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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7:20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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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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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5
글자수 :
1,086,548

작성
23.12.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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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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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8쪽

30화

DUMMY

“뭐, 뭐?! 개, 개새끼?! 이게 싫으면 싫은 거지 얻다 대고 욕지거리야! 너 죽을래?!”


나는 진짜로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아린의 번호도 맞고 아린의 목소리도 맞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바이러스 어플을 깔아 남의 휴대폰을 조종하는 건 식은 죽 먹기고 요즘은 뭐 AI로 타인의 목소리를 감쪽같이 흉내 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니까.


“아,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제 네가 말하는 거 뭐든지 들어준다며! 그거 지금 쓸게! 나 제발 돈 좀 빌려줘!”


그런데 통화 상대는 나와 아린이 어제 나눴던 대화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넘어가면 초짜지.

휴대폰 해킹은 진작에 해놨고 우리 둘의 대화를 감청하고 있다가 그럴듯하게 써먹는 거라면?

나는 의심을 늦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돈을 빌려주는 건 상관없는데 만나서 줄게. 훈련장으로 가면 되지?”

“아, 아니! 지금 훈련장 아니야!”


이것 봐.

훈련장 NPC가 훈련장에 없다고?

사기를 칠 거면 그럴듯하게 해야지 이렇게 허술해서야.


“지, 지금 병원이야! 그⋯ 여기가 어디더라? 저, 저기⋯ 여기 병원 이름이 뭐죠?”


응? 병원이라고?

얘가 병원 갈 일이 뭐가 있지?

서울에서 핵폭탄이라도 터졌나?




***




“야, 서준아, 미안하다. 나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너 집에 혼자 갈 수 있지?”

“네! 괜찮습니다! 윤아린 헌터님의 호출인가요?!”

“그, 그런 거 아니야! 집안일이야! 계산을 내가 하고 갈게! 천천히 먹고 조심히 들어가!”

“옙! 고생하십쇼!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형님!”


나는 급히 가게를 빠져나와 차를 몰고 아린이 말한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린은 춘천 소재의 한 종합병원에 있다고 했는데 마침 헌터관리국 강원지부도 춘천에 있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얘가 대체 왜 병원에, 그것도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될 테니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 여기, 나왔어.”


병원에 도착하니 진짜 아린이 있었다.

그녀는 안에서 기다리기도 초조했는지 야외주차장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아린이의 안색을 본 나는 놀라 물었다.

대체 얼마나 운 건지 눈 주변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양 볼에 눈물 자국도 진하게 남아있었다.


“주, 준호야⋯!”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달려와 와락 안겼다.

그리고⋯.


“너 일단 한 대 맞아.”


저먼 수플렉스를 갈겼다.


“구왁!!!”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내려꽂힌 나는 전용특성이 발동할 때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목 아래로 감각이 없는 게 척추가 부러졌나 보다.


“가, 갑자기 왜⋯!”

“욕한 건 이걸로 봐줄게.”


아, 그거.

안 그래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 심란한데 거기다 도와달라고 했더니 대뜸 욕을 먹은 게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아야야⋯ 그래서, 갑자기 병원은 왜 온 건데?”


예상은 했지만 역시 본인이 아파서 온 걸로 보이진 않았다.

세상에 어떤 환자가 그렇게 깔끔한 저먼 수플렉스를 할 수 있을까.


“그, 그게 실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비가 필요해.”

“할아버지께서는 괜찮으시고?”

“마을회관에서 쓰러지셔서 친구분들이 바로 구급차를 불러주셨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응급처치를 해서 상태는 많이 좋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수술 중이야.”

“어우⋯ 불행 중 다행이네.”


갑자기 가족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왔다니 놀랄 만도 했다.

그래도 위독한 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네.


“하아⋯ 이런 일은 처음이라⋯ 혼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도 네가 와줘서 다행이야⋯.”


내가 왔다고 해서 뭘 더 해줄 순 없지만 그래도 힘들 때 옆에 누가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하니 이런 게 친구 좋다는 거겠지.

나는 우선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런데 다른 가족분은?”

“다른 가족?”

“응, 부모님이나, 친척이나.”

“나 가족은 할아버지뿐이야.”

“어?”


잠깐만,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혹시⋯ 부모님은⋯?”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키워주셨고.”

“어⋯음⋯.”


괜한 걸 물어봤네.

아린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무안했다.


“그, 근데 돈은 왜 빌려달라고 한 거야?”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일단 이건 좀 많이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A급 헌터는 돈이 썩어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갑부인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일반 서민에게 손을 벌리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 할아버지 치료비랑 입원비 때문에⋯.”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돈 없어?”

“응⋯.”


돈 없냐는 질문에 아린은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뭐지? 얘가 돈이 없을 리가 없는데?

집이 지나치게 좋은 거 빼곤 사치 부리는 거 하나 없이 하루 종일 훈련만 해서 돈 쓰는 곳도 없는 애가 대체 왜 돈이 없는 거지?


“저기⋯ 이런 거 물어봐서 미안한데⋯ 너 통장에 있는 돈 다 합치면 얼마 있어?”


남의 재산을 물어보는 게 실례인 줄은 알지만 꺼림칙했다.

내가 끼어들어 바로잡아줘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촉이 확 왔다.


“음⋯ 지금 한⋯ 이십 얼마⋯?”

“이십억?”

“아니, 이십만 원⋯.”


이십억이 있다고 하면 하나도 안 놀랄 텐데 이십만 원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나보다 돈이 없지?

얘 나 몰래 도박 같은 거 하나?


“버는 돈은 다 어디에 쓰는 거야?”

“버는 돈? 무슨 돈?”


오우⋯ 또 스무고개 해야 해?


“그러니까, 네가 길드에서 헌터로 활동하면서 레이드를 다니잖아, 그럼 레이드에서 나온 마석이나 전리품 같은 걸 정산을 받을 거 아니야. 내가 알기로 너 정도 되는 헌터는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거든? 통장에 그 정도 돈밖에 없을 수가 없어.”

“어⋯ 음⋯? 아~! 기억났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골치 아팠을 텐데 다행히 아린은 뭐 생각나는 게 있는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나는 생활비랑 용돈 정도만 받고 나머지 돈은 길드에서 관리해 주기로 했어!”

“생활비는 얼마 받는데?”

“한 달에 300만 원!”

“매달 300만 원을 다 쓰는 거야?”


나는 월급이 200만 원인데.


“100만 원은 할아버지 드리고 나머지는 식비랑 또 너랑 만나기 전에는 훈련장을 택시로 다녔으니까 그러고 나면 빠듯하던데?”


하긴, 아린이가 먹는 양을 생각하면 식비를 무시할 수 없긴 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매달 할아버지 생활비까지 챙겨드렸다니 완전 효녀네.


“그럼 지금까지 길드에 맡긴 돈이 총 얼만지 알아?”

“모르겠는데?”

“대충도 몰라? 마지막으로 확인한 액수라든지.”

“딱히 생활하는 데 불편함도 없고 지금까지 큰돈이 필요한 적도 없었으니까 딱히 물어본 적 없는데⋯.”


아린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그런 성격인 줄은 알겠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어떻게 사람이 자기가 평생 일해 번 돈을 남한테 다 맡겨놓고 한 번도 확인을 안 해 볼 수가 있는 거지.


“윤아린 헌터님 계신가요?”


그때 보호자 대기실에 들어온 의사가 아린을 찾았다.

알아서 헌터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유명인이긴 유명인이었다.

“서,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는요?!”

“수술은 깔끔하게 잘 끝나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3일 정도 입원 치료받으시면서 경과를 지켜보다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 보호자 동의란에 서명해 주세요.”

“아, 네⋯! 그런데⋯ 혹시 지금 할아버지 볼 수 있나요?”

“아직 마취에서 안 깨시긴 했는데 곧 깨실 겁니다. 603호 병실로 가시면 됩니다. 안정을 위해 외출 자제해 주시고 특히 술은 절대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의사를 향해 꾸벅 인사한 아린은 곧장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을 찾았고 약 20분 뒤, 그녀의 할아버지는 마취에서 깨어났다.


“으음⋯.”

“할아버지, 괜찮아?!”

“아린이냐⋯?”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아린은 또 또르륵 눈물을 흘렸지만 씩씩하게 바로 닦아냈다.

던전에선 천하무적 대장군 같던 그녀가 지금은 영락없는 여린 소녀로 보였다.


“바쁠 텐데 여기까진 뭐 하러 왔어⋯.”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데 어떻게 안 와!”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수술했으니까 당연히 지금은 괜찮겠지!”


손녀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게 무안했는지 할아버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옆에는 누구⋯.”

“처음 뵙겠습니다. 박준호라고 합니다.”

“오오⋯ 아린이 남자친구?”

“아, 아니요 그냥 친구입니다.”

“말끔하니 생겼는데 아쉽네⋯.”


저도 아쉽습니다.


“그래, 아린이는 서울에서 친구들 많이 사귀었고?”

“할아버지는 맨날 그거 물어보더라! 당연히 많이 사귀었지!”


너 친구 나밖에 없잖아.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슥 스쳐 지나가는 아린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쓸데없는 소리 하면 뒤진다, 뭐 그런 거겠지.


“할아버지야말로 요즘은 뭐 하고 지내?”

“시골은 늘 똑같아. 시골 사람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만났는지 서로 근황을 물으며 회포를 풀었다.

나는 옆에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오주한 요원이었다.

벌써 뭘 알아냈나 보다.


“잠시 전화 좀⋯.”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껴서 좀 어색하던 참이었는데 나는 둘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전화를 받았다.


“예, 요원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무슨 일이시죠?”

“하아⋯ 그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숨부터 쉬다니.

불길한 감이 팍 왔다.


“용의자가 전원 사망했습니다.”

“⋯네? 용의자는 전부 요원들이 체포해갔잖아요?”


자백받아 내려고 고문이라도 한 거야?


“취조 중 용의자 한 명이 겨우 입을 열었는데 그 순간 용의자들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비밀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무언가 마법이 걸려있었던 모양입니다.”

“저⋯ 용의자 중에 어린아이도 한 명 있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 아이도⋯?”

“예, 사망했습니다.”

“후우⋯.”


무거운 한숨이 나왔다.

겁에 질린 눈동자와 덜덜 떨던 작은 어깨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리 봐도 자의는 아니었던 것 같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낸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용의자들이 소지하고 있던 무기를 분석한 결과 일부의 무기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이한 점이요?”

“예, 각성자의 마력을 흡수해 사용자가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 있더군요.”

“그럼⋯ 저등급 헌터들을 모아서 죽인 이유가 설명이 되네요.”

“예. 저희도 헌터들을 던전으로 유인해 마력을 흡수하려는 게 주목적이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후우⋯ 진짜 이상한 일에 말렸네요.”

“저희가 알아낸 건 일단 이 정도입니다만⋯ 준호 씨.”

“네?”


오주한 요원의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렸다.


“오늘 낮,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도 헌터들의 단체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수법도 같고요. 이놈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데다 분명 지원과 지시를 내리는 상부 조직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몸조심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그는 요원답게 용건이 끝나자 깔끔히 뚝 전화를 끊었다.


“후우⋯.”


굉장히 꺼림칙하고 찝찝했다.

이대로는 생각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나는 병실을 나온 김에 원무과로 향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수납을 미리 하고 싶어서요.”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어, 그러고 보니 아린이 할아버지 성함이 뭐더라.

모르는데.


“그⋯ 윤아린 헌터 할아버님⋯.”

“아~ 윤호중 님 맞으시죠? 잠시만요~.”


이렇게 말해도 알아듣네.

역시 유명인, 편하구만.


“진료비와 수술비와 입원비, 처방받으신 약까지 총 221만 9480원입니다. 납부 방법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카드로 할게요.”


나는 딱히 돌려받을 생각 없이 대신 병원비를 납부했다.

아린이에게 진 신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납을 마친 나는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뽑아 천천히 마시다 병실로 돌아갔다.


“⋯응?”


그런데 어딜 간 건지 병실엔 아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만 남아있었다.

할아버지께선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곧게 펴고 침대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계셨다.


“아린이는 어디 갔어요?”

“내가 심부름 좀 보냈네. 우리 잠시 이야기나 나누세.”


어⋯ 분위기 이상한데⋯.

내가 뭐 잘못했던가?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침대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래, 자네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아린이랑 동갑입니다.”

“아린이랑은 어떻게 만났고?”

“사정이 조금 복잡해 어떻게 만났다고 딱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지만⋯ 절 구해줬습니다.”

“사이는 좋고?”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구만⋯.”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한시름 놨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물었다.


“그런데 쟤 서울에 친구 없지?”

“에⋯ 예?”


갑자기 그런 걸 물으시면⋯.

나는 침을 꼴딱 삼켰다.

여기서 대답 잘못하면 나중에 어떤 보복을 당할지 두려웠다.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되네.”

“아⋯ 그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별로 없나, 아예 없나?”

“어⋯ 그⋯ 예, 뭐⋯. 크흠!”

“아예 없구만⋯.”


내 반응에 할아버지는 곧장 뜻을 알아차렸다.


“그,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그냥 잘 좀 부탁한다는 하고 싶어서 말일세⋯.”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푹 쉬며 속사정을 말씀하셨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아린이가 부모님 없이 자랐다네. 애가 7살 때 둘이 외출했다가 괴물한테 목숨을 잃었어.”


괴물이라면 몬스터를 말씀하시는 건가.

현재에 와선 헌터관리국과 길드의 감시망과 대응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헌터들의 수준도 높아져 던전 브레이크 발생률은 1%가 채 되지 않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던전 브레이크는 이따금 발생하는 일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과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을 들으며 덜덜 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다 8살 땐 대기업에서 아린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가 쭉 컸지,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긴 하지만 어린 애한테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과 관심 아니겠나, 걔는 그런 걸 잘 못 받고 컸어.”

“⋯⋯⋯⋯.”

“⋯까불까불거리고 왈가닥하긴 해도 착한 아이일세. 잘 표현하진 못하지만 외로움도 많이 타고 감정도 풍부하고 여린 면이 있어, 그러니 자네가 저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게나.”


할아버지는 쌓인 하소연은 많지만 듣는 사람 귀 아플까, 말을 많이 중략해 간략히 하셨다.

그에 나는 근심으로 가득 찬 아린이의 할아버지께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린이는 이미 제게 좋은 친구고 그렇다면 저도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아린이의 할아버지는 그거면 됐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저⋯ 그런데 아린이 친구 없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친구 이야기를 한 번을 하지 않더군.”

“아⋯.”

“그래서 이번이 처음이네, 아린이가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 걸 본 건.”

“예?”

“내내 자네 이야기만 하더군, 자네랑 어딜 갔고, 뭘 했고, 뭘 먹었고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아이가 그런 이야기 하는 건 처음이야. 자네와 함께한 일들이 보통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게 아닌 모양일세.”


내가 없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을 줄이야⋯.

그래도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할아버지~ 빵 사 왔어~ 아, 준호도 왔구나? 같이 먹자!”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아린이가 들어왔다.

손에는 카스텔라와 우유가 들려있었다.

나한테 몰래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일부러 심부름을 보내셨던 모양이다.

아린은 내 옆에 앉아 주섬주섬 카스텔라의 포장지를 뜯고 플라스틱 빵칼로 큼직한 카스텔라를 잘라⋯.


- 퍽!


아린이 카스텔라에 빵칼을 대는 순간 카스텔라가 터졌다.

아니, 설마 빵칼도 칼이라고 이러는 거야?


“⋯너 혹시 마력 실었니?”

“아, 안 실었는데⋯ 분명 뺐는데⋯.”

“그럼 카스텔라가 먹히기 싫어서 자폭한 거야?”

“괘, 괜찮아! 이럴 줄 알고 두 개 샀거든!”


이럴 줄 알고?


“⋯⋯⋯⋯⋯.”


아린은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두 번째 카스텔라에 빵칼을 가져다 댔다.

과연 터질까 안 터질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주, 준호야⋯ 이것 좀 잘라줘⋯.”


하지만 빵칼이 카스텔라에 닿기 직전, 아린은 도저히 안 터트릴 자신이 없는지 울상을 지으며 부탁했다.

그래, 빵은 내가 썰 테니 넌 몬스터를 썰 거라.

나는 대신 카스텔라를 잘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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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2 23.12.14 5,992 81 13쪽
23 22화 23.12.13 6,037 8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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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23.12.12 6,417 8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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