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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개 짖는 소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3,163
추천수 :
502
글자수 :
841,325

작성
20.06.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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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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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세 친구 4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삼거리에 순찰차를 세우고 건너편 도로를 바라보는 얼탱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왜 안 나오는 거야...쯧!’


조씨가 폐촌에 숨어 있을 수 있는 기간은 최대 삼일이다. 그 이후에는 배고파서 어디든 나타나야 한다. 관할 구역이라 신고를 받으면 즉시 출동해 범인을 체포하는 공을 세우려던 얼탱은 근무시간에는 초조하게 무전상황을 들으며, 눈으로는 삼거리 건너편을 유심히 살핀다. 조씨와 물에 대한 사건을 목격한 이가 있거나, 자신들이 놓친 무언가라도 있을까 싶어 셋은 번갈아가며 삼거리에 차를 세우고 상황을 살피곤 했다. 처음에는 셋이 했지만 물은 이내 귀찮다며 빠졌고, 카삥은 불법주정차로 단속대상이라는 말에 또 빠져야 했다.


그동안 카삥이 발견한 것이라고는 건너편에서 심하게 짓던 개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얼탱은 근무가 아닐 때도 삼거리에 차를 세운다. 그가 그렇게 서 있으면 시청 단속요원들이 찾아와 차문을 두드리는데, 그는 가볍게 신분증을 꺼내 보여 그들을 돌려보낸다. 때론 잠복중인 형사들이 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중요한 증거물을 찾아준 얼탱은 지구대에서는 눈치를 보는 중이지만, 경찰서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비번 일에 흉기를 발견한 곳 인근에서 잠복을 해주니 형사들의 평가는 더 좋아지고 있었다.


얼탱은 이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겼다. 그는 범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아는데 모르는 척 굴어야 했다. 그가 차를 세우고 삼거리를 살피는 이유는 물과 조씨가 다투던 것을 본 목격자가 있나 싶어서다. 그것도 핑계일 뿐이다. 있다면 벌써 신고를 했을 것이고 불안하기에 나와 있는 것뿐이다. 삼거리 위치가 폐촌과 가까운 것도 비번 날까지 잠복 흉내를 내는 이유다.


얼탱은 조씨를 발견하면 어떻게 수갑을 채울지도 정해두었다. 절대 말을 하지 말고, 되도록 쓰러트린 후 수갑부터 채운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다. 계획은 다 짜여 있지만 정작 조씨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찾아가봐야 하나...’


퍽!


그날 그가 들은 소리는 둔중한 물체가 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혹시 떨어지며 죽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조씨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


세 사람은 매일 밤 모임을 가졌다. 만약을 위해 대처하기 위해서라지만 진짜 이유는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양심선언을 한다면 다른 두 사람도 곤란에 처하기에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모임을 적극적으로 이끌던 물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굴었다. 얼탱은 그런 물의 태도변화에 익숙하다. 사고를 내고 뒤처리에 바삐 움직이던 과거에도 물은 수고하라는 말만 할 뿐, 자신의 일이라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26일. 조씨를 얼탱이 처리한지 10일이 지나자 물은 다시 본성을 드러냈다. 모임에 늦게 도착하는 일이 많던 물이 오늘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 더는 갈 필요가 없다며 클럽에 놀러오라는 한가한 소리만 했다.


얼탱의 불안감은 물과 달리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조씨를 직접 대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도하는 카삥은 그런 얼탱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답답하지만 얼탱은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하는 것을 잘 안다.


얼탱은 꽤나 오래 고심하다 3월이 되어서야 결심을 했다. 그는 조씨의 시신을 확인하기로 했다. 만약 죽어 있다면 순찰 중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할 셈이다. 그는 몸이 좋지 않다는 파트너를 두고 혼자 평소 가지 않던 코스인 폐촌으로 향했다.


집중 순찰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귀신 나오는 동네라 소문나선지 사건사고가 일지 않아 경찰들도 자주 찾지 않는 곳이 폐촌이다. 간다고 해도 겉만 슬쩍 살피고 떠나기 일쑤다. 낮의 순찰 때는 더 심해, 굳이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는 고생을 하지 않는다.


조씨를 밀어 넣은 담장이 보이는 골목 아래 삼거리에 도착한 후, 얼탱은 얼이 빠져 버렸다.


‘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폐촌에 공사인부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그가 조씨를 넣었던 집 바로 앞집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젠장...’


한동안 그는 공사장을 살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그는 처음에 가진 의아함을 버리고 안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그놈... 제대로 도망갔군.’


도망을 갔다. 조씨가 죽은 채 담장 안에 놓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지만, 그보단 도망에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얼탱은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


얼탱은 틈이 나면 혼자 승용차를 끌고 와 골목을 살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매일 아침 일찍 골목길을 오르는 노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날을 잡아 노인과 대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순찰차를 끌고 왔다면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겠지만, 나이 많은 파트너는 몸이 튼튼해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았다. 겨우 기회가 났을 때, 공사는 끝나 있었다. 그는 물의 동네에서나 보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집을 치장한 이들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가 예상한 시간에 나타났다.


“어르신.”


그는 말을 걸어 노인을 멈추게 했다.


“못 보던 경찰이군... 무슨 일인가?”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려던 노인을 부축하려 했다. 허나 노인 이씨는 그런 그의 손길을 마다했다.


“움직여야 낫는 병이여.... 경찰양반이 무슨 일로 여까지 오셨어?”


“순찰 중에 보여서요. 저기 저 집...”


“응? 아아, 멋지지? 모텔은 아니고, 사람 살어.”


‘모텔?’


어째서 모텔이라 오해했다 여길까, 그는 의문을 떨치고 본래 목적을 위해 질문했다.


“제가 알기로 이 골목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응? 아, 안 살았지.”


‘역시...’


“산지 얼마 안 돼. 나도 몰랐다가 보고 깜짝 놀랐었어.”


‘최근에 이사를 왔군.’


“사람 사는 집은 저기 한곳뿐이죠?”


“응?”


그 순간 이씨는 답변을 미루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인나의 집에서 나오던 그를 만난 날을 떠올렸다.


-어째 거서 나와?

-아, 요즘은 여기서 거의 살아요. 집은 고친 후에 살려고요.

-결혼 한 건가?

-아직이요. 동생들도 이쪽이 편한 것 같아서...

-잘 되었네. 집주인이 자네 애인이라면서?

-흐... 예. 누가 말해줬나 봐요?

-응? 아아, 준서 만났었어. 난 그 애가 머리카락도 짧고 말투도 그렇고... 남자애라 생각했었어. 어쩐지 기성이 그 동생이 내가 잘생겼다하면 버럭 화를 내곤 했었지... 그 사람도 참, 딸이면 딸이라고 말을 해줘야 알지.

-준서 누가 봐도 여자아이잖아요?

-응? 어어, 지금 보니 엄청 이쁘더군.


활짝 웃던 그를 떠올리며 이씨도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응? 아아... 뭐라고 물었지? 집? 그래... 이쪽집들 다 그 난리통에 떠났지. 저기 오른쪽 집에 살던 사람이 내 아우인데, 나 때문에 안 팔고 버티다가 화병으로 가버렸어...”

“그랬군요...”

“이젠 저 집에 다 모여 살아. 저기 집 보이지? 성 같은 집. 저기 지은 것도 아니고, 꾸민 것이래. 세상 참 좋아졌어. 벌건 벽돌집이 어찌 저리 변했나 신기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얼탱은 급히 순찰을 가겠다며 돌아섰다. 그는 만족할만한 대답을 들었기에 더는 폐촌에 올 일이 없다 여겼다.


‘그래도 시체가 있는지 확인은 해야겠지.’


그는 순찰을 돌며 시간을 보내다 이씨가 운동을 끝내고 돌아갈 시간에 맞춰 다시 삼거리에 차를 세웠다. 삼거리 전주에 달린 CCTV를 슬며시 본 그는 천천히 골목길을 올라갔다. 우측으로 걸으며 그는 좌측에 있던 인나의 집을 보았다.


‘참 이런 곳에 와서 살려는 사람은...아아...그렇군.’


투자에 실패한 물의 부친처럼 투자했다가 묵혀두기 싫어 수리해 들어온 이들이라 그는 생각했다. 비싸 보이는 외제차 두 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재력은 있는 이들이라 여겼다. 그는 목적지인 담장에 도착해 주변을 살폈다. 까치발을 들고 안을 보려 했지만 그의 신장으로도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다시 살핀 후 그는 팔을 위로 뻗어 담을 잡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허...”


그의 예상과 다른 광경이 보였다. 급경사를 이룬 시멘트 벽 아래쪽에 놓인 집을 보고 그는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는 안심했다. 집에는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낡은 운동기구가 마당에 놓여 있고, 주인 잃은 개집도 쓸쓸히 놓여 있었다. 그 안에 그가 찾던 조씨의 시신은 없었다. 피도, 흔적도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하며 담에서 내려올 때였다.


-왈왈왈왈!!!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급히 손을 털고 돌아선 그는 건너편 집 대문 앞에 선 교복 입은 소녀와 소녀가 잡고 있는 개가 보였다.


‘흰 개...’


눈에 익은 개였지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섰다. 경고음을 내뱉던 집돌이는 그에게 이를 보이며 더 강한 경고를 보냈다. 그를 본 얼탱은 발을 멈추고 준서에게 미소를 지었다.


“누구세요?”

“응? 아, 경찰인데... 순찰 중이야. 학교 가는 길인가 보네?”

“아뇨, 산책하고 나서 가려고요.”

“그렇구나...”

“거긴 왜 보셨어요?”

“아 누가 있나 싶어서.”

“없어요....지금은.”


뒷말이 작게 들렸지만 얼탱은 앞에 들린 말에만 관심을 가졌다.


“개가 사납구나. 입마개 해야지.”

“그럴 생각이었어요.”

“음...”


교복을 보고 얼탱은 학교가 어딘지 떠올렸다.


“응? 먼 곳에 다니는구나? 가까운 곳도 있는데.”

“거긴 공학이잖아요. 전 여고가 좋아요.”

“아아... 왜 남자들이 싫어?”

“네, 모르는데 말 거는 사람은 더욱.”


공격적인 말투에 얼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요새 애들은 참...’


자신을 지칭하고 있음을 깨닫고 얼탱은 나빠진 기분을 감췄다.


“여기 살면서 위험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고?”

“네, 안전해요. 여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에요.”

“으음... 그렇구나.”


그는 인나의 집 주변에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개가 아닌가?’


그는 한 남자와 함께 다니던 개를 뒤늦게 떠올렸었다. 그러나 그때 만난 개는 사람을 꺼리지만 사납지는 않았다.


“가야겠다. 그 개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낯설어서 그래요. 원래는 착해요.”

“그래... 혹시 나쁜 사람 보이거나 그러면 아저씨 불러. 신고하면 내가 출동하니까.”

“네. 고마워요.”

“...고맙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꼬박꼬박 상냥하게 대답해주는 준서가 얼탱은 마음에 들었다.


‘저런 동생 있으면 좋겠지...’


*


조씨는 도망갔다. 얼탱은 그 사실에 마음이 편해져 오랜만에 물과 카삥을 만나 어울렸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셋은 클럽에서 나와 오랜만에 카삥의 카센터에서 모여 앉았다. 가볍게 마실 때와 달리 셋은 주저 없이 술을 마시며 크게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뚝하고 대화가 끊어진지 20분이 지났을 때 카삥은 졸고 있었다.


“오늘 그 집 가봤다.”


얼탱은 자신의 고민을 그리고 시원해진 속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다.


파강!


“그만 해, 이 새끼야!”


졸던 카삥이 눈을 번쩍 떴을 때, 놀랐던 얼탱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표정을 보고도 물은 화를 풀지 않았다.


“다 끝난 이야기를 왜 자꾸 꺼내?! 씨발... 개 좆같은 새끼.”

“...뭐? 너 말이 심하다?”

“심한건 너야, 너! 진급한다고 이 새끼야, 그 새끼 잡는다고... 씨발... 그냥 두라고! 손 떼라고 새끼야! 네가 그 일에 집착할 때마다 내가 씨발 돌아버린다고! 언제 터지나! 언제 터지나! 왜 경찰새끼들은 발표 안하냐고! 씨발... 좆같은 새끼들, 세금 받아서 뭐하는 거야!”

“그만해라... 취했나보네.”


얼탱의 말에 물이 비릿하게 웃었다.


“취해? 씨발... 그래, 취했다. 취했지만 정신은 멀쩡해... 내가 헤헤거리며 놀러 다니니까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 씨발... 잊어야 할 거 아냐! 왜 자꾸 건드리냐고. 그 집에는 왜 가냐고! 가서 거기 있으면? 신고라도 하려고? 그 새끼가 범인인데,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나는 범인이 누군지 아니까, 거기에 범인이 거기 숨은 것도 아니까...이러냐?”


“...오해하지 마. 공개수사가 아닐 뿐이지, 내부적으로는 발표 나고 있어. 용의자 조씨에 대한 수배령도 내려진 상태고.”


“...뭐?”


“니가 관심 가졌다면 알 이야기다. 카삥은 이미 다 들었고.”


“...그렇다고 해도, 네가 그 집에 갈 이유가 어디에 있는데? 요새 여기저기 CCTV깔린 세상이라는 거 몰라? 네가 거기 기웃거리면 이상하게 볼 거 아냐?”


“큭... 걱정하지 마. 내가 잘못되어서 걸려도 너희 안 불어. 왜, 넌 불려고 했어?”


“이 새끼...”


벌떡 일어났지만 물은 쥐었던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세수라도 하고 와. 대화하고 싶으면.”

“....퍽!”


욕하며 나갔지만 물은 얼탱의 조언에 따라 세수를 하고 나왔다.


“말해봐.”

“이제 진지해졌군.... 내가 그 집에 그 새끼 넣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얼탱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두 사람에게 보이지 않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두 달 가까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담담히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지만, 듣는 두 사람의 얼굴에선 술기운이 빠르게 걷어지고 있었다.


“죽으면 더 안 좋은 상황이 되잖아? 구타 흔적도 있고. 그래서 걱정했지... 너희들에게 말 못한 이유는 걱정할까봐서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지금은 좋아진 거지? 그렇지?”


“그래, 카삥. 걱정 마. 그 새끼 도망친 게 분명해.”


그는 집의 구조에 대해 말했다. 죽어 있거나 시신이 훼손되었어도 누군가 발견하지 않고서는 훤히 보이는 위치에 있어야 했다는 것을 전했다.


“핏자국도 없었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그게 가능한 이유....알겠지? 집주인 있다고 해도, 핏자국 남았으면 신고하겠지. 뭐, 눈이 많이 내렸고, 비도 가끔 내렸으니 씻겼을 수도 있고, 어쨌든 신고 들어온 건은 없어. 우리 관할구역이라 내가 잘 알지.... 그 새끼 어떻게 도망갔는지 모르겠지만... 참 대단하긴 하네. 아무튼 이제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다. 그 새끼 잡혀도 우리 얼굴도 몰라. 카삥이나 물 너희는 제대로 마주보지도 않았고, 난 마스크 쓰고 어두웠고, 그 새끼 술까지 먹어서 정신없었으니까. 안다고 해도 상관없어. 우리가 누군지도 몰랐을 테니까. 우리끼리 본명 말 안하고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 대화 들었을 가능성도 적고, 들었다고 해도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어찌 알겠어. 크큭...”


웃음을 거두며 얼탱은 물을 보았다.


“너도 이제 맘 편히 지내도 돼.”

“....그 놈 참... 정든다, 웃지 마.”


물도 그처럼 웃었다. 마음 졸인 시간이 그처럼 길었기에 물은 눈물도 보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까, 얼탱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 건너편에 이상한 사람들 들어와 살더라.”

“뭐가 이상한데?”


얼탱은 인나의 집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여동생 삼고 싶던 준서나 사나운 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주차장 안에 언뜻 보이던 차에 대해서는 말했다.


“흰색 차 두 대 있던데 한 대는 잘 모르겠고, 한 대는 재규어 같던데... 꽤 비싸지?”

“재규어도 여러 종류라서.”

“어, 소트프탑루프 달렸더라.”

“얼탱, 잠깐...”


물이 손을 내밀고 급히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하더니 화면을 보였다.


“이거냐?”

“응? 어...어어, 맞는 것 같은데? 왜?”

“차번호 봤어?”

“아니, 개가 사나워서 다가가진 못했고, 다가가도 보이는 구조는 아니었지. 담 넘어 보다 돌아설 때 보인 거라서....왜 아는 차야?”

“글쎄.... 알아도 문제고, 몰라도 문제고. 여기 살았었나...”

“누군데?”


카삥의 질문에 물이 혀를 차며 답했다.


“졸라 비싼 년 있다. 동호회 년인데, 그년 아버지가 차배정씨다.”

“차배정? 얼탱 알아?”


얼탱도 고개를 흔들자 물이 비릿하게 웃었다.


“재일교포 사업가니 너희가 모르겠지. 아는 사람만 아는 자산가야. 잘 물면 팔자 피는 년인데... 아쉽게도 넘어오질 않아. 전에 클럽에 몇 번 나타나더니 요샌 통 보이지도 않고. 그 년이나 그년 친구들 중 아무나 물어도 너희들 제대로 인생 핀다. 뭐 나이가 조금 많지만 몸매도 좋고, 얼굴도 모델...아, 그래. 전에 모델 했었다고 했다. 찾아보면 있을 걸?”


모델 활동 중에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지만 차배정과 함께 찍힌 사진은 있었다.


“본적 있는 것 같은데?”

“으음... 난 모르겠다.”

“왜 그날. 2월 말인가? 3월 초에 클럽에서 70년대 디스코 컨셉으로....”

“그날 나 안 갔었는데?”

“아, 그랬나?”


카삥은 물을 보았다.


“얼탱 안 왔지. 그날 내가 노린 게 누군지 알아? 무연그룹 회장 작은 딸이었다.”

“워! 씨발! 진짜? 그날 한 일곱명인가 왔던 그.. 그 년들?”

“그래... 거기에 아까 말한 차배정 딸도 있었고. 나머지 몇은 겉절이정도인데, 그래도 배연전자 다니는 애들이다. 본사.”

“.....아, 젠장! 그때 알았으면 어떻게든 달라붙을 걸! 어쩐지 엄청나게 몰리더라... 그년들 잡은 방 앞에.”

“다 뺀찌 먹었지. 나도 겨우 MD불러서 들어갔다가 술병 맞을 뻔했다.”

“난 기센 여자 별로라.”


얼탱이 끼어들자 카삥과 물이 기막혀 웃었다.


“이게 기 따질 문제냐? 무연회장 딸이라고?”

“관심 없다.... 어차피 인연 닿지 못할 사람들인데.”

“새끼... 꿈은 크게 가져야지. 야, 물! 오늘 가자.”

“뭐? 큭. 다시 가자고? 있으면 내가 이리로 넘어왔겠냐. 어떻게든 쫓아갔지. 아... 그년. 어떻게든 눕히면 다 끝나는 건데.”


‘미친놈.’


얼탱은 그룹 내에서 일인자라 자칭하는 물도 눈치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사람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물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태생부터 다르지만 물이 넘보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리만족감을 느꼈다. 자기만족감에 취해 얼탱은 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번 가볼까...’


아니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며 물은 인나의 집 인근을 찾아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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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6 20.06.13 15 2 21쪽
81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5 20.06.13 16 2 18쪽
80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4 20.06.13 17 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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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2 +4 20.06.13 21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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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떠넘기기 2 20.06.12 18 2 25쪽
72 떠넘기기 1 20.06.12 17 2 24쪽
» 세 친구 4 20.06.12 14 2 19쪽
70 세 친구 3 20.06.12 19 3 18쪽
69 세 친구 2 20.06.12 20 3 15쪽
68 세 친구 1 20.06.12 29 3 21쪽
67 조씨의 정체 20.06.11 21 3 18쪽
66 세번째 차 +2 20.06.11 21 2 20쪽
65 가족의 의미 2 20.06.10 19 2 18쪽
64 가족의 의미 1 20.06.10 27 3 27쪽
63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2 20.06.10 1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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