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말세를 사는 음모론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5
최근연재일 :
2020.06.03 22:11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914
추천수 :
58
글자수 :
134,598

작성
20.05.30 17:22
조회
36
추천
1
글자
12쪽

기만

DUMMY

나는 5경주에 이미 그가 다 꼬라 박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배당 없이 무난한 결과가 나온 4경주까지 쌓여있는 마권을 보면 그때까지 잃은 돈도 수백이었는데, 확실하다고 믿는 정보로 3000을 박는데 절대로 인기 3위를 연승에 배팅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른바 고위험 고배당을 추구하는 호구였고 무엇보다 5경주 후 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언제 빈털터리가 될지 궁금했는데 이미 끝난 모양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나에게 부탁하는 것은 이미 빌릴 수 있는 다른 곳에 다 연락이 끝났다는 것이다.


“피라미드프로덕션··· 아 대표님이셨네요. 저도 지금 자금이 별로 없는데. 뭐 그래도 아까 사장님 덕에 좀 땄으니까 500정도는 융통해 드려야죠. 뭐 확실한 거 있습니까?”


그는 주위에 듣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살피더니 내 옆에 창현이 보고 있자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제 친한 동생인데 얘는 오늘 처음 와서 만원씩 밖에 배팅 안 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혹시 많은 사람이 배팅하면 배당이 떨어질까 걱정 한 것인데 다시 주변을 확인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도 태영이가 옵니다.”


김태영은 대한민국에서 탑3에 들어가는 기수라 일단 나오면 인기를 끌어 배당이 떨어졌지만 이번 경주는 워낙 못 뛰는 말을 타고 나와 인기 8위였고 상당히 위험한 배팅이라고 할 수 있었다.


“8번 되겠습니까? 말이 7세면 완전 할밴데. 옆에 3,4세 전성기의 숫말하고 뛰면 어려운데...”


“원래 은퇴하기 전에 한번씩 쏴 먹고 은퇴하는 말이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겁니다. 이번에 먹고 은퇴 한데요. 태영이가 직접 조교했고 오늘 상태 좋다니까 믿을 만 합니다.”


어차피 나는 태영이가 오든 페로비치가 오든 상관 없었기에 대충 고개 끄덕여 주고 알았다고 한 뒤 10만원을 배팅하고 게임을 기다렸다. 기지개를 한번 켜고 방을 둘러보니 이미 개털 되고 떠난 사람이 반이었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웃고 있는 얼굴이 없었다. 노름은 그렇게 돈을 따기 어렵고 피곤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경주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마지막 경주. 경주거리 1800m 국내산 2등급 경주 출발합니다. 김태영 기수의 8번마 검은구름 가볍게 선행에 나섭니다···.. 4코너 돌아 승부는 지금부터. 크게 앞선 8번마 검은구름, 뒤에서 추격하는 바깥쪽 12번 왕관의무게, 안쪽 3번 문학의기적···”


리차드박이 배팅한 검은구름은 출발하고 시종일관 1위를 지켰고 마지막 직선 주로에선 두 마리가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언듯 보기에 8번은 웬만하면 우승이었고 나머지 2위와 3위의 순서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애초에 8번마 연승에 10만원을 안전빵으로 배팅 한 상태라 먹은 것이나 다름 없었고 배당금도 50만원 정도였다.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그건 나의 목적과는 상관이 없었고 나와 창현은 일단 목이 터져라 8번만 외쳤다.


“가자 8번.”


“태영아 가즈아.”


그런데 나에게 8번을 추천해준 박도상, 리차드박은 8번이 아니라 2위 경쟁을 하고 있는 12번을 목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아마도 8과 12의 복승을 산 모양이었다.


“그래 12, 12다.”


그리고 마침내 8번은 3마신 차로 우승이 확정됐고 2, 3위는 코차 승부로 바로 알 수가 없어 판독에 들어갔고 경마장의 승부사들은 너도나도 자기가 산 말이 들어왔다고 웅성웅성 거렸다.


“12지 12”


“3이 이겼어.”


“아이 12래두, 12가 마지막에 땄어.”


여기저기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나는 박도상이 두 마리를 맞춰야만 하는 8-12 복승이나 쌍승을 간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그의 옆으로 가서 말했다.


“딱 보니까 12네. 12야.”


그렇게 바람을 잡으며 표정을 살피니 그는 여전히 초조한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안 봐도 12죠. 사람들이 잘 몰라. 원래 비슷해 보이면 바깥쪽 말이 이긴 건데. 카메라 각도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거죠. 내가 촬영감독인데 잘 알···”


하지만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3이 코차, 즉 간발의 차로 12를 이긴 것이다.


“아, 잘 놀고 갑니다.”


고개를 푹 숙인채 누구한테 하는지 알 수 없는 인사를 남기고 리차드박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 나는 얼른 그의 옆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와. 12인줄 알았는데 그죠. 오늘 나는 대표님 덕에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제가 술이나 한잔 사겠습니다. 가시죠.”






<청담동, 청담도야지>


“그래서 내가 그때 120배에 100만원 딱 때려가지고 일억이천만원 먹었잖아요.”


돈도 다 잃은 새끼가 왜 이렇게 허풍이 심한지 강원랜드, 마카오, 경마까지 노름해서 대박났던 얘기만 2시간 째 떠들고 있었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우리 강사장님은 말이 너무 없으시다.”


술자리에서 몇 마디 하지 않은 창현이 못마땅한지 취기에 시비조로 얘기하는 리차드박이었다.


“이 친구는 여자 없는 데서는 원래 조용한 편입니다. 하하”


나는 반응을 끌어 내기 위해 창현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창현의 표정이 확 밝아지는 얘기가 나올 줄이야.


“아. 역시 강사장님. 남자구나. 술자리에서는 여자가 있어야 술 맛이 살지. 저번에 빌보드 7위 한 샤이닝 아이즈 알죠?”


“당연히 알죠. 광팬입니다."


“부를까요? 내가 오라면 아마 열일 다 젖혀두고 올 텐데.”


누가 들어도 허세였지만 창현이 놀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혜나도 와요?”


“당연하지. 강사장님도 혜나 좋아하는구나. 전화 한 통 해 볼까?”


나는 안 된다는 눈치를 창현에게 보냈지만 그는 못 본척했다. 리차드박 에게서 얻어야 하는 것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끼는 것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설마 톱스타들이 아저씨들끼리 술 마시는데 부르면 오겠나 싶어 전화를 만류하지는 않았다.


“어 그래. 청담도야지.”


‘설마 온다는 건가?’


장소까지 정확하게 일러주는 걸 보고 원래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뭔 일이 일어나도 모두 나에게 이득일 것이라고 암시하고 상황을 받아드리는 것이 나의 마인드였다.


“강사장님. 30분 걸린답니다.”


술자리에서 톱스타를 바로 불러내는 것은 일종의 과시욕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소속사 사장도 아니고 뮤직비디오 감독이 어떻게 이렇게나 영향력이 큰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창현과 리차드박은 잔을 부딪히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리차드박을 취하게 할까하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다.


“화장실 좀.”


나는 잠깐 밖에 나와 혼자서 헛개차를 원샷 하고는 다시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아 있는 둘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나이도 동갑에 무엇보다 샤이닝 아이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창현은 리차드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기에 저것은 연기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서서 생각해 보는 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 우리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세 명의 젊은 여성. 분명 샤이닝 아이즈일 것이다. 나는 내 자리를 뺏길세라 얼른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 그래 미연이는 안보이네.”


“예. 미연이 언니는 몸이 좀 아파서 저희끼리만 왔어요.”


“미연이 연예하는 거 아냐?”


“아이, 아니에요 사장님. 언니 집에 있어요.”


“그래. 인사들 해라. 우리회사 투자자 분들이셔.”


뜬금없는 소개에 황당하기 그지 없었으나 창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벌리고 인사를 받고 있었고 나도 옆에 선 채로 웃으며 고개만 끄덕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를 투자자로 소개한 것은 진짜 투자를 받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그냥 명분을 위해 그런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리차드박의 한마디가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사장님. 요번에 얘들 계약 끝나는데 우리회사로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예?”


“아직 비밀인데 이번에 연예기획사로 사업확장 합니다. 제가 뮤비 만들어준 애들부터 우리회사로 오기로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법 수완이 능수능란 한 놈이었다. 우리에겐 자신이 이런 사람이다 라는 걸 과시하고 또 우리를 투자자로 소개해서 미래의 소속연예인에게는 안정감을 심어주려는 생각인 것이다. 경마장의 호구 같은 모습에서 백팔십도 바뀌어 제법 사업가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면 이정도 되니까 그런 엄청난 모임에 낄 수 있지 않았을까?


“와. 그러면 비스트가이즈도 사장님 회사로 가요?”


대답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는데 창현이 적절히 대화를 이어가서 처음으로 그를 대리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는 일루미나티 얘기를 하려고 데려온 것인데 연예계 얘기로 도움이 될 줄이야.


“걔들도 7월에 계약 끝나는데 저랑 하기로 했죠.”


“와. 대단하신데요. 한번에 대한민국 1등으로 가겠는데요.”


“강사장님도 우리회사 상장하기 전에 투자 좀 하세요.”


우리는 리차드박의 호감을 사기 위해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했기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 그렇게 여자 아이돌이 좋은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창현은 금방이라도 큰 투자를 할 얼굴이었으나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에 맘이 놓였다. 하지만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사립탐정하고 되게 닮으셨어요.”


“예?”


경마장에서부터 줄곧 리차드박은 나를 몰라봤기에 신분과 이름까지 다 속이고 있었는데 계획에 없던 이 젊은 여가수가 나를 알아볼 줄이야. 그날 클럽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쓸 수 밖에 없었기에 리차드박도 나를 알아보면 분명 의심할 것이었다.


“그 최근에 조선족들한테 잡힌 여성분들 구하신 분 있잖아요.”


“아, 최규정씨. 아유, 안 그래도 요즘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듣는데 얼굴은 제가 좀 낫죠. 안 그래요?”


“예? 아 예.”


전혀 공감 못한 다는 표정이었으나 나는 일단 시치미를 떼며 리차드박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네. 이사장님, 그 재수없는 새끼하고 되게 닮으셨네.”


아무래도 의심하는 듯 눈을 찌푸리며 살피는 리차드박에게 둘러대야 했다.


“아, 무슨 소리를. 그 외국인 차별하는 극우파시즘에 물든 꼴통 새끼보단 제가 훨 낫죠.”


내가 강하게 화를 내며 자아비판을 하자 그도 의심을 풀며 내 술잔을 채워주었다.


“이사장님. 제가 농담한 거죠. 한잔 하시고 화 푸세요.”


나는 소주를 꿀꺽 삼키며 잘 넘어가는 가 싶었는데 또 생각지 못한 상황이 닥쳤다.


“최규정씨 훌륭하신 분이거든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분이세요.”


갑자기 듣고 있던 혜나라는 애가 도끼눈을 뜨더니 나와 리차드박을 나무라는데 나는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그 최규정씨 훌륭한 분이지. 그 같이 여자들 구한 친구들하고. 그죠?”


이 새끼는 또 왜 이러나? 창현이 혜나 편에 서서 분위기를 더욱 이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하다가 한마디 했다. 그것은 나의 본심이었을까?


“아 그 최규정씨, 훌륭한 분인데 하여튼 얼굴은 내가 좀 낫다고. 훌륭하지. 20명도 구하고.”


“혜나야. 지금 사장님하고 투자자분하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끼어들면 안돼. 알았지?”


그는 다행히 눈치는 못 챈 듯 그녀를 타이르더니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사장님. 자리 옮기시죠. 제가 좋은 곳 아는데 그 쪽으로 가시죠. 긴히 드릴 말씀도 있고. 너희도 같이 가자. 괜찮지?”


딱 봐도 우리와 같이 가기 싫은 눈치였으나 대답만은 시원하게 나왔다.


“예. 사장님.”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말세를 사는 음모론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낚시 20.06.03 39 0 15쪽
28 주인과 종 20.06.02 35 0 11쪽
27 몰래카메라 +2 20.06.01 87 2 11쪽
26 발각 20.05.31 34 1 12쪽
» 기만 20.05.30 37 1 12쪽
24 경마 20.05.29 45 0 11쪽
23 리차드 박 20.05.28 75 1 13쪽
22 철옹성 40% 20.05.27 31 1 13쪽
21 수구꼴통의 긍지 20.05.26 37 1 8쪽
20 기자회견 20.05.25 65 1 15쪽
19 신상 노출 20.05.24 72 2 14쪽
18 리스트 20.05.23 66 0 13쪽
17 순대국밥 20.05.22 33 1 10쪽
16 구출 20.05.21 52 0 9쪽
15 장기밀매업자? 20.05.20 42 1 10쪽
14 아폴로11호 +2 20.05.19 43 1 11쪽
13 사단의 자식들 20.05.18 45 1 12쪽
12 악마주의 비밀의식 20.05.17 45 1 9쪽
11 잠입 20.05.16 80 2 8쪽
10 호텔 프로메테우스 20.05.15 45 1 8쪽
9 클럽 프리징문 20.05.14 69 0 8쪽
8 청탁 20.05.13 73 0 9쪽
7 만남 20.05.12 79 0 9쪽
6 음모론2 20.05.12 61 1 10쪽
5 음모론 20.05.11 84 2 8쪽
4 난민 20.05.11 72 3 8쪽
3 꼴통의 정치경제 20.05.11 104 4 11쪽
2 기쁘다. 20.05.11 133 10 9쪽
1 테러 +6 20.05.11 232 2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