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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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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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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86,548

작성
23.12.0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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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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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5화

DUMMY

이곳이 A급 던전이든 말든 레이드는 아주 편안했다.

나는 여명길드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나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그만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누나가 미친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


- 파바바박!


누나는 바닥과 벽, 천장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3차원 공간을 완벽히 장악하고 싸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내 눈에는 누나의 잔상만 겨우 보였고 그녀가 쓸고 지나간 자리엔 베이고 찢어진 몬스터 시체만 남았다.

뭘 어떻게 하는 건지는 도저히 눈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응?”


주변의 몬스터가 모조리 도륙 난 덕에 걸으며 대화를 나눌 정신이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나는 어두침침한 던전 안에서 누나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눈이 푸른 안광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눈 반짝이는 건 뭐야?”


무슨 스킬 같은 건가?


“아, 이거? 마력과다증이라고 체내의 마력이 몸 밖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래. 딱히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고!”


남들은 마력이 부족해 난리인데 반대로 마력이 넘쳐흘러 생기는 증상이라니 역시 규격 외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거 색깔도 바꿀 수 있다?”


누나는 자랑하듯 안광을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반짝이며 바꾸었다.

이야, 역시 망겜컨텐츠 다 즐긴 고인물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으로 넘어가는구나.


“그럼 머리 색은? 염색한 거야?”


나는 다음으로 머리카락에 대해 물어봤다.

누나의 머리 색은 반짝반짝 윤기가 도는 백금색을 띠고 있었다.

뭐, 혼혈 그런 건가?


“그냥 각성한 뒤부터 머리카락이 이런 색으로 자라던데?”

“그럼 원래는 검은색이었어?”

“당연하지, 나중에 어릴 때 사진 보여줄게!”


누나는 나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는 것 같으면서도 눈은 빠르게 이곳저곳을 훑으며 주변을 파악하고 있었다.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모습이 숙련된 전문가라는 느낌이라 멋있었다.


- 바스락, 오도독.


“⋯?”


이게 무슨 소리지.


- 바스락, 바스락, 오도독, 오독.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던전을 걷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나의 입이 오물거리고 있었다.


“뭐 먹어?”

“응? 이거.”


땅콩 같은 거라도 챙겨 온 건가?

나는 누나가 주머니에서 꺼낸 음식을 봤고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지만 도저히 지금 상황에서 나올 것은 아니었기에 순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게 뭐야?”


진심으로 특이하게 생긴 초콜렛이나 사탕 같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누나는 그것이 내가 아는 그게 맞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마늘.”


누나는 주머니에서 통마늘을 꺼내 까먹고 있었다.


“이걸 지금 왜 먹어?”

“머, 먹으면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걸어 다니며 통마늘을 까먹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 보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뭐 보행 중 통마늘 섭취 금지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안 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무슨 루틴 같은 거야?”


유명한 기업인이나 운동선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그런 루틴 같은 게 있다니까 혹시 그런 건가 싶어서 물었다.


“루틴?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건데?”

“아, 그⋯ 그렇구나.”

“먹을래?”


하지만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거란다.

나는 준다는 데 거절하기도 뭐해 마늘 한 톨을 받아먹었다.

매콤한 마늘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코를 뻥 뚫어주었다.

뭔가 집중력이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 드드득⋯.


같이 마늘을 먹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방금 지나친 뒤편의 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몸을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창을 겨누었고.


- 캬아아악!


벽과 비슷한 보호색으로 은신하고 있던 커다란 가고일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미리 창날을 세워둔 덕에 가고일은 창날에 찔리며 기습에 실패했다.


“흐억!”


하지만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곳은 A급 던전.

이 던전에선 날파리 정도의 위치인 가고일이더라도 나한텐 만나본 몬스터 중 제일 센 몬스터다.

가고일은 창날을 무시한 채 무식한 힘으로 돌진했고 나는 끝도 없이 뒤로 밀려 창대를 벽에 짚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이 창이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이쑤시개처럼 툭 부러졌겠지만 다행히 창은 튼튼히 나와 가고일 사이에 거리를 벌린 채 지탱해주었고 가고일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도 가고일을 밀어내지 못했고 그렇게 서로 오도가도 못하는 대치 상황.


“⋯⋯⋯!”


나는 누나를 향해 다급히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누나는 마늘을 오독오독 씹으며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애초에 가고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어떻게 대응하나 한 번 확인할 작정이었나보다.

마냥 친절한 것 같으면서도 꼭 중요한 순간에 한 번씩 엄하다니까.


“큭!”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일단 창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야겠다.

나는 창대를 꽉 쥐고 있는 힘껏 가고일을 밀어냈다.

하지만 가고일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뾰족한 창날도 가고일의 가슴에 몇 mm 정도나 살짝 박혀 흠집을 냈을 뿐 데미지를 입히지는 못했다.


무겁고 단단하다.

같은 크기의 돌덩이와 싸워도 이런 느낌은 아닐 것 같았다.

힘겨운 훈련을 견뎠지만 그래봤자 일주일도 안 되는 훈련 가지고 갑자기 A급 던전에서 뭘 해낼 만큼 드라마틱한 성장을 했을 리는 없다.

나는 아직 영락없는 F급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 카가가가각⋯.


하지만 의외로 상태창으론 알 수 없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꽤 성장이 있었나 보다.

평소 같으면 이걸 어떻게 이기냐며 징징거렸겠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딱히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 카가가각!


다시 한번 있는 힘껏 창을 밀어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창을 고쳐 쥐고 밀었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뭐 어떡해, 다시 해봐야지.


- 찌지지직!


그러자 이번엔 창이 아주 조금 밀렸다.

창날이 가고일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 끼익?!


창날이 살갗을 파고들자 고통을 느낀 가고일은 한발 물러서는 듯 했지만 가슴에 박힌 창날이 빠지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다시 돌진했다.

아주 잠깐의 기회.

나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고일이 물러선 만큼 한 발짝 따라붙었다.


- 캬아아악!


그리고 가고일이 돌진하는 타이밍에 맞춰 다시 가고일의 가슴에 창을 찔러넣었다.


- 푸욱!


거의 비슷한 위치에 창을 다시 쑤셔 박자 이번엔 확실하게 돌덩이가 아니라 고기를 찌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물론 단단하게 얼어붙은 냉동고기를 찌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냉동고기는 많이 썰어봤다.


- 키이익⋯!


같은 곳을 또 찔린 게 아팠는지 가고일은 크게 후퇴했다.

만만해 보여서 그냥 대충 들이박으면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버티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촤아악!


무식한 돌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가고일은 이제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해 창을 쳐내려 했다.


- 깡!


“흡?!”


위험했다.

가고일의 무지막지한 힘에 하마터면 창이 날아갈 뻔했다.


- 우웅! 후웅!


가고일은 손톱을 휘둘러 나를 위협하며 점점 구석으로 몰아갔다.

저 날카롭고 묵직한 손톱에 베였다간 단번에 몸이 몇 토막 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분명 재생할 틈도 없이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훈련 내내 누나가 나에게 지적했던 사항을 의식적으로 되새겼다.

그 중 첫 번째는 기세에서 밀린다고 수비적으로 굴면 절대 안 된다는 것.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되려 공격을 감했다.


- 콰악!


그리고 두 번째는 무기가 아니라 상대를 노려야 한다는 것.

나는 지금 노려야 할 것은 가고일의 손이 아니라 가고일이라고 되새기며 붕붕 휘두르는 날카로운 손톱을 무시한 채 가고일의 가슴팍을 향해 냅다 창을 찔러넣었다.


- 콰악!


공격은 적중했고 가고일의 손은 내게 닿지 않았다.

창의 최대 이점인 사거리.

창이 가고일의 팔보다 더 긴 덕에 그저 창날을 겨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누나는 이런 상황과 대치 구도를 다 상정한 건가?

역시 약은 약사에게 무기는 웨펀 마스터에게였다.


- 콰악! 콰아악! 콱!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가고일과 사투를 벌였다.

방어는 잘 하지만 공격력이 너무 약해 영 결판이 나지는 않았지만 F급 각성자가 A급 던전의 몬스터와 이 정도까지 교전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 캬아아악!


그렇게 싸움이 길어지며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자 가고일은 짜증 났는지 날개를 확 펼치며 날아올랐다.

유X브를 보면 각종 몬스터를 소개해주는 헌터가 운영하는 채널 같은 게 있는데 헌터에는 관심 없어도 온갖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워 자주 시청한 덕에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본 영상에서 말하기로 가고일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는 것은 공습 공격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독수리처럼 빠른 속으로 하강해 덮치는 공격으로 매우 위협적이지만 가고일의 신체 구조상 어쩌다 한 번 정도만 사용이 가능한 일종의 필살기 같은 것이라고 했다.

비록 가고일이지만 필살기까지 쓰게 했다니, 뿌듯하긴 하지만 이제 어떡하지?

지상에 서 있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만 상정했지 공중에서 덮치는 적에 대응할 방법은 전혀 모르는데?


- 쐐애애액!


가고일의 공습은 가히 필살기라 부를만했다.

가고일은 운석이 떨어지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를 덮쳤고 나는 놈이 뭘 하는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동체시력, 순발력 그런 것들이 부족해 물리적으로 놈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뭐지? 벌써 맞은 건가?

아프진 않은데?

이미 통증을 느낄 사지가 다 찢긴 건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삭 스쳐 갔다.

우와, 주마등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거구나?

뭔가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는 편안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지?”


목소리에 주마등이 툭 끊겨 눈을 번쩍 떴다.

내 사지는 멀쩡했고 눈앞엔 한 손으로 나를 끌어안고 있는 아린 누나가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를 낚아채 가고일의 공격 범위 밖으로 피신시킨 것이었다.

워낙 고속으로 낚아채인 탓에 허리와 목이 꺾여 뻐근했다.


“누, 누나⋯.”

“응?”

“마늘 냄새나.”

“앗⋯.”


얼굴이 너무 가까워 숨결이 느껴졌는데 진~한 마늘 냄새가 풍겼다.

내 말에 누나는 급히 입을 가리며 떨어졌다.


- 키이익?


한편 이 상황이 어리둥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있던 자리에 정확히 낙하한 가고일도 분명 발톱에 찢겼어야 할 내 시체가 보이지 않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를 찾았고 그렇게 이미 멀리 떨어진 우리 둘은 눈이 마주쳤다.


- 키, 키익⋯?


가고일은 ‘네가 왜 거기 있어?’ 라는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고 나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해주었다.


“보스전에서도 이런 느낌으로 합을 맞추면 괜찮을 거야.”

“아, 응.”

“공격이랑 방어도 알려준 대로 잘했어, 감 좀 잡았지?”


실전에 들어가기 전 실전으로 연습이라.

스파르타식이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게 가능한가?’ 라는 불신이 ‘이게 되는구나.’ 라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그럼 가자. 그 불씨가 폭주하기 전에 끝내야 하니까.”

“응.”


나는 누나의 뒤를 따라나섰고 우리는 던전 탐험을 계속⋯.


“아, 맞다.”


앞서가던 누나가 휙 뒤돌며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은 가고일이 있는 방향을 향했고.


- 끼익⋯?


저 멀리서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던 가고일의 머리가 픽하고 날아갔다.

그렇게 가고일은 비명은커녕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

“가만히 서서 뭐 해?”

“응? 어어⋯아니야. 지금 가.”


미운 정이라는 게 이런 건가.

분명 몬스터일 뿐인데 서로 최선을 다해 싸우던 상대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니 뭔가 섭섭했다.


‘⋯잘 가라.’


나는 웃기게도 몬스터의 명복을 빌어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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