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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말세를 사는 음모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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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5
최근연재일 :
2020.06.03 22:11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915
추천수 :
58
글자수 :
134,598

작성
20.05.11 12:54
조회
133
추천
10
글자
9쪽

기쁘다.

DUMMY

“어이, 순경양반.”


나는 입을 틀어막은 경정의 손을 밀쳐내며 퉁명스럽게 말을 토해냈다. 몹시 기분이 나쁜 듯한 표정을 짓는 이 사복경찰은 지방경찰청의 높디 높은 경정이니 최근에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어디 가서 경찰증만 보여주면 힘없는 시민들이 굽실거려야 하는 세상인데, 나이도 어린 놈이 여러 사람 앞에서 쪽을 주었으니 상당히 기분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주목하고 있는 기자들도 들으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하려거든 내 말을 막지 마시죠. 당신이 아니라 기자한테 먼저 얘기 할 테니까. 테러의 전모가 드러나는 것을 당신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진 경찰이 할 수 없다는 듯 내 입만 쳐다 보았고 기자들은 다시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폭발은 대여섯 번. 처음 입구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마트 여기저기서 연속적으로 폭탄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폭발은 앞의 다섯 번과 3,4초 정도의 갭이 있었습니다.”


목숨이 붙은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잠깐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용의자들은 모르겠습니다만 마지막 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아랍인으로 보였습니다. 180쯤 되는 키에 검은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폭탄을 터뜨리기 전 흥분한 상태로 아랍어로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걸 봤습니다.”


“테러범을 보고도 어떻게 살아남으셨습니까?”


경찰이 아니라 옆에 있던 기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애초에 기자들도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으므로 개의치 않고 답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 첫 번째 폭발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로 피하려 발을 떼는 순간 3미터 앞에서 그 마지막 폭탄을 터뜨린 테러범의 눈과 마주 쳤습니다. 그 순간에도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폭발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망설여지는지 흥분한 상태로 몸을 떨었습니다. 크게 고뇌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죠. 나는 바로 몸을 돌려 화장실 안 빈 부스로 뛰어 들어가 문을 닫았고 직후에 바로 마지막 폭탄이 터졌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얼마 전 영국에서 있었던 무슬림형제단의 테러와 같은 방식인 듯싶습니다.”


말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환자가 계속해서 실려 나오고 있었고 붉고 푸른 각종 불빛 속에서 가족걱정에 주저 앉은 사람, 살아남아 마치 죄인의 모습으로 조사를 받는 이, 카메라 플래시, 경찰, 의료진, 구경꾼들의 그림자가 심란한 나의 심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피곤해서 쉬어야겠는데 더 물어보실 것 있습니까?”


“전화번호 하나 남겨주시죠.”


“제 변호사 통해서 연락 주시죠.


아니꼬운 표정으로 연락처를 요구하는 경찰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고 곧바로 돌아섰다. 하지만 기자들은 더 궁금한 것이 많은 듯 계속해서 따라왔다. 계속되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피로한 나머지 주차장에 세워 둔 차를 포기하고 택시를 선택했다. 도로변으로 나서는 그 짧은 시간에도 세 명의 기자가 앞다투어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를 따기 위해 녹음기와 마이크를 내밀었다. 나는 묵묵부답으로 거절하였고 마침 온 택시 뒷좌석에 올라타 문을 닫으려던 순간, 기자가 던져온 질문에 나는 나의 고뇌에 대한 답을 내렸다.


“큰 사고에도 살아남으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분이요, 아주 기쁩니다.”


나는 짧은 답을 하고 문을 닫으며 기사를 재촉했다.


“기사님. 일단 출발합시다.”


기자들이 오해 할 것이고 악의적인 기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진솔한 나의 감정을 알 수 있었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아 얼마간 더 살 것이 기쁘다. 내 가족이 휘말리지 않은 것도 기쁘다. 내가 친구와 함께 장을 보지 않은 것도 기쁘다. 그렇게 나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많이 생긴 것이다.


이 시대의 택시는 너무나도 조용하다. 6기통 엔진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나의 낡은 suv와는 다르게 그저 약간의 전기모터 소리와 노면 소음만이 낮게 깔려 절로 잠이 찾아온다. 특히나 이렇게 큰 사고를 겪은 후 기사를 앞에 두고 뒷좌석에 앉아있노라면 그 끈적한 졸음의 유혹을 쉽사리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엷게 뜬 눈으로 들어오는 창 밖의 풍경이 나에게 막 항복선언을 받아내려던 졸음을 멀찌감치 쫓아 버렸다.


“기사님.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선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 저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저렇게 모여 시위를 한답니까?”


“현대차 노조원들이죠. 벌써 3일째 저러고 있네요. 쯧쯧.”


기사의 어조에서 냉소가 느껴졌다.


“현대차도 이번에 구조조정 많이 했다죠?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안보이네요.”


“옛날에는 독과점 덕에 임금 올려달라고 떼쓰던 사람들인데, 요즘 중국 전기차가 하도 싸게 들어오니 이제는 진짜 실직걱정을 할 때가 됐죠.”


그들은 십년 전, 그러니까 2019년에는 잘 나가는 현대차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뭐 어차피 연봉 1억 넘게 받던 사람들이고 퇴직금도 후한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진짜 실업자들은 저기에 없고 무료급식소에 줄 선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승객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이 택시 기사로서 편한 것인지 아니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인지 알수 없지만 기사와 나는 말이 잘 통했다.


“아유.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내가 택시로 두 자식 대학까지 졸업시켰지만 저 현대차 직원들만큼 벌었으면 나도 이 나이에 택시 모는 일이 없었겠죠.”


기사는 한숨을 쉬며 말을 끝냈지만 룸미러로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반드시 더 하고픈 말이 있었을 것이지만 아마도 정치얘기는 아닐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의 정치얘기는 피곤한 법이니까. 마침 라디오에서는 조금 전 내 눈앞에서 펼쳐졌던 참혹한 사건에 대한 속보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궁금증을 참지 못한 기사가 넌지시 물어왔다.


“혹시 손님도 원마트에 계셨습니까?”


원마트 앞에서 택시를 잡고 뒷자리에 앉아 기자와 짧은 얘기를 주고 받는 것을 다 지켜봤으니 기사가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저는 이렇게 운 좋게도 살아남았네요. 제가 기뻐할 만 하죠,?”


나의 느닷없는 물음이 어이가 없는지 택시 기사는 허허하고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마지못해 동의해주는 듯한 말을 했다.


“손님, 운 참 좋으시네. 허허. 오늘 복권 하나 사보세요.”


영혼 없는 노년 기사의 말투. 아마도 많은 사상자가 나온 사건에서 혼자 살았다고 좋아하는 것을 본다면 아니꼬운 것이 보통사람의 심정일 것이다. 나도 희생된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내가 느끼고 있고 또 느껴야 할 우선순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죽어간 이들은 누리지 못한 삶을 여전히 누리고 있기에 나는 그들을 대신해 기뻐해야 한다. 그들을 위한 비통함은 그들의 가족과 친구에게 맡겨두자. 나의 방어기제는 또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복권이라···복권보단 복수가 땅기는 데요.”


“예? 복수요?”


기사가 꼭 나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으면 아마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 하지만 나는 기사에게 나의 결심을 확인 시켜주었다.


“예. 복수 말입니다.”


그것은 나의 결심을 확실히 하는 절차였다.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에게 말함으로써 나 스스로 맹세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무슬림 새끼들 다 몰아 내야겠습니다.”


“허허.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지만 걔들은 순풍순풍 서넛은 기본으로 낳던데.”


어이 없다는 듯 말하는 기사를 설득할 필요는 없다. 이러쿵저러쿵 얘기해도 설득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 테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명분은 섰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언젠가는 해야 했던 일이죠. 기사님, 차 돌려서 명서빌딩으로 갑시다. 상승법률사무소가 있는 곳입니다.”


작가의말

본격적인 사건은 9~10화에서 들어가는데 저의 역량이 모자란 탓인지 독자분들을 거기까지 매료시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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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음모론 20.05.11 84 2 8쪽
4 난민 20.05.11 72 3 8쪽
3 꼴통의 정치경제 20.05.11 104 4 11쪽
» 기쁘다. 20.05.11 134 10 9쪽
1 테러 +6 20.05.11 232 2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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