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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草魂) 님의 서재입니다.

마무의리(魔武義理)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초혼(草魂)
작품등록일 :
2014.07.04 10:42
최근연재일 :
2014.07.21 19:3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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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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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5
글자수 :
133,127

작성
14.07.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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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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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글자
39쪽

5장

DUMMY

5장



“이놈!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다!”

“멍청한 놈! 누가 도망친다더냐! 오늘이 바로 명년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깡!

노하구를 나와 신야성 근처 안림을 지나던 이백 일행은 갑자기 앞에서 펼쳐진 싸움 탓에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야. 잘 싸우는데?”

“흥! 그래 봤자 애송이들이지요.”

연노가 제갈윤호의 말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격전을 펼치고 있는 두 명의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조금 만 더 가면 하북을 넘어 완전히 하남에 접어드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두 사람 탓에 공연히 시간을 끌고 있었다.

“싸움을 멈추게 할까요?”

“여기서 강제로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것은 목숨까지 걸고서 열심히 싸우는 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군. 일단 지켜보자고.”

제갈윤호가 허공을 붕붕 날며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는 사내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길이 비좁은 탓에 아무래도 싸움을 피하여 가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또한, 싸움을 펼치는 두 사람 모두 적지 않은 무공을 가진 고수들이라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도 사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 하지 않던가.

“왼쪽에 있는 자는 표풍검 석정강이고, 오른쪽에 있는 놈은 구절문 장로 담우성이란 자입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호각을 이루며 싸우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담우성보다 내공이 적은 석정강이 밀리겠지요.”

“저분들을 알고 계십니까?”

제갈윤호가 아예 구경하기로 단단히 작정했는지, 옆에 있는 바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백은 이어진 제갈윤호의 친절한 설명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이곳 호북성에서는 꽤 알아주는 고수들입니다. 표풍검 석정강과 구절검룡 담우성 모두 호북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자들이지요.”

까앙!

제갈윤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들려오더니, 쉴 새 없이 사십 합을 다퉈가던 두 사람의 신형이 거칠게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쿨럭!”

석정강이 입가에 한줄기 핏물을 흘리며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가슴을 틀어쥔 것이 보였다.

제갈윤호가 예상했던 것처럼 담우성과의 내공대결에 밀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제 슬슬 승부가 나겠군요.”

제갈윤호가 자신의 예상했던 대로 석정강이 밀리는 모습을 보고 이백을 향해 말았다. 그러나 이백은 제갈윤호와 생각이 다른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직은 아닌 듯합니다.”

“네?”

“저 석정강이란 분. 눈빛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눈빛이요?”

제갈윤호가 예상치 못한 이백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싸움을 주목했다.

공교롭게도 담우성이 석정강을 완벽히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높이 쳐든 순간이었다.

“끝이다!”

강한 힘으로 단숨에 상대를 짓이기는 전형적인 태산압정의 자세였다.

상대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일격을 가하는 방식. 석정강을 죽이기로 한 것일까. 담우성의 두 눈 위로 살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이야압!”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완벽히 위기에 내몰린 것으로 보였던 석정강이 몸을 움직였다.

사력을 다해 검을 높이 쳐들고 있던 담우성의 품속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어? 어?”

급작스런 석정강의 움직임에 담우성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순간.

빠각!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석정강의 팔꿈치가 정확하게 담우성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담우성이 내리치는 일검에 몸이 두 쪽 났을 테지만,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역전을 이뤄냈다.

이어서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한 담우성이 ‘컥!’하고 답답한 신음을 내뱉더니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키야! 절묘하구나!”

제갈윤호가 고수들간의 대결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명장면에 탄성을 토해냈다.

제갈윤호 뿐만 아니라, 연노 또한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석정강과 담우성을 모두 알고 있는 자라면 당연히 담우성의 우세를 점치는 것이 당연했었다.

“내일이면 하북성이 떠들썩하겠구나.”

그럼에도 석정강이 담우성을 이겼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호북성 전체가 들썩거릴 것이 분명했다.

“하하! 석형! 대단했소이다! 구절검룡을 이기다니! 내 석형을 다시 봤소!”

제갈윤호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석정강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담우성이 절호의 기회를 잡았던 순간 석정강을 죽이려 했던 것과 달리, 석정강은 일격을 맞고 정신을 잃은 담우성을 죽이지 않고서 자릴 뜨고 있었다.

“보통 분들이 아니신 듯한데 누구십니까?”

석정강이 싸움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이며 제갈윤호와 연노를 향해 포권을 했다.

담우성과 야차처럼 싸우던 모습과 다르게 평정을 되찾은 석정강은 오히려 학사와 같은 인상을 풍겼다.

“이분께선 제갈윤호공자님이시다.”

연노가 제갈윤호의 뒤에 서서 석정강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며 대답했다.

간접적으로 제갈윤호가 자신이 모시는 상관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더불어 제갈세가의 인물인 제갈윤호에게 실례를 하지 말라는 무언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갈세가의 삼공자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석정강도 제갈윤호를 알고 있는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이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이만 봐서는 석정강이 훨씬 많지만, 제갈세가라는 배경에 예를 표했다 보는 것이 옳았다. 그와 동시에 이백 또한 석정강의 말을 통해 제갈윤호가 제갈가주의 직계 자식임을 알고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신분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연노와 같은 자가 옆에서 보필하고 있을 때부터 제갈윤호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현재 제갈세가 가주의 직계였을 줄이야.

‘모호하구나.’

그러나 제갈윤호가 제갈세가 가주의 아들치곤 호위를 하나 밖에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도 신기하긴 한 일이었다.

이백이 알기로 제갈세가와 같이 거대한 문파나 가문의 직계 자제들은 납치와 암습의 위험 때문에 되도록 많은 호위무사를 주변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구절검룡과 싸우게 되신 겁니까?”

이백이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제갈윤호와 석정강의 대화가 이어졌다.

석정강이 제갈윤호의 물음에 조금은 갈등하는 듯한 모습을 보어더니, 이내 큰 결심을 내린 듯 잔뜩 굳은 얼굴과 눈빛으로 제갈윤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을 꼭 비밀로 지켜주신다고 약조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본래대로였다면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제갈세가의 삼공자시라는 말에 잘하면 저를 도와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밀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한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저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세 분의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클클. 웃기는구나. 네 입으로 앞에 계신 분께서 누구라 했는지 벌써 잊은 거냐?”

연노가 석정강의 말을 듣더니 가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세가라면 오대세가에 들만큼 명망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당과 함께 호북지역을 호령할 만큼 대단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연노의 말에도 석정강의 굳은 얼굴은 쉽게 풀지 않았다.

“그럼 우선 당신께서 제갈윤호 공자라는 것을 증명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갈세가의 명예를 걸고 약조해주십시오. 저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선 둘째치고, 우선 제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다음에 저한테 어떤 위해도 가하질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놈이!”

“연노!”

연노가 석정강의 다소 강압적인 태도를 지적하려 했으나 제갈윤호가 손을 들어 이를 막았다.

그리고 석정강을 향해 특유의 잘생긴 웃음을 보여주며 말했다.

“증명이라. 좋소이다. 우선 이 명패라면 내가 제갈윤호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될 것 같고. 맹세하지요. 나 제갈윤호. 가문의 명예와 나 제갈윤호의 이름까지 걸고 맹세하겠소. 만약 모든 이야기를 듣고 그대한테 위해를 가하려 할 시, 하늘이 우리 가문은 천벌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하고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오.”

“도련님!”

석정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갈윤호가 품속에서 제갈세가의 직계들만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명패를 보여주고 이어서 맹세까지 해버리자, 연노가 놀란 표정으로 펄쩍 뛰었다.

제갈윤호가 다소 가볍고 즉흥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일을 두고서 가문의 흥망까지 걸고 맹세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그럴 일이 없을 텐데, 그까짓 맹세 백번이든 천 번이든 하면 어때?”

“그러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만약 도련님의 행동이 가문의 어른들 귀에라도 들어갔다간…….”

“여기 누가 있다고 그래? 연노만 입 다물면 돼.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말라고.”

“…….”

“어쨌든 석형. 이제 편히 말씀해 보시오. 얼마나 거창한 비밀인지 들어나 봅시다.”

제갈윤호가 연노의 잔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석정강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쉽게 의심이 풀리지 않음인지 석정강이 이번엔 제갈윤호와 연노의 뒤쪽에 서 있는 이백을 바라보았다.

“여기 계신 이백공자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분이니.”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제갈윤호가 곧바로 이백의 신분까지 보증하자, 석정강이 단단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놓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지금 이 물건 때문에 쫓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이제야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연신 귀찮은 표정으로만 일관하던 연노가 석정강이 손에 든 보자기를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보자기에 싼 모형으로 보아 서책이 분명한데, 대부분 지금 같은 경우. 그러니까 석정강 정도의 어정쩡한 고수가 저런 물건을 들고 쫓기는 경우, 대부분 물건의 정체가 전대고수나 엄청난 문파의 무공비급 같은 것인 까닭이었다.

“혹시 포천혜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석정강이 천천히 겉을 둘러싸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내고 이백일행에게 그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포천혜라?”

제갈윤호가 석정강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바로 그 순간.

“…….”

겉으로 티가 나진 않았으나, 석정강이 손에 든 물건을 본 이백의 표정도 미묘하게 변했다.

여기서 갑자기 왜 포천혜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스윽

이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왼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품속에 포천혜가 있는 부분이었다.

손끝에서 포천혜의 촉감이 느껴지자, 문득 이백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저것이 진짜일까?’

자신의 품 안에 있는 포천혜가 진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반로환동을 한 이백 자체가 그 증거이니까.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때마침 제갈윤호가 석정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갈윤호로서는 포천혜가 뭔지 모르지만, 안에 내용을 본다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석정강은 제갈윤호의 저의를 의심하는 듯 아무 대답 없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포천혜를 쥔 손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흥! 본가의 신공절학이 이미 천하에 내로라하는 수준이거늘, 공자님께서 그까짓 것 따위를 뭐하러 욕심내시겠느냐? 공자님께서 이미 가문과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으니 너는 마음 놓고 믿어도 된다.”

피핏!

연노가 제갈윤호를 믿지 못하는 석정강을 나무라듯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신경질적으로 파리를 내쫓듯 왼손을 떨쳤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연노의 행동을 본 일행들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으윽!”

갑자기 석정강의 뒤쪽에서 들려온 신음에 일행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돌리니 석정강의 일격에 정신을 잃었던 담우성이 다시 목을 부여잡고서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담우성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던 것을 연노가 다시 공격한 것이다.

“…….”

담우성의 목으로 한자 길이의 장침이 반쯤 꼽혀있는 것을 본 석정강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무력으로 굴복시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괜한 의심 따위 하지 마라.’라는 말을 연노가 이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했음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석정강이 결국 손에 든 포천혜를 건네자, 제갈윤호가 잘생긴 얼굴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뒤에 있던 이백은 제갈윤호가 석정강에게서 받은 포천혜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저것은?’

이백이 제갈윤호가 펼친 포천혜의 첫 장을 보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백은 단번에 책 안의 내용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건…갑골문인가? 으음.”

그러나 제갈윤호는 이백과 다르게 포천혜 첫 장의 내용이 갑골문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눈치챘을 뿐, 그 안의 내용까진 파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골문이란 것 자체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 옛날 사용했던 문자였다.

장시간 전문적으로 갑골문을 연구한 전문가라면 모를까. 게다가 갑골문에 대해 해박한 전문가들은 중원 전체를 통 털어도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내용을 알아보려면 본가에 연락을 해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석형. 석형께서는 이 안에 적힌 내용이 뭔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제갈세가에 연락을 넣는다면 갑골문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를 구하기도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포천혜의 존재가 제갈세가에 알려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된다.

제갈윤호로서는 앞서 가문의 흥망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서 비밀을 엄수 할 것을 맹세하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포천혜의 내용이 궁금한지 제갈윤호가 석정강을 향해 포천혜의 내용을 물었다.

“아주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러나 석정강 또한 포천혜 안의 내용은 모르는 듯했다. 그러자 제갈윤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석정강을 향해 물었다.

“그렇다면 이 물건을 가지고서 어쩌시려는 것입니까?”

“소림사에 가지고 가려 합니다.”

“소림사 말입니까?”

“소림사가 바로 제 사문입니다.”

이백을 비롯하여 제갈윤호와 연노가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세상이 비좁다지만 일이 이렇게 공교로울 수도 있을까. 그러나 석정강의 말대로 소림사가 그의 사문이라면 충분히 타당한 일이었다.

“아. 석형께선 소림의 속가제자이셨군요. 그렇다면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희도 소림사에 가는 길인데, 저희와 동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윤호가 나서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석정강에게 동행을 제의했다.

제갈윤호 이 작자는 사람만 만나면 동행을 제의하는 것이 특기일까.

이백이 의아한 눈초리로 제갈윤호를 바라보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뭔가 즉흥적으로 하는 행동 같았지만, 석정강을 바라보는 제갈윤호의 눈빛 속에서 살이 베일만큼 날카로운 기운을 느낀 것이다.

“도련님!”

“뭐 어때? 그리고 담우성 따위는 한 무더기가 몰려와도 연노의 상대가 되질 않잖아?”

“그렇긴 합니다만…후우. 제발 철 좀 드십시오.”

연노가 뭔가 말하려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잘생긴 얼굴로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제갈윤호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할 의욕마저 잃는 모양이었다.

“쩝.”

물론 담우성 같은 자들이 한 무더기로 와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포천혜가 정말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무림백대고수들부터 시작해, 천하에 내로라 하는 무림십대고수라도 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으니까.

“이공자. 괜찮겠지요?”

제갈윤호가 연노에 이어 뒤늦게 이백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이미 석정강과 함께 하는 것으로 연노와 합의까지 해놓고 하는 양해이니, 뒤늦게 이백이 가타부타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하지만 이백은 제갈윤호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공자?”

“…….”

“이공자?”

“네?”

이백이 정신을 차린 것은 제갈윤호가 거듭 이름을 부르고 나서였다.

제갈윤호는 이백이 두 번이나 이름을 부르고 난 후에야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 말 들으셨습니까? 여기 계신 석형과 소림사까지 동행하시는 것에 대해 이공자의 생각을 물어보았습니다.”

“좋습니다.”

이백이 이번엔 제갈윤호의 물음에 별로 고민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평소 무엇이든 신중한 이백의 성격을 고려하였을 때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 매우 특이한 일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일행 중에는 이백이 성향을 알고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좋아! 이것으로 모두 찬성이군요. 석형. 우리 함께 소림사까지 가십시다! 하하!”연노에 이어 이백한테까지 동의를 얻어낸 제갈윤호가 정말 기쁜 표정으로 대소를 터뜨리며 석정강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석정강도 내심 누군가의 도움을 원하던 차에 제갈윤호와 같은 자와의 동행이 싫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석정강이 어영부영 일행에 포함되고 있었다.

‘갑골문으로 쓰인 도덕경이라.’

제갈윤호가 석정강과 함께 앞서 가고 연노가 그 뒤를 따르는 사이, 이백은 홀로 남아 석정강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이백도 처음엔 확신이 서지 않았으나, 석정강을 일행에 포함 시키자던 제갈윤호의 눈빛을 보고서 확신하게 되었다.

석정강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

석정강은 처음부터 일행들, 정확하게는 이백을 제외한 제갈윤호와 연노를 노리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담우성과 목숨을 걸고 싸우며 여러 명장면을 보여주었으나, 연노가 던진 장침을 맞고 담우성이 넘어갔었을 때 석정강조차 신경 쓰지 못했을 한순간의 표정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한, 이백이 보기에 제갈윤호는 이 모든 것을 눈치챘으면서도 그를 내색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소림사라.’

정확하게 핵심을 끄집어내기에 아직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뭔가 조심스럽게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짜 포천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걸까?’

석정강이 보여준 포천혜 안에 있었던 것은 갑골문으로 만들어진 도덕경이었다.

이백이 첫 장만 보았음에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수십 년 전 갑골문으로 만들어진 도덕경을 언뜻 본 기억이 있어서였다.

벌써 오십 년도 더 된 일이니, 세상에 저것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는 흔치 않으리라.

‘알아야겠다.’

이백은 머릿속에서 전례가 없이 강렬한 의문이 떠오름을 느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자신이 진본을 가진 포천혜에 관련된 일이었다.

포천혜의 진본을 가진 자로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저벅저벅

이백이 생각을 정리하였는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백이 서두를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석정강이 이백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백이 진짜 포천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었으니까.



부들부들

책을 쥐고 있던 양손에 경련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붉게 충혈된 두 눈은 빠르게 책 안의 내용을 훑고 있었다.

“이익!”

한 달.

일현진인이 이백이 떠나고 자소궁에 틀어박혀 책만 실핀 시간이었다.

한 달 동안 일현진인의 손을 거친 책만 해도 자소궁의 서책 중 삼분지 일이나 되었다.

이백이 손조차 대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무공서를 제외한다면, 자소궁에 있는 도경과 잡서 대부분을 본 것이다.

[잊지 마시게. 결국에 모든 것은 무당의 도 안에 있었네.]

머릿속 깊은 곳으로부터 자꾸만 이백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네놈이 찾아낸 것을 나라고 찾지 못할쏘냐.’란 부아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토록 끈질겼던 노력도 결국 한계가 찾아온 것일까.

“제길!”

일현진인이 손에 들고 있던 도경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도사가 도경을 집어 던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소전 안에는 일현진인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없었다.

“대체! 대체 어디 있단 말이냐!”

일현진인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소리쳤다.

마치 이성의 끈이 끊어진 사람 같았다. 냉정하고 치밀한 일현진인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백! 네놈이 나를 속인 것이다! 감히 네놈이 나를 가지고 놀려 하다니! 이노옴!”

마치 막혀있던 둑이 터져나가며 엄청난 물살을 쏟아내듯, 일현진인이 그간 싸인 분노를 온몸으로 표출했다.

한 달간 자존심으로 버텼지만, 결국 그 자존심에도 한계가 오고 말았다.

반로환동의 비법이 이백의 말처럼 정말로 무당의 도 안에 있었다면 자신이 못 찾았을 리 없었다.

그래. 이백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쓸모없는 학도 따위가 대무당의 수석장로인 자신을 농락한 것이다. 곱씹을수록 마음 안에서 분노가 자꾸만 커졌다.

“사형! 이백의 소식을 알아내었습니다!”

일성진인이 자소궁 안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현진인의 핏발선 시선이 자연스럽게 일성진인에게로 향했다.

“그게 사실인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이백이 무당을 떠나던 그날. 일현진인은 장로회의에서 이백이 정말로 반로환동을 했다면 앞으로 자신의 모든 권한을 장문인인 현진자에게 일임하겠다 천명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백이 정말 반로환동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탓에 일현진인을 비롯하여 그 주변 인물들까지 지금은 무당의 실권에서 완전히 손을 뗀 채,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또한, 일현진인이 직접 이백을 찾아 나서려 해도 실권을 잡은 현진자가 그를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일성진인에게서 이백의 소식을 알아왔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사, 사형?”

“말해라! 어디냐! 이백 그놈이 어디 있느냐!”

일성진인이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현진인의 모습에 몸을 움찔거렸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기에 누구보다 사형인 일현진인의 잔인한 본성을 잘 알고 있는 일성진인이었다.

“태희와 함께 나갔던 배상진과 육근우가 이백을 만난 것 같습니다. 태희가 무당으로 돌아오던 중 노하구의 와룡루에서 어떤 사내와 시비가 붙었었는데, 그 사내가 본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이름을 이백이라고 했다더군요.”

“이백 이노옴!”

“으윽!”

일성진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현진인이 노성을 터뜨리며 엄청난 살기를 뿜어냈다.

자신이 지난 한 달간 자소궁에서 책이나 뒤적거리고 있을 때, 명색이 도사였다는 놈이 기루나 들락거렸다니.

대놓고 약을 올렸어도 이보다 화가 나진 않았으리라.

부아가 치밀다 못해 피가 거꾸로 역류하여 치솟는 느낌이었다.

“이백을 보았다는 그 두 아이. 지금 당장 내 처소로 부르게.”

“알겠습니다.”

일현진인이 기세등등하여 곧장 자소궁 밖으로 나가자, 일성진인이 그런 일현진인의 뒷모습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지난 한 달간 자소궁에 틀어박혀 쓸데없이 책만 뒤적거렸던 자신의 사형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현진인이 자소궁을 나서고 정확히 반시진 뒤.

“저, 정말입니다!”

“그분과는 와룡루에서 보고 헤어진 게 다였습니다.”

배상진과 육근우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앞에 있는 일현진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수석장로인 일현진인의 처소로 가라는 일성진인의 명령을 듣고 왔다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을 추궁당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자가 정말 사부님과 아는 사이였나?’

‘제길! 운도 지지리 없지!’

지난날 와룡루에서 마주쳤던 이백의 얼굴을 떠올리며 배상진과 육근우가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얼마다 대단한 거물이기에 수석장로인 일현진인까지 나섰단 말인가.

일현진인의 날카로운 눈빛에 가슴 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알겠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현진인에게서 별다른 꾸지람이 없자, 배상진과 육근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크게 혼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벌이 없으니 불안한 것이다.

“뭣들 하는 것이냐? 나가지 않고.”

“정말 이대로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눈치 없는 육근우가 일현진인을 향해 물었고, 그 말을 들은 일현진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날 장로회의에서 두 사람의 사조인 정윤진인에게 당한 앙금이 남아 있었는데, 때마침 두 멍청이가 날 잡아 잡수라며 호랑이 굴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 달간 참선동에서의 면벽을 명한다.”

“네?”

“윽!”

무당 내에서 한 달간의 면벽은 경죄에 대한 처벌 중 최고 수위에 해당했다.

갑작스레 한 달 면벽이란 날벼락을 맞은 배상진과 육근우의 얼굴이 자연스레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나가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이냐.”

“그,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나 배상진과 윤근우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아무 말도 하질지 못한 채 일현진인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따지고 보면 받지 않아도 될 벌을 자청하여 받은 셈이니, 혹여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눈앞의 벽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다.



“청우를 말입니까?”

일현진인은 배상진과 윤근우가 처소에서 나가자, 곧바로 사제인 일성진인을 찾았다. 그리고 일현진인에게서 말을 들은 일성진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청우한테는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설마 이백 그자를…….”

“청우에게 이 전서를 전하기만 하면 되네.”

“사형.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사형의 제자라고 해도 무림맹 무룡관에 있는 아이한테 사적으로 일을 시킨 것이 알려진다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장문인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때에 더욱 판도가 불리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청우는 일현진인이 일흔에 들인 막내 제자였다.

현재 무당의 일대 제자 가운데 가장 어림에도 그 무재를 인정받아 무림맹에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전하라고 했네.”

“사형…….”

일성진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일현진인을 바라보았다.

일현진인이 평소답지 않게 무리를 하고 있었다.

자칫 일현진인이 이백과 관련하여 청우에게 일을 시킨 사실이 알려진다면, 장문인인 현진자가 무슨 짓을 저지지 몰랐다.

“사제. 내 말을 거역할 셈인가?”

“…….”

“대답하게.”“아닙니다. 사형. 그럼 배현에게 이 일을 시키겠습니다.”

“그건 자네 알아서 하게.”

배현이라면 무당파 내에서 전서구를 관장하는 이대제자로 두 사람의 수족 같은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한테도 걸리지 않고 일을 처리해왔던 아이이니, 이번 일 또한 문제없이 잘 처리하리라.

‘사형이 변했다.’

그러나 일성진인은 일현진인을 보며 불안한 내심을 감추지 못했다.

일현진인은 무당 내에서도 원리원칙과 규율을 끔찍할 만큼 고수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현진인이 지금은 원리원칙과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이백을 노리고 있었다.

비록 이백이 반로환동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대사건을 일으켰다지만, 결국 무공 한 자락도 할 수 없는 학도 나부랭이일 뿐이었다.

이백을 잡자고 일현진인이 지금 벌이고자 하는 일은 닭 잡는 칼에 소 잡는 칼을 쓰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사형.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일현진인이 일성진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일성진인이 침을 튀겨가며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해갔다.

“어차피 청우를 이용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위험부담이 크니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옛말에 길이 멀수록 돌아가라 하였습니다. 비록 이백 그놈이 반로환동을 했다고 해도 무공 한 자락 못하는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질 않겠습니까.”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라…….”

일현진인이 일성진인의 말을 되씹으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여 보면 자신이 반로환동을 너무나 크게 생각하고 있었음이라.

“일단 제가 손을 써보겠습니다.”

“자네가?”

“저도 명색이 무당의 장로입니다. 그 정도의 재량은 있습니다.”

일현진인은 생각이 복잡한 가운데 일성진인의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자,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제자인 청우를 동원하여 자신을 한 달 동안이나 자소궁에 가둬놓은 이백을 당장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노를 급하게 푸는 것보다 천천히 푸는 것 또한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백에게 반로환동의 비법을 알아내야 했다.

“좋네. 일단 사제를 믿어보지. 대신 절대 이백을 죽여선 안 되네. 그래서 명색이 본문의 도사였던 자가 아닌가. 그냥 잡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둬두게.”

“알겠습니다.”

일성진인이 갑자기 이백을 위해주는 듯한 일현진인의 태도에 조금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현진인은 반드시 이백을 사로잡아 반로환동의 비법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성진인은 그저 일현진인을 위해 이백을 잡으려는 의도뿐이었다.

그러나 일현진인과 일성진인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이백이 혼자서 움직이는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이백 대협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시각 이백은 갑작스러운 제갈윤호의 물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불똥이 왜 자신에게로 튄단 말인가?

“그것이…….”

석정강과 함께하게 된 후에도 일상에 큰 변화 같은 것은 없었다.

걸음의 속도가 빨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튀지 않게 행동하는 내에서 쉬는 시간을 줄인 것뿐, 평소와 같은 일상을 그대로 보내고 있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쓸데없이 탄지를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보다 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요.”

“탄지야말로 기습에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뭘 들으신 것입니까? 도련님보다 하수라면 모르지만, 동급의 무위를 가진 자라면 검에 손이 닿는 즉시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챌 겁니다!”

연노가 제갈윤호에게 뒤질세라 이백한테 침을 튀겨가며 주장을 펼쳤다.

상식적인 무론으로 따졌을 때 누구의 말이 틀렸다 할 수 없었다.

“저는 무공을 모릅니다만…….”

그러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백이 무공 한 자락 모르는 자신한테 무공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길 물어오는 제갈윤호와 연노를 바라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평소 무공에 관한 담론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오늘따라 옆에 있던 이백에게 대답을 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공에 대해 모르시니 오히려 더 좋은 일입니다. 그냥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에 대한 이공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어디 말해봐라!”

제갈윤호가 그래도 상관없다며 막무가내식으로 이백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연노도 지지 않고 이백에게 얼른 대답하라며 성화를 부려댔다.

“저라면…….”

이백이 입을 열자, 뜨거운 열망에 불타오르는 제갈윤호와 연노의 시선이 이백을 향했다.

사내란 묘한 생물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열을 올리고, 자존심을 걸게 된다.

“빨리 대답해라!”

이백이 운만 떼고 말을 잇지 않자, 성질 급한 연노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에 비해 제갈윤호는 괜찮으니 천천히 말해도 된다며 최대한 이백한테 점수를 따려는 모습을 보였다.

“저라면 처음부터 싸울 일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이백의 대답 앞에 연노도, 제갈윤호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예상하지도 못했던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랄까.

“이백 공자?”

“너…지금 그걸 말이라고…….”

산에서 바다를 찾는 격이었다.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그러나 옆에 있던 석정강이 분위기도 모르고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하하! 그것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싸우질 않으면 당연히…….”

“닥치지 못해!”겨우 충격의 여운을 떨친 연노가 야차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석정강에게 호통을 쳤다.

그 탓에 잔잔한 흥을 이어가던 객잔 전체의 분위기가 단번에 박살 나고 말았다.

“…….”

시간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한 몇몇 손님들이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중엔 무림인도 몇 있었다. 그러나 척 봐도 ‘나 무림인이다!’하고 쓰여 있는 연노의 옷차림을 보곤 분분히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자신의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척 봐도 강해 보이는 연노 같은 무인과 시비로 얽혀봤자 좋을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이 어린놈아! 누가 그따위 것을 몰라서 물어봤더냐! 그냥 묻는 물음에 대해서 대답이나 할 것이지, 어린놈이 어디서 말장난질이냐!”

연노가 이백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나무랐다.

평소라면 연노를 말렸을 제갈윤호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단 연노가 제대로 화가 나면 제갈윤호도 섣부르게 말릴 자신이 없었다.

“저는 두 분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무공에 대해서는 이미 모른다고 확실히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백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이백의 말도 틀린 점이 없었다. 게다가 이백도 엄연히 고집이란 게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따지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연노가 말끝마다 어린놈이라 해대는 것도 은근히 이백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어린놈이 말대꾸는!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어디가 덧나더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찌 사과하라 하십니까?”

“이 어린놈아! 네 부모가 너를 그리 막 되먹으라 가르치더냐!”

다혈질인 연노가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라 이백을 나무랐다.

본래 성정에 괴팍함이 조금 있는 연노였다.

이백이 제갈윤호의 손님이기에 참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손을 썼을 터였다.

“그만!”

제갈윤호가 결국 참다못해 중재에 나섰다.

여기서 더하면 자칫 이백과 연노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연노. 그만해. 솔직히 무례한 것은 우리잖아. 이백 공자에게 솔직한 생각을 말해달라고 한 것은 우리라고.”

“놈! 명심해라! 네가 도련님의 손님이기에 봐주는 것일 뿐이다!”

억지로 화를 참는 것이 힘들었는지 연노가 씩씩거리며 이백을 향해 소리쳤다.

이백이 이번엔 연노의 말을 맞받아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백은 ‘처음부터 싸울 일을 만들지 않겠다.’던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거참 쓸데없이 시끄러운 것은 나이를 처먹어도 여전하군.”

갑작스럽게 창가 쪽에서 늙수그레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누구냐!”

연노가 가장 먼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급히 내공을 끌어올리는 듯 이마 위로 핏발이 선 얼굴에 당황한 투가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제갈윤호의 앞부터 가로막는 연노였다.

드르륵! 쿠당탕!

제갈윤호와 석정강의 반응은 그다음이었다.

제갈윤호가 허리 왼편에 차고 있던 부채를 펼쳤고, 석정강 또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놓았던 검을 뽑아들었다.

“…….”

그나마 일행들 가운데 평온한 표정으로 있는 것은 오직 이백뿐이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라면 이백의 시선이 한참 전부터 창가 밖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잠깐이지만 제갈윤호가 슬쩍 이백의 모습을 주시했다.

“쯧쯧. 무투왕 연리풍도 이젠 죽을 때가 되었나 보구먼. 제갈세가라는 둥지 속에서 너무 평온하게만 살아온 게야.”

“괴걸 이놈!”

팍! 팍!

창가 쪽에서 불쑥 대머리 노인의 얼굴이 솟구쳐 올랐고, 그와 동시에 연노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퉁겼다.

조금 전 제갈윤호에게 설명했던 바로 그 탄지였다.

휘이익!

“으윽!”

그러나 괴걸이라 불린 노인은 너무나 쉽게 연노의 탄지를 피했다.

피하다 못해 귀신 같은 신법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창가 밖에서 안쪽으로 들어와서 때가 가득 묻어있는 손으로 식탁 위에 있는 음식을 한 움큼 집어먹기까지 했다.

“하하! 역시 가문의 후광이란 게 좋긴 좋구나. 늙은 거지보다 딱히 나은 것도 없는 놈들이 이렇게 비싼 음식도 마음껏 시켜먹을 수 있고 말이야.”

말을 마친 괴걸이 술병을 들어 그 안에 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연노도 이번만큼은 손을 쓰지 못한 채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괴걸을 보며 일행들뿐 아니라,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황당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이백만 처음과 같이 표정의 변화가 없을 뿐.

“이놈은 뭐야?”

그 때문이었을까. 괴걸의 시선이 이백을 향해 꽂혔다.

대게 괴걸의 기행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것.

“너 도사냐?”

괴걸이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이백을 향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게 이백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중이나 도사들이었다.

“이거 진짜 이상한 놈이네.”

그러나 이백도 이번만큼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은 채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늙은 거지 놈아! 네놈이 갑자기 여긴 무슨 일이냐!”

만약 연노의 물음만 아니었다면 괴걸이 계속해서 이백을 바라보았으리라.

서로 아는 사이였는지 괴걸이 연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누런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지는 꼭 젊은 놈처럼 말을 해요. 네놈이 보고 싶어 왔다면 믿을 테냐?”

“개수작 부리지 마라.”

“크큭. 놈. 무공은 녹슬었을망정, 그래도 눈치까지 죽진 않았나 보구나.”

“흥! 가진 것이라곤 주둥아리뿐이 없는 놈이 매를 버는구나.”

괴걸이 연노를 놀리듯 말했다.

깐족거리는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연노도 녹록하지 않아 그런지 서로 대화의 죽이 잘 맞아들어갔다.

“내가 왜 왔느냐 하면 저것 때문이다.”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괴걸의 손끝을 향했다. 괴걸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은 정확히 이백이었다.

이백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괴걸을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그때 괴걸이 이백을 가리켰던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너. 거치적대지 말고 좀 나와봐라.”

괴걸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은 이백이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석정강이었다.

정확히는 석정강의 품속에 있는 포천혜.

“저것 때문에 지금 무림맹이 움직이려 하고 있어.”

무림맹이란 단어가 주는 위화감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던 이백조차 이번만큼은 표정이 굳었다.

포천혜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백도 무관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하. 이러지 말고 우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계속할까? 돈이야 잘나신 집안의 도련님이 있으니 걱정 없잖아.”

모두 긴장한 티가 역력한 가운데, 괴걸만이 건수를 제대로 잡았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주변의 눈과 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방으로 가시지요.”

그래서였을까.

잠시 연노와 눈빛을 주고받던 제갈윤호가 모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추천. 선작. 댓글.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고, 하시는 일들 모두 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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