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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7:20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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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0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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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8화

DUMMY

좆됐다.

그거 말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던전 공략에 성공했고 헌터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나는 혼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벼락.

날벼락에 맞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시스템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내가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기를 바라며 몇 번이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다시 읽었다.


『 [테르고스의 불씨]를 흡수하였습니다. 』


『 경고! [테르고스의 불씨] 흡수 실패! 』

- 테르고스의 불씨 폭주까지 6일 23:54:43


『 경고! [그라고스]가 [테르고스의 불씨]를 가진 당신을 추격합니다! 』

- 그라고스의 던전 생성까지 5일 23:54:43

- 그라고스의 던전은 비밀던전입니다, 최대 2인까지 출입 가능합니다.


『 히든 퀘스트 [화로 얻기] 』

내용 : [그라고스의 화로]는 [테르고스의 불씨]를 안정시킵니다. [그라고스의 화로]를 얻어 불씨는 안정시키십시오!

조건 : 당신이 화로를 얻을 자격이 있는지 증명하세요!

데미지 점유율 20% 이상으로 그라고스 처치 (0%/ 20%).

보상 : [그라고스의 화로]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좆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아직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닥쳤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정신을 꽉 붙잡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메시지를 하나하나 분석해봤다.


일단 저 테르고스의 불씨가 폭주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또 내 몸을 불태우던 화염 토네이도를 일으키던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라고스는 또 뭐 하는 새낀데 나를 추격한다는 거야?

메시지로 봐서는 내가 흡수한 테르고스의 불씨를 노리는 것 같은데 불씨를 안정시킬 수 있는 화로까지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선 불씨를 얻고 사용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공과 시간을 들였다는 이야기겠지.


마지막으로 화로를 얻기 위해 그라고스를 해치우라는 퀘스트.

그런데 그 조건이 그냥 해치우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데미지 점유율 20% 이상을 채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아마 엄청난 강자를 데려가 화로를 날로 먹지 못하게 한 것 같은데⋯ 의도는 알겠지만 뭐 이딴 조건이 다 붙는 거야?


‘그라고스라는 놈도 A급 던전 보스일 거 아냐⋯.’


테르고스 그라고스.

방금 윤아린 헌터에게 죽은 놈이 테르고스라는 놈일 테고 이름이 깔맞춤인 걸 보면 그라고스라는 놈도 A급 보스일 확률이 99%인데⋯.


“하아⋯.”


현기증과 멀미가 일었다.

이거 뭐 어떻게 하지?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답이 없었다.

그저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졸리듯 갑갑할 뿐이었다.




***




“⋯김지호.”

“예, 전무님.”


여명길드 본사 고층에 위치한 이승호 전무이사의 개인사무실 안.

김지호 부장은 열중쉬어 자세로 바짝 긴장해 서 있었다.


“엎드려.”

“옙!”


그의 말에 김지호는 퍼뜩 엎드렸고 이승호는 손목시계를 풀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더니 골프채를 가져와 김지호의 볼기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 쐐애액! 퍽! 쐐애액! 퍽!


“흐이익!”


김지호는 이를 악물고 잘 참는 듯 했지만 두 대를 버티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자, 장인어른! 제가 잘못했습니다!”

“누가 네 장인어른이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후우⋯.”


이승호는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골프채를 휘두르며 사무실 여기저기를 기어 도망치는 김지호를 쫓아다녔지만 회사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자괴감이 든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왜 그랬어?”

“⋯죄송합니다.”

“내가 언제 사과하랬어? 왜 그랬는지 물었잖아.”

“그게⋯ 저번에는 잘 통해서⋯.”

“하!”


김지호의 대답은 들은 이승호는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땐 우리가 그 녀석을 꽉 쥐고 있었고 주도권도 우리에게 있었으니 그랬던 거지 이번이 그때랑 같아? 그리고 상황도 상황이지만 사람 봐가면서 방법을 선택했어야 할 거 아니야! 인터넷 방송 켜놓고 온 거 몰랐어?!”

“죄송합니다, 협상하러 왔다고 생각했지 설마 그렇게 생방송을 켜고 쳐들어온 또라이였을 줄은⋯.”

“그놈의 죄송합니다 좀 그만해! 지겨워서 못 듣겠으니까! 애초에 죄송할 일을 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냥 일 저지르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된다고 작정하고 사는 거야?”

“아, 아닙니다!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이승호는 버럭버럭 화를 내다가도 혹여 밖에서 누가 들을까 의식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의도는? 그냥 그게 다야?”

“⋯예.”

“하아⋯ 내가 생각지 못한 게 있기를 바랐는데.”


이승호는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입에 담배를 물었지만 담배 필 맛도 안 나는지 그대로 구겨 재떨이에 버렸다.


“기자랑 시민단체랑 깡패한테 뿌린 거 합치면 얼마야.”

“이천 정도⋯.”

“이런 병⋯!”


순간 이승호의 목에 핏대가 확 섰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자중했다.


“후⋯ 이득을 취하려는 자세는 좋지만 이득을 취할 곳과 아닌 곳은 구분해야 할 거 아니야.”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애당초 5억을 지급하기로 한 일 아니었나. 그냥 그렇게 끝냈으면 깔끔했을 텐데 돈을 더 쓰고도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다니, 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이야⋯!”


마포구에 나타난 괴상한 기믹의 던전으로 여명길드는 큰 손실을 입었다.

그중 가장 뼈아픈 손실은 B급 박진홍 헌터의 사망.

하지만 최악의 상황인 던전 브레이크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기믹을 파훼할 방법을 모색한 결과 헌터관리국으로부터 박준호라는 인물의 정보를 받았고 여명길드는 당초 그에게 5억 상당의 금액을 보수로 지급해 던전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무자인 김지호가 중간에서 횡령을 시도했고 거기서부터 모든 게 틀어져 주가가 폭락하고 여명길드의 이미지가 똥통에 박히는 사단이 났다.

이승호는 한심하지만 그래도 예비 사위이자 강력한 자신의 라인인 김지호를 두둔하기 위해 진을 뺐다.

그는 김지호가 순수하게 회사의 자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함이었다는 식으로 둘러대 인사고과에 영향을 끼치는 징계를 받는 건 겨우 막았지만 다른 임직원이 바보도 아니고 그딴 변명이 통할 리 없다.

그저 자신의 인맥과 권한으로 일단 찍어눌렀을 뿐 언제 공격당해도 치명적인 약점이 생긴 건 변함 없었고 이승호는 겨우 이딴 일에 약점이 생긴 게 너무 불만스러웠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나가봐, 마무리 똑바로 짓고, 똥을 쌌으면 닦고 치우는 것 정도는 혼자 똑바로 하라는 말이야.”

“옙!”


김지호는 꾸벅 인사한 뒤 엉덩이를 붙잡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사무실을 나섰다.


“후⋯ 저딴 게 대체 어디가 좋다고⋯.”


이승호는 그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나뿐인 외동딸이 좋다는 데 뭐 어쩌겠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




던전에서 나와 여명길드로 돌아가 김지호 부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솔직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여명길드는 사람으로 우글거렸다.

개중에는 강력한 힘을 지닌 헌터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중에 내 문제를 의논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은 하나 없다니,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명길드 1층 테라스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니, 근데 이거 여명길드가 의뢰한 던전에서 당한 일이니 여명길드한테 책임을 물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이라도 다시 올라가 도와달라고 이야기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간 작정하고 척진 김지호 부장과 여명길드는 괘씸해서라도 나를 탈탈 털어먹을 것이다.

이래서 원수는 만드는 게 아닌데.


그리고 목숨이 달린 일 같으니 일단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여명길드가 내 사정을 헤아려 ‘앗, 그렇군요! 그렇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적극적으로 돕는 기적까지 일어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내가 그라고스라는 몬스터에게 데미지의 20%를 넣어야 하는데 이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왜 하필 나한테⋯.”


역시 수상한 의뢰 따위 수락하는 게 아닌데⋯.

그냥 가만히나 있었으면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 텐데 괜히 깝쳐서 인생을 구렁텅이에 처박았다.

잠깐만⋯ 이 새끼들⋯? 어쩌면 이렇게 되는 것까지 다 알고 나를 희생양 삼은 거 아냐?!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겠지⋯ 설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문제에 목숨이 걸렸는데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니.

삶과 세상이라는 게 이렇게 각박한 것이었나.

내 눈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게 보였다.

세상에 고민 걱정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 만은 나처럼 목숨에 타이머가 걸린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 사라라락.


“⋯⋯⋯⋯!”


그때 내 눈에 한 줄기의 빛이 흘러들어왔다.

저 멀리 퇴근하는 건지 가벼운 체육복 차림으로 길드를 나서는 윤아린 헌터가 보였다.

온통 흑발뿐인 인파 가운데 반짝이는 기다란 은발이 살랑거리니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홀린 듯 그녀를 뒤쫓았다.


그녀라면 뭐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 같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사실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이 그런 착각을 일으키는 거겠지만 이대로 여기 앉아 훌쩍거리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왜요?”


아린님? 아니면 헌터님?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리고 대화의 운은 또 어떻게 띄워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며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하던 중 갑자기 윤아린 헌터가 먼저 뒤를 휙 돌아보더니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뒤를 따라가고 있다곤 해도 인파에 섞여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가고 있었는데 이게 A급 헌터의 감인가.


“아⋯ 그, 그게! 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일단 사정을 설명해야 하나? 그런데 이 길바닥에서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일단 어디 카페라도 가실래요⋯?”

“아니요.”


윤아린 헌터는 살짝 미간을 구기며 고민도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말하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병신같은 소리였다.

이거 그냥 작업 멘트잖아.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아, 그게 저⋯ 도, 도움이 필요해요!”


귀한 사람 붙잡아 놓고 계속 어버버 거릴 수도 없고 일단 질렀다.


“⋯⋯지금 당장 도와드려야 하는 일인가요?”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내일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응?

또 까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긍정적인 뉘앙스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 뭐야? 이게 진짜 된다고?


“그럼 내일 오후 4시⋯ 아니, 6시에 뵙죠.”

“네! 알겠습니다!”

“아니, 8시에 뵙죠.”

“네! 알겠습니다!”

“⋯아니, 9시. 9시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뭐, A급 헌터 쯤 되면 일정도 많고 바쁜 건 당연하겠지.

저렇게 하루 종일 일정이 가득한 와중에 나를 위해 쉬어야 할 저녁 시간을 내준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감사를 보낼 일이었다.


“그, 그럼 내일 오후 9시에 어디로 찾아뵈면 될까요?”


독도로 오라고 해도 찾아갈 생각이었다.


“집으로 와주시겠어요?”

“에⋯?”


그런데 그녀의 입에선 독도보다 더 가기 힘든 장소가 나왔다.


“어⋯ 알겠습니다! 호, 혹시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내가 후딱 전화번호를 보고하자 그녀는 내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그 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문자를 남긴 그녀는 그대로 쿨하게 뒤돌아 사라졌고 조금이라도 믿을 구석이 생긴 나는 그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낮이지만 피곤했다.

엄청나게 피곤했다.

방으로 돌아와 커튼을 치고 침대에 몸을 던지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고 순식간에 잠들어 뇌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어? 나 오늘 윤아린 헌터 번호 딴 건가?

그리고 내일은 그 사람 집에 가는 거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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