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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草魂) 님의 서재입니다.

마무의리(魔武義理)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초혼(草魂)
작품등록일 :
2014.07.04 10:42
최근연재일 :
2014.07.21 19:3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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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867
추천수 :
8,875
글자수 :
133,127

작성
1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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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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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4장

DUMMY

4장



조금 전까지도 미안해 했던 이백의 얼굴이 이번엔 눈에 띄게 굳어졌다.

어쩌면 소녀는 자신이 무당의 속가제자란 사실을 밝히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다시 안으로 주워담을 수는 없는 법.

“유사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하잖아.”

“유사매. 어디 다치지 않았어?”

때마침 이백이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소녀의 뒤에서 두 명의 청년이 다가왔다.

붉은색 경장으로 한껏 멋을 낸 소녀와 달리, 전형적으로 무당파 제자들이 입는 잿빛 도복을 거칠 자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무당의 배상진이라 합니다. 제 사매가 아직 어려 말을 너무 심하게 했군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하늘이 무당을 버리진 않았음인가.

소녀를 향해 다가온 두 명의 청년 중 큰 키에 조금 마른 인상의 배상진이 다가와 이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런 배상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청년 육근우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형. 뭘 또 사과까지 하고 그러십니까?”

“맞아요. 분명 나는 제대로 가고 있었는데, 저놈이 제멋대로 와서 부딪쳤다고요.”

육근우의 말에 소녀가 맞장구를 쳤다.

이백은 소녀에게 뭔가 말하려 했던 생각을 접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진흙 안에 손을 넣고 휘저어봤자 손만 더러워질 뿐이니, 더는 상대하질 않고 지나칠 생각이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주루 앞에서 긴말이 오가 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어차피 좋지 않은 말이 나와 봤자 무당의 위신만 떨어질 테고, 그것은 이백에게 있어 마치 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와 같았으니까.

“야! 어딜 그냥 가려고? 내가 막말한 것은 우리 사형이 대신 사과했으니, 너는 나와 부딪친 걸 정식으로 사과해야지!”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고집불통이던 소녀가 끝까지 이백을 놓아주지 않았다.

일이 이쯤 되자 그냥 지나치려던 이백도 서서히 화가 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도대체 무당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아이를 제자로 두고 있는 위인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대들 사부가 누구시오?”

소녀와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는지, 이백이 처음 자신에게 사과했던 배상진이란 무당 제자를 향해 물었다.

“네?”

“그대들 사부가 누군지 물었소.”

“그, 그것은 왜…….”

어른이 잘못한 아이에게 ‘너희 부모가 누구냐?’고 묻는 듯한 분위기랄까.

확실한 것은 사부를 묻는 이백의 말이 예상외였던 듯, 두 명의 청년을 비롯해 안하무인으로 굴던 소녀까지 잠시 말을 잊고 얼굴 위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누구라고 하면! 누구라고 하면 알기나 해? 이게 어디서 보고 배운 건 있어서! 흥! 우리 사부님을 갖고 수작질을 부리려 하나 본데 사람 잘 못 봤어!”

누구에게든 사부란 무서운 법이었다.

특히 무당처럼 이름 높은 정파에서는 더더욱.

역린을 찔린 소녀가 더욱 세게 나가기로 작정했는지 이백을 몰아붙였다.

유야무야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을 크게 만든 것은 소녀였다. 그러나 이제와 이백에게 꼬리를 내리기엔 소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실제로도 이백의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제갈윤호나 연노라면 모를까, 무명옷만 달랑 걸친 이백은 와룡루와 같은 곳에서 보기에 매우 보잘것없이 보이긴 했다.

“누군지 말하기나 하시오.”

“…….”

그러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사부를 묻는 이백의 태도에 결국은 소녀도 찔끔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백이 표정 하나 변하질 않고 계속해서 사부를 물으니, 정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 우리 사부님께선 백운이란 도명을 사용하신다. 네까짓 놈이 들어본 적이나 있느냐?”

소녀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처음부터 소녀의 편을 들었던 육근우가 이백을 향해 나서며 말했다.

마치 네까짓 게 말하면 알긴 하느냐는 투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소녀에게 잘 보이려는 투가 역력했다.

“백자배라면 이제 겨우 일대제자의 항렬에 들어선 자가 아니요. 게다가 백운이라면 정윤진인의 막내제자이지 않소? 그렇다면 그대들은 아직 무당에 들어온 지 오 년도 되지 않은 삼대 제자들일 터인데, 어찌하여 사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것이오?”

그러나 이어진 이백의 말은 지금까지 이어지던 흐름을 송두리째 뒤바꿔놓기 충분했다.

물론 돌림자와 항렬간의 관계는 무당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알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의 제자라거나 그런 세부적인 사실까진 알기 힘들었다.

또한,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로서 이백이 정말 무당과 뭔가 인연이 있을 수도 있는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저희 사부님이나 사조님을 아십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당신들 사부나 사조되시는 분을 알고, 못 아는 게 중요한 것이오?”

“…….”

바짝 얼어버린 두 사제들을 보고 앞으로 나섰던 배상진이 이백의 대답에 민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당파 내에서도 사고뭉치로 통하는 사매가 결국 밖에서 제대로 일을 낸 것이다.

만약 이 일이 무당에 있는 백운이나, 정윤진인에게 알려진다면 필시 적지 않은 꾸중과 벌을 받을 것이 뻔했다.

“죄송합니다. 이 일에 대해선 제가 거듭해서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마음을 푸십시오.”

“그대는 잘못한 것이 없질 않소?”

이백은 배상진의 사과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 뒤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백의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모를 사람은 없었다.

“유사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배상진이 조용히 뒤에 있던 소녀를 불렀다. 소녀도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터라 얼굴에 당황하는 티가 역력했다.

그저 자신과 부딪친 이백에게 창피나 주려는 생각으로 장난을 친 것뿐인데, 도리어 소녀 자신이 창피를 당하게 생긴 것이다.

“시, 싫어요!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요? 못해요! 아니 안 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싫다고요!”

“유사매. 그러지 말고 얼른 사과를 드려. 어서.”

“저런 놈이 뭐라고 제가 사과까지 해요! 분명 먼저 와서 부딪친 건 저놈이었다고요!”

소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갈등이 극에 달했음을 말해주듯, 절대 사과하지 않겠다며 소리치는 소녀의 얼굴에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되었소이다. 먼저 잘못을 한 것은 나였소. 그러니 사과드리겠소. 소저. 죄송합니다.”

이백이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짧은 순간 소녀는 그리 깊지도 얕지도 않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이백의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하겠다 하던 것을 이백이 너무 쉽게 한 탓이다.

이백의 사과는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치는 소녀의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쉽게 볼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백의 행동 하나에 조금 전 그렇게도 숨 막히고 막막하던 상황이 거짓말처럼 해소되어버리자, 이런 상황도 소녀에겐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잘못했어요.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런 까닭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과를 하지 않겠다며 버텼던 소녀가 작은 목소리긴 하나 이백을 향해 사과했다.

비록 이백처럼 고개까지 숙이진 않았으나, 소녀에겐 이것만 해도 큰 양보였다.

동시에 사과를 하는 소녀의 시선이 이백을 밑에서부터 위로, 다시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었다.

이 순간 소녀에게 이백이란 존재가 보잘것없어 보이던 비렁뱅이에서 갑자기 뭔가 있어 보이는 신비스런 사내로 승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럼.”

그러나 소녀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백은 모든 갈등이 해소되자,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했다.

“자, 잠시만요!”

소녀가 다급히 이백을 불러 세운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이시오?”

이백이 뒤를 돌아보자, 소녀가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하! 천하의 유태희에게 사과를 받다니! 아마 우리 또래 중에서 유태희의 입을 통해 미안하단 말을 들어본 사람은 이공자가 유일할 것입니다.”

일행은 와룡루 안에서도 가장 명당자리라는 사 층 창가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처음엔 주루의 점소이가 자릴 안내하려 했었으나, 연노가 나서니 주루의 총관쯤으로 보이는 자가 와서 자리를 안내한 것이다.

“그 소저의 이름이 유태희였습니까?”

“네? 그럼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단 말씀입니까? 분명 유태희의 왼쪽 가슴에 태양상단을 상징하는 태양무늬도 있었는데.”

“태양상단이라면 굉장히 대단한 상단이 아닙니까?”

“허허. 이것 참. 태양상단을 아시는 분께서 유태희는 모르신다니. 이공자는 정말 보면 볼수록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제갈윤호가 유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잔뜩 무게를 잡고 있던 연노도 이번만큼은 못 참겠는지 ‘큭!’하고 웃음소리를 낼 정도였다.

“제가 뭘 잘못한 겁니까?”

그러자 이백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제갈윤호의 말을 들으니, 사 년 전 무당이 한차례 요란 법석 했던 일이 떠오르긴 했다.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대단한 상단의 금지옥엽이 제자로 들어오는데, 엄청난 재물과 물건을 기부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 공자님들.”

점소이가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행이 무슨 일이냐는 듯 점소이를 바라보자, 점소이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다 올려놓으며 말했다.

“유소저께서 이 물건을 여기 계신 이백공자님께 드리라 했습니다.”

“이, 이건 태양패!”

점소이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물품을 본 제갈윤호가 경악하는 표정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제갈윤호뿐만 아니라, 연노 또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이백은 이게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는 듯 제갈윤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제갈윤호가 오히려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이 태양패가 뭔지 모르십니까?”

“…….”

이백이 제갈윤호의 물음에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보다 침묵으로서 다음 말을 재촉한 것이다.

이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제갈윤호도 이백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했는지, 시간을 끌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해주었다.

“태양패는 유태희의 아버지이자 태양상단의 상주인 유지위의 신물입니다. 즉, 태양패를 가진 자는 태양상단의 상주인 유지위와 동급의 대우와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

“놀라지 않으십니까?”

제갈윤호가 여전히 별다른 표정 없이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이백을 향해 물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과하게 호들갑을 떨어도 모자랄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남의 이야길 듣는 듯한 이백의 태도에 오히려 의문을 느꼈다.

“그래서 이게 그 태양패라는 것입니까?”

이백이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태양패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백이 놀라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명확하고 확실한 것은 ‘세상에는 우연과 공짜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유태희가 갑자기 그토록 대단한 게 전해주고 사라진다는 것부터가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이백의 물음에 제갈윤호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아닙니다. 태양패는 맞습니다만, 진짜 태양패는 아닙니다.”

“태양패가 맞지만, 진짜 태양패는 아니다. 이상한 말이로군요.”

“엄밀히 말하면 유태희가 이공자에게 준 이 태양패는 ‘예비 태양패’입니다. 태양상단의 상주인 유지위 대인께서 진짜 태양패를 본떠서 만들어진 열 개의 태양패 중 하나이지요.”

“열 개중 하나라?”

이백이 흥미로운 얼굴로 태양패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가주인 유지위가 가주의 신물을 본떠서 열 개나 만든 이유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열 개의 태양패는 유지위 대인께서 금지옥엽인 유태희에게 준 것으로, 나중에 유태희의 배필이 될 수도 있는 남자라는 것을 뜻하는 증표입니다. 유태희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남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일종의 권리를 준 것이죠.”

하지만 이백은 이어진 제갈윤호의 설명을 들으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가주의 신물을 열 개나 본떠서 만들어낸 이유가 고작 딸의 배필감 찾는 문제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어이가 없었던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일륜지대사를 그토록 장난처럼 생각한 유지위란 인물에게 반감까지 일었다.

적어도 이백 자신은 그런 장난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유소저가 나한테 이걸 줄 이유가 없질 않소.”

“하하핫!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단한 유태희가 주루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백공자를 좋아하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이것을 다시 유소저에게 돌려줄 순 없는 것이오?”

“네? 하하! 이 태양패를 다시 유태희한테 돌려주시겠다고요? 하하하! 진짜 이공자께서는 범인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크하하!”

제갈윤호가 이백의 말에 탁자까지 쳐대며 박장대소했다.

제아무리 열 명의 신랑감 후보 중 하나라지만, 그것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잘만하면 중원의 삼대상단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태양상단의 주인이 될 수도 있을뿐더러, 단순하게 태양패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명성을 거머쥐는 것이다.

그만큼 유태희는 천하가 인정하는 제일의 규수였으며, 천하만인이 탐낼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돌려주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유태희한테 태양패를 되돌려주었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

“유태희 같은 거상의 자제들은 혼사문제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상단이란 것 자체가 거미줄처럼 밖으로 퍼져나갈수록 엄청난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라, 가문과 가문의 연결인 혼사문제에 특히 더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유태희 소저한테 열 개나 되는 태양패를 주고 신랑감을 찾아보라 한 유지위 상주는 정말 엄청난 결단을 내린 겁니다.”

이백은 제갈윤호의 말을 곰곰이 들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까지 알게 되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장난이라 생각했던 유지위의 행동이 어쩌면 정말 딸인 유태희를 사랑해서 내린 결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휴우. 그런데 그런 귀한 것을 왜 나한테 주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때문인지 이백이 이번엔 자신의 앞에 놓인 태양패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것은 몸이 다시 어려졌느니, 도사이니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초탈’이었다.

말 그대로 이백의 관심분야가 아니랄까.

“아무튼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니 갖고 계시지요. 정 급하면 돈을 주고 팔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갈윤호가 끝까지 태양패에 욕심이 없는 이백의 모습에 정말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장 술잔을 들어 이백을 향해 권하며 말했다.

“자! 오늘 같이 즐겁고 유쾌한 날 술이 빠질 수 없지요. 받으십시오!”

“술이라면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 있는 차가 더 좋군요.”

“차요?”

제갈윤호가 처음 자리에 안내되었을 때 점소이가 따라준 용정차가 들은 잔을 신주단지 모시듯 양손으로 들고 있는 이백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론 용정차가 좋은 차긴 했지만, 와룡루와 같이 고급주루에선 음식과 술이 나오기 전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게 역할의 전부였다.

그런데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탁자 위에 차려진 산해진미와 술을 마다한 채 찻잔을 쥐고 있는 이백의 모습을 보니, 묘하게 장난을 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아쉬운 대로 찻잔이라도 부딪칠까요?”

“네?”

이번엔 이백이 제갈윤호의 즉흥적인 제안에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차를 마심에 엄연히 다도가 있는데, 찻잔을 부딪치는 행위는 다도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행이나 다름없었다.

“그, 그것이…….”

이백이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그때 제갈윤호가 잘생긴 얼굴에 해맑은 웃음까지 얹어 마구잡이로 자신의 찻잔을 내밀었다.

“허허.”

“자! 쭉! 들이키는 겁니다!”

결국, 제갈윤호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이백이 얼떨결에 찻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딱!

찻잔을 살짝 부딪친 제갈윤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찻잔을 깨끗이 비웠다.

“이야! 술 대신 차를 마신 것은 처음입니다만, 지금까지 마신 그 어떤 술보다 맛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하!”

“도련님.”

“왜! 하하하! 이공자께서도 어서 드시지요!”

옆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던 연노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옆에서 제갈윤호를 말렸지만, 제갈윤호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해맑기만 했다. 그리고 이백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비로소 가벼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깨끗이 비웠다.

‘정말 맛이 좋구나.’

지금까지 많은 차를 마셔왔지만, 정말 맛이 좋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단순히 좋은 용정차라서는 아니었다.

제갈윤호와 같이 대단한 가문의 자제가 다도에 대해 모른다 생각진 않았다.

그렇다면 ‘제갈윤호가 다도에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니 답은 단순하게 나왔다.

바로 이백 자신 때문이었다. 제갈윤호는 이백을 보고 즐거운 마음에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다도의 벽을 허문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마시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다도의 근본인 것을…….’

세상을 살아가며 몸이 늙어가는 만큼 정신 또한 허와 식에 얽매어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이백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노도 마셔!”

“체면이 있지. 전 싫습니다!”

“끙. 나이 먹은 티내긴. 그러니까 어디 가서 늙다리 소리 듣는 거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직 팔팔합니다!”

제갈윤호의 말에 펄쩍 뛴 연노가 자신의 젊음을 표출하려는 듯 팔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매우 유쾌한 자리였다.

“이봐! 여기 용정차 동이째로 내와!”

“네?”

제갈윤호의 외침에 오층을 담당하고 있는 점소이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십 년 넘도록 점소이 일을 해오면서 천하제일미를 데려오라는 등, 창고에 있는 술을 모두 내오라는 등의 허풍이나 헛소리는 수없이 들어봤다.

그러나 평생 이런 헛소리는 정말 처음이었다.

“용정차 말이야! 동이 째 내오라고!”

“네? 네.”

하지만 아무래도 헛소리가 아닌듯했다.

제갈윤호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점소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층으로 주문을 넣었다.

물론 주문을 받은 아래층에서도 ‘이게 무슨 헛소리냐?’며 사람이 올라왔다.

그러나 주문을 넣은 사람이 제갈세가의 자제라는 말에 얼마 뒤 정말 일행의 탁자 위로 용정차가 동이 째 올라왔다.

“자! 우리의 인연을 위하여!”

그리고 이어진 제갈윤호의 외침에 정말 차를 술처럼 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백도 이번만큼은 허와 식을 버리고, 나이조차 잊은 채 제갈윤호와 차가 든 잔을 부딪쳤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신난 목소리가 탁자 위를 오고갔다. 옆에서 연노가 홀로 술잔을 들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냐며 투덜거렸지만, 소용없었다.



“하하하! 정말 즐겁군!”

말도 안 되게 용정차를 두 동이나 마신 자리는 자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오죽하면 와룡루 안에 방을 잡아 이백을 헤어진 후에도 제갈윤호는 흥이 쉽게 가라앉질 않는 모습이었다.

“저는 도련님께서 이러시는 게 정말 이해되질 않습니다.”

제갈윤호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온 연노가 볼멘 소리로 불평을 토해냈다.

물론 이백에게 어떤 묘한 점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하여 자신이 아는 제갈윤호가 이토록 호의를 베풀만한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까닭이다.

“연노.”

“듣고 있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 알아?”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연노가 제갈윤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기일회란 일생에 단 한번뿐인 인연이나 기회를 뜻하는 말로, 인연의 소중함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가 골방에 처박혀 있던 십년 동안 명리학에 대해 공부를 좀 했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이때쯤 귀인(貴人)이 오더라고. 그것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수 있는 귀인이.”

“그래서. 그 귀인이 저 새파랗게 어린 이백이란 말입니까? 도련님. 제발 철 좀 드십시오. 이젠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돌아가신 어머…….”

연노가 말을 이어가다 말고 퍼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꺼낸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가만히 제갈윤호의 얼굴을 살피던 연노가 사과를 하자, 제갈윤호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제갈윤호의 시선은 창가 너머 별들이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는 밤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야. 맞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백이 나한테 중요하게 느껴져. 돌아가신 어머님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야.”

어느새 흥이 사라진 제갈윤호의 얼굴 위로 싸늘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짹짹

이백은 아침 일찍 창 밖으로부터 들려온 새 소리에 눈을 떴다.

“…….”

문득 무당에서도 이처럼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이백은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음에도 딱딱하지만 따뜻했던 자신의 처소가 그리워짐을 느꼈다.

크기는 지금 자신이 묶고 있는 방과 비교해 사분지 일도 되질 않지만, 그래도 발을 뻗고 누구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늑함을 느낄 수 있던 공간이었다.

“휴…….”

이백은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한참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향 땅을 떠나 겪는 향수병처럼 문득 무당산에서의 나날들이 그리워짐을 느꼈다.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 없구나.”

어렸을 땐 나이를 먹고 대단한 도사가 될 줄 알았다.

무당산에 산다는 신선들과 구름 위에 있다는 신선계에서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줄 알았다.

지금은 반로환동을 해서 젊은 몸을 가졌지만, 여전히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었다.

반로환동을 하기 직전 깨달은 심득조차 지금은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모래사장처럼 흐릿하게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허허. 나도 참. 나이 먹고 주책없지.”

지금은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드넓은 천하를 떠돌고 있는 신세였다.

어젯밤 다도를 망각한 채 제갈윤호와 찻잔을 부딪치던 것이 떠오르자, 허허로운 웃음을 흘러나왔다.

남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아마 무당의 장문인인 현진자가 보았다면 그러려고 무당에서 나갔느냐며 농담 섞인 말로 자신을 책망했으리라.

스윽

주름 하나 없는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이백이 몸을 일으키더니 창가로 향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창가 너머 세상에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함이었다.

“…….”

오 층이나 되는 와룡루의 전각은 노하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았다.

꽤 이른 시각임에도 노하구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백의 눈길을 끈 것은 포구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배와 창고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것인데.”

중년 사내들이 아침 일찍 포구에 닿은 배 위에서 물품을 들어다 나르고, 다시 다른 물품을 옮겨 싣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저들한테는 저것이 일상이리라.

그럼에도 이백에겐 생소한 광경이었고, 경이롭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지금껏 이백이 읽었던 책 어느 곳에서도 눈앞에 있는 풍경을 설명한 구절은 없었다.

그만큼 도사들이 추구하는 도와 민생이 떨어져 있음이라.

평생을 무당산에서 도사로 살아왔던 이백에게 아침 일찍 분주한 포구의 풍경은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백대협. 깨어나셨습니까?”

제갈윤호가 이백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창가 너머 전경을 바라보던 이백이 고개를 돌려 문밖에 있는 제갈윤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하하. 편히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팔십 년을 살아온 이백과 비교하면 이제 약관인 제갈윤호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백이 제갈윤호에게 거리낌 없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그 자체로 대하고자 하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무엇을 그리 보고 계십니까?”

“포구의 전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포구요?”

이백의 말에 제갈윤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창가 쪽에 다가섰다.

잠시 뒤, 제갈윤호도 포구의 전경을 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백을 향해 말했다.

“날품을 파는 자들이로군요. 쯧쯧. 젊었을 때 뭐하다 지금 저 나이 먹고 저런 짓을 하는지.”

“…….”

제갈윤호가 느낀 것이 자신이 느꼈던 것과 많이 달라서였을까.

이백이 제갈윤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제갈윤호의 말은 세상을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저들의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제갈윤호도 이백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았는지 말을 이었다.

“옛말에 ‘오늘을 배신하지 않는 자는 내일 배신당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요. 저들에게도 분명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지금 저들이 저곳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청춘을 못나게 낭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포구에서의 일은 고단한 작업에 비해 그리 큰돈을 벌 수 없었다. 게다가 거의 일용직이라 일이 꾸준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인지 젊은이들은 하루 이틀 일을 하다 떨어져 나가기 일쑤고, 일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그나마 힘깨나 쓴다는 중년 사내들이었다.

가정이 있어 처자식을 굶길 수 없는 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다.

“제갈공자. 그러나 저들이 모두 제갈공자가 생각하듯 청춘을 못나게 살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겠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 전 저는 매우 보편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를 말한 것입니다. 이공자의 말씀처럼 저들 하나하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저들 대부분이 청춘을 헛되게 살다 저러고 있다는 것은 맞을 것입니다.”

이백이 제갈윤호의 말에 조금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젊은 사람들은 세상을 너무 흑백으로만 보려 한다. 어떤 기준이 서면 그것을 절대적이라 생각하고 쉽게 고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나이를 먹어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사고가 유해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조차 포용하게 되니 세상은 그것을 연륜이라 일컬었다.

“제갈공자.”

“말씀하십시오.”

“제갈공자께서는 몸에서 지금 가장 더러운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조금은 뜬금없는 이백의 물음에 제갈윤호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사실 제갈윤호도 조금 전 자신의 말이 조금 심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백이 이번엔 자신을 어떤 말로 설득할지 더욱 기대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발이겠지요.”

제갈윤호가 신발을 신고 있는 자신의 발을 보며 이백을 향해 대답했다.

실제로도 며칠 간 쉬지 않고 걸은 탓에 소가죽을 벗겨 고급스럽게 만들어낸 신발이 밑창과 거죽 할 것 없이 더럽혀져 있었다.

“아닙니다.”

“네? 아니라고요?”

하지만 제갈윤호는 이백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웃으며 고개를 흔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제갈량의 후손으로 천하의 지식인을 자처하는 가문의 인물이 아니던가.

서둘러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마땅히 말할 곳을 찾지 못한 제갈윤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 탓이다.

“그럼 몸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은 어디입니까?”

결국은 답을 찾아내지 못한 제갈윤호가 이백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이백이 손가락을 들어 제갈윤호의 몸 한 곳을 가리켰다.

“입이요?”

제갈윤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입을 가리킨 이백을 바라보았다.

음식이 들어가는 입은 신체에서 가장 청결하게 관리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백은 제갈윤호를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 제갈공자께서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욕보인 것을 아십니까?”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측면에서 말을 한 것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저분들이 제갈공자의 말씀처럼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가 저들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들이 저렇게 일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이겠지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야 저들도 벌어 먹여 살려야 할 가정이…….”

제갈윤호가 이백의 물음에 대답하다 말고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마치 고수들이 대결에서 상대가 허점을 보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격을 날리는 것처럼 이백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비록 저들이 어떤 삶을 살았든지 지금은 가정을 위해 살아가는 가장이고, 가장의 의무를 하는 것입니다. 제갈공자의 말씀처럼 처가 있고, 아이가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제갈공자께서는 의도하셨듯, 의도하지 않으셨든. 저들을 욕보임과 동시에 저들과 그 주변의 모두를 욕보이셨습니다.”

“으음…….”

“억지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서 말이 더욱 무서운 법입니다.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저분들의 자식 중에서 한 나라의 승상이 나올 수도 있고, 한 나라의 대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어서도 저분들께서 지금 청춘을 잘못 보내어 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확실히…그럴 순 없겠지요. 이공자의 말씀처럼 저들의 자식들이 승상이 되고, 대장군이 된다면 지금 저들이 일하는 것이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 행동으로 될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끊김 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끝까지 가본 자만이 알겠지요. 그런데 제갈공자께서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재만을 통해 단편적으로 저분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삶과 인생까지 판단하려 하신 것입니다. 차라리 신발에 묻은 먼지는 털어내고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은 그 어떤 것도 털어내거나 씻어낼 수 없으니, 인간의 입이란 얼마나 더러운 것입니까?”

제갈윤호가 이백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입은 사람의 신체 중 가장 더러운 부분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부분일지도 몰랐다.

“하하. 오늘 이공자 덕분에 인생에 매우 큰 교훈을 얻는군요.”

“부끄러워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이는 단순하게 나이만 먹거나, 책만 읽는다 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다음부터 유의하신다면 제갈공자께서는 훨씬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털어내듯 제갈윤호가 이백을 향해 밝은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아무리 무거운 말과 분위기도 웃으면 가벼워졌다. 그리고 제갈윤호는 이백과 비슷한 또래임에도 지금 상황에서 반감보다 수긍이 앞서자, 이상함을 느꼈다.

당대 내로라하는 지자들과 설전을 벌여도 지지 않았던 자신이 무슨 영문에서인지 이백 앞에서만큼은 맥을 못 추리고 있는 것이다.

“이만 내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인생에 큰 교훈을 주셨으니, 제가 거하게 조식을 대접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차 한잔이면 넉넉합니다.”

“차 한잔이라. 좋습니다. 먼저 가시지요.”

먼저 앞을 양보한 제갈윤호가 문을 열고 나가는 이백의 뒷모습을 보며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문득 이백이 조금 전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의문으로 남았다.

‘단순하게 나이만 먹거나, 책만 읽는다고 해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고? 그럼 이백공자 당신은 이 모든 걸 대체 무슨 수로 알고 있는 거지?’




추천. 선작. 댓글.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고, 하시는 일들 모두 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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