인나도 모른다. 그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로공사가 끝나기 전 철거를 위한 인부들을 먼저 보내고 그에게 사실을 전했다.


-보니까 동네가 조용하고 괜찮더라고.


인나의 부모님은 막내딸을 따라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를 한 사람들이다. 바로 옆집으로 새 집을 짓고 들어와 살 것이라는 예상을 그는 당연히 했어야 했다. 그에게 의외인 이는 인성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 것이라 예상했지만, 인성은 다래의 직장과 가깝다는 이상한 이유로 부모님이 사들인 부지 옆을 사들여 공사를 시작하게 했다. 다래가 사는 곳은 직장과 도보로 오분 거리에 있다. 그곳에 뭐가 부족함을 느껴 가까이 살려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래도 굳이 차로 사십분이나 걸리는 도시로 이주를 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결혼해봐. 다 알게 돼.


아직 식도 올리지 않은 인성의 말에 그는 기막혀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 같은 인영이 부지 일부를 사들여 디자인을 변경해 붙어 있지만 단독주택 같은 집을 짓게 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가장 늦게 끼어들었다는 것이 그에겐 놀랄 일이었다. 인나 부친의 회사 본사가 이전한다는 소식도 들렸는데 그는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할 만한 일이라 여겼다.


그와 마나, 인나는 당연히 불편함을 느꼈다. 마나는 화가 나 인나에게 짜증을 냈고, 인나가 대표로 그녀의 가족들과 조율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이들이 등장했다. 일본에 살고 있다던 마나의 가족이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었다. 인나 부모님은 아는 눈치였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마나가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태도에 의심을 해 캐묻자 그녀가 고백했다. 인나에게 소리치던 입장이던 마나도 그에게 미안해하는 쪽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좌측 땅들은 모두 인나와 마나 가족의 소유지가 되어버렸다. 작은 집을 짓고 살 생각들은 없었기에 앞뒤 양옆 최대한 많은 땅을 확보했다. 인나가 들어올 때 과하다 여기던 그였지만 절대 과하지 않았다고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있다. 이렇게 가족 내부의 일로 끝났다면 그도 불편함을 느끼지만 가까이 살면 좋다 여겼을 것이다. 피노와 키오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인나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고, 피노와 키오도 두 사람을 무척 따르기에. 또 준서도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눈에 띄게 밝아진다. 문제는 너무 많은 땅을 확보해 한꺼번에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대규모 공사 행렬에 폐촌의 재개발이 다시 시작된다고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 되어 버렸다. 기자들이 공사현장을 촬영하고, 허가 없이 기사를 냈다가 소송을 당해 정정 보도를 내는 일이 며칠간 반복되었다. 팔지 못해 가지고 있던 투기꾼들이 급히 달려와 자신들의 땅도 사달라는 소동도 일어났다.


이에 마나가 극도로 화를 내고, 인나도 짜증이 심해지자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는 했다. 그러자 그녀들을 설득해야 할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


도로공사 중 차를 집에 가져가지 못하자 주차장을 찾아간 그는 대형차라서, 전기를 제공해줄 수 없어서 포기해야 했다. 캠핑카들이 머무는 주차장을 찾아보았지만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결국 본사에 차를 세우고 몰래 전기선을 연결한 채 차에서 숙식을 해야 했다.


덕분에 쉬는 날 없이 그는 일을 해야만 했다. 김포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상당해 오갈 수 없었고, 수단도 없었다. 집에 못 가자 인나와 마나의 스트레스도 높아졌다. 그녀들도 바빠 그를 찾아오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었다. 그녀들은 그래도 스스로 달래며 참았지만, 준서와 피노, 키오의 불안함이 그에게 전해졌다. 전보다 자주 아이들에게 전화와 메시지가 오자 그의 화도 빠르게 쌓여갔다.


“후우...”


일주일 만에 담장 옆 자리에 차를 댔지만, 쌓인 스트레스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해충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조씨에게 있다 여긴다. 조씨가 없었다면 그는 차를 대로변 대형트럭들이 주차하는 곳에 두었을 것이다. 녹지 않게 하려면 냉동기를 돌려야 했고, 전기가 필요했다. 발전기를 사서 돌리는 방법도 있지만, 소음을 일으키는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의심을 받을 것이다. 본사에서도 내부를 오가는 전동리프트용 충전기 콘센트가 외부에 없었다면 그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 했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전기선을 연결한 후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려가 있던 차단기를 올리고 그는 가동되기 시작하는 집안 냉장고를 보았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보니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흐으, 준서가 누군데...”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그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고양이들이 그가 세워둔 칠판을 건드렸는지 메모지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고양이가 싼 똥이 있나 유의하며 걸었다.


“배고팠겠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고양이들이 그의 인기척을 듣고 하나 둘 나타났다. 그는 플라스틱 통에 둔 사료를 꺼내 그릇 가득 쌓아 올렸다.


“물은 어디서 찾아 먹나?”


준서가 낮에도 챙겨주는 것을 알기에 그는 따로 준비해주지는 않았다.


-가득가득.

-톡, 톡.


사료 씹는 소리를 멍하니 듣던 그는 칠판에 손을 뻗어 메모지들을 수거했다. 압정도 모두 뽑아 통에 모으고, 메모지는 구석에 놓인 증거물 통에 넣었다. 이젠 필요 없어진 그 통을 가만히 보다 그는 다락을 내려갔다.


*


“아... 언제 왔어요.”


졸린 눈으로 보는 인나를 보며 그는 미소 지었다.


“화 많이 났죠...”

“응? 아... 아뇨. 그만큼 사랑받는다는 뜻이잖아요. 저라도 준서나 피노, 키오 시집장가가면 쫓아가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니지... 이 집 고치면 데리고 살면 되겠네요.”

“큭. 날씨답네요.”


키스로 화답하고 그는 인나가 챙겨온 음식을 먹었다.


“마나는 자요. 요즘 마케팅팀이 바빠서 쉬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듣긴 했지만 많이 바쁜가 봐요.”

“재능이 있었는지 마나가 낸 아이디어들이 채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본래 센스는 많았으니까.”


말을 멈추고 가만히 보던 인나가 손을 뻗어 그의 입술에 묻은 양념을 닦아 냈다.


“맛있어요?”

“응... 제법.”

“내가 만들었는데.”

“어쩐지.”


시중에 파는 소스로 버무린 치킨샐러드였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요리였지만 그는 거듭 칭찬했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 달라붙네요?”

“참고 있어요. 빨리 먹어요.”

“흐...네.”


*


“피노와 키오가 눈에 자꾸 밟힌다며 자기 전에는 애들 사진만 보고 있더군.”


이른 아침부터 들어야 할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는 표하지 않고 커피를 내리는데 집중했다.


“어디 산이지? 향이 좋군.”


낯선 이의 질문에 그는 마나가 말해준 원산지를 떠올려보았다.


“커피랑 콩이랑 산입니다.”


마나가 사온 커피숍이름을 말해주고 그는 내린 커피를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인나의 부친은 자주 봐서 잘 알지만, 그와 함께 온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는 처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실례지만... 누구신지...?”


그제야 두 사람은 소개도 없이 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 일찍 길을 건너오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를 데리고 온 이는 인나의 부친이다.


“이 사람이 마나의 친부네.”

“....안녕하십니까. 정, 날이라고 합니다.”

“차배정이네.”


소개를 받고 난 후, 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나씨는 한씨라고 알고 있습니다.”

“엄마 성을 따르고 있지. 날 미워해서....”


무거운 분위기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인나 부친이 준 개 껌을 씹는 발랄한 집돌이를 보던 그는 마나 부친이 입을 열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너무 멀어졌다 생각을 하고 있었네. 가까워질 기회가 왔다고 온 것은 아니고... 마나 보고 싶다고 레이코... 아내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 아들 녀석도 한국생활이 더 좋다면서... 학교에서 재일이니 안 좋은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 같아. 나도 한 달에 몇 번 오가면 되고 한국에 본사가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할 곳을 찾던 중에 레이코가 어떻게 여기에 대해 알게 되었나 보더군.”


“레이코씨와 안사람이 알고 보니 친분이 있었네.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은 것을 나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


“예에...”


무슨 일로 연락을 취했을지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미워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네. 마나가 왜 쫓아와서 괴롭히느냐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내가 여태 뭘 했나 생각하게 되더군.... 본래는 다른 곳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레이코가 옳다 생각했네. 가까이 있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부탁하려고 찾아왔네. 아침 일찍 나간다는 소리를 듣긴 해서 만날 수 있나 싶어 온 것인데, 여기 무연회장님이 날 먼저 알아보시더군. 이런 차림이라 몰라보았지.”


그는 익숙한 차림이지만 방송이나 신문에 나온 이미지로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모습이긴 했다. 수면바지를 입고 캐릭터가 선명한 티셔츠 위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잘 때마다 인나와 마나에게 빌려 입더니 편했는지, 그 후로도 이런 차림을 하곤 했다.


“부탁을 하러 온 것이네. 마나를 설득해주면 좋겠네.”

“그.... 제게 왜 부탁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 땅을 사셨고, 거기에 집을 지으실 것이고... 그건 제가 말릴 상황이 아닌데요. 마나씨도 그걸 법으로 제한할 방법은...”

“자네 땅이지 않나. 담을 세워버리면 오가지도 못하지.”


인나부친의 말에 그는 인나가 무슨 말로 공사를 중단시켰는지 깨달았다. 그는 자고 있는 인나를 깨울까 슬쩍 돌아보았다. 그 순간 인나부친이 그의 손을 잡았다.


“요새 피곤해하더군.”

“...예에.”


그는 깨우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고민할 일이 아니라 그는 생각한다. 인나 가족이 가까이 사는 것이 마냥 반갑지는 않지만, 싫은 것도 아니다.


“마나씨 가족은 모르겠지만, 인나씨의 가족은... 이런 말하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자연스러워...”

“예, 아이들도 잘 따르고... 솔직히 말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두 분 덕에 애들이 빨리 회복하는 것 같다고 정주씨도 말하고 있고... 전에 입양문제를 반대한 것은 아이들이 저와 분리되면 정서적으로 안 좋기 때문이지... 키오는 어머님을 엄마라고 가끔 부르기도 할 정도로 친근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피노가 서슴없이 곁에서 잘 정도고... 표현하지 않지만 준서도 두 분이 오면 무척 기뻐합니다. 제가 해주지 못하는 것들, 인나씨나 마나씨가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역할을 두 분에게 얻는 것이라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반대는... 그렇군요.”


그는 여행자의 입장이라 여긴 인나를 대할 때를 떠올렸다.


“손님이었지요. 분명..... 가끔 오시는 분들. 이제 집이 가까워지면 그 거리가 단축되겠군요.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서로 알게 될 테고.... 아무리 빨라야 1년 안에는 완공하기 어려운 것을 압니다. 지금은 인나씨나 마나씨가 반대한다지만, 두 분 모두 가족을 소중히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마... 제가 싫어할까봐 싫은 척 구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네... 제가 제대로 말하지 않았네요. 이런 관계들이 어색해서 그랬습니다. 평생 혼자 살 것이라 생각했기에...”


“어색한가.”


“흠... 아뇨. 즐겁습니다.”


그의 미소에 두 남자가 어색하게 서로를 보았다.


“삶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매일 생각합니다. 가끔 꿈이면 어쩌나 걱정하며 깰 정도로... 전에 절 처음 보셨을 때, 미래에 대해 말하셨지요.”


“그랬지.... 생겼나?”


“네. 목표도 의무감도, 목적도... 짧고 긴 다양한 미래에 대한 결정들도 생겼습니다. 수동적으로 되는대로 산다는 생각도 버렸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지켜야 할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습니다. 시간을 내서 아이들 일에 참여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참관수업에 나갈 일도 기대합니다.”


“그건 내가 갈 건데?”


희미하게 머금던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제 동생들인데요?”

“허, 안사람하고 그날만 손꼽고 있는데. 양보하게.”

“아니... 양보할게 따로 있죠?”

“그렇지만... 키노도 그날 우리가 와주길 바라던데?”

“....그럴 리...”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키노가 원한다면... 알겠습니다.”

“후우, 고집피우면 어쩌나 고민했네. 고맙군.”

“염색은 하고 가십시오. 머리카락이 하얗다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불리고 싶으시다면....”

“해야겠군.”


두 사람은 곧 악수를 하며 계약을 끝냈다. 지켜보던 차배정이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지지 않자 급히 말했다.


“저... 마나도 설득해주면 고맙겠네.”

“마나씨는... 잘 모르겠군요. 반대하는 것인지, 인나씨처럼 제 눈치를 보는 건지. 마나씨는 어머니를 무척 따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까이 산다고 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

“날 싫어하니 그게 문제지. 요즘은 동생에게도 차갑게 굴더군. 날 닮은 녀석이라 그런지.”

“아...”


그 순간 그는 불편하고 심장이 멈출 것 같던 밤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나씨도 바뀌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마나씨에게 질투를 느끼시...아,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 그게 마나씨는 아버지와 동생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럴 만 하지. 내가 그런 표현에 서툴러서... 아내를 잃고 나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계속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지.”

“그럼 마나씨에 대한 미움은 없으신 거죠?”

“미움이라니?”


황당하다는 듯 보던 차배정은 그가 빤히 보자 눈을 슬며시 돌렸다.


“없다고 하기 보다는... 불편하고 조금 걱정되는 것이 있긴 하지.”

“새어머니와의 관계입니까.”

“...알고 있었나?”

“대충은... 너무 가깝다 여기십니까?”


차배정은 그의 말에 주저했다. 인나부친이 눈치를 채고 슬쩍 일어나 집돌이에게 다가가자 차배정이 겨우 입을 열었다.


“심하다네. 두 사람은 정말... 집에 들어가면 소외감을 느끼네. 평소엔 내게 그렇게 잘하던 사람이 쳐다보지도 않네. 마나만 빤히 보며 살지. 밥도... 같이 먹는데 주는 음식이 달라. 마나의 식단에 맞춰주고, 나와 아들은 찻물에 밥을 말아서 먹어야 하는... 우린 매운 것을 못 먹어. 마나는 매운 것을 좋아하지. 레이코도 못 먹었는데, 지금은 청양고추도 씹어 먹을 정도로 바뀌었네.”


‘허.’


“그렇게 마나에게 맞췄지. 정말 이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서... 남들에게 말하기는 부끄럽고, 그렇다고 레이코에게 한 마디 하면 화내고, 울고, 이혼하자고 정색하고... 무서워서 꺼내지도 못하네.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네. 최근에는 아들이 다 컸다고 눈에 띄게 서운하게 대하지. 전엔 집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세탁기 돌리는 법을 몰라서 울면서 손빨래 하고 있더군.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누나와 통화하느라 답도 안 해줬다고.”


‘허...!’


그의 예상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였다.


“이유야 알지. 나이차도 적은데 서운하게 했다는 소리 들을까봐, 결혼 초부터 마나에게 무척 신경을 써줬지. 당시엔 내가 바쁠 때라 어떤 일들이 두 사람 사이에 생겼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빨리 친해지더군..... 마음을 열지 않던 마나도 그 사람은 잘 따랐으니까. 그게 기뻤던 것이지.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처음 한 말이 마나가 서운해 하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네. 누가 보면 그 사람이 마나의 친모인가 싶을 정도지. 시간이 지나면 아들에게 신경 쓰느라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더 심해져. 마나를 주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병까지 걸리니...”


못 믿을까 싶었는지 차배정은 그에게 사진을 꺼내 보였다.


“이게 마나 만나기 전.”


세상을 다 잃은 여인이 사진 안에 있었다. 일부러 흑백사진을 찍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기 없는 사진이었다.


“이건 마나가 온 후.”


화사한 꽃이 사진 속에 있었다. 생화를 주변에 장식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레이코의 생각은 여기, 이 땅에 꽂혀 있네.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지. 한번 추진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야. 거기에 마나와 연관된 일이니.... 마나가 전화해서 공사 중단하지 않으면 연락 끊어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네. 레이코에게... 레이코에게는 그보다 충격적인 말도 없을 테지. 울다가 지쳐 자고... 오죽하면 내가 새벽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겠는가.”


“허...오늘 오신 거였어요?”


“...도와주게. 보게. 이게 최근 레이코 사진이네.”


침대에 힘없이 누운 여인의 생기 없는 눈에 그는 기막혀 헛웃음이 날 뻔했다.


‘너무 극단적이시네.’


“밥도 안 먹고 누워있네.”

“밥을... 큰일이잖아요!”


놀란 그가 벌떡 일어나 달렸다. 그는 급히 마나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으으으...날씨....나 덮치려고...하암...조금만 자고 있을게, 먼저 하고 있어....”

“마나씨! 마나씨 엄마가 죽어요!”

“....에?”


놀라 눈을 뜬 마나에게 그는 그녀의 핸드폰을 건넸다.


“전화해서 식사하시라고 하세요.”

“에? 에에?”

“어서요. 지금 마나씨가 연락 끊는다는 말 듣고 밥도 안 먹고 계시다고 하네요.”

“마마가? 왜...?”

“어서.”

“....날씨. 제가 화낸 이유는...”

“알아요. 난 괜찮아요. 가족이잖아요. 같이 살면 좋죠, 안 그래요?”

“하지만 그럼 인나의 계획은....”

“어...”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 인나가족은 알지만 마나가족은 그가 놓인 관계에 대한 정보가 없을 것이다. 인나모친과 레이코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정보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 마나의 성향에 대해서는 알 것이라 여기지만, 자신과 인나의 가족계획은 별게의 것이라 그는 생각한다.


“그건...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우선 사람은 살려야죠.”

“마마는 강해요. 그런데 어떻게... 혹시 누가 왔어요?”

“아, 마나씨 아버지가 와 계세요.”

“왜 왔데... 치.”


차가워진 마나의 얼굴을 그는 힘주어 폈다.


“웃어야지요. 바뀌기로 했잖아요.”

“네....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는 대답이 궁해지자 마나를 끌어안았다.


“어서요. 엄마가 아프시데요. 누워 계세요.”

“아...알았어요. 알았으니까... 키스부터 하고 차례대로...”


그는 웃으며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는 풀었지만 마나는 풀지 않고 힘주어 당겼다. 침대 위로 끌고 가려는 마나의 옆구리를 찔러 풀려난 그는 서운해 하는 마나에게 눈짓했다.


“오늘 밤에?”

“예? 풋! 아뇨, 전화하라고요.”

“난 그럼 언제해요? 어제 인나랑 했죠?”

“그런 이야기를 꼭 오늘 해야 할까요? 아버지도 와 계신데.”

“오늘 아니면 언제 해요. 기회가 나야 하지.”

“흠... 만약 했다가 아니다 싶어서 우리가 멀어지면... 자신 있어요?”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다가가자 마나가 움츠려들었다.


“마마가 걱정되니까... 오늘 말고 나중에....”

“네.”


그는 통화하라고 밖으로 나왔다.


‘휴우...’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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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현재 수정이 불가. 20.06.16 47 0 -
91 오래전 시작된 거짓된 이야기 2 +4 20.06.16 39 4 16쪽
90 오래전 시작된 거짓된 이야기 1 20.06.16 20 3 19쪽
89 두 친구 2 +1 20.06.16 24 2 19쪽
88 두 친구 1 20.06.15 23 4 18쪽
87 악인과 악인 4 20.06.14 20 4 22쪽
86 악인과 악인 3 20.06.14 22 2 17쪽
85 악인과 악인 2 20.06.14 17 2 24쪽
84 악인과 악인 20.06.14 18 2 20쪽
83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7 20.06.13 18 3 23쪽
82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6 20.06.13 15 2 21쪽
81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5 20.06.13 16 2 18쪽
80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4 20.06.13 17 2 21쪽
79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3 20.06.13 17 2 17쪽
78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2 +4 20.06.13 21 2 23쪽
77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1 20.06.13 17 3 20쪽
76 잃어버린 것 2 20.06.12 20 2 19쪽
75 잃어버린 것 1 20.06.12 20 2 19쪽
74 인과응보 20.06.12 17 2 26쪽
73 떠넘기기 2 20.06.12 18 2 25쪽
» 떠넘기기 1 20.06.12 18 2 24쪽
71 세 친구 4 20.06.12 14 2 19쪽
70 세 친구 3 20.06.12 19 3 18쪽
69 세 친구 2 20.06.12 20 3 15쪽
68 세 친구 1 20.06.12 29 3 21쪽
67 조씨의 정체 20.06.11 21 3 18쪽
66 세번째 차 +2 20.06.11 21 2 20쪽
65 가족의 의미 2 20.06.10 19 2 18쪽
64 가족의 의미 1 20.06.10 27 3 27쪽
63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2 20.06.10 1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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