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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草魂) 님의 서재입니다.

마무의리(魔武義理)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초혼(草魂)
작품등록일 :
2014.07.04 10:42
최근연재일 :
2014.07.21 19:3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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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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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3,127

작성
14.07.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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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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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
글자
47쪽

2장

DUMMY

2장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숙을 찾기 위해 무당 제자 전부가 무당산 전체를 들쑤시고 다닌 것 아십니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젊은 제자가 사숙이라는 것을 애써 납득한 현진자가 이백을 향해 물었다.

얼굴이 영준하진 않았다. 치우침 없이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비범해 보였고, 그 중심엔 현기를 가득 담고 있는 두 눈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진자의 기억 속에 있는 이백의 젊은 시절 모습에 현기가 더해진 모습.

“나를? 어쩐지. 평소엔 보이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이곳을 몇 번 다녀간 이유가 그거였군.”

이백의 물음에 현진자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을 사숙으로 대하고 있노라니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로환동이라니.

아마 이백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제자들이 눈앞에 있는 이백을 보고서도 그냥 돌아갔으리라.

약관의 모습을 한 이백을 보고서 누가 여든의 학도라 믿겠는가.

“며칠 간 자소전에도 들리지 않으시고, 식사도 통하질 않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숙께 무슨 변고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나는 변함없이 자소궁에도 매일 갔었고, 밥도 꼬박꼬박 먹었었네만.”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그랬다는 말이네. 자소궁에도 가고, 밥도 먹고.”

“사숙께선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행동하셨단 말씀이군요?”

“그러네만.”

“…….”

현진자는 이백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있는 이백은 자신의 반로환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백도 이백이지만, 이백의 말대로라면 무당 내에 없던 사람 하나가 생겼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아…….”

그러나 현진자는 다시 한 번 이백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의문이 풀림을 느꼈다.

이백의 두 눈 깊이 자리하고 있는 현기. 게다가 한평생을 무당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베어버린 도사로서의 움직임들.

‘도사가 도문에 있으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은 게지.’

엉터리 같은 추측 같았지만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무당 제자들이라도 수백 명이 서로 다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당 내에서 누가 봐도 도사 같은 사람이 돌아다녔으니, ‘너 누구냐?’고 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거기다 상청궁과 자소궁은 무당 내에서도 유독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상청궁 도사들은 저마다 죽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고, 자소궁 또한 서책을 읽기 위해 찾아오는 몇 명의 학도를 제외하고 누구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인 것이다.

‘이것 참.’

게다가 이백이란 도사 차제도 누군가에게 그리 관심받을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요 며칠간 발생한 사고들은 누가 봐도 젊은 도사 같은 이백의 모습과 이백이란 인물 자체에 대한 무당 사람들의 무관심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로 볼 수 있으리라.

“내가 잘못했네. 그러니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리 와서 밤하늘 구경이나 하세. 며칠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이 아주 맑아.”

현진자는 별일 없었다는 듯 뒷짐을 지고 단장 끝에 서서 바람을 맞는 이백의 모습에서 마치 신선이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오색찬란한 광휘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이 이백의 뒷모습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어?’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자 불쑥 자신이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이백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학도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반로환동은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뒤늦게 현진자가 이백을 향해 물었다.



“사부님.”

밤새 옥허궁에서 명상을 한 현진자는 밖에서 들려온 직전 제자 무진의 부름에 두 눈을 떴다.

그러나 밤을 꼬박 지새운 명상에도 아직 다 떨쳐내지 못한 마음의 어지러움이 눈을 뜬 현진자의 얼굴 위에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전날 입었던 도관을 그대로 입은 현진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옥허궁 앞으로 무당제자 삼백이 열을 맞춘 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던 직전제자 무진이 현진자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사라진 이백 사숙조님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명을 내려주십시오.”

“…….”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것입니까?”

“여기 있는 제자 모두가 스스로 모인 것이냐?”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무당의 제자들입니다. 문파의 어른께서 사라지셨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굳이 직전제자 무진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날 현진자의 명령에 억지로 이백을 찾아 나서던 모습과 달리 옥허궁 앞에 모인 제자들 하나하나의 얼굴 위로 반드시 이백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아마도 전날 저녁 상청궁에서 현진자와 장로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대화내용이 문파 내에 있던 모든 제자에게 퍼진 까닭이리라.

‘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현진자의 시야에 잡히는 인물이 있었으니…….

‘이백사숙!’

현진자는 눈앞에 있는 삼백의 제자들도 잊은 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오늘도 자소궁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는 이백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진자는 결국 점점 멀어지는 이백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다, 큰 결심을 한 듯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되었다.”

“네?”

“너는 이만 제자들을 해산하여 처소로 돌아가게 해라.”

“하지만 장문인…알겠습니다.”

현진자의 예상치 못한 명령에 직전제자 무진은 잠시 의아한 얼굴로 말을 끌었다. 그러나 직전제자 무진은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 복명했다.

해산명령을 내리기 전 이백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한숨도 내쉬던 현진자의 행동을 두고, 현진자가 무당의 평화를 위해 정말 가슴 아프지만 이대로 이백을 가슴에 묻으려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해산! 해산해서 각자 처소로 돌아가라!”

휑한 바람이 불었다. 옥허궁 앞에 모인 삼백 명의 젊은 제자들도 예상치 못한 해산명령에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복잡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각자 자신의 처소로 되돌아갔다.

의아함을 느끼긴 했지만, 장문인의 명령은 어느 상황에서건 절대적이어야 했다.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가 뭐래도 마음이 가장 복잡한 사람은 바로 현진자였다.

전날 향로봉 단애에서 이백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질 않고 있었다.



“조금 전 장문인께서 옥허궁에 모였던 제자들을 해산시켰다고 합니다.”

“하하핫! 이것 보십시오! 사형!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장문인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 하질 않았습니까.”

상청궁 안쪽으로 위치한 일현진인의 처소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제자의 보고에 일현진인의 사제 일성진인이 대소를 터뜨린 것이다.

그러자 일현진인이 편치 못한 심경을 내비치며 일성진인을 향해 말했다.

“경박스럽게 웃지 마시게. 지금은 웃을 분위기가 아니야.”

“사형. 또 왜 그러십니까? 웃을 분위기가 아니라니요. 장문인이 제자들을 해산시켰다면 좋은 것 아닙니까?”

“쯧쯧. 이리 아둔한 사람을 보았나. 수십 년 도를 닦은 도사란 사람이 이렇게도 주변을 돌아보는 눈이 부족해서야. 누구의 명령도 없었는데, 일대부터 삼대제자 전부가 자발적으로 옥허궁에 모였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나? 장문인이 이번 일을 통해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백을 잃은 대신 젊은 제자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말일세.”

“네? 으음…….”

일현진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성진인이 웃던 입을 다물며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일현진인을 비롯하여 그 주변 장로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해도 젊은 제자들을 무시할 순 없었다.

젊은 제자들이야말로 무당의 현재이고 미래였다. 제아무리 거대한 나무도 튼튼한 뿌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무당 내에서 권력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려면 무조건 젊은 제자들의 신망을 얻어야 했다.

따라서 장문인인 현진자가 젊은 제자들의 인심을 얻었었다는 것은 앞으로 장로들을 제치고 차기 무당의 권력을 틀어쥘 수 있는 포석을 마련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었다.

“불과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길길이 날뛰며 모든 제자에게 이백을 찾으라 했던 장문인이야. 그런데 그런 장문인이 오히려 이백을 찾겠다고 모인 제자들에게 해산을 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아. 장문인이 그 정도로 모진 사람이었나?”

“그게 다 어제 사형에게 한 짓이 있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알아서 스스로 몸을 사리는 것이겠지요.”

“으음…….”

“사형.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머리만 빠집니다. 때론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단 말이지.”

옆에서 별일 아닌 것을 뭐 하러 고민하느냐는 일성진인과 다르게 일현진인은 좀처럼 좁혀진 눈매 사이의 미간을 펴지 못했다.

‘이백이라…….’

일현진인의 기억하는 이백은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노학도였다.

예전에도 존재감이 없었고, 지금도 존재감이라곤 전혀 없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 날벼락 치듯 이백의 존재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갖가지 사태들이 벌어졌다.

이것은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일현진인에게 대단히 불쾌한 일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되지 않고, 오히려 이보다 더 크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르니 믿을만한 아이들을 시켜 장문인 주변을 감시토록 하게. 나도 제자들을 시켜 사라진 이백을 찾아보겠네.”

노파심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방비를 하여 나쁠 것이 없었다.

일현진인의 말에 일성진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인 의사를 표했다.

“사형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집중해라!”

옥허궁과 상청궁에서 소란이 일던 그 시작.

이백은 자소궁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 채, 연무장에서 구슬땀 흘리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어린 제자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무공의 요체는 몸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몸의 중심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그 어떤 무공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마보는 하체를 단련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효율적인 수련법이다. 혹시라도 게으름을 피울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라!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아이가 있다면 다른 아이보다 두 배 더 마보를 시킬 것이다.”

교두 역할을 맡은 일대제자의 엄포에 어린 제자들이 서둘러 다시 무릎을 굽혔다.

마보는 하체를 단련하는데 좋은 수련법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벅지 쪽에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기로 유명했다.

“마보를 펼친 자세에서 주먹을 내뻗는 것을 정권이라 한다. 굳이 동작을 빠르게 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내뻗는 주먹 끝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싣는 것만 생각해라. 당연한 말이지만 주먹을 내뻗고 회수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자세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파들의 특징은 어린 제자들에게 기본공을 튼튼히 가르친다는 것이다.

기본공은 무공을 배우는 밑거름이었고, 이렇게 튼튼히 배운 기본공은 앞으로 제자들이 상승단계를 향해 나아갈수록 자양분이 되어 벽을 깰 수 있는 확률을 높여주었다.

따라서 기본공을 우습게 보고 수련을 게을리하면 제아무리 무재를 타고난 천재라 해도 고수가 되지 못한 채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본문의 무공은 아니지만, 정권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소림 백보신권의 요체도 따지고 보면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정권을 통해 권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내뻗을 수만 있다면 백 보 밖에 있는 바위도 못 부술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사백님. 그럼 소림의 무승들은 정말로 백 보 밖에 있는 바위를 부술 수 있습니까?”

교두의 말을 듣던 어린 제자 중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교관이 손에 들고 있던 막대로 어린 제자의 어깨를 눌러 제사를 교정하며 말했다.

“질문하는 중에도 자세는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백보신권은 소림 안에서도 시전 할 수 있는 자가 몇 안 될 만큼 극한의 수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경지다. 설사 백보신권을 펼칠 수 있다고 해도 소림의 무승들은 함부로 무공을 펼치지 않으니, 무림에 나가도 백보신권을 견식할 기회는 매우 흔치 않다.”



“흠. 이렇게…였나?”

연무장을 떠나 정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던 이백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슬쩍 마보자세를 취했다.

처음 취하는 마보자세가 영 어색했다.

그러나 연무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이백은 마보를 취한 상태로 아주 천천히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

“끙…….”

오른손을 시작으로 양손의 주먹을 몇 번이나 허공에 내뻗었을까.

이백이 곧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곧추세웠다.

호기심이 일어 따라 했으나, 역시 무공은 이백의 취향이 아니었다.

“에구구.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푸념과 함께 습관처럼 아프지도 않은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곧추세운 이백은 다시 자소궁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응?”


“어라?”


“운학사형? 대체?”


“누가 장난을 치는 거야?”

무당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이대제자 운학과 운교는 갑자기 닫혀 있는 정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문 뒤에 숨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대체 누가 정문에서 장난을 치는 것이냐! 어서 나오지…어라?”

정문을 열어젖힌 운학은 예상과 달리 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문소리가 났었는데?”

“사형. 저도 분명 문소리를 들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함께 들었던 운교도 운학이 열어젖힌 문틈 사이로 아무도 보이질 않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경계를 서고 있으면서 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두고 언제까지 가만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른들께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운교가 운학을 향해 묻자, 운학이 열려 있던 문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문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고 말인가?”



“지나간 일은 기억나질 않고, 지나간 사람만 기억나는구나.”

늦은 저녁. 이백은 향로봉 아래로 펼쳐진 무당산의 전경을 바라보다 두 눈을 감았다.

향로봉 아래 펼쳐진 무당산의 전경을 통해 앞서 자신과 함께 동시대를 살다간 도사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오르자 몹시 서글픈 마음이 든 까닭이었다.

“장문인. 왔으면 말을 걸지. 왜 멀뚱히 서 있나?”

“헉! 알고 계셨습니까?”

“뭐가 말인가?”

“제가 여기 있는 것 말입니다.”

이백의 말에 나무 뒤에 숨어있던 현진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현진자는 깊이 사색에 빠진 이백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완벽히 자신의 기척을 감추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백이 너무나 쉽게 현진자의 기척을 잡아내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설마 그 나이에 나와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

“허허. 표정을 보니 정말이었나 보군.”

“사숙. 정말로 무공을 못하시는 것 맞습니까?”

현진자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이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현진자가 비록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대단한 고수는 아니지만, 일파를 책임지는 장문인으로서 나름 어디 내놔도 모자랄 것 없는 무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백은 그런 현진자의 기척을 단숨에 잡아내었으면서도 그것을 고작 숨기 놀이하려다 들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무공이라니? 또 그 이야긴가?”

“사숙. 정말 죄송합니다만, 잠시 팔 좀 이리 줘보십시오.”

“허허. 이 사람…….”

현진자가 이백에게서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날 열 번도 넘게 잡았던 맥문을 다시 잡았다.

맥문은 손목에서 팔꿈치 사이에 있는 정맥혈관으로서, 맥문을 잡아 기의 흐름을 보는 것은 무림에서 무공을 익혔는지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허허. 어제도 몇 번이나 말했잖은가. 내가 평생 무공을 배운 적 없다는 사실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

무공을 익힌 경우, 맥문을 통해 내공을 불어넣으면 몸 안에서 반발하는 기운이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현진자가 아무리 내공을 밀어 넣어도 이백의 몸 안은 텅 비어있는 항아리처럼 잠잠하기만 했다. 이는 이백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을뿐더러, 몸 안에 내공 또한 전혀 없다는 증거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구나. 어찌 무공을 익힌 적도 없고, 내공조차 한 점 없는 사숙께서 반로환동을 하실 수 있으셨단 말인가?’

이백을 바라보는 현진자의 두 눈에 짙은 고뇌가 어렸다.

무슨 일이 있는 줄로만 알았던 이백이 무사하게 되돌아온 것은 진실로 다행한 일이었으나, 이백에게 일어난 반로완동은 현진자에게 있어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숙. 어쩌다 반로환동을 하게 된 건지 정말 기억조차 나질 않으십니까?”

반로환동은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 있어 꿈의 경지다. 그리고 노인이었던 이백이 청년으로 변했으니, 이는 분명 반로환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니 이백은 평생 무공을 배운 적조차 없는 학도라는 것이다.

현진자는 연결고리 하나가 빠져 있는 이 공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산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네.”

“으음…….”

무림에선 매화자라 일컬어지는 호사가들을 통해 반로환동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그 중 이백처럼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몸으로 반로환동을 한 사람은 없었다.

또한, 이백처럼 반로환동을 한 다음 몸 안에 내공 한 점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없었다.

이야기 속에 반로환동을 한 자들은 반로환동 전에 하나같이 천하에 내로라하는 무공을 가진 이들이었고, 반로환동을 후에는 어김없이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나?”

급기야 이백이 힘없는 표정으로 배를 만지자, 금년 나이 칠순을 목전에 둔 현진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철없는 사숙은 지금 자신이 어떤 사고를 쳤고, 앞으로 또 어떤 문제들이 들이닥칠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뒤에 이백과 현진자는 밤이 늦도록 단애서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시절 옛날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따금씩 현재 무당에 대한 문젯거리나 소소한 이야기들도 나왔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에는 웃었지만, 무당의 현재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진지해지기도 했다.

“정말 저 먼저 내려갑니다?”

무당산에 짙은 어둠이 내리자 장문인으로서 오랜 시간 자릴 비울 수 없는 현진자가 이백을 향해 말했다.

이백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어느새 술시에서 해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숙. 그러지 말고 같이 내려가시지요.”

“아닐세. 나는 조금 생각할 것이 있으니, 더 이곳에 있다 내려가겠네. 그럼 장문인. 조심히 내려가시게.”

이백이 단애서 서서 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의 찬란한 별무리가 다시 이백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사숙이야말로…….”

‘조심히 내려오십시오.’라며 뒷말을 하려던 현진자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예전의 여든 살 먹은 이백이라면 모르겠지만, 약관의 청년 모습을 한 이백에게 산길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사숙. 정말 아무런 기억도 없으십니까?”

걸음을 옮기려던 현진자가 미련이 남는지 이백을 향해 물었다.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알아야 할 이유도 있었지만, 무공을 익힌 무도로서 이백이 이룬 반로환동에 대해 궁금한 점도 있었다.

“미안하네. 나중에라도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꼭 말해주겠네.”

“어쩔 수 없지요. 그나마 사숙께서 이렇게 무사하신 것만도 다행인데 말입니다. 쓸 데 없는 욕심은 오히려 과욕이라 하더니, 지금 제가 과욕을 부리고 있나 봅니다.”

“…….”

“그럼 정말 내려가 보겠습니다.”

마침내 말을 마친 현진자가 몸을 돌려 향로봉 아래로 내려가자, 홀로 단애에 남게 된 이백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안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수많은 별들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장문인. 미안하네.”

잠시 뒤, 한참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던 이백이 나지막한 독백과 함께 품속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시게나.”

놀랍게도 이백의 손에 들린 서책의 정체는…….

바로 포천혜였다.



“대체 무슨 일이라더냐?”

“모르겠사옵니다.”

일현진인이 장로회의 소집령을 전하러 온 제자를 향해 묻자, 제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일현진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제자를 향해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갑자기 소집령이라니?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일현진인이 처소에 함께 있던 두 명의 장로들을 향해 운을 떼자, 일성진인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난번 상청궁의 일로 꼬투리를 잡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형을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차에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일성진인은 다 좋은데 너무 단순한 게 흠이었다.

일현진인이 고개를 미묘하게 갸웃거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옆에 있던 정수진인이 입을 열었다.

정수진인은 일현진인, 일성진인과 함께 반장문인파 장로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핵심인물이었다.

“장문인이 우릴 못마땅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일로 우리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진 않습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일이 아니라면 소집령을 내려 장로회의를 할 만한 이유가 없질 않소.”

“예상할 수 없다면 모든 것에 방비를 해두는 수밖에 없겠지요. 단단한 철벽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법입니다.”

현재 무당은 무도와 학도를 함께 아우르려는 장문인 현진자와 무파의 독주체제를 굳히려는 반장문인파의 대립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대립은 현진자의 노력에도 일현진인을 필두로 하는 반장문인파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문파를 이끄는데 실질적 역할을 하는 속가제자들과 상단에서 반장문인파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니, 장문인인 현진자도 무엇을 어찌하긴 힘든 탓이다.

“도문이라. 하하. 천하에 본문이 도문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일현진인이 지난번 상청궁에서 현진자에게 당한 것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 올랐는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도와 학도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현진자의 논리는 일현진인이 보기에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는 몽상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대우하고 지원해봤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학도들이라 생각했다.

현진자의 논리는 오히려 무당의 발전이 아닌, 쇠퇴만 불러올 것이 뻔했다.



“장로회의라.”

“사숙.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문인으로서 저의 입장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백의 말을 들은 현진자가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장로회의를 통하여 이백의 반로환동 사실을 공표하기로 한 것이다.

“…….”

“사숙.”

이백은 현진자를 보며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마치 현진자가 향로봉에서 반로환동을 한 이백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미소였다.

“환영받지 못할 겁니다. 성난 벌떼와 같이 들고 일어나겠지요. 무도가 아닌 학도의 반로환동이 저들에겐 충격이고, 도전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

“답답합니다. 사숙. 뭐라고 말씀을 좀 해보십시오.”

현진자가 답답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이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백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내가 장문인에게 하지 말아달라 하면 하지 않을 텐가?”

“사숙. 그건…….”

“그들의 반응을 예상하면서도 말하려는 것. 그것은 장문인이 그것을 원한다는 말이겠지.”

“…….”

“전대 장문인의 유지를 받들어 무도와 학도를 아우르려는 장문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네. 명분과 명분의 싸움이겠지. 본질을 잊은 상태로 무의 극의만을 추구하는 저들의 고집을 제대로 꼬집고 싶은 게 아닌가.”

“…….”

이백의 말에 현진자가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이백의 눈빛에 현진자의 얼굴 위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한편으로는 눈앞에 있는 이백의 젊어진 겉모습만 보고 반로환동 이전의 이백이 얼마나 예리한 통찰력과 생각을 지닌 인물인지 망각하고 있었던 자식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사숙께서 희생되실지도 모릅니다.”

희생.

장문인으로서 최대한 이백을 보호할 테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저들 쪽으로 기우는 전세를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사숙을 지켜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게 무엇인가?”

이백이 현진자가 내민 서찰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진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이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가셔서 풀어 보십시오. 물론 선택은 오롯이 사숙의 몫이겠지요.”

“오롯이 내 몫이라.”

이백이 현진자의 말을 음미하듯 서찰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내용인지 몰랐으나, 현진자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적어도 그 안의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진자가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고 여겼는지, 이백이 이번엔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았다.

“장문인.”

“말씀하십시오. 사숙.”

“잎이 없는 나무는 결국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라네.”

“네?”

“장문인께서 지금 이러는 것은 저들이 무당의 도사로서의 본분을 잊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네. 하지만 지금 저들을 배척하려는 자네의 행동은 과연 무당의 장문인이라 할 수 있는가?”

“…….”

“나무가 바라는 대로 잎이 나고 자라는 것은 아니라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무가 나뭇잎을 쳐내면 어찌 되겠나.”

“…….”

“무당의 도는 생각이 다르다 해서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 주려 노력하고 감싸 안는 것이네. 장무인. 부디 잊지 마시게.”

이백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나 이백이 자리를 떠나간 후에도 현진자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백의 말을 통해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다.

“현진자야. 어리석었구나.”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고 나서였다.

이백이 떠나간 문을 한동안 허탈함과 씁쓸함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던 현진자가 실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래. 그랬던 것인데. 허허.”

사실 현진자는 그동안 무공조차 배운 적 없는 이백이 어떻게 해서 반로환동을 했는지 너무나 궁금해했었다.

장문인이라고 하지만, 현진자 역시 무공을 배운 무도였다.

스스로 자신의 궁금증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을 다시 곱씹어 보니 자신이 너무나 편협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느꼈다.

“사숙께선 언제나 저보다 앞서 제게 깨달음을 주시는군요.”

이제는 조금이지만 알 것 같았다. 이백이 반로환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마치 이백이 문을 열고 나간 방안을 현진자 자신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게다가 현진자의 마음을 더더욱 옥죄게 하는 것은, 이백이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현진자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기에 앞서 타인을 먼저 이해하고 감싸는 것.

“사숙…….”

이백은 진정한 도사였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상좌에 앉은 현진자의 말에 좌우로 여섯 명씩 친장문인파와 반장문인파로 나누어진 열두 명의 장로들이 눈을 빛냈다.

장로들뿐만 아니라, 무당파의 인물들 모두가 이년 만에 소집된 장로회의의 목적을 두고 갖은 추측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휴우…….”

옥허궁 안에 있는 장로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현진자가 생각을 정리하듯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백이 떠난 뒤 홀로 남겨진 방안에서 밤새 고민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를 두고 아직도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장문인. 무슨 연유로 회의를 소집하신 겁니까?”

현진자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자, 수석장로로서 일현진인이 들고 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차피 현진자가 이번에 있었던 이백의 일로 자신을 공격한다 해도 자신을 따르는 장로들과 함께 그에 대한 모든 방수를 준비하고 나온 탓에 거릴 게 없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본문에서 전설상의 경지로만 일컬어지는 반로환동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니!”

“헉!”

현진자가 무겁게 입을 떼며 던진 말은 장내에 있던 무당의 장로들 사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현진자의 돌발선언에 일현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로환동이라니요?”

느닷없이 반로환동이라니.

어이도 없지만, 정말로 현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체 누가 반로환동을 했는지를 두고 장로들 사이에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당파 내에서 반로환동을 할 수 있는 도사라면 상청궁의 도사 중 하나라는 말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도사 중에서 반로환동을 할만한 자가 아무도 없는 까닭이다.

게다가 수석장로인 일현진인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반로환동을 한 자가 일현진인의 사람이 아니라는. 또는 적대적인 인물이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장문인. 대체 그게 누구입니까?”

친장문인파의 대표격인 진양자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자 대내외적으로 진양자와 앙숙관계로 알려진 일성진인이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더 들을 가치도 없소이다. 반로환동이라니. 장문인. 정말 그런 허무맹랑한 전설 같은 것을 믿으신단 말입니까?”

“그럼 장문인께서 이만큼 중대한 사안을 두고서 허언이라도 하고 계신단 말이오?”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급기야 진양자와 일성진인의 의견이 격돌을 일으켰다.

두 사람 모두 도사의 신분임에도 상대를 바라보는 두 눈에 투기가 맴돌았다. 옥허궁 안으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장문인이 허언하고 계신다 했소? 만약 장문인이 반로환동이라 했다가 반로환동이 아니면 무당의 위신이 깎일 수도 있어 한 말이오.”

“흥! 그렇다면 일성진인은 그동안 무당의 위신을 생각하셨음에도 사사건건 장문인의 의견에 토를 다셨구려.”

“뭐요? 지금 말씀 다 하셨소?”

“그만!”

“무량수불!”

두 사람 사이에 잔뜩 응축되었던 투기가 폭발하려는 순간, 양측으로 갈라진 장로진들 사이에서 동시에 일갈이 터져 나왔다.

현진자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무당의 장로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정윤진인이 나섰고, 반대편에서는 일현진인이 나선 상황이었다.

“어차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그렇지요. 매사냥을 벌이려면 매부터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윤진인의 물음에 일현진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럴 땐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잘 들어맞았다. 이번 장로회의의 요지는 현진자가 반로환동을 두고 거짓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정말로 무당에서 반로환동을 한 고수가 탄생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 확인하면 그뿐.

“장문인. 대체 반로환동을 한 자가 누구입니까?”

정윤진인이 현진자를 행하여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일현진인이 모르는 일이라면, 반로환동의 고수가 친장문인파에서 탄생한 것이리라.

비록 중립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장문인파에 가까운 정윤진인으로서는 반로환동 고수의 탄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잘하면 앞으로 반장문인파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맞습니다. 어서 말씀해보시지요.”

그러나 일현진인도 지지 않았다. 정말로 반로환동의 고수가 정말로 탄생했다 해도 변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반장문인파인 무도의 힘은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반로환동의 고수가 탄생했다 해도 무당이 속가제자들과 상단에서 보내오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반로환동의 고수는 바로…….”

“장문인.”

현진자가 말을 잇기 전 갑자기 옥허전 바깥에서 진적제자 무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워낙 중대한 대목이었기에 흐름이 끊기자 일현진인이 문밖에 있는 무진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로회의 중인 것을 모르느냐! 물러가라!”

“하지만 어떤 청년이 저를 찾아와 장문인께 잘 지내란 말과 함께 보자기에 싸인 것을 전해 달라고 했는데…스스로 이름을 ‘이백’이라 하시는지라…….”

“뭐라!?”

“이백!?”

옥허궁 안으로 또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며칠 전 실종되어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이백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다.

게다가 청년이라니. 현진자가 언급한 반로환동과 묘하게 쳇바퀴 구르듯 이어지는 흐름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어갔다.

“그 물건을 가져오너라.”

어떤 느낌을 받았던 탓일까.

뭔가에 홀린 듯 현진자가 문밖에 있던 무진에게 이백이 전해달라던 물건을 가져오라 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무진이 조심스런 걸음으로 대전에 있는 장로들 사이를 걸어 현진자에게 거친 무명천으로 쌓여있는 물건을 전했다.

어느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숨소리마저 멎은 옥허궁 안에서 무진에게 받은 보자기를 조금씩 풀어가는 현진자의 두 손이 묘하게 떨렸다.

“아!”

그리고 보자기를 활짝 펼친 현진자를 비롯해 옥허궁 안에 있던 모든 도사가 탄성을 토해냈다.

보자기 안에 있는 것은 놀랍게도 곱게 개켜진 도관과 그 안에 담긴 새알이었다.

“…….”

옥허궁 안에 있는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단순히 도관과 새알 때문은 아니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현진자의 입을 통해 새알에 쓰인 글귀가 읽혀짐에 따라 옥허궁 안에 있던 도사들의 표정이 변해갔다.

그리고

빠각.

끼약! 끼약!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때마침 껍질을 깨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작고 여린 생명.

“…….”

침묵을 따라 묘한 긴장감이 고조되는가 싶더니, 현진자가 알을 깨고 나온 새를 조심스럽게 손안에다 담았다.

눈조차 뜨지 못한 작은 새가 현진자의 손이 닿음에 온기를 느끼듯 온몸을 비벼댔다.

“장문인.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이백을 붙잡아야 하지 않겠소!”

다른 이들과 같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현진인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현진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현진자가 일현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반로환동을 이룬 분은 바로 이백사숙이십니다. 그러나 만약 조금 전 분위기에서 제가 같은 말을 했어도 지금과 같이 말씀하셨겠습니까? 무공도 배우지 않고 평생을 도경만 읽으신 이백사숙의 반로환동을 믿으시기나 하셨겠습니까?”

“장문인.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럼 중요한 것이 대체 뭡니까? 무작정 이백 사숙을 붙잡는 것입니까? 도관까지 버리고 떠나신 이백 사숙을 붙잡아 어떻게 무공도 배우지 못한 학도가 반로환동을 했느냐며 묻고 다그치는 것입니까?”

“그건…….”

속마음을 들킨 일현진인이 애꿎은 수염을 쓸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일현진인뿐만 아니라, 이백이 반로환동을 했다는 사실보다 이백이 어떻게 반로환동을 할 수 있었는지만을 생각하던 장내의 도사들 전부가 현진자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현진자가 이 기세를 놓칠세라 쉬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장문인으로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며칠을 고민했었습니다. 학도의 반로환동이 본문에 미칠 영향을 분명 알고 있었지요. 그동안 이어진 권력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것을 경계할 사람들과 그것을 반기며 반격을 준비할 사람들. 도문이라는 본문에서 도사라 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질 그 끔찍할 일들을 모두 예측할 수 있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습니다.”

현진자의 말에 열두 명의 장로들이 모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묵직한 파문이었다.

조금 전 이백의 반로환동 소식에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던 반장문인파 장로들이나, 이 일을 이용해 어떻게 반장문인파를 몰아붙일지 생각했던 친장문인파 장로들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제저녁 이백사숙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당의 도는 생각이 다르다 해서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 주려 노력하고 감싸 안아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애초에 도사를 학도와 무도라는 말로 나눈 것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애초부터 무당이란 같은 나무에서 만들어지고 자란 잎에 구분이 어디 있고, 차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신불립! 이백사숙께서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정녕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배분이 높은 장로들조차 피를 토하는 듯한 현진자의 외침 압도되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진자가 단호한 얼굴로 결단의 쐐기를 박았다.

“앞으로 본문에 학도니 무도이니 하는 말 따윈 없습니다. 인지불선 하기지유(人之不善也 何棄之有)라 하였습니다. 앞으로 무당은 처음 기치를 세웠던 그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인지불선 하기지유. 도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가진 뿌리를 돌보지 않음에 있다.

“장문인! 그게 무슨?”

“지금 당장은 힘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기 있는 이 작고 여린 생명을 보십시오. 이 생명은 지금 단단한 벽을 깨고 나와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여기 있지만, 언젠가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향해 비상할 것입니다. 무당 또한 같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 몰라도 언젠가…….”

“안 될 말씀이오!”

송곳과 같이 찌르고 들어오는 현진자의 돌발선언에 일현진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언뜻 보면 현진자의 결정이 옳아 보이지만, 일현진인이 보기에 무도와 학도를 구별 없이 한데 섞으면 무당은 결국 쇠퇴하게 되어 있었다.

학도들과 어울리게 된 무도들이 무공을 배우고 수련을 해도 모자랄 시간을 도경에 허비하는 일이 생겨날 것이고, 이는 무당 전력의 약화를 불러올 터였다. 도사가 도경을 보는 것이 뭐 잘못된 일이냐 할 수도 있지만, 무당은 도문임과 동시에 엄연히 무림문파였다.

무림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굽이굽이 이어진 산지이지 결코 탄탄한 평지가 아니었다.

“좋소이다. 모든 것을 다 장문의 뜻대로 한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 전에 이백만큼은 꼭 보아야겠소. 장문인께서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의 이유는 이백의 반로환동에 있지 않소? 그러나 이백이 반로환동을 했다는 것을 장문인과 무진 말곤 아무도 못 보질 않았소이다. 게다가 무진의 신분이 직전 제자이니, 사전에 장문인의 명이라도 있었다면 거짓이라도 무조건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직접 이백을 데려와 반로환동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주시오.”

“사숙조님! 억울합니다! 이곳에 여러 어른께서 계신 데, 제가 어찌 거짓을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일현진인의 말을 들은 무진이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일현진인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현진자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지금 제가 무진과 짜고서 연극을 벌이고 있다 의심하는 것입니까?”

“의심이 아니라 당연한 절차를 따르고 있는 것뿐이지요. 도둑질을 당했다는데 정작 물건을 훔친 도둑이 없어서야 하겠습니까. 만약 이백을 데려올 수 없다면 오히려 장문인께서 실종되어 죽은 이백을 이용해 기사멸조의 죄를 행한 것이 될 수도 있소이다.”

현진자와 일현진인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 급기야 일현진인이 최고의 중죄에 해당하는 기사멸조의 죄까지 운운하면서 두 사람 사이로 손끝만 닿아도 피가 배어 나올 것처럼 날카롭고 싸늘한 냉기가 휘몰아쳤다.

“맹세하건대 이백 사숙께서는 분명 반로환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백사숙께서 떠나신 것은 이백사숙의 반로환동 때문에 본문에 있을 혼란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해서일 테지요. 만약 평생 무공을 배운 적조차 없는 학도가 반로환동 사실이 알려지면 본문에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정녕 그 숭고하신 뜻을 모르시겠습니까?”

“알고 있소. 그러니 확인해보자는 것 아니겠소이까? 이백을 데려와 반로환동을 한 사실만 확인한다면 여기 있는 우리들은 장문인을 믿고 모든 결정을 맡길 것이오.”

“…….”

“이곳에 있는 우리만 입을 다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텐데 무엇을 걱정하시오. 그러니 장문인. 지금 당장 무진을 보내 이백을 데려오라 명하시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제가 여쭙겠습니다. 만약 이백사숙을 데려와 반로환동을 한 사실이 확인하더라도 일현진인을 비롯한 나머지 장로분들께서 이백사숙을 가만히 내버려두실지 어찌 장담할 수 있습니까?”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마침내 현진자가 검을 높이 들어 건곤일척의 승부를 제안하는 무사처럼 일현진인을 향해 물었다.

“장담할 수 없으십니까?”

현진자가 옆은 미소를 보이며 일현진인을 바라보자, 일현진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만약 여기서 장담을 하지 못하겠다 한다면 현진자는 이백을 데려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약 장담했다가 현진자가 정말로 반로환동을 한 이백을 데려온다면 지금껏 한 손에 틀어쥐고 있던 모든 권력을 잃게 된다.

“말씀하시지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현진자가 일현진인을 몰아붙였다.

여지가 없을수록 조급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조급함은 실수를 불러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현진인은 달랐다.

“좋소이다. 미리 약조를 드리지요. 만약 정말 이백이 반로환동을 하였고, 그것만 확인된다면 이후 일 처리에 관한 모든 것을 장문인에게 일임하겠소.”일현진인은 이백의 반로환동을 아예 믿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싶었다.

‘후후. 장문인. 악수 중의 악수를 두셨구려. 그 악수가 장문인의 목을 조를 것이외다.’

반로환동은 정말 무림 안에서도 전설처럼 풍자되는 이야기였다.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따라서 현진자가 이백을 데려오지 못한다면 앞서 언급한대로 기사멸조의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었다.

현진자가 제아무리 장문인이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기사멸조의 벌을 받는다면 결코 무사할 수 없으리라.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끝끝내 무신불립의 뜻을 이해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라니요. 장문인께서 이백을 데려오신다면 정녕 무신불립이 이루어지지 않겠소? 자. 그러니 이제 이백을 데려오시지요.”

일현진인은 의중을 한 번 더 묻는 현진자의 행동에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일현진인이 알고 있는 현진자는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조급함을 느낀 현진자가 짐짓 허장성세를 부려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벌컥

해가 뜨기 전 밤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 했던가.

갑자기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옥허궁 안으로 찬란한 햇빛이 스며들었다.

“누구냐?”

“장로회의 중이거늘! 누가 들어온 것이냐!”

갑작스레 옥허궁 안을 파고드는 햇빛에 장로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옥허궁의 문지방 앞에 서서 햇빛을 등지고 서있는 약관의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무공을 전혀 익힌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생김새와 흔한 무명옷을 입고 있어, 무당에 온 향객 중 하나가 길을 잘못 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장문인. 이제 정말로 가야겠네.”

“이백사숙.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어진 청년과 현진자의 대화는 옥허궁 안에 있던 모든 인물들에게 침묵과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장로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생각을 잇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인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보중(保重)하시게.”

이백은 현진자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뒤를 돌아 유유히 떠나갔다.

그랬다. 옥허궁에 모습을 드러낸 자는 참으로 이백이었다.

장로 중 그 누구도 떠나가는 이백을 향해 ‘저자가 정말로 반로환동을 한 이백이 맞느냐?’ 하는 물음 따위를 던지지 않았다.

굳이 이백이 옥허궁 바닥에 놓은 도패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동시대를 살아왔기에 옥허궁 안에 있는 장로들 누구나 젊은 시절 이백의 얼굴과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게!”

그때 넋을 놓고 있던 일현진인이 정신을 차렸는지 떠나가던 이백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이백이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자 일현진인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어떻게 반로환동을 이룰 수 있었는가?”

현진자에게 절대 묻지 않겠다고 약조했지만, 이대로 이백을 떠나보낼 순 없었던 까닭이었을까. 일현진인이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채 이백을 향해 물었다.

반로환동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말해주게! 말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네!”

말에서 느껴지는 일현진인의 지독한 고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고집이 더는 추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백이 다시 몸을 돌리며 일현진인을 향해 말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채 오래 있어 보시게. 처음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겠지만, 종내에는 고개를 들고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게 될 것이네. 그것과 같네. 무엇이든…죽기 살기로 하면 되지 않는 게 무엇이 있겠나. 무신불립. 잊지 마시게. 결국에 모든 것은 무당의 도 안에 있었네.”



푸드득!

새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자, 서로를 따라 무당산을 내려가던 이백이 웃음을 지었다.

비상한 새가 향하는 자소봉에 자신이 떠나온 무당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무당 또한 저 새처럼 창공을 비상하게 되리라.

“잘 될 게야.”

그냥 떠날 수도 있었지만 현진자를 위해 준비해둔 마지막 안배였다. 이로써 자신이 이전 생에 무당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했다.

“시절인연이라.”

그리고 이젠…무당을 떠난 이백의 새로운 삶과 인생이 펼쳐져 있었다.

이백은 품속에서 전날 현진자가 건넸던 서찰을 꺼냈다.

소림 최고의 성승이라 일컬어지는 혜안신승. 그 혜안신승이 이백을 소림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서찰이었다.




추천. 선작. 댓글.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고, 하시는 일들 모두 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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