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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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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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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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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
13쪽

31화

DUMMY

“할아버지, 나 갈 테니까 식사 거르지 말고 약 잘 챙겨 먹어야 해?”

“알았어, 알았어, 늦겠다. 얼른 가봐.”


다음 날 아침, 아린의 레이드 일정이 있는 관계로 우린 서울로 돌아갔다.

물론 아린이는 일정을 취소하고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려 했지만 할아버지께서 제발 좀 데리고 가라고 나를 볶는 바람에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히이이익!”


그렇게 서울로 돌아가는 길, 옆에 타 있던 아린이 갑자기 그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왜, 왜⋯! 핸드폰 놓고 왔어?”

“벼, 병원비 안 내고 왔다⋯!”

“휴, 놀래라⋯ 난 또 뭐라고⋯ 걱정 마, 내가 냈으니까.”

“어?! 언제?!”

“어제.”

“하아⋯ 다행이다⋯ 진짜 고마워, 얼마 나왔어? 다음 달에 생활비 들어오면 꼭 갚을게!”

“안 알려줘, 갚지 마.”

“에엥⋯? 왜?”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야. 조건이 있어.”

“조건?”

“지금까지 길드에 맡긴 금액이 얼만지 정확하게 알아 와. 명세서 같은 거 있으면 그것도 받아오고. 그리고 돈 돌려받고 싶으면 언제 얼마나 어떻게 받을 수 있는 지도.”

“너, 너⋯ 무섭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러운 구체적인 요구를 들이밀자 아린은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까분다 싶은 짓이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동안 헌터로 활동하며 벌어들인 모든 수익을 길드에 맡겼다면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런데 돈의 주인이 자기 돈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조금 오버하는 감이 있더라도 내가 대신해서 돈의 안위를 한 번쯤 점검해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이라기보단 부탁이야. 귀찮겠지만 한 번만 해줘.”

“그렇다면야⋯ 어디 보자, 뭐였지? 내가 맡긴 금액이랑⋯ 명세서⋯ 언제까지 얼마나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부탁이라는 말에 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꼼지락꼼지락 내가 말한 것들을 메모했다.


“어차피 오늘 레이드 끝나고 길드에 들러야 하니까 그때 물어볼게. 그럼 됐지?”

“응, 부탁 좀 할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뭘.”


아린은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시키는 거겠거니 하는 건지 딱히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사람을 잘 믿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얘 주변 나쁜 마음 먹고 이용하려 드는 사람 있으면 진짜 큰일 나겠네⋯.




***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요!”


서울의 교통체증엔 이유가 없었다.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그냥 길이 꽉 막혀 차가 움직이지를 않아 레이드 일정보다 1시간 반이나 늦어버렸다.


“헌터님 오셨습니까!”


오늘 레이드는 어차피 혼자 참가하는 레이드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수거팀을 비롯한 여러 명의 직원이 던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린이 한 명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다 기다리게 된 셈이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깍듯이 90도 폴더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A급이었지.’


딱히 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평소에 너무 편하게 지내 까먹고 있었다.

나도 헌터고 아린이도 헌터고 다 ‘헌터’라는 말로 뭉뚱그리니까 체감을 못 했는데 따지고 보면 아린은 여명길드 서열의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다.

직급으로 따지면 임원급일 테니 직원들이 쩔쩔매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


“저⋯ 그런데 헌터님, 저희가 전달받은 바로는 장비수송신청을 안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인지⋯?”

“아!!!”

“죄, 죄송합니다!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 바로 온 탓에 무기고 뭐고 아무것도 챙겨오지를 않았다.

아린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 어떡하지⋯?”


그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아.


“그럼 내 메이스라도 쓸래? 근데 이거 하나로 괜찮겠어?”

“정말?! 고마워! 충분해!”


- 드드드드! 드득! 콰지직!


아린이에게 메이스를 넘겨주자 저번과 같이 외형이 격변했다.

내가 쓸 때도 모습만이라도 유지해주면 안 되나.


“그럼 금방 다녀올게! 조금만 기다려!”

“응, 조심히 다녀와~.”


아린은 그대로 쏙 던전으로 들어갔고 어제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해 피곤했던 나는 차 안에서 잠시 숙면을⋯.


- 똑똑똑.


얕은 잠에 들락 말락 하던 때 참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뭔가하고 눈을 떠보니 창밖엔 아린이가 서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몇 시간 기절한 건가 했는데 시계를 보니 시간은 15분밖에 지나있지 않았고 아린이의 뒤를 보니 수거팀은 이미 바쁘게 마석과 부산물을 옮기고 있었다.


“버, 벌써 끝났어?”

“응! C급 던전이라! 이제 길드만 들렸다가 점심 먹으러 가자!”

“으응⋯.”


내가 편안히 자는 동안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몬스터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




“그럼 다음 주 일정은 이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레이드 지원 2부 소속의 직원과 헌터가 모두 모여 일정 조율을 마쳤다.

어떤 던전에 어느 헌터가 참가할지 정하는 중요한 회의 자리였다.

회의를 마친 직원과 헌터들은 각자 다음 업무를 위해 움직였다.


“저, 부장님!”

“아, 네. 아린 헌터님.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부탁이요?”


아린이 뭘 부탁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김지호 부장은 무슨 일일까 궁금해했다.


“네, 제가 지금까지 길드에 맡긴 돈이 얼만지 알고 싶어서요, 명세서 같은 것도 있으면 받고 싶고 또 맡긴 돈을 찾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요.”

“⋯⋯⋯⋯.”


그 말을 들은 김지호 부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부장님?”

“⋯예? 아, 예예예!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그, 그렇군요⋯ 그런데 어쩌죠? 지금은 제가 좀 바빠서⋯ 다음 회의 때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죄송하지만 지금 부탁드릴게요. 지금 힘드시면 오늘 저녁에라도 좋습니다.”


아린은 보통 부탁하면 부탁하는 대로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수긍해준다.

그런데 어째선지 지금만큼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그녀의 태도에 김지호 부장은 곤란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아⋯ 그게⋯ 어⋯.”


적당한 말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챈 김지호 부장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상상도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맞닥트리니 아무리 머리가 좋은 엘리트인 그라도 좋은 꾀가 나지 않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 뚜벅, 뚜벅, 뚜벅


김지호 부장은 회의 내용이 적힌 서류를 자신의 책상 위에 두고 사무실을 나섰다.


- 뚜벅, 뚜벅, 뚜벅⋯ 우다다다다다!


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미친 듯이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그는 비상계단을 통해 일단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대한 멀고 조용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 뚜르르르. 뚜르르르.


“빨리⋯ 빨리⋯!”

“음⋯ 크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가 전화를 건 사람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승호 전무이사였다.

이승호 전무이사는 유럽 각국의 국가와 계약 체결을 위해 출장을 나가 있었고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받은 탓에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아니⋯! 저⋯! 그⋯!”

“말 절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실은⋯! 윤아린 헌터가 뭔가 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뭐? 뭘 눈치채, 똑바로 말하라고!”


침착하던 이승호 전무이사도 윤아린 이라는 이름 석 자에 바로 흥분해 고함쳤다.


“그, 그게 갑자기 자기가 길드에 맡긴 돈이 얼만지 명세서를 달라고⋯ 또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저한테 물어봐서⋯!”

“⋯⋯⋯⋯⋯.”


김지호의 말을 들은 이승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영상통화가 아니었기에 김지호가 그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이승호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자기 왜, 왜 갑자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물어봤지만 그냥 궁금하다고만⋯.”

“일단, 일단은 시간을 끌어. 아니, 그보다 걔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누가 옆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것부터 알아내!”

“그, 그건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뭐? 누구?!”

“그⋯ 예전에 마포구 A급 던전 때⋯ 박준호라는 사람 기억나십니까?”

“기억나지, 어떻게 잊겠어.”

“실은⋯ 그 자식이 요즘 윤아린 헌터와 같이 다닙니다⋯. 최근에 윤아린 헌터가 만나는 사람은 그 자식 밖에 없습니다.”

“⋯⋯⋯⋯⋯.”


김지호의 대답을 들은 이승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내 숨을 들이쉬더니.


“야 이 병신새끼야!!!!!!!!!!!!”


사자후를 질렀다.


“히익!”


스피커를 통해서도 생생히 전해지는 극대노한 그의 목소리에 겁에 질린 김지호는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내가 아린이 근처에 아무도 접근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했잖아! 대체 뭐 했어!!!”

“그, 그게! 저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둘이 친해 보여서⋯ 어떻게 할 수가⋯!”

“어떻게 못하긴 뭘 어떻게 못해! 내가 죽여서라도 누구도 접근 못하게 하라고 했어, 안 했어!”

“하, 하루 종일 윤아린 헌터와 붙어 다니는데 어떻게 죽입니까⋯!”

“오, 오늘⋯ 오늘 바로 귀국할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일단 최대한 시간 끌고, 적당히 잘 변명해, 알았어?!”

“예?! 오신다구요? 유럽 계약 건은⋯!”

“씨발, 이까짓 거 좆 되든가 말든가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 걸고 시간 끌어! 알았어?!”

“예, 예!”


- 뚝.


오늘 당장 귀국하겠다니.

김지호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통화를 마친 김지호는 일단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린 헌터님⋯!”

“아, 오셨어요?”

“아~ 미안해서 어쩌죠? 방금 알아보고 왔는데 담당자님이 해외출장 중이라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은데.”

“네? 해외출장이요?”

“네, 이게 재무부에서 관리하는 업무다 보니 저는 권한이 없거든요. 재무부장님께도 부탁드려봤는데 재무부가 아무래도 돈이랑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서다 보니 담당자가 아니면 건드리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럼 그 담당자님은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그, 그게⋯ 단순 출장이 아니라 해외 각국의 길드에 연수를 받으러⋯ 출장이라기보단 파견을 나가신 거라⋯ 확실하게는 잘⋯ 하지만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거라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바로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야 하는 직원의 업무를 아무도 인수인계 받지 않았다고?

같은 의문.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아린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 뿐이었다.


“그,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돈이 필요한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그런 거라면 맡기신 돈을 찾지 않으셔도 제가 어느 정도는 도와드릴 수⋯.”

“아니요! 돈이 필요하진 않아요! 그냥 궁금해서요!”

“아하하⋯ 그, 그렇군요. 그럴 수 있죠⋯ 어쨌든 담당자가 돌아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바쁘신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닙니다⋯ 그럼 전 이만⋯.”


윤아린 헌터와 이승호 전무이사 사이에 껴 너덜너덜하게 털린 김지호는 당분간 어디 절에라도 숨어지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




“쓰읍⋯.”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아린이 차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인상을 쓰며 숨을 들이켰다.


“나왔어! 많이 기다렸지?”

“아니야, 한숨 자서 괜찮아.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응?”

“돈 말이야.”


뭐, 맡겨 놓은 것도 아니면서 계속 돈돈거리면 짜증 날 것 같아 물어보기 조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 그게 말이지~.”


빈손인 걸 보는 순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아린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내가 듣기에도 어이가 없는 소리였다.

이런 대기업이 담당자 한 명 없다고 마비되는 업무가 있다고?

더군다나 장기 해외출장을 떠나는 직원을 인수인계도 없이 그냥 보냈다고?

나는 내 나쁜 감이 틀렸기를, 아무 일도 없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아무래도 나쁜 감을 틀리지 않는다는 명언은 연전연승을 거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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